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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25-02)


정직과 순종의 복을 경험하는 희년

레위기 25장 23-38절


 

대선에서 부동산은 큰 이슈였습니다. 어떤 정부든 쉽게 풀기는 어려운 고차방정식입니다. 부동산이 주거의 문제가 아니라 욕망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레위기의 ‘토지 무름’이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우리와 무관해 보이지만, 사실 이 시대 난제의 해법이 거기에 있지 않습니까?

 

  • 희년 제도의 가장 중요한 규정은 토지를 원래 소유주에게 돌려주는 것과 관련됩니다. 토지의 주인은 여호와이시기 때문에 모든 백성은 토지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할 뿐입니다. 어떤 이유든 토지를 매입한 사람은 희년이 되면 다시 원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이와 함께 구매했던 가옥에 대해서도 무르는 절차를 소개합니다.

 

희년의 토지 무릎(23-24)

땅에 대한 영구 매각 금지는 반환 여지를 둔 조치입니다. 그들에게 매각할 권한도 없습니다. 땅의 소유권이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이것은 소유권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가나안 문화에 물들지 말고 저항하라는 경보장치고, 땅의 독점과 지주의 횡포에서 불안한 약자를 보호하려는 안전장치입니다.

 

23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24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23-24)

 

이스라엘의 토지 제도에 대한 대원칙을 설명합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각 지파에게 그들의 인구수에 맞춰서 공평하게 분배해주신 땅입니다. 가나안 모든 땅은 하나님의 것이며, 각 지파는 하나님이 소유하고 계신 땅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단순히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에 불과합니다. 심지어 이스라엘의 왕이라 할지라도 다른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땅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습니다. 아합 왕은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은 것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왕상 21장). 그런 이유 때문에, 혹 어떤 사람이 가난하게 되어 자신이 사용권을 가지고 있던 땅을 다른 사람에게 팔 경우, 땅에 대한 그들의 계약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몇 가지 방법으로 토지를 무르고 땅을 원주인에게 되돌리는 규칙이 있고, 그 규칙에 순종하여 땅을 돌려주어야 합니다.

 

토지 무릎의 원칙(25-28)

하늘 백성들은 토지 불로소득을 재산증식의 가장 손쉬운 수단으로 여기는 이 세상과 다르게 생각하고 살아야 거룩할 수 있습니다. 더 부해지지 않더라도, 그 부작용의 그늘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 참된 경건이고, 예수님의 영적 희년을 누리는 길이며, 진정한 이웃 사랑입니다.

 

25만일 네 형제가 가난하여 그의 기업 중에서 얼마를 팔았으면 그에게 가까운 기업 무를 자가 와서 그의 형제가 판 것을 무를 것이요 26만일 그것을 무를 사람이 없고 자기가 부유하게 되어 무를 힘이 있으면 27그 판 해를 계수하여 그 남은 값을 산 자에게 주고 자기의 소유지로 돌릴 것이니라 28그러나 자기가 무를 힘이 없으면 그 판 것이 희년에 이르기까지 산 자의 손에 있다가 희년에 이르러 돌아올지니 그것이 곧 그의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25-28)

 

이스라엘 자손 중에 토지를 판 경우, 토지를 무를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토지를 무르는 자는 ‘고엘’이라고 부르는데, ‘속량하는 자’(구속자) 혹은 ‘감아주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성경에서 고엘은 크게 세 가지 경우에 사용됩니다.

첫째, 형제나 친족의 집과 토지를 대신 무르는 경우입니다. 형제의 집이나 토지가 다른 집안에 팔리거나, 그 형제의 가족이 종으로 팔릴 경우, 친족들이 대신 무를 의무가 있었습니다.

둘째, 자식 없이 죽은 형제의 대를 이어주는 사람입니다. 구약에서는 형사취수법에 대한 규례가 몇 차례 언급됩니다. 특별히 룻과 보아스의 관계에서 이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법률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행되었는지 알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합니다.

마지막 셋째는 억울하게 죽은 친족의 피를 갚아주는 피의 복수자입니다. 형제가 살해되면, 친족들은 형제를 죽인 자를 추격하여 피의 복수를 해야 합니다.

