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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01-03)


예수님에 대한 세례 요한의 증거

요한복음 1장 19-28절


 

진정한 겸손은 스스로를 낮추고, 자신을 넘어서는 위대한 존재의 의미를 세상에 증언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우리의 참된 가치는 세상이 부여하는 명성이 아니라, 맡겨진 사명을 묵묵히 수행하며 사람들이 본질적인 가치를 바라보도록 이끄는 데 있습니다. 이는 미처 알지 못했던 중요한 진리를 세상에 알리고, 그 길을 예비하는 선구자적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참된 본질을 증거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태도는 깊은 의미를 지닙니다. 결국, 우리 삶의 최종 목적이 자신을 드높이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선을 향해 나아가며 빛을 증언하는 데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 먼저, 예루살렘에서 파견된 유대 지도자들이 세례 요한에게 그의 정체를 묻기 위해 찾아옵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이 그리스도도, 엘리야도, 그 선지자도 아니라고 분명히 밝힙니다. 그는 자신을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처럼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소개하며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사명을 말합니다. 그들이 침례를 주는 이유를 묻자, 요한은 자신은 물로 침례를 베풀지만, 그들 가운데 그들이 알지 못하는 분이 계시다고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요한은 자신은 그분의 신발끈을 풀 자격조차 없다고 고백하며 예수님의 위대하심을 증언합니다.

세례 요한의 증언(19-23)

진정한 겸손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자신이 누구인지 명확히 인식하며 분수를 아는 데서 비롯됩니다. 맡겨진 소명을 분명히 깨닫고 그 역할에 충실하는 것이 우리 존재의 참된 가치를 증명합니다. 우리의 사명은 때때로 스스로 빛나는 것이 아니라, 더 크고 중요한 존재나 진리를 세상에 알리고 그 길을 예비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외부의 기대나 오해에도 흔들리지 않고 오직 진실만을 증언하는 용기는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줍니다. 결국, 이러한 삶의 태도는 궁극적인 목적을 향한 길을 열어주고, 시대를 초월하는 의미 있는 변화의 씨앗이 됩니다.

 

19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언이 이러하니라 20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 대 21또 묻되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야냐 이르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22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23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19-23)

 

요한복음을 기록한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세례 요한에게 시선을 고정합니다. 당시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던 요한에게 예루살렘의 바리새인들은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파견하여, 그가 세례를 행하는 진정한 이유를 물었습니다. 하지만 세례 요한은 자신에게 시선이 머무르도록 하는 대신, 역사의 진정한 주인공이신 예수님을 빛나게 한 ‘빛나는 조연’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명확히 제시합니다.

 

(1) 종교 지도자들의 질문(19-21)

 

