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20-02)
악한 포도원 농부들의 비유
누가복음 20장 9-18절
역사적으로 ‘부흥의 시대’는 교회를 출석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던 때입니다. 로마 제국의 국교(國敎)가 기독교가 되면서 중세시대까지 타락해 오기만 했습니다. 사람이 많아지면 하나님의 눈치를 보기보다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게 됩니다. 대중의 필요에 영합한 종교는 말씀을 날카롭게 전할 수 없습니다. 외형적으로 교회가 성장하면 복음 전도에 영향력이 있겠지만, 더 많은 경우 복음 전도를 가로 막는 경우가 많습니다.
-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권위를 부정하고 진리를 외면하는 종교지도자들을 향해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이 비유를 통해 자신을 죽이려는 종교 지도자들의 음모를 드러내시고 자신을 배척한 자들에게 임할 심판과 자신의 죽음을 통한 궁극적인 승리를 예고하십니다.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냄(9-12)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은 인류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을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지만, 인간의 죄와 불순종으로 인해 결국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됩니다. 예수님의 희생은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며,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우리는 이 교훈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며 살아야 할 책임이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9그가 또 이 비유로 백성에게 말씀하시기 시작하시니라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가서 오래 있다가 10때가 이르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을 몹시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11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도 몹시 때리고 능욕하고 거저 보내었거늘 12다시 세 번째 종을 보내니 이 종도 상하게 하고 내쫓은지라(9-12)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의 권위가 어디서 왔느냐?’는 질문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이 어디서 왔느냐?’고 되물으신 방법으로 잘 해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상태가 어떠한지를 보여주기 위해 포도원의 비유를 들어 응수하십니다. 예수님의 권위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알려줍니다.
포도원 농부 비유는 예수님의 권위가 어디서 온 것인지 묻는 산헤드린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는 맥락에서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비유는 예수의 권위가 어디서 온 것인지 알려줍니다.
포도원은 시편 80:8 등을 배경으로 이스라엘을 비유하기에 적합한 용어입니다. 그러므로 포도원 주인은 이스라엘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종들은 누구입니까? 선지자들입니다. 예레미야 7:25-26에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나의 종’이라 부르십니다. 그렇다면 포도원 농부들은 누구입니까? 이스라엘을 관리하는 지도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 보내어 열매를 요구하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그들을 때리고 거저 보냅니다(10-12).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명하시는 하나님의 요구를 듣지 않고 선지자들을 박해하였습니다.
포도원 주인이 보낸 아들을 죽임(13-15)
이스라엘과 교회 역사에서 참다운 지도자가 많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구원으로 가는 길은 항상 좁은 길과 좁은 문으로 표현됩니다. 이 길은 진정한 믿음을 가진 이들만이 들어갈 수 있으며, 그리로 가려는 사람은 적습니다. 이는 신앙의 길이 쉽지 않음을 보여주며, 많은 이들이 이 길을 선택하지 않는 현실을 반영합니다. 따라서 참된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좁은 길을 따르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13포도원 주인이 이르되 어찌할까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혹 그는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14농부들이 그를 보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산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하고 15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냐(13-15)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아들을 보내십니다. 유대인들의 언어 속에서 ‘하나님의 아들’은 종말에 오시는 구원자 메시아를 가리킵니다. 누가복음에서 하나님의 아들은 예수님이십니다(3:22). 그러므로 포도원 주인이 아들을 포도원 농부들에게 보냈다는 비유 속의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메시아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 보내셨음을 뜻합니다.
포도원 농부들은 포도원 주인의 아들을 보고 의논합니다. 그들은 포도원 상속자를 죽이고 포도원을 차지하자고 합의합니다. 그리하여 포도원 주인의 아들을 죽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일 것임을 예언하며, 그들이 그렇게 하는 목적을 폭로합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죽인 이유는 예수님께서 메시아로서 이스라엘의 상속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 상속 재산을 주인으로부터 빼앗기 위하여 아들을 죽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신 줄 알고 메시아 왕국을 자기들이 차지하려고 메시아를 죽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반역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권위로 성전 뜰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셨음을 비유를 통하여 알려주십니다. 대제사장과 산헤드린 의원들이 자신을 죽일 것도 이 비유를 통해 예언하십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죽이는 목적은 이스라엘 나라를 하나님으로부터 빼앗아 자기들이 차지하기 위한 것임을 알리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인이신 이스라엘 나라를 메시아를 죽이고 빼앗아 차지하려고 한 산헤드린 공의회의 반역의 모습이 우리들에게는 없습니까? 새 이스라엘인 교회를 주인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빼앗아 차지하려는 시도는 과연 발견되지 않습니까? 안타깝게도 그러한 시도는 없지 않습니다. 교회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현대판 포도원 농부는 우리 가운데도 있습니다. 때로는 목회자들이 때로는 장로들이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장로교회이므로 장로들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고 교회를 사유화하여 혈육에게 물려주는 시도를 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 교회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대한 반역입니다.
주인이 농부들을 심판함(16)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사랑과 인내로 연결되어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위해 끊임없이 메시지를 전하십니다. 예수님의 사명은 인류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최종적인 계획으로, 그분은 자신의 생명을 통해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종종 하나님을 거부하고 그분의 뜻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행동에 대해 하나님은 책임을 묻고, 결국 심판이 따른다는 경고를 주십니다.
