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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01-04)


예수님을 만난 요한과 제자들

요한복음 1장 29-42절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한 위대한 존재 또는 궁극적인 진리를 발견하는 여정에서 선구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이 선구자는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참된 대상을 가리키며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는 진리 속에 담긴 깊은 의미와 사명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돕습니다. 또한, 이러한 궁극적인 존재나 진리와의 만남은 개인의 정체성과 삶의 방향에 근본적이고 심오한 변화를 가져온다는 점입니다. 이는 단순히 피상적인 것을 따르는 것을 넘어, 내면의 깊은 울림에 귀 기울일 때 진정한 삶의 전환과 성장이 이루어진다는 귀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 본문에서는 예수님에 관한 세 가지 기독론적 표현이 등장합니다. 첫째는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죄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다’라는 내용입니다. 둘째, 예수님은 또한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려 그 위에 머무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님은 아버지를 세상에 드러내십니다. 그리고 세 번째 예수님은 아들의 입을 통해 참된 ‘메시아’로 묘사됩니다.

 

예수님을 전한 요한(29-34)

진정한 안내자나 선구자은 결코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오히려 자신에게 향하는 관심과 영광을 겸손하게 거부합니다. 모든 이의 시선을 자신보다 더 근원적이고 위대한 진리나 해결책으로 향하게 합니다. 이러한 역할은 인류가 직면한 본질적인 문제를 해소할 궁극적인 원리를 명확히 제시하고, 이를 실제적인 경험이나 증거를 통해 확증하는 데 있습니다. 결국, 참된 길잡이란 개인적인 명예나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오직 진정으로 필요한 답이 있는 곳으로 모두를 인도하는 데 헌신해야 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29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0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31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32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33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34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29-34)

 

세례 요한은 역사적 전환점에서 등장한 인물로, 자신에게 부여된 독특한 사명을 명확히 인식하고 수행했습니다. 그는 고대 예언의 성취자로서, 위대한 존재, 즉 메시아를 맞이할 길을 예비하는 데 자신의 본분이 있음을 천명했습니다. 그가 강조한 '길을 곧게 하는 것'은 단순한 물리적 정비가 아닌, 인간 내면의 영적 회복과 정화를 의미했습니다.

요한이 베푼 세례는 궁극적인 구원을 위한 최종 단계가 아니라, 마음속에 새로운 주인이 임할 공간을 마련하는 준비 과정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메시아로 오해하는 이들에게 자신이 진정한 메시아와 비교할 수 없는 존재임을 단호히 밝히며 겸손을 보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이처럼 자신의 소명을 정확히 이해하고, 흔들림 없는 충성심으로 더 큰 존재의 도래를 예비하는 진정한 영적 리더의 모범을 제시했습니다.

 

(1) 어린 양을 알아본 세례 요한(29-31)

 

세례 요한의 사역은 단순히 회개를 촉구하는 것을 넘어, 인류가 오랫동안 기다려 온 메시아를 드러내는 데 있었습니다. 앞서 종교 지도자들과의 문답에서 자신을 광야에서 길을 예비하는 소리라고 겸손히 소개했던 요한은, ‘이튿날’이라는 시간적 전환과 함께 예수님께서 다시 등장하자 모든 시선을 그분께로 돌립니다. 세례를 베풀던 요한은 자신에게 나아오는 예수님을 보자마자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힘주어 외칩니다(29).

 

