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24-01)
꺼지지 않는 등잔불과 하나님의 떡
레위기 24장 1-9절
대부분 사람들이 관계를 굉장히 힘들어하고, 또 관계 가운데서 오는 문제 때문에 많은 어려움들을 호소합니다. 가장 중요한 관계는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면 우리에게 기쁨을 찾아 볼 수 없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정상적인 그런 기쁨의 관계를 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떻게 회복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진정하게 사랑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때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이 될 수 있습니다.
- 등잔대와 진설상의 제작법, 향료 제조법, 그리고 이것들의 기본적인 사용법과 관리법은 1차로 출애굽기에서 설명되었습니다. 여기서 더 상세한 지침들이 내려집니다. 율법들을 공부할 때 오경 전체의 흩어진 관련 법규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 재차 확인됩니다. 이어서 하나님의 이름을 저주하고 모독한 사건에서 비롯된 동해동형법이 선포됩니다.
등잔대와 진설병 상의 관리(1-9)
예배의 현장은 예배당만이 아닙니다. 일상도 일터도 예배의 자리입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예배의 영성입니다. 예배의 영성은 교회 안에서만 아니라 밖에서도, 성직자만 아니라 성도에게도, 의식만 아니라 언어에서도, 대신(對神) 관계만 아니라 대인(對人) 관계에서도 적용되어야 합니다.
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불을 켜기 위하여 감람을 찧어낸 순결한 기름을 네게로 가져오게 하여 계속해서 등잔불을 켜 둘지며 3아론은 회막안 증거궤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여호와 앞에 항상 등잔불을 정리할지니 이는 너희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라 4그는 여호와 앞에서 순결한 등잔대 위의 등잔들을 항상 정리할지니라 5너는 고운 가루를 가져다가 떡 열두 개를 굽되 각 덩이를 십분의 이 에바로 하여 6여호와 앞 순결한 상 위에 두 줄로 한 줄에 여섯씩 진설하고 7너는 또 정결한 유향을 그 각 줄 위에 두어 기념물로 여호와께 화제를 삼을 것이며 8안식일마다 이 떡을 여호와 앞에 항상 진설할지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것이요 영원한 언약이니라 9이 떡은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돌리고 그들은 그것을 거룩한 곳에서 먹을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 그에게 돌리는 것으로서 지극히 거룩함이니라 이는 영원한 규례니라(1-9)
하나님께서는 절기에 대한 규레를 다 말씀하시고 난 후에, 성막에 등잔과 진설병에 원하는 규례를 말씀하십니다. 성막에서 특별히 등잔과 진설병에 관한 말씀을 하시는 것은 이것이 성도들의 생활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 등잔불(1-4)
등잔대의 제작법과 관리법은 성막 건설 기사인 출애굽기 25:31-40, 37:17-24에서 상세하게 주어집니다. 현재의 본문은 거기서 빠진 그 기물들의 자세한 관리법과 사용법을 보충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스라엘의 국장에 그려진 등잔대가 역사적으로 유대인들과 국가 이스라엘에게 주는 의미는 중대합니다. 등잔대에서 밝게 빛나는 불빛은 영원히 빛이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상징했을 것입니다. 성소 안에는 세 가지 기구가 있습니다. 가장 안쪽에 분향단, 북쪽에는 등잔대(메노라)가 있고, 남쪽에는 진설병 상이 있습니다. 제사장은 성소 안에 들어가면 이 세 가지 기구들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이런 관리 규례를 소개합니다. 등잔대(4)는 무려 1달란트짜리 순금으로 만든 것입니다(약 34kg). 제사장은 항상 등잔대 불을 켜 놓아야 했기 때문에 제사장은 매일 성소로 들어가서 등잔대에서 나오는 재와 그을음 등을 청소해야 했을 것입니다. 등잔대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메노라’는 몇몇 자그마한 부속 비품과 더불어 순금 1달란트(34kg)로 만들어진(출 25:39; 37:24) 비품입니다. 금 등대의 일곱 분지 위에는 일곱 개의 등잔이 놓여 있습니다. 여기에는 감람나무 열매에서 짜내 불순물과 찌꺼기를 철저히 제거한 가장 깨끗한 기름을 채워 불을 밝힙니다(2). 아론은 내성소의 비품을 관리하는 총책임자로금 등대의 불을 언제나 밝힐 책무가 있습니다. 제사장들은 아침마다 등잔대 위에 타고 남은 재를 청소하고 심지를 갈아주어야 합니다(3). 2절은 “계속해서” 불을 켜두라 명령합니다. 이때 등잔대의 불을 하루 종일 지폈는지, 저녁부터 아침까지만 지폈는지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다수 학자들은 3절에 근거하여 낮에는 등불을 켜지 않고 저녁부터 아침 동이 틀 무렵까지 불을 밝혔을 것으로 봅니다. 희박 내부는 삼중 내지 사중의 덮개로 덮여 있어 자연 채광이 전혀 되지 않은 캄캄한 공간이므로 24시간 불을 켜놓아야 했을 것입니다.
