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26-02)
불순종하는 삶에 임하는 형벌(2)
레위기 26장 14-26절
이스라엘 앞에는 가나안 땅이 있지만 동시에 복과 저주도 있습니다. 축복과 저주를 동시에 선택할 수 없고, 선택의 결과는 고스란히 그 사람의 몫입니다. 불순종의 결과를 보면 당혹스럽습니다. 흑과 백처럼 순종의 결과와 정반대이기 때문입니다. 죄가 가져온 결과는 이처럼 비참하고 끔찍합니다.
- 언약에 불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내리실 심판에 대해 서술하기 시작합니다. 성경에서 언약적 저주 선포는 축복 선포보다 훨씬 더 길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폐병과 열병, 생명의 쇠약, 파종한 것을 추수하지 못함, 가뭄과 흉년, 비와 이슬이 내리지 않음, 들짐승, 염병과 전쟁 등의 주제가 차례대로 나열됩니다.
질병, 추수하지 못함, 전쟁(14-17)
부모가 자녀들에게 상과 벌을 주는 것은 그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부모가 기대하는 것은 부모과 자녀의 관계가 서로 신뢰하는 관계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부모가 지시하는 것을 자녀가 무한한 신뢰와 사랑의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 자체가 가장 큰 목적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상과 벌을 말씀하신 것은 성도들로 하여금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14그러나 너희가 내게 청종하지 아니하여 이 모든 명령을 준행하지 아니하며 15내 규례를 멸시하며 마음에 내 법도를 싫어하여 내 모든 계명을 준행하지 아니하며 내 언약을 배반할진대 16내가 이같이 너희에게 행하리니 곧 내가 너희에게 놀라운 재앙을 내려 폐병과 열병으로 눈이 어둡고 생명이 쇠약하게 할 것이요 너희가 파종한 것은 헛되리니 너희의 대적이 그것을 먹을 것임이며 17내가 너희를 치리니 너희가 너희의 대적에게 패할 것이요 너희를 미워하는 자가 너희를 다스릴 것이며 너희는 쫓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리라(14-17)
언약적 저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고 명령을 싫어하여 배반하기 때문에 초래됩니다. 11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마음으로 싫어하지 않아서 그들 가운데 거하신다고 하셨지만, 백성들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싫어하여 언약을 깨뜨립니다. 하나님을 싫어하고 배반한 결과는 가장 먼저 하나님께서 ‘놀라운 재앙’을 내리시는 데 있습니다. 이 표현은 갑작스러운 공포가 임한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임재(방문)하시는데, 그 결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 말씀을 잘 준행하면 하나님의 임재는 축복이요 평안이 되겠지만, 본문에서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고 그 계명을 싫어하면 하나님의 방문은 심판과 공포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 공포심으로부터 시작해서 폐병과 열병으로 눈이 어두워질 것이며, 생명이 쇠약하게 될 것입니다. 폐병과 열병은 심판으로 임하게 되는 모든 종류의 질병을 대표합니다. 여러 질병으로 인하여 백성들은 생명의 기력이 약해지게 될 것입니다. 곧이어 그들이 열심히 농사를 짓는다 할지라도 파종한 것들은 자신들이 아니라 대적들이 와서 빼앗아 가버릴 것입니다. 열심히 수고하며 땀을 흘렸지만 그 결과물을 보지 못합니다. 다섯 명이 백명을 대적하고, 백 명이 만 명을 대적할 수 있으리라 약속하셨으나 언약적 불순종 때문에 대적에게 패하여 그들의 압제와 다스림을 받아야 할 지경에 이릅니다. 심지어 아무도 쫓아오는 이가 없어도 스스로 도망자의 삶을 살게 됩니다.
가뭄과 땅의 황폐화(18-20)
하나님께서 저주하신 조건들을 보면, 백성들이 청종도, 준행도 하지 않고, 멸시하고, 싫어하고, 배반합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은 죽어도 싫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동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태도입니다. 축복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되고, 저주는 무시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18또 만일 너희가 그렇게까지 되어도 내게 청종하지 아니하면 너희의 죄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일곱 배나 더 징벌하리라 19내가 너희의 세력으로 말미암은 교만을 꺾고 너희의 하늘을 철과 같게 하며 너희 땅을 놋과 같게 하리니 20너희의 수고가 헛될지라 땅은 그 산물을 내지 아니하고 땅의 나무는 그 열매를 맺지 아니하리라(18-20)
첫 번째 재앙의 결과로 파종하지만 수확하지 못하고 대적들이 취할 것이라고 한 말씀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언급합니다. 18절은 “너희가 그렇게까지 되어도 내게 청종하지 아니하면”이라는 표현으로 시작합니다. ‘내게 청종하지 아니하면’이라는 전형적인 시작 문구에 덧붙여서 그들이 심판으로 인한 재앙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청종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첫 번째 재앙이 주어졌으나 여전히 마음을 돌이키지 않고 불순종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강조하고 그들의 완악함을 다시 드러내는 대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내리는 심판 역시 ‘일곱 배’나 더 심각해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이들의 교만을 꺾어 산산조각 내실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언약적 저주로 하늘을 철과 같게, 놋과 같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철과 늦은 그 성질상 물을 통과시키지 못합니다. 하늘을 막아 비가 오지 않게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언약의 말씀에서 멀어진 아합 왕에 대하여 엘리야가 자신의 말이 있기 전에는 하늘로부터 비와 이슬이 내리지 않을 것이라 예언했고, 실제로 이스라엘 땅에는 무려 3년 6개월 동안 비도 이슬도 내리지 않는 극심한 가뭄을 겪었습니다. 이렇게 극심한 가뭄은 필연적으로 과일이나 곡식의 어떤 열매도 맺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들짐승(21-22)
저주 목록은 축복의 약속을 정확히 뒤집습니다. 축복보다 저주가 훨씬 길게 나옵니다. 왜 그렇습니까? 가나안은 약속의 땅이지만 광야보다 더 하나님과 멀어질 수 있습니다. 더 유혹이 많은 땅이기 때문입니다. 어려울 때 하나님을 찾기보다 풍요로울 때, 하나님을 인정하기가 얼마나 어렸습니까!
