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01-02)

세상에 오신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요한복음 1장 9-18절
우리의 삶에서 진정한 가치는 단순히 받는 데 있지 않고, 오히려 타인을 위한 섬김과 나눔에서 비롯된 깊은 만족과 연결됩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내면을 비추고 길을 안내하는 참된 지혜와 빛이 존재하지만, 우리는 때때로 물질적 성취나 스스로의 능력에만 의지하며 본연의 소망을 잊기도 합니다. 이러한 근원적인 빛과 깨달음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단순한 개인적 노력을 넘어선 새로운 차원의 존재 의미와 관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세상의 시선이나 욕망을 뛰어넘어, 참된 풍요와 진실의 원천에서 비롯되는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깨달음은 어둠을 밝히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찾으며, 우리 삶에 진정한 생명력을 불어넣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 세상에 오신 참 빛이신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비추셨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지 못했고 그분의 백성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분을 영접하고 그 이름을 믿는 모든 이들에게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허락하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예수님에게서 우리는 충만한 은혜와 진리를 받았습니다. 율법이 모세를 통해 주어진 반면,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입니다. 아무도 하나님을 본 적이 없으나, 아버지 품속에 계신 독생하신 하나님께서 그분을 분명하게 드러내셨습니다.
세상에 임한 빛에 두 반응(9-13)
우리 모두의 삶을 비추는 보편적인 진실과 의미의 '빛'은 항상 우리 주변에 존재하며, 각자의 존재를 향해 끊임없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이 빛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혹은 익숙하고 편안한 자신의 방식만을 고집하여 참된 의미를 외면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 근원적인 진리를 깨닫고 마음을 열어 받아들일 때, 우리는 개인의 노력이나 조건으로는 얻을 수 없는 놀라운 변화와 새로운 차원의 관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 새롭고 고귀한 신분은 세속적인 기준이나 혈통, 육체적 욕망이 아닌, 더 높은 근원에서 부여되는 선물임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궁극적으로 이 깊이 있는 깨달음은 현대인의 삶에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평화와 분명한 방향성을 제시하며, 진정한 의미를 찾아 나아가는 길을 열어줄 것입니다.
9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9-13)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를 ‘빛과 어둠의 시대’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본문 말씀은, 모든 사람에게 비추는 참된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음을 증언합니다. 비록 세상은 그 빛을 깨닫지 못하고 심지어 그분의 백성조차 영접하지 않았지만, 놀랍게도 그분을 영접하고 그 이름을 믿는 모든 이들에게는 혈통이나 육체적인 것이 아닌,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놀라운 권세가 주어졌다고 말씀합니다.
(1) 세상 참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9)
요한복음은 세례 요한의 증언(1:6-8)을 기점으로 그 초점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옮겨갑니다. 세례 요한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로서,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왔던 인물입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믿게 하고자 자신의 삶과 인격을 통해 구원자를 증거하는 역할을 하였지만, 결코 자신이 그 빛 자체는 아니었습니다. 요한의 사역은 그리스도의 공생애를 예비하는 중간 매개자로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참된 구원자로 믿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본문은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라고 기록하며 예수님의 고유한 정체성을 선포합니다. 진정한 참 빛은 오직 하나님께서 세상에 보내신 창조주시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둠 속에 있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을 세상의 참된 빛으로 보내셨습니다.
본 구절은 예수님에 대한 세 가지 중요한 상징적 요소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의 고유한 정체성: 이는 예수님의 유일무이한 정체성을 ‘참 빛’으로 명확히 규정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어둠을 밝히고 생명을 부여하는 근원적인 광원이십니다. 둘째, 성육신 사건의 선포: 예수님께서 인류의 역사 속으로 친히 들어오신 ‘성육신’ 사건을 ‘세상에 왔다’는 표현으로 드러냅니다. 이는 영원하신 하나님이 시간과 공간 안으로 임재하신 신비로운 사건을 의미합니다. 셋째는, 보편적 사역의 명시: 예수님의 사역이 모든 사람에게 진리를 깨닫게 하고 구원의 길을 밝히는 ‘빛을 비추는 행위’임을 명시합니다. 그 빛은 특정 민족이나 계층에 국한되지 않고, 각 사람에게 비추는 보편성을 지닙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어둠을 밝히고 생명을 부여하는 참 빛으로 이 땅에 임하셔서, 인류에게 구원과 진리를 비추고 계십니다.
(2) 참 빛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10-11)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에 대한 인류의 근본적인 반응을 두 가지 상반된 모습으로 깊이 조명합니다. 그 첫 번째는 참 빛이신 예수님을 향한 인류의 비극적인 부정적인 반응입니다. 성경은 “그가 세상에 계셨으매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니”(10-11)라고 선포하며 충격적인 현실을 드러냅니다.
