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20-03)
예수님을 잡으려는 서기관과 대제사장
누가복음 20장 19-26절
믿음의 삶에 있어서 우리 자신의 실체를 대면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겉모습과 다른 속 모습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겉과 속이 다른 삶을 ‘위선(僞善)’라고 합니다. ‘거짓 위(僞)’자와 ‘착할 선(善)’을 써서 본심에서가 아니라 겉으로 착한 척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위선’이라는 말에는 ‘거짓’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 스스로 대면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 20:20-26은 로마에 세금을 내어도 되는가 하는 문제를 다룹니다. 로마 황제에게 인두세를 낼 때 사용하는 은전인 데나리온에는 로마 황제의 형상이 새겨져 있고, 그를 신의 아들이라고 선언하는 글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러한 우상숭배적인 은전을 로마 황제에게 돌려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주권으로부터 독립된 로마 황제의 고유한 영역이 있다는 가르침을 내포합니까?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잡고자 함(19)
사람들은 체면을 중시하여 종종 뜻하지 않게 손해를 보게 됩니다.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지킬 박사처럼, 자신의 진짜 감정을 숨기고 겉으로는 다른 모습을 보이는 이중적인 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상대방이 강력할 때, 자신의 속마음을 감추는 것이 더 쉬워집니다. 이러한 행동은 사회적 압박이나 두려움에서 비롯되며, 결국 진정한 자신을 잃게 만들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진실한 소통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체면보다 솔직함을 선택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19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의 이 비유는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즉시 잡고자 하되 백성을 두려워하더라(19)
종교 지도자들인 서기관과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논쟁을 촉발시켰습니다. 그 논쟁은 앞에서 예수님께서는 하셨던 ‘포악한 포도원 농부들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이 농부들의 비유가 자신들을 비유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은 비유 속에 나오는 농부들이 자기들을 가리키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이 비유 속에 나오는 농부들은 선지자들을 죽이고 메시아도 죽이는 악한 지도자들인데 마침내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이 비유를 깨달았으면 경고로 여기고 회개를 해야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비유 속에 나오는 농부들처럼 메시아 예수님을 죽이려 합니다. 비유를 지식적으로 깨닫는 것이 반드시 바른 실천으로 귀결하지는 않음을 이들의 경우를 통해 보게 됩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즉시 체포하려 했으나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백성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백성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백성들 앞에서 예수님을 체포하면 백성들이 자신들을 싫어하리라는 것을 예측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예수님을 체포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백성들의 미움을 받는 길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인기 관리를 하는 정치 감각이 있었습니다.
덫을 놓은 간교한 사람들(20-22)
사탄은 성도가 가지는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성도를 현혹하려고 합니다. 그는 입에 발린 말로 성도들을 유혹하며, 그들을 궁지로 몰아넣으려 합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세상의 아첨에 쉽게 넘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영적 깨어있음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통해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결국, 성도들은 자신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경계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20이에 그들이 엿보다가 예수를 총독의 다스림과 권세 아래에 넘기려 하여 정탐들을 보내어 그들로 스스로 의인인 체하며 예수의 말을 책잡게 하니 21그들이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바로 말씀하시고 가르치시며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나이다 22우리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않으니이까 하니(20-22)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덫에 빠뜨리기 위해 그를 감시하는 자들을 보내어 세금 문제에 대해 질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들은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옳은지를 물어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의도를 간파하시고, 동전의 이미지를 통해 하나님께 세금을 내는 것이 적절하다는 교훈을 주십니다.
(1) 예수님을 반로마 정치범으로 몰고자 함(20)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선택한 길은 로마 총독의 손을 빌려 예수님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백성의 미움을 받는 것을 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면 예수님을 반로마 정치범으로 몰아야 했습니다. 이를 위하여 증거가 필요했습니다. 그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그들은 첩자들을 보냈습니다.
