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레위기(26-04)


깨닫고 회개할 때 언약으로 회복

레위기 26장 40-46절


 

하나님 아버지의 생각은 자녀인 우리들의 생각보다 크고 깊고 넓습니다. 사랑과 자비도 그렇습니다. 죄가 깊어서 가망이 없어서 포기하실만한 상황에서도 참고 인내하셔서 기어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가십니다. 우리가 먼저 우리 자신과 이웃을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다리시니 우리도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대하고 계시니깐, 우리들이 먼저 기대를 저버려서는 안 됩니다.

 

  • 언약적 저주를 받아 포로로 끌려간 땅에서 회개하며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부터 당신이 조상들과 맺으셨던 언약을 기억하시고 약속의 땅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리신 징계는 심판과 멸망이 아니라 교훈과 훈육이었음이 드러납니다. 언약적 징벌은 종말론적 회복의 소망으로 바뀌게 됩니다.

 

회개와 언약을 기억함(40-42)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입니다. 언약은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과 맺으신 구원과 생명의 약속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싫어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파기하면, 이로 인해 하나님은 그들을 원수들의 손에 넘기시고 형벌을 내리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포로가 되어 고통의 세월을 보내는 그분의 백성을 아주 멸하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그들과 맺은 언약 때문입니다.

 

40그들이 나를 거스른 잘못으로 자기의 죄악과 그들의 조상의 죄악을 자복하고 또 그들이 내게 대항하므로 41나도 그들에게 대항하여 내가 그들을 그들의 원수들의 땅으로 끌어 갔음을 깨닫고 그 할례 받지 아니한 그들의 마음이 낮아져서 그들의 죄악의 형벌을 기쁘게 받으면 42내가 야곱과 맺은 내 언약과 이삭과 맺은 내 언약을 기억하며 아브라함과 맺은 내 언약을 기억하고 그 땅을 기억하리라(40-42)

 

26장에 길게 소개된 언약적 저주의 결론입니다. 포로가 되어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이 끌려간 그 땅에서 회개하고 자복하면, 회복의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신실하지 못했습니다. 언약을 맺고 언약으로 서로 묶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했습니다. 여러 번에 걸친 하나님의 경고와 심판에도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기에 결국 땅에서 쫓겨나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상황을 극적으로 되돌릴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철저한 회개와 자복입니다.

심지어 그들이 하나님을 대항했던 죄악뿐 아니라 ‘그들의 조상의 죄악’까지 자복합니다. 예를 들면, 느헤미아는 멸망 당한 예루살렘 성의 상황을 듣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 현재 자신들과 조상들의 죄악을 고백합니다(느 1:6). 다니엘 역시 예루살렘이 수치를 당하는 것은 자신들의 죄와 조상들의 죄악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단 9:16).

 

그들이 처해 있는 현재 상황이 자신들의 죄악 때문임을 분명히 깨닫고 마음을 겸손하게 해야 합니다. 그들의 마음은 할례받지 않은 마음입니다. 할례받지 않은 자라는 말은 이방인과 다름없다는 뜻입니다. 그들의 마음이 이방인과 같이 패역하게 되었음을 이제 마음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마음이 완악하여 하나님을 거역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들은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그들의 마음이 굳어져 있었기에 그 포피를 베어내고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향해 완악했던 마음을 돌이킬 때, 하나님과 맺은 언약은 새롭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하여 마음의 할례를 행하고 나면 백성들은 이제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불평하기보다 하나님의 심판마저 기쁨으로 받아들이려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맹목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형벌은 힘겨운 일이지만, 그것을 기쁨으로 받음으로 구원과 회복을 얻게 될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악을 인정하고, 마음을 겸비하게 하고, 힘겨운 형벌을 기쁨으로 감당하면 결국 하나님께서 조상들과 맺으셨던 그 언약을 다시 기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조상들과 맺으신 언약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맺으셨던 언약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을 불러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으며, 그에게 셀 수 없을 만큼 큰 민족을 주시고 열방의 복이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언약을 다시 기억하신다는 말은 쫓겨 간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다시 약속의 땅으로 그들을 돌이키시고, 열방의 복이 되게 하겠다는 당신의 약속을 이루어주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42절 마지막에 “(내가) 그 땅을 기억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셨던 그 부르심을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재앙을 받고 있다 할지라도 회복의 길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 겸손히 자신을 낮추고 회개하며 자복할 때 회복은 가능합니다.