세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난 친족이자, 제사장 사두개파 가문 출신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세습 제사장으로서 성전에서 누릴 수 있었던 모든 특권과 안락한 삶을 마다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새로운 길을 택했습니다. 화려하지만 타락했던 성전이 아닌 아무것도 없는 광야를 선택한 그는 요단강에서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강력한 “회개하라!”는 메시지를 듣고 수많은 이들이 돌이키며 세례를 받기 위해 그에게 나아왔습니다. 당시 로마의 속박에서 해방시켜 줄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리던 많은 사람들은 세례 요한을 예언자이자 메시아적 존재로 여기며 존경을 표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사역이 죄 용서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었기에, 예루살렘의 성전 권세자들이자 기득권층이었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이 문제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그들은 먼저 세례 요한에게 “당신이 그리스도이시오?”라고 질문했습니다. 이는 1세기 유대인들 사이에 메시아 대망 사상이 얼마나 뿌리 깊었는지를 반증합니다. 세례 요한의 인기가 높아지자 유대교 종교 지도자들은 혹 그가 바로 그 메시아가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고 사절단을 보내어 그의 정체를 직접 물었던 것입니다(19). 그들이 요한에게서 기대한 메시아는 로마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을 정치적으로 해방하고 다윗 왕국의 영광을 회복시킬, 하나님을 대신하여 세상을 다스릴 왕이자 구원자였습니다. 요한이 자신을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하자, 그들은 다시 “그러면 당신이 엘리야이시오?”라고 물었습니다. 엘리야는 메시아가 오시기 전에 그의 길을 예비할 것으로 예견되었던 선지자였으며,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했기에 다시 강림할 것이라는 기대가 컸습니다. 요한은 이 질문에도 단호하게 "아닙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들은 마지막으로 “당신이 그 선지자이시오?”라고 다그쳐 물었습니다. 이는 신명기 18장에 예언된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모세가 이스라엘을 구원했듯이, 그 선지자가 와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것이라는 기대를 반영한 질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세례 요한은 이 물음에도 명확히 “아닙니다”라고 답변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이러한 태도는 올바른 증인과 그리스도인의 자세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뿐만 아니라, 누가 아닌지를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소명의 범위 안에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며, 타인의 역할이나 자리를 탐하거나 자신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을 욕심부려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소원만을 좇아 사는 자들이 아니라, 주님께서 부여하신 소명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애쓰기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이루어 드리기 위해 삶을 드릴 때, 진정한 만족과 기쁨, 그리고 평화가 찾아올 것입니다.

 

(2) 세례 요한의 대답(22-23)

 

세례 요한은 자신을 그리스도와 명확히 구분하며 그 정체성을 강하게 부정했습니다. 헬라어 문법상 동사 안에 인칭대명사가 포함되어 있어 별도로 ‘에고(εγω)’를 명시할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요한복음은 그가 인칭대명사 ‘에고’를 첨가하여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님을 강조하는 장면을 기록합니다. 이는 요한복음이 세례 요한을 낮추고 그리스도를 높이는 신학적 관점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어 유대인들은 세례 요한이 구약성경의 엘리야인지 질문합니다. 종말론적 메신저로서 엘리야에 대한 기대는 말라기 3장 1절과 4장 5절에 근거합니다. 공관복음(마태, 마가, 누가복음)이 세례 요한을 엘리야로 묘사하는 반면, 요한복음은 세례 요한 자신이 “아니다”라고 부인했음을 기록합니다. 이는 복음서 간의 불일치라기보다 각 복음서가 세례 요한의 역할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특징적으로 묘사하는 방식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공관복음서에서는 예수님(마태, 마가) 또는 천사(누가)의 입을 통해 세례 요한의 엘리야 됨이 언급되지만, 요한복음은 요한 자신이 자신을 엘리야로 간주하지 않고, 단지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 인식했다는 점을 부각합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요한을 엘리야로 인정하셨음에도, 정작 요한 자신은 메시아를 위한 한 명의 준비자에 불과하다고 여겼음을 요한복음은 증언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요한이 ‘그 선지자’인지를 묻습니다. 이 질문은 신명기 18장 15절과 18절에 나오는 모세의 예언에 근거하여 유대인들이 특정 선지자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었음을 반증합니다. 당시 유대인 사회에는 종말에 이사야나 예레미아와 같은 선지자가 나타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요세푸스의 기록처럼 1세기 팔레스타인에는 자신을 구원할 선지자로 자처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례 요한은 이러한 어떤 타이틀조차 거부합니다. 그는 그리스도, 엘리야, 그 선지자 등 모든 칭호를 물리치고, 자신의 정체성을 이사야 40장 3절의 말씀인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로 선언합니다.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비해 요한은 자신을 ‘소리’로 표현하며,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홀연히 사라지는 자신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이사야 40장 3절은 본래 바벨론 포로 기간의 종식을 예언하며, 이 포로 귀환을 새로운 출애굽 사건으로 묘사합니다. 따라서 세례 요한이 자신을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로 명명한 것은 그가 새 출애굽을 선포하는 메신저로서의 사명을 인식했음을 드러냅니다.

