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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17-02)


믿음의 시선으로 골리앗을 본 다윗

사무엘상 17장 12-27절


 

세상의 전쟁에서는 손자병법 모공편에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피지기(知彼知己)’는 ‘적을 알고 나는 안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지피지기가 승패의 큰 영향을 미치지만, 영적 전투에서는 승패의 전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눈이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즉 하나님께서 이 전쟁을 어떻게 인도하실 것인지, 하나님 앞에 있는 적과 자신을 바로 인식하면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하기 때문입니다.

 

  • 이새의 장성한 세 아들은 사울을 따라 싸움터로 가고 다윗은 양을 칩니다. 이새가 다윗에게 곡식과 떡과 치즈를 가지고 가서 형들의 안부를 살피고 오라고 합니다. 다윗이 형들에게 문안할 때 전쟁터에는 골리앗이 나와서 전과 같이 이스라엘을 모욕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골리앗에게 분노합니다.

 

평범한 일상에 다윗(12-16)

하나님께서는 연약하고 무능해 보이는 경건한 소수를 통해서 이 땅에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십니다. 모세가 가장 무능해 보이는 미디안 40년 무명의 목동이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들어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들어 사용하셨습니다. 고대 근동을 제패했던 로마의 황제와 군대에 비하면 나사렛 목수를 따른 사람들은 너무나 무기력하고 배우지 못한 존재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들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이루셨습니다.

 

12다윗은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 이새라 하는 사람의 아들이었는데 이새는 사울 당시 사람 중에 나이가 많아 늙은 사람으로서 여덟 아들이 있는 중 13그 장성한 세 아들은 사울을 따라 싸움에 나갔으니 싸움에 나간 세 아들의 이름은 장자 엘리압이요 그 다음은 아비나답이요 셋째는 삼마며 14다윗은 막내라 장성한 세 사람은 사울을 따랐고 15다윗은 사울에게로 왕래하며 베들레헴에서 그의 아버지의 양을 칠 때에 16그 블레셋 사람이 사십 일을 조석으로 나와서 몸을 나타내었더라라(12-16)

 

본문에서는 다윗의 모습을 부각 시키기 위해 골리앗과 다윗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양을 치는 평범한 소년 다윗과 전쟁터에 적국에 위험을 주는 위대한 장수인 골리앗을 비교함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장수 골리앗의 등장으로 이스라엘은 두려움에 사로잡혔고 전세는 단번에 블레셋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1) 일상적인 다윗(12-15)

 

이스라엘의 군대가 골리앗과 블레셋의 위협으로 인해서 두려움에 휩싸여 제대로 제대로 싸움 한 번 해보지 못하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한 믿음의 사람을 준비시켜 역사의 무대 위로 이끌고 계십니다. 이 대단한 사건이었기에 성경은 다윗 가정의 배경을 다시 소상하게 설명해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소년 다윗을 등장시키십니다. 본문은 다윗을 통해 하나님의 용사로 쓰임 받기 위한 자세와 원리를 소개합니다.

베들레헴 살고 있던 이새에게는 여덟 아들이 있었고 그중에 막내였던 다윗은 아버지의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이새의 아들 중에 세 아들은 사울이 소집한 블레셋과의 전투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이야기는 전투에 참여하고 있는 세 아들이 아니라 집에 남아서 양들을 돌보고 있는 다윗에게서 시작합니다. 그는 이미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음에도 여전히 어린 막내아들이었던 다윗은 그저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시고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임했지만(16:14-23), 사울이나 그의 신하들의 눈에는 다윗은 그저 사울이 악령에 사로잡힐 때 수금을 타는 존재감이 없는 한 어린 소년일 뿐이었습니다(17:55-58). 그래서 이따금 사울을 위해 수금을 타러 왕궁에 갈 뿐, 여전히 아버지의 양을 치는 군사가 아닌 양치기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때가 차자, 하나님께서 주도하시는 역사의 무대에 오르게 됩니다. 비록 우리 자신이 현재 보잘것없게 여겨져도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역사하십니다.

 

(2) 전장에 장수 골리앗(16)

 

각각 언덕에 진을 치고 대치한 상태에서 본격적인 싸움은 시작되지 않은 채, 양쪽 군대는 40일간 교착상태로 있었습니다.

