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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19-03)


구원의 메시지: 나귀를 타신 예수님

누가복음 19장 28-40절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힘이나 권위가 아닌 겸손과 낮춤의 태도로 왕의 길을 가셨습니다. 그의 예루살렘 입성은 우리가 따르는 모델이 되어줍니다. 우리도 일상에서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하며, 겸손은 진정한 강함의 표현입니다. 타인을 배려하고 섬기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태도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 누가복음 19:28-21:38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사역을 다룹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여행 이야기가 사마리아에서 배척당함(9:51-56)에서 시작하듯이 예루살렘 사역 이야기는 예루살렘에서 배척당함(19:39-40)에서 시작합니다. 누가복음 19:28-40은 예루살렘 사역 이야기의 첫 부분으로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다룹니다.

 

나귀를 구하도록 제자들을 보내심(28-31)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하는 것은 신앙생활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주신 말씀을 따르며 그 뜻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순종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게 하고 우리의 믿음을 더욱 확고히 합니다. 또한, 겸손한 마음은 우리를 다른 사람들과 올바르게 관계 맺게 합니다. 겸손은 자신을 낮추고 타인을 배려하는 태도로 나타나며, 이는 공동체 안에서 중요한 가치입니다. 결국, 순종과 겸손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28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시더라 29감람원이라 불리는 산쪽에 있는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30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31만일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말하기를 주가 쓰시겠다 하라 하시매(28-31)

 

앞에서 예수님의 예루살렘 방문은 선지자들이 예언하던 하나님의 방문임을 알았습니다. 그 방문 뒤에는 구원과 심판이 갈릴 것입니다. 아들을 통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을 사람들이 어떻게 영접했는지에 따라서 심판이 다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 두 명을 마을로 보내어 새끼 나귀를 끌어 오도록 하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행하여 새끼 나귀를 끌고 옵니다. 예수님께서 미리 나귀 주인과 약속을 해두신 것이 있을 수도 있지만 누가 복음 본문은 그러한 암시를 전혀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신기하게도 그대로 이루어지는 모습을 소개합니다. 본문의 강조점은 미래를 내다보시는 예수의 능력과 제자들의 순종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분부를 듣고 그대로 순종합니다. 남의 나귀를 주인의 허락도 없이 풀어오고자 시도하는 것은 비정상적인 행동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순종합니다. 그들은 마을에 들어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실현되고 있음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나귀 새끼를 풀면서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대로 이루어질 것이라 확신하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나귀 주인들이 “어찌하여 나귀 새끼를 푸느냐?”고 질문하자, 예수님께서 분부하신대로 “주께서 쓰시겠다”고 대답합니다.

제자들은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묻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 질문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예수님께서 시키신 대로 행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작전 명령을 내리는 명령권자였고, 자신들은 그 명령을 단순하게 따르는 종이었습니다.

물론 제자들이 스가랴 9:9을 통하여 메시아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할 것을 기대하였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끌고 오라 명하실 때 그들은 예수님의 의도를 알아챘을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에 그들은 왜 나귀를 끌고 와야 하는지 물을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경우에도 남의 나귀를 허락도 없이 풀기 시작하는 방식을 취해야 하는 이유는 궁금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분부에 묵묵히 순종합니다. 두 제자의 묵묵한 순종은 그들이 가진 예수님에 대한 믿음으로 인해 가능하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분부하실 때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므로 그 이유를 납득하지 못해도 그 분부대로 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유를 알지 못해도 예수를 따르는 묵묵한 순종이 있습니까? 이 순종을 가능하게 하는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우리에게 있슨비까? 왕으로 찾아오시는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는 일에 쓰임 받는 것을 반기는 기쁨이 있습니까? 나귀를 끌고 오는 하찮은 일이라도 소중하게 생각하고 수행하는 성실함이 있습니까? 나귀를 끌고 온 두 제자처럼 아무 이름과 공로가 남지 않지만,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여기며 임무를 감당하는 사명감이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끌고 온 나귀를 타심(32-35)

순종의 삶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게 만들어 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그분과의 신뢰가 쌓이게 됩니다. 이러한 신뢰는 우리의 믿음을 강화하고,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가능하게 합니다. 또한, 순종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그분의 뜻에 따라 살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일을 함께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순종은 우리의 신앙을 실천으로 옮기는 중요한 길임을 깨닫게 됩니다.

 

32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가서 그 말씀하신 대로 만난지라 33나귀 새끼를 풀 때에 그 임자들이 이르되 어찌하여 나귀 새끼를 푸느냐 34대답하되 주께서 쓰시겠다 하고 35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32-35)

 

두 제자는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행하여 나귀 새끼를 끌고 옵니다. 또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님을 태웁니다. 이러한 행동은 새끼 나귀를 끌고 오도록 명하신 예수님의 목적이 이 새끼 나귀를 타는 것임을 그들이 알았음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이제 예수님께서 분부하시지 않은 일을 자발적으로 합니다.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님을 태우는 행동은 그들이 스스로 판단하여 한 행동입니다.