16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시니 사람들이 듣고 이르되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하거늘(16)
포도원 주인은 자신의 아들을 죽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들을 진멸할 것입니다. 그리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넘길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메시아 예수님을 죽인 이스라엘 지도자들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들을 진멸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다른 사람에게 맡겨 다스리게 하실 것입니다. 이 비유의 예언대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로마 군대에 의하여 서기 70년에 진멸됩니다. 이스라엘을 회복한 새 이스라엘인 교회는 열두 사도들에게 맡겨집니다.
새 이스라엘인 하나님의 교회를 사유화하는 자들도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임을 우리는 이 비유를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옛 이스라엘을 사유화하고자 한 지도자들이 심판당하고 옛 이스라엘 나라가 멸망하였다면, 더 크고 위대한 새 이스라엘을 사유화하고자 하는 자들은 얼마나 더 큰 심판을 당하겠습니까?
포도원 농부에 대한 해석(17-18)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류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 오셨습니다.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따르는 것이 구원의 길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구원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이에게 열려 있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결국, 예수님을 통해 새로운 삶과 영원한 관계를 얻게 됩니다.
17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그러면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냐 18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17-18)
예수님께서는 시편 118:22을 인용하시며 비유와 연관 짓습니다. 포도원 농부의 비유는 시편 118:22에 이미 기록되어 있는 말씀을 비유로 풀어주신 것입니다. 시편 118:22은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라고 합니다. ‘건축자’는 유대인들의 언어 속에서 지도자들을 가리키며, ‘돌’은 히브리어로 ‘아들’과 발음이 비슷하여 아들을 상징하기도 하므로, ‘건축자들이 버린 돌’은 유대 지도자들이 배척한 하나님의 들을 가리킨다고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의 고난은 이미 시편이 예언한 바입니다. 이 시편의 예언대로 예수님께서는 유대 지도자들에게 고난을 당하시고 죽임을 당하십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시편은 예수님의 부활도 예언합니다. 이 돌은 모퉁이의 머릿돌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 지도자들에게 배척을 당하고 죽임당하시지만, 마침내 부활하여 새 이스라엘인 교회의 머리로 세워지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돌에 대항하는 자들이 어떻게 되는지 말씀하십니다. 이 돌에 부딪히는 자는 깨어지고 가루가 되어 흩어질 것입니다. 예수님께 대항하는 자의 최후가 이와 같을 것입니다. 예수를 배척한 산헤드린 의원들이 서기 70년에 어떻게 진멸되었는지 보고 우리는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교회의 주인이심을 부정하고 자기들의 왕국을 만드는 자들은 돌에 부딪힌 사람처럼 깨어질 것입니다. 예수님의 주권에 대항하여 견딜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는 세상 나라들과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심판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왕으로 모신 기관인 교회의 지도자들이 예수님의 왕권을 찬탈하는 시도를 할 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 그들은 서기 70년에 예루살렘이 망하고 성전이 파괴된 경우에서 보듯이 재림하시기 전에 심판당할 수 있습니다. 교회를 사유화하며 예수님의 왕권을 찬탈하는 역적 행위를 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그것은 교회의 머리 되신 자리에서 예수님을 땅에 떨어뜨리며 그 떨어지는 돌에 부딪히는 행동입니다. 그것은 교회의 기초 자리에 계신 예수님을 몰아내려고 그 돌 위에 뛰어내려 부딪히는 행동입니다. 이렇게 부딪힌 자들은 산산조각 날 것입니다. 교회는 영원히 서겠지만 그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는 서기 70년에 예루살렘이 멸망한 사건을 보고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유대인 지도자들을 비판한 복음서의 말씀은 유대인 지도자들이 나쁘다는 결론만을 전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어떤 사람이 올바른 교회 지도자인지 알려줍니다. 교회에서 어떤 지도자를 용납하지 말아야 할지 알려줍니다. 또 우리가 교회에서 어떤 지도자들이 되어야 할지 알려줍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왕권과 주권에 도전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것이며 그 상속자이신 예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관리하도록 세워진 종들일 뿐입니다. 종의 자세를 끝까지 유지하며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열매를 내놓아야 합니다. 열매를 내놓기 싫어서 예수님을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켜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교회를 맡기신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열매를 성실하게 내어드려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열매 맺는 성도, 열매 맺는 교회, 열매를 내어드리는 목회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포도원 주인에 대한 비유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의 불신과 하나님에 대한 반항을 경고하시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보내어 인류를 구원하려 하셨지만, 백성은 그 아들을 죽임으로써 하나님을 거부했습니다. 이 비유는 예수님께서 메시아임을 드러내며, 그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 결국 심판을 초래할 것임을 암시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인류를 위한 구원이지만,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심판이 따르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분의 아들을 받아들이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구독]과 아래 [광고 배너] 클릭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
'42 누가복음(89)'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가복음(68) - 누가복음 20장 19-26절 - 예수님을 잡으려는 서기관과 대제사장 (0) | 2025.01.09 |
---|---|
누가복음(66) - 누가복음 20장 1-8절 - 성전 정화와 권위를 소유한 예수님 (0) | 2025.01.09 |
누가복음(64) - 누가복음 19장 28-40절 - 구원의 메시지: 나귀를 타신 예수님 (0) | 2025.01.08 |
누가복음(63) - 누가복음 19장 11-27절 - 열 므나 비유로 교훈하신 예수님 (0) | 2025.01.08 |
누가복음(62) - 누가복음 19장 1-10절 - 구원 받은 삭개오 (0) | 2025.0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