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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20-01)


성전 정화와 권위를 소유한 예수님

누가복음 20장 1-8절


 

우리는 자신의 신앙이 무엇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지를 성찰해야 합니다. 신앙의 진정한 근원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습니다. 외적인 형식이나 규칙에 의존하기보다는, 개인적인 교제를 통해 하나님을 경험해야 합니다. 이러한 관계는 우리 신앙의 깊이를 더하고, 진리를 마주할 때 용기를 줍니다. 신앙의 진정성은 외부 평가가 아닌 내면의 진리를 바탕으로 해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우선시하며 신앙생활에 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하신 논쟁과 가르침이 누가복음 20:1-21:4에서 소개된비다. 20:1-8은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무슨 권위로 내쫓았는지에 관한 논쟁을 소개합니다. 20:9-19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의 권위로 그렇게 하셨음을 알려주는 비유를 담고 있습니다. 20:20-26은 로마 황제에게 세금 내는 문제에 관한 문답을 기록하며, 20:27-40은 부활에 관한 논쟁을 담고 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의원의 질문(1-2)

신앙의 근본적인 질문인 ‘내 신앙의 권위는 어디에서 오는가?’를 스스로에게 던져야 합니다. 이러한 질문은 신앙의 기초를 점검하고, 그 뿌리를 확고히 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이런 질문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믿음의 출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성찰은 더 깊은 이해와 신앙의 성장을 이끌어 냅니다.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강화하는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1하루는 예수께서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실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과 함께 가까이 와서 2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위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1-2)

 

앞에서는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입성하시면서 하나님 나라는 세상 나라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매매하는 자들을 쫓아내는 성전 청소하시고, 성전에서 복음을 가르치셨습니다. 성전 청소 사건으로 얼마 동안 성전의 운영이 마비되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더욱더 죽이길 원했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따른 이들이 너무 많아서 계속 그 기회만을 보고 있었습니다.

산헤드린 공의회를 구성하는 대제사장들, 서기관들, 장로들이 예수님께 몰려와서 예수님께 항의합니다. 예수님께서 성전 뜰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쫓아낸 일이 못마땅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일을 무슨 권위로 했느냐고 따져 묻습니다. 이러한 반응은 성전 뜰에서 장사하는 것을 허용한 기관이 산헤드린이었음을 알려줍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행동이 자기들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며, 특히 성전을 강도의 소굴에 비유한 예수님의 발언이 자기들을 강도로 간주하여 모독한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어느 쪽으로 대답해도 함정에 빠지는 교묘한 질문을 가지고 나왔스니다. 예수님의 권위가 어디서 온 것이냐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고 하면 신성모독이라고 몰고 사람으로부터 왔다고 하면 산헤드린의 결정을 무시하고 사사로이 불법을 행했다는 이유로 처벌할 심산이었을 것입니다. 성전에 들어와서 소란을 피우고 성전 지도자들을 강도라고 모독했다는 죄를 뒤집어씌우려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역질문(3-4)

우리는 진리를 탐구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신앙생활에서 진리는 우리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러한 탐구는 단순한 지식의 습득을 넘어,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형성하는 데 기여합니다. 또한,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믿음을 점검하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결국, 진리를 탐구하는 자세는 신앙의 깊이를 더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인도를 더욱 잘 받을 수 있도록 합니다.

 

3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내게 말하라 4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3-4)

 

예수님께서는 산헤드린 의원들이 던진 질문에 담긴 함정을 간파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쪽으로도 대답하지 않으시고 역질문을 던지십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던지신 역질문에는 산헤드린 의원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가 신적 권위를 가지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묻는 질문은 사람에게서 기원하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권위가 있다는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한 권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가 바로 세례 요한입니다. 산헤드린 의원들도 이것을 부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하나님께서 부여한 권위로 세례를 주었다고 한다면, 예수님께서도 그러한 권위로 성전 뜰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쫓아내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산헤드린이 허락한 성전 장사를 예수님께서 금하실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신적 권위가 있다고 대답하셨다면 산헤드린 의원들이 분개하며 신성모독이라고 주장했겠지만, 세례 요한을 통해서 자신의 신적 권위를 암시할 때에는 그렇게 할 근거가 없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의원의 대답(5-7)

우리가 진리와 마주했을 때 정직하게 대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신앙생활에서 진리는 우리의 삶을 인도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신앙의 진리를 탐구할 때 외부의 평가에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리를 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며, 이를 통해 진정한 믿음을 세울 수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태도는 우리의 신앙을 더욱 깊이 있게 발전시키는 데 기여합니다.