두 제자는 예수님의 분부를 이유도 묻지 않고 실행하였지만, 결코 아무 생각 없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의도를 파악할 만큼 지혜로운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적으로 순종하는 신앙의 태도는 아무 생각 없이 말씀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라 그 말씀의 의도를 묵상하는 통찰과 적용하는 지혜를 동반합니다. 우리는 주께서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종들이지만 동시에 주께서 왜 시키는지 파악하여 명하신 일을 주님의 의도대로 실행해야 합니다.

 

제자들의 무리가 예수님을 왕으로 선포함(36-40)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우리가 찬양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찬양을 통해 자신의 존재와 위엄을 나타내십니다. 심지어 우리가 침묵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돌들을 통해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실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전능하시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계획을 이루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도록 우리의 삶에서 그분을 찬양해야 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찬양을 통해서도, 언제나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시는 분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36가실 때에 그들이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더라 37이미 감람 산 내리막길에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들이 본 바 모든 능한 일로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38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39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40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36-40)

 

두 제자만이 아니라 제자의 온 무리가 큰 소리로 찬양하며 예수님을 왕으로 선포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라고 선포합니다(36). 예수님께서 왕이심을 그들이 어떻게 알았습니까? 예수께서 나귀 새끼를 타신 것을 보고 알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 모습을 보고 스가랴 9:9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스가랴 9:9을 통하여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예루살렘 왕의 모습임을 알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그 의미를 정확하게 해석하기 위해 구약성경에 대한 지식이 필요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구약성경에 관한 유대인들의 지식을 매개로 하여 나귀를 타셨기 때문에 이 매개체가 없는 사람은 예수님의 행동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무리는 구약성경을 알고 있었기에 나귀를 탄 예수님의 모습을 정확하게 이해하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신약성경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구약성경에 관한 이해입니다. 신약성경은 구약성경을 알고 있는 자들에게 구약을 토대로 의미를 전달하기 때문에 구약성경을 모르고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신 모습을 보고 구약을 아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왕이라고 외치며 기뻐할 때, 구약을 모르는 우리는 나귀 새끼를 타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부끄러워하게 될 수 있습니다. 또는 나귀 새끼를 타신 모습이 겸손의 상징이라고 마음대로 해석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러한 오해를 피하려면 구약성경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구약을 잘 알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예수님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지는 않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제자의 무리가 예수님을 왕으로 선포하는 것을 보고 불쾌하게 생각합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항의하며 제자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책망하라고 요청합니다(39). 바리새인들은 구약성경을 잘 아는 사람들이었고,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신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았을 테지만, 제자들이 예수님을 왕이라 외치는 것은 반대하였습니다. 이것은 결국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신 것도 반대한 셈이며, 자신이 왕이라고 스스로 암시하신 예수의 주장도 반대한 것입니다. 이러한 바리새인들의 모습은 지식이 반드시 믿음의 길에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님을 알려줍니다. 지식은 믿음과 함께 갑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지식이 있어도 그 지식을 믿음을 반대하는 데 사용합니다. 우리는 지식을 어떻게 사용합니까? 바리새인들처럼 예수님의 왕적 정체성을 믿는 제자들의 믿음을 반대하는 데 사용하지는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제자들의 외침을 인정하십니다.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40).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왕임을 인정하시고 이를 선포하는 제자들의 외침이 정당하다고 주장하십니다. 이러한 외침은 막을 수 없습니다. 제자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면 돌들이 대신 선포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왕임을 스스로 주장하십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우상화한 후 예수님께서 그것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먼저 그렇게 주장하시려고 나귀를 구해 오라고 하시고 나귀에 타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주장에 응답하여 이를 선포합니다. 제자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외치도록 하실 것입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 19:1). 어리석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없다고 하지만, 온 우주 만물이 만물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선포합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왕이심을 부정하여도 온 우주 만물이 예수님께서 왕이심을 외칠 것입니다.


예수님의 겸손한 입성과 그에 대한 사람들의 찬양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권력이나 위엄이 아닌, 낮은 모습으로 왕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제자들은 그의 지시에 순종하며 나귀를 가져오고, 이는 신앙의 본질인 순종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하며 찬양했지만, 예수님은 이러한 찬양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것임을 강조하셨습니다. 결국, 우리는 예수님의 겸손과 하나님의 영광을 기억하며, 우리의 삶에서도 그분을 찬양하고 순종해야 함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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