 

이사야 40장 3절은 공관복음에서도 동일하게 인용됩니다. 마태와 마가는 칠십인역 이사야 40장 3절을 거의 유사하게 언급하며, 누가 역시 유사하게 인용하지만 40장 4절과 5절까지 포함하여 세례 요한의 배경과 사역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누가복음의 서술 방식과 일맥상통합니다. 이에 반해 요한복음은 이사야 40장 3절을 “주의 길을 곧게 하라”는 부분만 간결하게 축약 인용합니다. 이는 요한복음이 핵심 메시지를 강조하며 간결하게 전달하려는 의도를 보여줍니다. 또한 공관복음에서는 복음서 저자가 이사야 본문을 언급하는 데 반해, 요한복음에서는 세례 요한 자신이 직접 이 본문으로 자신을 설명하는 점이 특징입니다. 이사야서에서 선지자의 사역은 포로기라는 하나님의 역사를 준비하는 ‘소리’로 묘사되지만, 요한복음은 세례 요한을 메시아를 준비하는 사역자로 묘사하며 그 초점을 메시아에게 맞춥니다.

 

그렇다면 “주의 길을 곧게 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사야 문맥에서도 이는 사람들의 마음을 준비시키기 위한 상징적인 의미였습니다. 광야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는 골짜기, 산, 언덕, 험한 곳 등 수많은 장애물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장애물들을 평탄하게 하고 고르게 하는 것은 예루살렘에 쉽고 빠르게 도달하기 위함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하시기 위해 임재하실 때, 그만큼 사람들의 마음이 잘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의 사역을 바로 이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준비시키는 일로 여겼습니다. 사람들 속에 있는 죄라는 장애물을 제거하고 그들을 회개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사람들 속에 있는 죄를 깨끗게 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역사가 빠르고 충만하게 임하도록 섬기는 사명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준비하는 메시아 예수님은 백성들을 죄와 사망의 속박에서 자유롭게 하여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실 분이십니다. 이 나라의 왕으로서 예수님은 진리를 증언하며 그 나라를 세우실 것입니다. 이러한 메시아의 사역을 위해 세례 요한은 먼저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도록 촉구하며 그 길을 예비했습니다.

 

자신을 낮추어 주님을 높인 세례 요한(24-28)

특정 인물은 자신보다 더 큰 가치를 인정하며 겸손히 그 길을 예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개인의 주목 대신 더 숭고한 목적에 헌신함으로써, 스스로를 낮추어 타인을 높이는 진정한 리더십을 실천했습니다. 이는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기꺼이 희생하며 섬기는 데 진정한 가치가 있음을 일깨우는 깊은 교훈을 남깁니다. 결국 우리는 이러한 자세를 통해 겸손과 섬김의 의미를 깨닫고, 더 큰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용기를 얻게 됩니다.

 

24그들은 바리새인들이 보낸 자라 25또 물어 이르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세례를 베푸느냐 26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27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 28이 일은 요한이 세례 베풀던 곳 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일어난 일이니라(24-28)

 

예루살렘에서 파견된 사람들과 세례 요한 사이에는 사역을 둘러싼 또 다른 대화가 이어집니다. 바리새인들이 보낸 자들은 요한이 메시아도 엘리야도 아니라면 왜 세례를 베푸느냐고 묻습니다. 한 개인이 대중에게 세례를 베푸는 일은 당시 기준으로도 독특한 형태였기에, 그들은 요한의 자기 부인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역의 정당성과 함께 정체성에 대해 새로운 각도에서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이에 대해 요한은 두 갈래로 답합니다. 첫째는 자신의 세례 사역의 본질입니다. 그는 자신이 단지 물로 세례를 베푼다고 밝힙니다. 그의 세례는 죄에 대한 회개와 맞닿아 있으며, 이는 이사야 40장에서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가 전할 두 내용 가운데 하나, 곧 주님을 맞을 마음의 준비를 시키는 일과 정확히 맞물립니다. 사람들의 내면에 놓인 장애물을 평탄케 하여 하나님의 임재가 더딤 없이 임하도록 돕는 상징적 행위로서의 세례가 강조됩니다.