이는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자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직접 당신이 만드신 세상 속에 육신을 입고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피조물인 세상이 그 창조주를 인식하지 못하고 심지어 그분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역설적인 상황을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거절은 단순히 지적인 무지함에서 비롯된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빛이신 주님을 어둠 속에서 진실로 알아보지 못했음도 있지만, 동시에 자신의 익숙한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포기하고 ‘참 빛’이신 예수님을 자신들의 왕으로 인정하기를 꺼려 했던 마음의 완고함과 영적인 둔감함이 더 크게 작용했습니다.
더욱이, 오랫동안 메시아를 고대하며 하나님께로부터 특별히 선택받았다고 여겨졌던 이스라엘 백성, 즉 ‘자기 백성’조차도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비극은 이 거부의 심각성을 더욱 부각시킵니다. 이들은 구약성경을 통해 예언되었던 메시아가 바로 자신들의 눈앞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편견과 종교적인 틀에 갇혀 진실을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생명의 참 빛을 비추시려 임했건만, 영적인 어둠에 깊이 물들어 있던 당시 사람들은 그 빛을 알아보지 못했고, 하나님의 아들을 마음 깊이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요한복음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두 번째 반응, 즉 믿음을 통한 영접과 구원의 길을 제시합니다. 본문은 인간적인 노력이나 고귀한 혈통, 육체적 의지나 계획으로는 결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음을 분명히 선언합니다. 오직 유일한 길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12)라는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믿음의 문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통해 어둠에서 벗어나 빛의 자녀, 곧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놀라운 구원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적인 조건이나 자격과는 전혀 상관없이,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모든 이들을 기꺼이 당신의 자녀로 삼아 주시는 무한하고 놀라운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자녀 된 특권을 누리는 우리는 이제 주변의 영적 어둠 속에 있는 이들에게 이 생명의 복음을 전하여 그들 또한 빛 가운데로 나아와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을 경험하도록 돕는 거룩한 사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3) 참 빛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12-13)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인류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심으로써, 감히 범접할 수 없었던 하나님 아버지의 본성과 그 영광을 가장 온전하고 실제적인 방식으로 계시하셨습니다. 이는 마치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장막(성막)에 임재하시어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거하셨듯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 안에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와 진리가 거하시면서 그분의 영광을 충만히 드러내신 것입니다. 이로써 인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영광스럽고 생생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역동적인 자기 계시 앞에서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거부하거나 거역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어떤 이들은 그분이 가져오신 진정한 빛으로 나아와 기꺼이 응답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은 이 중요한 진리를 명확히 선포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초자연적인 방식으로 이 땅에 오셨으며, 그분을 영접하고 믿는 것 외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다른 어떤 길도 존재하지 않음을 분명히 밝힙니다.
역사 속에서 인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얻기 위해 물질적인 부, 세속적인 권력, 혹은 지독한 종교적 열심 등 수많은 인간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심지어 구약 시대 유대인들이 혈통적 우월성이나 율법 준수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임을 주장했듯이, 다양한 방식으로 노력했지만 결국 이 모든 시도들은 한계에 부딪히며 궁극적인 좌절을 경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간의 노력은 본질적인 어둠과 무력함을 직면하게 만들 뿐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를 얻기 위해서는 자신의 내면에 깊이 자리한 어둠을 인정하고, 자신의 무력함을 시인하며, 자기 자신의 ‘왕국’, 즉 자기중심적인 삶의 주권을 포기해야 합니다. 자신의 전 존재가 참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임을 겸손히 고백하고, 그분께 자신의 모든 권리와 주권을 온전히 내어드릴 때, 비로소 인간이 포기한 모든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무한한 가치를 지닌 하나님 나라의 특권을 선물로 받게 될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자녀라는 특권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하고 있다면, 그 삶의 진정한 주인은 아직 예수 그리스도가 아닐 것입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이 고귀한 신분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주님께 모든 것을 온전히 내어드리는 삶을 살아갈 때, 비로소 참된 의미와 자유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을 나타내신 예수님(14-18)
우리의 삶에서 참된 가치는 단순히 지식으로 아는 것을 넘어, 그것이 실제로 어떤 형태로 우리 가운데 ‘존재’하며 ‘함께하는가’에 달려 있음을 교훈합니다. 이는 추상적인 이상이나 원칙이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나 우리와 직접 상호작용할 때 비로소 그 진정한 본질과 영광을 깨달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진정한 충만함과 풍요로움은 끊임없이 베풀어지고 주어지는 은혜와 같이 지속적으로 생성되며, 이로부터 우리의 삶은 더욱 풍요로워집니다. 엄격한 규칙이나 규정보다는, 따뜻한 이해와 포용이 더 큰 변화와 성숙을 이끌어내며 삶에 깊은 의미를 부여한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근원적인 진리는 특정 존재나 방식을 통해 우리에게 드러나야만 온전히 이해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우리는 삶의 참된 목적과 빛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5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16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17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18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14-18)
본문은 우리는 요한복음의 가장 심오하고 아름다운 진리 중 하나가 담겨 있는 말씀, 1장 14-18절을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이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놀라운 사건과, 그로 인해 우리에게 주어진 참된 은혜와 진리가 무엇인지를 선포합니다.