 

희년이 되면 모든 토지는 땅을 판 원주인에게 무조건 돌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그 전이라도 토지를 무르려고 하면 몇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형제나 친족이 토지의 값을 치러주고 다시 무를 수 있습니다. 이 일을 감당할 친족은 근족으로부터 시작해서 순차적으로 의무를 집니다. 형제가 땅을 팔아버린 경우, 그 땅을 대신 사는 경우도 해당될 수 있고, 형제가 땅을 팔아야 할 상황이 되었을 때, 그 형제에게서 그 땅을 구입해서 관리하다가 희년이 되면 돌려주는 경우도 가능한 선택지입니다(렘 32:6-15).

둘째, 토지를 팔았던 사람이 다시 부요하게 되어 스스로 그 땅을 다시 구입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희년까지 남은 기간을 계산해서 그 값을 정합니다. 이 규례는 땅을 팔고 난 이후에 만약 땅을 되살 수 있는 능력이 생기면 기다리지 말고 즉시 그땅을 다시 되돌려야 함을 전제합니다.

셋째, 만일 땅을 대신 사줄 친족도 없고, 스스로 땅을 다시 구입할 능력도 없다면, 희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땅을 팔 때 희년까지 남은 기간에 근거해서 땅의 값을 정했기 때문에 희년이 되면 땅을 사용하던 사람은 땅을 판 사람에게 반드시 거저 주어야 합니다. 희년이 되어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을 되돌려 새롭게 시작할 수 있도록 회복시켜주시는 은혜에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개인의 재산권과 토지와 가옥의 사유화가 급격히 진행되었기 때문에 희년 제도 자체가 왕정 시대 이후부터는 거의 무력화된 것으로 보입니다.

 

가옥 무릎의 규칙(29-31)

부득이하게 판 토지를 되찾기 위해 희년까지 기다리지 말고 내 힘으로든 친족의 도움을 받든 되찾기를 힘써야 했습니다. 보상 가격은 다음 희년까지 남은 기간에 따라 결정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구매자에 대한 적절한 보상 문제에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법은 최소한의 장치일 뿐입니다.

 

29성벽 있는 성 내의 가옥을 팔았으면 판 지 만 일 년 안에는 무를 수 있나니 곧 그 기한 안에 무르려니와 30일 년 안에 무르지 못하면 그 성 안의 가옥은 산 자의 소유로 확정되어 대대로 영구히 그에게 속하고 희년에라도 돌려보내지 아니할 것이니라 31그러나 성벽이 둘리지 아니한 촌락의 가옥은 나라의 전토와 같이 물러 주기도 할 것이요 희년에 돌려보내기도 할 것이니라(29-31)

 

가난한 사람이 판 것이 가옥일 경우에 대한 규례를 기록합니다. 본문은 가옥을 두 가지 범주로 나눕니다. 첫째는 성벽이 있는 성안에 있는 집이고 둘째는 성벽이 없는 마을에 있는 집입니다. 우선 성벽이 있는 성안에 있는 집을 관 경우는 만 1년 안에 다시 무를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만일 1년 안에 가옥을 다시 무르지 않으면 가옥은 산 사람의 소유로 확정됩니다. 땅과 달리 가옥은 희년이 되어도 다시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성벽이 없는 성 밖의 마을에 있는 가옥의 경우는 토지에 대한 규례에 준하여 적용합니다. 성 밖 마을에 있는 가옥의 경우 생업으로 토지를 경작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토지와 동일한 법을 적용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성벽 안에 있는 집은 가난하여 팔아야만 하는 경우로 보지 않고, 거주지 이전이나 이익을 위한 거래로 판단하는 것 같습니다.

 

레위인의 토지와 가옥(32-34)

예수께서는 우리가 죄 때문에 사탄에게 팔린 영적 기업을 되찾아주시는 ‘고엘’(구속자)이 되시려고 오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믿음으로 영적 희년에 참여했으며 또 영원한 안식의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적으로만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구속자가 되어주어야 합니다. 교회가 젊은이들의 구속자가 되고, 사회 약자들의 구속자가 되어주어야 합니다.