 

5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6만일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백성이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니 그들이 다 우리를 돌로 칠 것이라 하고 7대답하되 어디로부터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니(5-7)

 

산헤드린 의원들은 예수님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지 궁리합니다. 그들은 우선 세례 요한의 세례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고 대답했을 때의 경우를 고려합니다. 이렇게 대답하면 예수님께서 “왜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고 지적하실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가진 신적 권위를 믿었다면 그들이 세례 요한을 거부한 행동은 신적 권위를 받아들이지 않은 행동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 자신을 정죄하는 꼴입니다. 이러한 입장을 취하면 예수님께서 그들의 자기모순을 지적할 때 속수무책일 것이기에 그들은 이 대답을 택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대답의 가능성을 고려합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가 사람으로부터 즉 세례 요한 자신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대답하면 어떻게 될 것입니까? 그들은 이 대답을 선호했겠지만, 예수님의 강론을 듣고 있던 백성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백성들은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요한을 부정하면 백성들이 분노하게 됩니다. 그들은 백성들이 자기들을 돌로 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대답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신적 권위로 어떤 일을 행하는 가능성을 부정하고 산헤드린, 대제사장, 로마 총독 외에는 예루살렘에 다른 권위가 없다고 주장하고 싶었겠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채택한 대답은 “알지 못하노라”였습니다. 성전에 모인 많은 백성 앞에서 그들은 자기들의 무식함을 스스로 시인하였습니다. 백성들이 다 알고 있는 것을 모른다고 대답하는 것을 본 백성들이 산헤드린 의원들을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대제사장이 어찌 이것도 모를까? 율법의 전문가인 서기관들이 어떻게 이것을 모른다고 할까? 백성의 지도자인 장로들이 어찌하여 무지한 백성들도 다 아는 것을 모르고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이처럼 백성들 앞에서 무식한 자로 드러나는 것은 명예를 좋아하는 그들에게 큰 수치였을 것입니다. 이로써 백성의 지도자들인 그들은 엄청난 명예 손상을 당하게 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공격하려고 왔다가 오히려 치명상을 입게 됩니다. 성전에서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들을 상대로 한 공개 토론에서 예수님께서는 압승을 거두십니다.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들은 토론에서 참패하고 백성들 앞에서 수치를 당하고, 예수님에 대한 적개심을 더욱 불태웠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토론은 자기 생각을 고치고 진리를 발견하는 수단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곤란하게 하여 유죄 판결을 할 빌미를 잡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토론에서 졌을 때 자기들의 무지를 반성하고 열심히 공부하기보다는 토론에서 자기들을 수치스럽게 한 예수님을 향한 적의의 정도를 더욱 높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결국 예수님을 체포하여 내란선동죄로 고발하고, 빌라도에게 압력을 가하여 사형 판결을 하도록 합니다.

어떻게 유대 지도자들이 이렇게 타락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모든 권력의 한 측면입니다. 특히나 식민지 상태에서 제국에 빌붙어 권력을 유지하는 반민족적 권력의 특성입니다. 그들은 유대 지도자들이기는 했지만 유대 민족의 존경을 받는 민족 지도자가 아니었고, 민족을 압제하는 로마 세력에 빌붙어 권력을 누리면서도 백성들의 존경을 받고 명예는 누리고 싶어 하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사악한 지도자들이 백성의 존경을 받으며 자기들의 결정을 무시하는 예수님을 좋아할 리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죽이지 않으면 백성들의 마음은 점점 자기들로부터 멀어질 것이라는 위기를 느꼈을 것입니다.

우리의 교회들은 어떠합니까? 교회 지도자들은 대제사장들처럼 타락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신학자들은 서기관들처럼 타락하고 있지 않습니까? 교회의 리더들도 산헤드린 공의회의 장로들처럼 타락하고 있지 않습니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악을 행하면서도 성도들에게서는 존경을 받고 명예를 누리고자 하지 않습니까?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을 몰아내고 교회를 사람의 왕국으로 만들지는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오시면 이런 교회들을 보고 무어라고 하시겠습니까? “너희는 교회를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지적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예수님의 대답(8)

신앙의 기초를 재검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것이 진정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진정한 권위는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신앙은 겉모습이나 형식에 의존하지 않고, 각자의 진실한 마음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더욱 깊고 의미 있는 신앙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8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8)

 

예수님께서는 산헤드린 의원들이 대답을 포기하고 “모른다”고 하자,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고 답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하여 함정을 파 놓은 질문을 피하십니다. 그러면서도 역질문을 통해 성전 뜰에서 장사꾼들을 내쫓은 자신의 행동이 신적 권위로 수행된 것임을 암시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메시아의 권위로 산헤드린 공의회의 결정을 무시하시고 성전 뜰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십니다. 이것은 세상 권위든지 교권이든지 하나님의 권위 아래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속 권위든 종교 권위든 무조건 인정하지는 않으십니다. 그들이 잘못된 결정을 할 때 메시아 예수님을 통해 보여주셨듯이 심판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권력과 권위의 최종 심판자이십니다.


예수님께서 권위에 대한 질문을 받으시고, 진리의 본질을 드러내시는 중요한 장면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신앙의 근본적인 질문인 권위의 출처를 깊이 성찰해야 합니다. 또한, 진리를 마주할 때 정직하게 대처하고, 외부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져야 함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우선시하며, 신앙의 진정성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교훈들을 마음에 새기며, 우리의 신앙생활을 더욱 깊이 있게 발전시켜 나가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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