(2) 진설병(5-9)
진설병(5-9)은 진설, 즉 펼쳐둔 떡이라는 뜻이지만, 정식 명칭은 ‘얼굴의 떡’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뜻하는 말로 하나님의 임재와 언약의 떡임을 말합니다. 8-9절에 따르면 제사장은 떡을 규칙적으로 진설해야 했고, 이 떡은 거룩한 것으로 제사장에게만 허락되었습니다. 실제 열두 개의 떡을 두 줄로 쌓아야 했기 때문에 6개의 떡을 쌓아 올렸을 것입니다. 각 줄 위에 정결한 유향이 첨가되었습니다. 떡은 부풀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진설하고 나면 금방 딱딱하게 굳었을 것입니다. 일주일 만에 제사장이 새로운 떡으로 진설한 다음 가지고 나온 떡을 새롭게 조리해서 먹어야 했을 것입니다. 떡의 크기는 2/10에바 즉 4.4리터 정도의 크기였기 때문에 실제로는 상당히 무겁고 컸을 것입니다. 진설병상과 등잔대는 솔로몬 성전에 이르렀을 때 그 크기는 유지되었으나 숫자가 각각 열 개로 늘어났습니다(대하 4:8; 왕상 7:49). 다윗이 사울의 칼을 피해 도망치다가 놉 땅에서 진설병을 먹는 상황이 일어나는데, 이로 볼 때 상황에 따라 율법의 정신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혼혈인의 신성모독과 처벌(10-14)
사건의 엄중함은 피의자가 혼혈이기 때문도 아니고 다툼의 정황 때문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며 저주하려고 멋대로 썼기 때문입니다. 신적 모독은 신적 살인에 해당하기에 그의 징벌은 정당했습니다. 의식(儀式)의 정결은 물론이고 일상의 언어도 정제되고 절제되어야 합니다.
10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의 어머니가 이스라엘 여인이요 그의 아버지는 애굽 사람인 어떤 사람이 나가서 한 이스라엘 사람과 진영 중에서 싸우다가 11그 이스라엘 여인의 아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며 저주하므로 무리가 끌고 모세에게로 가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슬로밋이요 단 지파 디브리의 딸이었더라 12그들이 그를 가두고 여호와의 명령을 기다리더니 13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4그 저주한 사람을 진영 밖으로 끌어내어 그것을 들은 모든 사람이 그들의 손을 그의 머리에 얹게 하고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지니라(10-14)
진중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할 경우 돌로 쳐서 죽이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게 부르지 말라는 기본적인 의도가 있습니다(출 20:7).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일로 법정 등에서 사형을 당하는 경우가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열왕기상 21:10,13은 포도원 주인나봇을 이세벨이 죽이는 과정에서도 그가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였다는 증인을 세워서 죽였습니다. 마찬가지로 마태복음 26:65-66에서는 예수님을 사형에 처하게 만든 죄도 신성모독이고, 스데반이 죽음을 당하게 한 것 역시 신성모독입니다(행 6:11-14). 저주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그를 진영 밖으로 끌어내고, 손을 그 머리에 앉은 이후 온 회중이 돌로 쳐서 죽여야 했습니다. 본문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그 사건 당사자를 진영 밖으로 끌어내서 현장에서 저주의 소리를 들었던 사람들로 하여금 돌을 던져 사형을 집행하도록 명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저주하는 자도, 그 저주하는 말을 들은 자도 모두 죄의 책임을 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소리를 듣고도 가만히 있으면 그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데는 거류민이든 본인이든 상관없이 동일한 형벌에 처해집니다. 한편 돌로 쳐서 돌무더기를 쌓는 방식은 고대 사회에서는 이정표나 일종의 기억장치로서 역할 했을 것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는 소리를 들었을 때, 자신도 그 죄에 참여했음을 고백하고, 돌을 들어 공적인 심판 행위를 함으로 죄를 제거해야 합니다. 실제 어떻게 돌무더기를 쌓는지에 대한 자세한 언급을 찾아보기는 어렵지만, R. K. 헤리슨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죄인을] 눕힌 다음 머리를 큰 돌로 누르고 다른 부위는 더 작은 돌들로 덮어서 케른(cairn: 기념이나 이정표로서의 원추형 들무덤 -역주)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이 절차는 의식적 더럽힘이란 사고를 누구도 초래하는 것을 막으며 회중으로 하여금 돌 무더기를 통하여 범했던 죄악을 기억하도록 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것은 여전히 중대한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5:34-37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지 말라고 하고, 야고보서 3:9은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 즉 하나님을 찬송함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들을 저주하는 일들이 동시에 일어난다고 경고합니다.