21너희가 나를 거슬러 내게 청종하지 아니할진대 내가 너희의 죄대로 너희에게 일곱 배나 더 재앙을 내릴 것이라 22내가 들짐승을 너희 중에 보내리니 그것들이 너희의 자녀를 움키고 너희 가축을 멸하며 너희의 수효를 줄이리니 너희의 길들이 황폐하리라(21-22)
그럼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역행하여 청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다시 벌을 일곱 배나 내리실 것입니다. 백성들은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길에서 떠나 반대의 길에 섭니다.
본문에서 ‘내게 청종하지 않으면’이라고 번역한 표현은 백성들의 의도가 더 표현되어야 합니다(내게 청종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르는 것도 하나님을 버리고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있으면서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것을 뜻합니다. 즉,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마음으로부터 거절하고, 드러난 하나님의 뜻에 역행하는 삶을 삽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들짐승을 보내어 자녀를 움키고, 가축을 멸하여 그 수효를 줄이실 것입니다. 백성들이 다니는 길은 두려움으로 황폐하게 될 것입니다. 강력한 들짐승들의 증가는 곧 가축의 죽음은 물론 어린 자녀들까지도 큰 위험에 빠트릴 것입니다. 자녀를 출산하지 못하는 것과 함께 낳은 자녀조차 포악한 들짐승과 적군에게서 지켜내지 못하게 되면 결국 이스라엘 백성의 숫자와 가축들의 숫자는 급격히 감소할 것이고, 그들의 삶도 황폐하게 되고 말 것입니다.
전염병과 전쟁(23-26)
성도는 말씀에 대한 경외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이고, 축복이며, 삶의 기준입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준행하는 삶이 진정으로 행복한 삶입니다. 하나님이 상황과 환경을 통해 가르치실 때 영적으로 바르게 분별하고 순종합니까? 성경을 지식의 도구가 아닌 순종할 말씀으로 여깁니까?
23이런 일을 당하여도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내게 대항할진대 24나 곧 나도 너희에게 대항하여 너희 죄로 말미암아 너희를 칠 배나 더 치리라 25내가 칼을 너희에게로 가져다가 언약을 어긴 원수를 갚을 것이며 너희가 성읍에 모일지라도 너희 중에 염병을 보내고 너희를 대적의 손에 넘길 것이며 26내가 너희가 의뢰하는 양식을 끊을 때에 열 여인이 한 화덕에서 너희 떡을 구워 저울에 달아 주리니 너희가 먹어도 배부르지 아니하리라(23-26)
본문은 지금까지의 유사한 패턴에서 약간 벗어난 채 시작합니다. ‘너희가 내게로 돌이키지 아니하면’으로 시작하는데, 앞선 표현들처럼 일곱 배의 징벌에 대한 말씀은 여전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돌이킴’은 ‘야사르’의 니팔 형태입니다. 동사의 수동형 혹은 재귀형 어근입니다. 이럴 경우 그 뜻은 ‘교훈하다’ 혹은 ‘훈계하다’라는 의미가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 여전히 그 징계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지 못하고 순종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당신의 언약 백성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징계는 심판과 멸망이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손길은 오히려 당신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의 표현입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놀랍게도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고 반대의 삶을 살게 되면 하나님 자신도 이스라엘에 대항하여 칠 배나 치실 것입니다. 순종하지 않는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은 거듭될수록 더 심각해집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행은 이스라엘 백성의 역행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징게 의지는 본문에서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나 곧 나도 너희에게”라는 표현은 강조를 위한 히브리어 표현을 반영하여 번역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리실 재앙은 언약적 불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먼저 언약을 깨뜨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언약을 깨뜨린 자들을 ‘언약을 어긴 원수’로 여기시고 그들을 대적하고 보복하실 것입니다. 보복의 칼과 염병으로 언약의 원수를 치실 것인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칼과 염병으로 심판하시는 경우는 오경에서는 출애굽기 5:3에서 언급된 것이 유일합니다. 애굽을 향해 내리신 하나님의 심판과도 같이 심각한 재앙을 언약을 어긴 원수 된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리실 것입니다. 칼과 염병의 심판을 받은 이들은 이제 대적의 손에 넘어가고 말 것입니다.
마지막 절은 다시 농업 환경을 염두에 둔 재앙을 언급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의뢰하는 양식을 부술 것입니다. 문자 그대로 직역하면 백성들이 “의뢰하는 양식”은 ‘음식 막대기’를 뜻합니다. 막대기로 만들어진 빵이라는 것이 실제로 어떤 형태인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문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의지하고 기대하던 식량을 빼앗길 것이기에 아무런 소망이 없을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게 합니다. 이런 모습을 이미지로 전달하기 위해 본문은 ‘열 여인이 한 화덕에서 빵을 굽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그만큼 빵을 만들 밀이 적어서 사람들의 배를 채울 수 없음을 뜻합니다.
청종 여부가 축복과 저주를 결정합니다. 저주를 자초하고 화의 근원을 자처할 성도가 있습니까? 처음부터 말씀을 무시하는 성도가 있겠습니까? 다 무심(無心)에서 시작하여 변심(變心)에 이르고 결국 화에 이르는 것입니다. 축복에 연연하지 않고 마음 지키고 말씀 지키는 것이 우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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