날마다 골리앗의 도발만 지속하고 있었습니다. 아침마다 이스라엘을 조롱할 뿐이었습니다. 그 정도 모욕과 조롱이라면 누구라도 나설 법한데 아무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블레셋의 무기와 강성한 군대를 바라봤기에 두려워 떨기만 했던 것입니다. 대적이 어떤 존재인지 알았다면 시선을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전쟁터에 나타난 다윗(17-21)

항상 위기와 고난은 개인의 운명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어줍니다. 국가적으로는 위기의 때에 영웅이 배출되고, 개인적으로는 위기의 때에 숨은 잠재력과 가능성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마치 몸의 지체 하나가 장애를 갖게 되면 다른 지체들이 연약한 보완할 수 있는 능력이 개발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개인이나 공동체나 언제든지 우리를 하나님께 행하시는 새로운 사역 앞으로 이끌어 줍니다.

 

17이새가 그의 아들 다윗에게 이르되 지금 네 형들을 위하여 이 볶은 곡식 한 에바와 이 떡 열 덩이를 가지고 진영으로 속히 가서 네 형들에게 주고 18이 치즈 열 덩이를 가져다가 그들의 천부장에게 주고 네 형들의 안부를 살피고 증표를 가져오라 19그 때에 사울과 그들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은 엘라 골짜기에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는 중이더라 20다윗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양을 양 지키는 자에게 맡기고 이새가 명령한 대로 가지고 가서 진영에 이른즉 마침 군대가 전장에 나와서 싸우려고 고함치며, 21이스라엘과 블레셋 사람들이 전열을 벌이고 양군이 서로 대치하였더라(17-21)

 

다윗이 전쟁터에 나가지 않는 것은 나이가 어린 탓이고. 형제들이 전쟁터에서 싸우는 동안 생업과 군인들의 보급을 감당해야 할 사람들이 필요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위기 속에서 역사의 전면에 믿음의 사람을 세우시는 사역을 해나가십니다. 우리의 고난도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에 전조가 됩니다.

 

(1) 아버지 심부름을 순종한 다윗(17-19)

 

다윗 여덟 형제 중에서 세 명이 전쟁터에 참전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이새는 전쟁터에 나간 세 아들들의 안부가 궁금했습니다. 이새는 다윗을 불러 세 아들을 위해 얼마간에 식량을 보내고, 세 아들들이 잘 있는지 안부를 알 수 있는 징표를 가져오라고 심부름시킵니다.

이에 다윗은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엘라 골짜기 전장으로 향했습니다. 그가 전장에 참여하게 된 것은 전투하기 위해 나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 이새의 심부름이긴 했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이었습니다. 이 부르심은 다윗 자신도 상상하지 못한 하나님의 새로운 계획이 있었습니다.

사울이 소를 몰다가 부름을 받았듯이(11:5), 다윗도 일상 가운데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평범한 일상 가운데 부르십니다. 일상의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가 큰일에도 충성하기 때문입니다.

 

(2) 전장에 나타난 다윗(20-21)

 

다윗은 아침 일찍 일어나 자신이 치던 양들을 맡기고 전장으로 향했습니다(20).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특히 ‘이새가 명령한 대로’라는 말은 다윗이 아버지의 명령을 철저히 이행했음을 말해 줍니다. 그렇다고 자신의 일을 내버려 두지도 않고 차질이 없도록 조치를 취했습니다. 하나님의 일꾼에게는 이렇게 철저한 순종의 자세와 맡겨진 일을 끝까지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엘라 골짜기에 등장한 골리앗(22-27)

세상이 아무리 강해 보여도 그것은 모두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우리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이길 세력은 없습니다. 성도는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믿음을 근거로 악한 세력을 정확히 인식하고 진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시간으로 보면 악의 대상은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밥에 불과합니다.