 

32레위 족속의 성읍 곧 그들의 소유의 성읍의 가옥은 레위 사람이 언제든지 무를 수 있으나 33만일 레위 사람이 무르지 아니하면 그의 소유 성읍의 판 가옥은 희년에 돌려 보낼지니 이는 레위 사람의 성읍의 가옥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받은 그들의 기업이 됨이니라 34그러나 그들의 성읍 주위에 있는 들판은 그들의 영원한 소유지이니 팔지 못할지니라(32-34)

 

레위인이 가옥과 들판의 토지 등에 대한 규정도 나옵니다. 먼저 레위인의 성읍은 그들의 소유라고 말씀합니다. 레위 사람은 가옥이 성벽 안에 있든, 성벽 없는 마을에 있든 상관없이 언제든지 무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레위인이 부르지 않으면 희년이 될 때 반드시 돌려주어야 합니다.

34절은 레위인들이 거주하는 성읍 주위에 있는 들 같은 영원한 소유이기 때문에 매매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레위인들의 공동 소유는 가나안 땅에서 레위인들에게 주어진 48개 성읍과 그 주변 토지입니다. 레위인이 이를 갈 수 없는 이유는 그 땅은 하나님께서 레위 지파에게 주신 땅이고, 그곳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바친 가축을 돌보는 토지이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동족을 위한 규례(35-38)

사랑은 준 만큼 돌려받거나 받을 것을 계산하고 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께 받은 과분한 사랑을 기억하여 상식과 기대를 뛰어넘는 호의를 베푸는 것입니다. 줄 수 있는 만큼 주면 되지 이자 놀이를 해서는 안 됩니다.

 

35네 형제가 가난하게 되어 빈 손으로 네 곁에 있거든 너는 그를 도와 거류민이나 동거인처럼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하되 36너는 그에게 이자를 받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여 네 형제로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할 것인즉 37너는 그에게 이자를 위하여 돈을 꾸어 주지 말고 이익을 위하여 네 양식을 꾸어 주지 말라 38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며 또 가나안 땅을 너희에게 주려고 애굽 땅에서 너희를 인도하여 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35-38)

 

마지막으로 희년 제도는 사람, 땅, 재물 등을 되돌려줌으로 부의 집중을 막고 빈부격차를 해소합니다. 가난에 빠진 자라 할지라도 그 가난에서 회복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희년을 제도로 주신 하나님의 의도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누구라도 가난 때문에 남의 종이 되지 않도록 하고, 가난하게 된 자라 할지라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데 있습니다. 가난한 동족이 있다면, 그들이 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들은 단순히 가난하게 된 사람이 아닙니다. 본문은 그들을 의도적으로 ‘형제’라고 부릅니다. 그들의 먹을 것을 공급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들의 약해진 손을 다시 힘 있게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35절에서 빈손으로 있는 형제를 언급하는데, 여기서 빈손이란 그의 손이 흔들리는 상태, 즉 손에 힘이 없어서 가족을 부양할 수 없을 만큼 약해진 형제를 말합니다. 그런 형제의 손을 강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에게 돈을 꾸어주되 이자를 받고 주지 말고, 이익을 위해 양식을 꾸어주지 말라고 합니다. 36-37절에서 무려 세 번에 걸쳐 이 사실을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고대 근동의 거의 모든 법률은 돈이나 음식을 꾸어주는 경우 받을 이자를 규정해두고 있습니다. 결국 가난한 사람은 높은 이자 때문에 오히려 더 가난하게 되고, 한 번 빌리기 시작하면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처음엔 돈을 꾸는 것이지만, 이자를 갖지 못하면 곧이어 가족을 종으로 보내게 됩니다.

하지만 본문은 가난한 동족에게서 결코 이자를 받지 할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매굴 왕에서 종으로 살 때, 그들을 이끌어 내서 가나만 땅으로 인도하시고 그들에게 땅을 기업으로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불안의 시대입니다. 주거, 건강, 직장, 생계 등 각종 불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불안은 욕망의 시녀라고 했던가. 불안이 욕망을 더 키우고 있습니다. 토지 무름과 이자 금지는 주거와 생계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자, 사회적 배려였습니다. 이것이 그들만의 문제이고 해법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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