요한이 예수님을 지칭한 ‘어린 양’이라는 표현은 유대인들에게 매우 익숙하면서도 심오한 의미를 내포합니다. 이는 출애굽 사건의 핵심이었던 ‘유월절 어린 양’(출애굽기 12:3)의 대속적 희생, 이사야서에 예언된 ‘고난받는 종’의 죄 담당 사역, 그리고 묵시록에 나타난 ‘승리하는 어린 양’의 이미지가 복합적으로 결합된 개념입니다. 곧 ‘하나님의 어린 양’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 대신 준비하신 양처럼, 인류의 죄를 속하기 위해 친히 준비하시고 보내신 최고의 희생 제물이자 모든 어린 양 개념을 완성하는 존재를 의미합니다. 그 핵심 사역은 온 이스라엘뿐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특히 ‘지고 가다’로 번역된 헬라어 ‘아이로’는 ‘용서하다’는 뜻 외에 ‘들어 올리다’ 또는 ‘치우다’는 원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세상 죄를 짊어지고 제거하는 속죄적 의미를 강력히 나타낼 뿐 아니라, 한편으로는 죄악을 ‘정복하여 빼앗는’ 승리자의 모습까지 포함합니다. 이는 요한계시록에서 죽임을 당했지만 다시 살아나 승리하신 어린 양의 모습과 일맥상통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 희생 제물의 모습과 영광스러운 왕의 모습이 공존함을 보여줍니다.

 

요한은 이 예수님을 자신이 이전에 언급했던 ‘나보다 먼저 계신 분’(15)과 동일시하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바로 이 ‘세상의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임을 천명합니다. 이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하신 목적이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는 계시와 동시에 사람들을 위한 궁극적인 속죄임을 명확히 합니다. 따라서 세례 요한의 사역과 세례는 단순히 회개를 넘어,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아들’이신 메시아를 나타내고 구약의 성령 충만 예언을 예수님 안에서 성취되게 하는 중대한 예비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2) 성령의 증언로 알게 된 예수님(31-34)

 

세례 요한의 사역은 그의 개인적인 의지나 계획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특정한 목적을 위해 ‘보냄 받은 자’로 이해했으며, 이는 요한복음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개념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고, 예수님께서 다시 제자들을 보내신 것처럼, 세례 요한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사명을 부여받은 존재였습니다. 이처럼 ‘보냄 받음’이라는 개념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과 그것을 이 땅에서 구현해 나가는 모든 이들의 사명이 상호 연결되어 있음을 시사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계승하는 동시에, 마치 세례 요한이 그랬듯이 다시 오실 주님 또는 그분의 복음을 위한 길을 준비하는 이중적인 역할을 감당합니다. 이는 사람들의 교만한 마음을 겸손하게 낮추고, 절망에 빠진 이들의 상한 마음을 위로하며 메꾸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그들의 심령에 온전히 임할 수 있도록 영적인 지형을 평탄하게 만드는 작업입니다. 이를 위해 교회는 성령 안에서 사랑과 나눔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진리를 통해 그들이 진정으로 회개하여 주님께 돌아오도록 힘써야 합니다.

 

세례 요한의 증언은 이러한 사명의 정점에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가리켜 두 가지 핵심적인 기독론적 호칭, 즉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분명하게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희생 제물이심을,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분의 신성한 본질과 메시아적 정체성을 드러냅니다. 요한의 이러한 강력한 증언은 요한복음 서문에서부터 꾸준히 강조되어 온 예수님의 신성을 확증하며, 복음서 전체가 전하고자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하고 완전한 구원자 되심과 하나님의 아들 되심이라는 핵심 주제를 더욱 강화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35-42)

삶의 전환점은 종종 개인이 내면의 깊은 부름에 진정으로 응답하는 순간 시작됩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한 사람의 존재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며, 새로운 방향과 의미를 부여하게 됩니다. 변화된 개인은 다른 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 그들을 더 큰 가치나 이상으로 이끄는 연결자 역할을 합니다. 비록 보잘것없어 보이던 시작일지라도 헌신과 믿음이 더해질 때, 상상할 수 없는 위대한 영향력과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는 곧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충실히 역할을 다하는 것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동력이 됨을 의미합니다.

 

35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36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7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38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39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40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41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42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35-42)

 

성도들의 삶은 세례 요한이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고백하며 오직 주님만을 높였던 것처럼, 그리고 사도 바울이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를 원한다”고 선포했던 것처럼, 자신을 낮추어 오직 그리스도만을 드러내는 데 온전히 헌신되어야 합니다. 이는 자신의 존재가 희미해지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분명히 드러나는 삶의 태도를 의미하며, 이 고백이 성도들에게 주어진 영원한 사명이자 지향점임을 보여줍니다.