 

22다윗이 자기의 짐을 짐 지키는 자의 손에 맡기고 군대로 달려가서 형들에게 문안하고 23그들과 함께 말할 때에 마침 블레셋 사람의 싸움 돋우는 가드 사람 골리앗이라 하는 자가 그 전열에서 나와서 전과 같은 말을 하매 다윗이 들으니라 24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도망하며 25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르되 너희가 이 올라 온 사람을 보았느냐 참으로 이스라엘을 모욕하러 왔도다 그를 죽이는 사람은 왕이 많은 재물로 부하게 하고 그의 딸을 그에게 주고 그 아버지의 집을 이스라엘 중에서 세금을 면제하게 하시리라 26다윗이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 블레셋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거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대우를 하겠느냐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 27백성이 전과 같이 말하여 이르되 그를 죽이는 사람에게는 이러이러하게 하시리라 하니라(22-27)

 

이스라엘 사람들이 도망하는 것을 보고, 사울 왕이 내놓은 궁여지책은 그저 보상이었습니다. 사실 사울은 골리앗을 꺾을 자가 이스라엘에는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지 않고 세상의 방법을 고수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꾼은 자신이 해야할 일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 언제나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해야 합니다.

 

(1) 골리앗 앞에 이스라엘(21-25)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걸음을 역사적인 현장까지 이끌어 주신 것입니다. 다윗은 아비지 이새의 심부름에 순종하여 가져온 짐을 맡겨 두고, 먼저 전장에 있는 세 형들에게로 달려갑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명령대로 그들의 안부를 물었습니다(22). 다윗은 아버지 이새가 심부름시킨 일들은 다 마쳤습니다. 그러므로 살벌한 전쟁터에서 빨리 벗어 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블레셋 진영으로부터 싸움 돋우는 자인 골리앗이 등장합니다(23). 그는 전과 같이 블레셋이 전열을 벌리고 사기를 북돋우려고 이스라엘 군대를 향해 조롱하며 위협하면서 고함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날마다 골리앗은 양 군대가 대치하고 있는 동안 이미 40일째 여호와와 이스라엘 군대를 목욕하는 말을 쏟아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골리앗의 등장만으로 이스라엘 군대 내부의 상황을 자세히 소개합니다. 철갑으로 무장한 거대한 골리앗은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두려움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더불어 두려움에 쌓인 이스라엘 군인들이 도망치는 모습을 전해 줍니다. 이로써 긴장은 앞선 이야기보다 훨씬 더 고조됩니다(24).

사울 왕은 전령을 보내어 ‘너희가 이 올라 온 사람을 보았느냐 참으로 이스라엘을 모욕하러 왔도다 그를 죽이는 사람은 왕이 많은 재물로 부하게 하고 그의 딸을 그에게 주고 그 아버지의 집을 이스라엘 중에서 세금을 면제하게 하시리라’(25)라고 약속했습니다.

 

(2) 분노하는 다윗(26-27)

 

다윗은 이 전령이 전한 말을 잘 듣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옆에 있는 사람에게 골리앗을 죽이는 사람에게 주어질 보상에 관해 묻습니다(26). 그는 골리앗을 죽이는 보상에 관심이 아니라, 골리앗이 행하고 있는 일을 이스라엘의 치욕스러운 일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조롱은 그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모욕이었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이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장면을 보고 분노합니다. 다윗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사울의 상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것을 곧 살아계신 하나님을 모욕한 것으로 간주한 분노입니다. 할례받지 못한 이방인이 하나님의 근대를 조롱하고 있는데도 정작 선택된 백성들은 주눅 들어 있고 두려워하고 도망치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전쟁에 참여한 군인이 아니었습니다. 조용히 집으로 돌아가더라도 누구 하나 비난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사모하는 하나님과 그 백성들을 향한 책임감이 그를 안전지대에 속한 다수로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의 마음을 요동치게 하고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열정이 우리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다윗은 마침내 하나님의 국면 전환 요소(Game Changer)로 등장합니다. 이제는 사울 왕 곁에서 수금을 연주하며 왕의 무기를 담당하는 소년이 아니라 하나님의 용사로 당당히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진정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의 부르심의 때를 기다리며 다윗처럼 성실과 충성, 열정과 최선으로 준비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골리앗은 겉으로는 크고 힘이 세어 누구도 이길 수 없어 보였지만, 본질적으로 죽을 운명에 놓인 자였습니다. 이처럼 악의 세력은 사람의 눈으로 강하게 보여도 의의 세력에게 결국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다면 두렵지 않습니다. 악한 세력의 멸망과 하나님 나라의 승리는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두려움 없이 사탄의 세력을 물리치는 믿음의 용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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