(2) 첩자들의 질문(21-22)
첩자들은 우선 예수님을 칭찬하여 무장해제하려 합니다. 예수님으로 하여금 용감히 로마 정권을 비판하도록 부추깁니다. 그리고 로마에 세금 바치는 것을 반대하는 답을 듣기를 기대하면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으니까, 옳지 않으니이까?” 경건한 유대인의 입장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옳지 않다!”였습니다. 당시 로마 황제는 신으로 섬겨지고 있었기에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은 이방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우상숭배에 해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용감하게 가이사에게 세 바치는 것을 금지하는 발언을 하기를 기대할 수 있었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그렇게 발언하면 그들은 예수님을 로마 총독에게 고발하고 중인 역할을 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답(23-25)
하나님께서는 신실한 성도들에게 특별한 지혜를 주십니다. 이 지혜는 상황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판단을 가능하게 합니다. 성도들이 신앙을 지키고 하나님을 의지할 때, 그들은 더욱 깊은 통찰력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삶을 인도하시며, 어려운 결정에서도 명확한 길을 보여주십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하나님께 신뢰를 두고 기도하며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23예수께서 그 간계를 아시고 이르시되 24데나리온 하나를 내게 보이라 누구의 형상과 글이 여기 있느냐 대답하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25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23-25)
예수님께서는 첩자들의 간계를 파악하셨습니다. 그래서 이간계를 피하시며 지혜롭게 대답하십니다. 가이사에게 세금으로 내는 은전인 데나리온을 가지고 오라고 하시고, 그 은전이 신의 아들로 숭배되는 황제의 형상을 새긴 우상임을 지적하십니다. 이 은전에는 Tiberius Caesar Divi Augusti Filius Augustus(“신성한 아우구스투스의 아들 티베리우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사”)라고 새겨져 있었고 티베리우스 가이사의 형상을 새겼기 때문에 이것은 신의 아들의 형상을 새긴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우상을 이스라엘 땅에서 제하여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돌려주는 것은 지극히 구약성경의 명령에 부합하는 행동입니다. 그러므로 경건한 유대인들도 이 말씀을 들을 때 예수님께서 로마에 세금 내는 것을 찬성했다고 비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로마 황제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우상으로 간주하는 듯한 발언을 하시면서도 로마에 세금 내는 것을 반대하였다는 누명 쓰는 일을 피하십니다. 오히려 로마에 세금 내는 것을 찬성하는 듯한 발언을 하십니다. 그러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라는 말씀을 문자적으로 보면 가이사(로마 황제)를 우상으로 여겨 비판한 흔적도 없고 로마에 세금 내는 것을 찬성하는 듯한 흔적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누구도 책잡을 수 없는 대답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뒤에 강조가 놓이는 대조 평행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에 예수님의 강조가 놓입니다. 예수님께서 참으로 강조하려 하신 말씀은 로마에 세금을 내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들이 하나님을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인간들이 하나님의 것이며 또한 인간들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세상에 하나님의 것이 아닌 것은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 드려져야 합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가이사의 영역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되고 적용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해석은 가이사의 형상이 새겨지고 가이사를 신의 아들이라고 선언하는 글이 새겨진 데나리온을 확인시킨 후에야 이것들을 가이사에게 돌려주라고 하신 정황을 무시한 해석입니다. 예수께서는 로마에 세금 내는 것을 금하신 적이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로마 정권을 정당화하신 적도 없습니다. 오히려 로마 황제가 신의 아들이라고 선언되고 새겨진 데나리온을 우상으로 여겨 로마 황제에게 돌려주라고 하신 것은 로마 정권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에 해당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반로마적 군사 행동이나 세금 납부 거부 운동을 하지 않았음도 분명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불필요하게 로마 제국과 충돌하는 길을 피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이유는 군사력으로 세상을 정복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재림하실 때에는 예수님께서 온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재림을 기다리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세상 제국을 절대화하거나 우상화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세상 제국을 악마처럼 여길 필요도 없습니다. 교회는 세상 제국과 경쟁하는 또 하나의 제국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세상을 구원하는 빛과 소금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세상 제국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보입니까? 식민 통치를 받을 때 식민지 백성은 제국에 얼마나 협조해야 합니까? 과연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끌려가 성폭력을 당한 사람들에게 가이사의 권력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니 협조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신사 참배는 국가 의례이므로 마땅히 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너무도 쉽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라는 말씀을 우리의 편의대로 왜곡하여 남용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과연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에 얼마나 순종하니까? 하나님의 것은 십일조에 불과합니까?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 경제의 영역, 학문의 영역, 예술의 영역, 국가의 영역, 국제 질서의 영역, 모든 영역이 하나님의 주권적 영역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영역을 종교의 영역으로 좁혀 놓지는 않았습니까? 정권에는 무조건 순복하고 하나님의 말씀에는 율법 폐지론을 운운하며 불순종하고, 신약에 담긴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는 행위 구원론을 배격한다는 핑계로 불순종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과연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돌려드리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개인 윤리의 영역에서도 지키기를 거부하면서 어떻게 전 우주의 영역에 하나님의 주권을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대답에 대한 첩자들의 반응(26)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권위와 하나님의 권위를 구별하여 각각의 책임을 강조하셨습니다. 성도들은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우선시해야 합니다. 이러한 교훈은 신앙 생활에서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신앙을 통해 우리는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걸어야 합니다. 결국, 이러한 태도는 우리의 행동을 올바르게 이끌어 줍니다.
26그들이 백성 앞에서 그의 말을 능히 책잡지 못하고 그의 대답을 놀랍게 여겨 침묵하니라(26)
예수님의 대답을 듣고 첩자들은 아무 책잡을 말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대답에 놀라 침묵합니다. 그들은 더 이상 어떤 질문도 하지 못하고 논박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로마 총독에게 넘길 사유를 찾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갑니다.
신앙과 세상의 관계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권위와 세상의 권위를 구별하며, 각자의 책임을 명확히 하셨습니다. 성도들은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께 충성해야 합니다. 이 구절은 우리가 진리를 지키고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데 필요한 지혜를 강조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우선시하는 삶을 통해 참된 믿음을 실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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