 

둘째는 예수님에 대한 증언입니다. 요한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분”이 이미 계시며, 그분은 자신의 뒤에 오실 분이라고 선언합니다. 아직 그들이 알아보지 못하고 있을 뿐 곧 등장하실 메시아라는 뜻입니다. 이어 그는 자신이 그분의 신발끈을 풀 자격조차 없다고 말합니다. 신발끈을 푸는 일은 제자나 종이 스승과 주인에게 하는 가장 낮은 봉사에 속하는데, 요한은 그조차 감당할 수 없다고 표현함으로써 단순한 겸양이 아니라 증언 받으시는 그분의 탁월함과 초월성을 부각합니다. 비교의 초점은 요한의 겸손이 아니라 메시아의 위격과 권능에 있습니다.

 

이사야서의 맥락에 따르면 광야의 소리가 증거하는 분은 “주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요한의 응답은 자신이 메시아나 엘리야, 혹은 신명기가 예고한 그 선지자 같은 종말적 구원자가 결코 아님을 재차 확인하면서, 광야의 소리로서의 두 역할—회개로 사람들을 준비시키고 장차 임할 주님을 증언하는 일—에 성실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전합니다. 포로 귀환을 새 출애굽으로 묘사하는 이사야의 큰 서사 안에서 요한은 왕의 행차를 위해 대로를 평탄케 하는 전령으로 서 있습니다.

 

이 대화를 통해 우리는 두 가지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됩니다. 첫째, 그들은 왜 왔는가. 둘째, 그들은 요한이 증거한 분을 기대했는가. 사절단은 메시아를 믿으려는 순수한 동기라기보다, 요한이 예루살렘 종교 기득권에 위해가 되는 인물인지 판단하려는 의도로 온 것으로 보입니다. 요한이 자신을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는 자로 천명하고, 자기 뒤에 오실 분이 주님이라고 증언했기에 하나님의 구원을 소망하는 이라면 마땅히 그분을 사모하고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종교지도자라면 더욱 그러했어야 하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 장면은 훗날 예수님의 공생애에서 되풀이될 국면을 예고합니다. 요한처럼 예수님도 그들의 손에서 정체성에 대한 심문을 받게 될 것이며, 그분이 자신의 정체와 사역으로 하나님을 드러내실지라도 불순한 동기 때문에 그들은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본문은 요한복음 1장 10–11절이 말하는 주제—곧 예수의 정체 계시와 사람들의 부정적 반응—가 실제 역사 속 사건으로 처음 표면화되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빛이 어둠에 비추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고, 자기 땅에 오셨으나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않는 역설이 세례 요한과 종교 지도자들의 대화에서 이미 전조로 드러납니다. 요한은 자신을 “소리”로 한정하고 모든 시선을 “오시는 분”께로 돌립니다. 그의 세례는 회개의 표지이고, 그의 증언은 메시아의 초월을 각인시키는 도구입니다. 결국 진짜 질문은 “요한이 누구인가”가 아니라 “요한이 증거한 그분이 누구인가”로 수렴되며, 본문은 독자를 그 결론 앞에 정중히 세워 놓습니다.


본문은 세례 요한의 겸손한 자기 부인과 그리스도를 향한 분명한 증언을 선명히 보여줍니다. 그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오직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광야의 외치는 소리”로서의 사명에 충실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심지어 메시아의 신발끈을 풀 자격조차 없다고 고백하며, 자신보다 훨씬 위대하신 예수님만을 높였습니다. 이처럼 그의 삶은 인간의 시선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오롯이 집중하며 그리스도를 향해 온전히 방향을 맞춘 신앙의 모범입니다. 우리 또한 세례 요한처럼 세상의 시선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그분을 증거하는 겸손하고 진실한 증인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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