(1)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심(14)
요한복음 1장 14절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선포합니다.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그 자체로 하나님이셨던 말씀이, 우리와 동일한 연약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은 실로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신비입니다. 이는 감히 범접할 수 없었던 하나님 아버지의 본성과 그 영광을 가장 온전하고 실제적인 방식으로 인류에게 계시하신 사건입니다.
여기서 ‘거하시매’로 번역된 헬라어 ‘에스케노센(ἐσκήνωσεν)’은 ‘장막을 치다’, ‘텐트를 치다’라는 깊은 의미를 내포합니다. 이는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성막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임재하시며 함께 거하셨던 역사를 연상하게 합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돌로 지어진 성전이나 천으로 된 장막이 아닌, 당신의 몸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가장 온전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하게 된 것입니다.
마치 구약의 성막 안에 임했던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이 이제는 육신이 되신 예수님 안에서 온전히 드러나고, 그 충만한 은혜와 진리가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계시되는 것과 같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류는 가장 영광스럽고 실제적인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리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진리를 가르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친히 진리 그 자체가 되시어 우리 가운데 거하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2) 요한의 증언과 은혜 위의 은혜(15-16)
세례 요한은 이미 이 땅에 오신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15). 이 증언은 예수님의 선재성(pre-existence), 즉 세례 요한보다 먼저 존재하셨다는 것을 분명히 밝힙니다.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셨던 말씀이시며, 이 세상에 오시기 전부터 하나님의 아들로서 존재하셨던 분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 예수님의 충만한 데서 모든 것을 받았습니다. 16절 말씀은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고 선포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가 단지 한 번 주어지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마치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오듯 넘치고 또 넘쳐서, 은혜 위에 또 다른 은혜가 쌓이는, 즉 무한하고 지속적인 하나님의 풍성한 은총을 우리가 경험하게 됨을 의미합니다.
그분의 충만함 속에서 우리는 죄 용서뿐만 아니라 새로운 생명, 평화, 그리고 날마다의 필요를 채우시는 지속적인 공급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며, 그분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과 축복을 끊임없이 경험하게 됩니다.
(3) 하나님을 온전히 알게 됨(17-18)
요한복음 1장 17절은 율법과 은혜를 명확하게 대조하며 중요한 영적 전환점을 제시합니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모세를 통해 주어진 율법이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고 죄를 깨닫게 하는 역할을 하였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는 단순한 지식을 넘어서는 구체적인 은혜와 진리가 실재로 임하게 되었습니다. 율법이 결코 할 수 없었던 ‘생명을 부여하는 것’과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여는 것’을 예수님께서 친히 성취하신 것입니다.
이어지는 18절은 이 본문의 결론이자 진리의 정점입니다. “아무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인간은 그 누구도 완전하신 하나님을 직접 볼 수 없었습니다. 죄로 인해 가려지고 연약한 인간의 존재로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직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가장 친밀한 품속에 계시던, 곧 아버지와 한 본질이신 독생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심으로써, 그 신비롭고 완전하신 하나님을 가장 분명하고 완전한 방식으로 계시하고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비로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과 본성을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으며, 그분 안에서 구원과 생명의 진리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본문은 참 빛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 그리고 우리에게 어떤 구원을 베푸셨는지를 선명히 보여줍니다. 세상은 그 빛을 알아보지 못하고 영접하기를 거부했지만,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놀라운 권세가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충만함 속에서 끊임없이 쏟아지는 ‘은혜 위에 은혜’를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율법을 넘어 은혜와 진리로 오신 예수님을 통해 비로소 우리는 친히 하나님 아버지를 온전히 알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허락된 가장 큰 축복입니다. 바라기는 이 참 빛 되신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허락된 놀라운 특권과 사명을 깊이 깨닫고, 세상 가운데 그분의 빛과 영광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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