 

(1) 예수님을 따르는 세례 요한의 두 제자(35-39)

 

세례 요한의 주요 제자들 중 두 명이 예수님을 만나 그분을 따르는 장면은 복음서의 중요한 전환점 중 하나입니다. 한 명은 안드레로 명시되어 있으며, 다른 한 명은 익명으로 처리되어 있어 다양한 해석을 낳습니다. 공관복음서에서는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이 예수님의 초기 제자들로 소개되는데, 요한복음의 이 본문에서 안드레가 그의 형제 베드로를 예수님께 인도하는 과정과 익명의 제자가 함께하는 점을 고려할 때, 이 제자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 요한일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합니다.

 

이 두 제자는 세례 요한으로부터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36)라는 계시적인 소개를 받았습니다. 세례 요한의 이 예언적 선포를 들은 그들은 지체 없이 요한을 따르던 길을 뒤로하고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단하며, 예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교제하게 됩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제자들을 떠나보내는 세례 요한의 입장이 다소 서운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세례 요한이 이미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장차 오실 메시아를 예비하고 그분이 나타나실 때 기꺼이 그분을 따를 것을 가르쳤던 결과로 해석됩니다. 따라서 제자들은 요한의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소개를 듣는 순간, 그 말씀 속에 담긴 메시아를 알아보았고 즉시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선택했던 것입니다.

 

(2) 베드로에게 예수님을 증거하는 안드레(40-42)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서막은 안드레가 그의 형제 시몬 베드로에게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41)라고 선포하면서 시작됩니다. 안드레의 확신에 찬 고백과 함께, 베드로 또한 지체 없이 예수님을 따르는 삶으로 나아갑니다. 여기서 ‘따르다’와 ‘거하다’라는 동사는 단순히 물리적인 행위를 넘어선 이중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이 동사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 안에 머물고 그분의 말씀을 따르며, 궁극적으로는 그분의 사랑을 세상에 드러내는 존재임을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따라서 이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그분과 ‘거했다’는 것은 곧 그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결정적인 암시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안드레는 세례 요한으로부터 예수님을 ‘어린 양’으로 소개받은 후, 예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나서 그분을 메시아로 확신했습니다. 이는 ‘어린 양 기독론’과 예수님의 ‘메시아 직분’ 사이에 깊은 연관성이 있음을 시사합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지칭한 것은 단순한 희생 제물이 아닌, 죄를 정복하고 종말론적 승리를 가져올 영광스러운 메시아의 도래를 예고한 것입니다. 곧,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속죄의 희생일 뿐만 아니라, 그 죄의 권세를 파하고 진정한 구원을 이루실 메시아임을 분명히 드러냅니다.

 

성도의 삶은 오직 예수님만을 온전히 드러내고 그분을 전하는 것에 집중되어야 합니다. 세례 요한은 이러한 삶의 본보기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알려주신 그대로,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증거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사명이 어린 양처럼 자신을 내어주는 희생적 죽음을 포함함을 암시합니다. 대중의 존경을 받던 세례 요한은 자신의 사역, 즉 물세례의 중요성을 겸손히 낮추었습니다. 그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주는 세례에 머물지 말고, 궁극적인 목적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성령 세례임을 강조하며, 주목해야 할 진정한 분은 자신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 한 분뿐임을 선포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분명한 증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이신지, 그분의 유일무이한 정체성을 명확히 드러냅니다. 그분은 온 세상의 죄를 대속하시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며, 동시에 완전한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의 모든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실 유일한 구원자이심을 우리는 깊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이 초기 제자들의 삶을 온전히 변화시키고 새로운 길로 이끌었듯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새로운 정체성과 삶의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세례 요한처럼 주님의 오실 길을 예비하고, 이 놀라운 복음을 세상에 증거하는 소명을 충실히 감당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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