백성의 정결을 위한 제의(15-21)
하나님 모독만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상해도 엄히 다루십니다. 가해자에게는 피해를 축소하거나 은폐하지 못하도록 하고 피해자에게는 과다한 자의적 보복을 억제하여 보복의 악순환을 끊게 하십니다. 강자의 전황을 막고 모든 생명이 존중받게 하십니다. 생명보다 더 한 가치는 없습니다.
15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그의 하나님을 저주하면 죄를 담당할 것이요 16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 것이니라 거류민이든지 본토인이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죽일지니라 17사람을 쳐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요 18짐승을 쳐죽인 자는 짐승으로 짐승을 갚을 것이며 19사람이 만일 그의 이웃에게 상해를 입혔으면 그가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할 것이니 20상처에는 상처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을지라 남에게 상해를 입힌 그대로 그에게 그렇게 할 것이며 21짐승을 죽인 자는 그것을 물어 줄 것이요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일지니(15-21)
본문은 소위 동해복수법의 패턴을 가집니다. 동해복수법은 재판 상황에서 백성들을 지도할 규범으로 주어졌습니다(출 21:23-25 신 19:21). 전체는 대칭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저주한 자에 대한 사형 명령이 16절과 23절에 나오고, 사람을 죽인 자에 대한 판결이 17절과 21절에 나옵니다. 그리고 짐승을 죽인 자가 18절과 21절에서 반복되고, 전체 이야기의 중심에는 19절과 20절에서 반복적으로 말하는 내용으로, ‘그가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하라’는 동해복수법의 규정 말씀이 있습니다. 동해복수법은 잔인한 복수를 허락한 것이 아닙니다. 율법의 정신을 따라 범한 죄에 알맞은 형벌을 받도록 법의 형평성을 고려하면서도 죄 지은 사람을 보호하는 법령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실제 실행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습니다. 신명기 25:11, 12은 두 사람이 싸울 때 한 남편의 아내가 상대방의 음낭을 잡으면손을 찍어버리라고 말씀합니다(참조. 민 16:14). 동해복수법은 고대나 현대의 사회적 상황으로 볼 때 실질적 불평 등이 일상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잘 적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권력, 신분, 재물 등의 이유로 인해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사건에 맞는 징벌을 하기보다는 그 이상의 징벌을 내리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오늘날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동해복수법은 징벌의 한계를 정해줌으로 형평성과 함께 복수/심판을 행함에 있어서 자비의 원리가 더 중요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한 법률입니다. 그러나 동해복수법의 원칙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문제입니다. 개인의 윤리와 재판의 윤리를 나눠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개인 윤리에 따르면 동해복수법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5:38-39에서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구하는 자에게 주고 꾸고자 하는 자를 거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재판의 경우는 다릅니다.
공평한 처벌 규정(22-23)
우리는 정당한 처벌은 시행하되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의 진노에 맡기고 인내할 때 주의 온전하심을 본받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정의가 실현되도록 기도하고 참여하되 지나치게 팽창한 인간의 욕망과 진영논리에 의해 굽어진 잣대는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22거류민에게든지 본토인에게든지 그 법을 동일하게 할 것은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임이니라 23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니 그들이 그 저주한 자를 진영 밖으로 끌어내어 돌로 쳤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였더라(22-23)
저주한 자는 거류민이든지 본토인이든지 상관없이그 법을 동일하게 적용해야 합니다. 이 본문은 신성모독죄를 지은 자에 대해 모세가 돌을 던져 심판하도록 하는 이야기로 다시 돌아갑니다.
예배당만 부지런히 드나든다고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막 안에 갇히신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함께 드리는 공(共) 예배는 물론 세상 속 공(公) 예배도 중요합니다. 예배의 영성은 일상의 성실로, 언어의 성화로, 공정의 적용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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