 

영원한 언약(43-45)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입니다. 죄인을 징벌하시지만,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에게는 한없는 용서와 사랑을 베푸십니다. 징계를 받는 중에라도 진심으로 회개하고 돌이킨다면, 자비와 사랑의 하나님은 깨어진 언약 관계를 회복시키십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지속하는 비결은 날마다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깨달으며, 겸손히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것입니다.

 

43그들이 내 법도를 싫어하며 내 규례를 멸시하였으므로 그 땅을 떠나서 사람이 없을 때에 그 땅은 황폐하여 안식을 누릴 것이요 그들은 자기 죄악의 형벌을 기쁘게 받으리라 44그런즉 그들이 그들의 원수들의 땅에 있을 때에 내가 그들을 내버리지 아니하며 미워하지 아니하며 아주 멸하지 아니하고 그들과 맺은 내 언약을 폐하지 아니하리니 나는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 됨이니라 45내가 그들의 하나님이 되기 위하여 민족들이 보는 앞에서 애굽 땅으로부터 그들을 인도하여 낸 그들의 조상과의 언약을 그들을 위하여 기억하리라 나는 여호와이니라(43-45)

 

이스라엘 백성의 타락은 결과적으로 그 땅의 안식을 가져왔습니다. 가나안 땅의 거민들이 죄악 가운데 머물 때 그들로 말미암아 더러워진 땅이 참지 못하고 그들을 내뱉어버린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하여 그 땅이 다시 더러워지고 결국 그 땅이 토해내듯 그들을 뱉어버린 것입니다(레 18:24-30). 그렇게 함으로 그 땅은 오히려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다시 한 번 이스라엘이 범한 죄악의 성격을 규정하는데, 그들이 하나님의 법도를 싫어하고 멸시한 것이라고 규정합니다. 그 죄의 결과는 땅에서 쫓겨나는 것이었는데, 역설적이게도 그것은 땅이 안식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땅은 황폐해졌는데, 오히려 기쁘게 안식하게 된다. 본문은 ‘라차’(지불하다)가 두 번 반복해서 나옵니다(안식을 누리다'와 '형벌을 기쁘게 받다). 여기서 땅이 기쁘게 안식하는 것과 백성들이 죄악의 형벌을 달게 받는 것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싫어하고 거역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결코 깨뜨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은 범죄한 그들에게 분노하사 그들을 쫓아내셨지만, 그 진노는 영원하지 않았습니다. 조상들과 맺으신 언약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맺으신 언약에 신실하십니다. 44절은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비록 한글 성경에는 뚜렷하게 반영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을 버리지 않으실 것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 관계를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14절을 보면 한 구절 안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칭하는 ‘그들’과 조상들을 지칭하는 ‘그들’ 그리고 1인칭 하나님을 지칭하는 ‘나의’가 무려 일곱 번이나 등장합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간에 맺어진 관계는 영원히 끊어지지 않을 관계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그 언약을 반드시 기억하십니다(45). 하나님께서 기억하실 언약은 시내산에서 조상들과 맺으신 언약입니다. 비록 본문에서 구체적으로 시내산 언약이라고 언급하지 않지만, ‘애굽 땅으로부터 그들을 인도하여 낸 그들의 조상’이라고 언급하기 때문에 시내산 언약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맺으셨던 언약을 기억하자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셨던 것처럼, 시내산에서 맺으신 그 언약을 기억하자 쫓겨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약속의 땅으로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다시 언약 백성의 지위를 누리게 할 것이며, 전화 열방이 그 언약 백성을 통해 복을 얻게 하실 것입니다. 이를 강조하기 위해 본문은 “나는 여호와이니라" 라는 말씀 선포로 마무리된다. 이로써 하나님의 심판의 이유가 그들의 멸망을 위해서가 아니라, 백성들이 깨우침을 받아 다시 돌아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의 삶을 회복하도록 하는 하나님의 사랑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담대하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힘입어 지성소에까지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특히 26장은 25장과 땅의 주제로 밀접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만일 그들이 여호와의 규례와 계명을 준수하면 땅은 그들에게 풍성한 복을 줄 것이며(4-5), 그들은 그 땅에서 대적들을 걱정할 필요 없이 평화를 누릴 것입니다(6-12). 계속해서 축복과 저주는 땅과 관련되어 선포됩니다. 만일 여호와의 규례와 법도, 계명을 지키지 않고 언약을 배신한다면 재앙과 질병이 찾아오고 ‘파종한 것이 헛되어 대적들이 먹을 것이며’(16), 아무리 땀 흘려 수고를 해도 ‘땅은 그 산물을 내지 아니하고 땅의 나무는 그 열매를 맺지 아니할 것이다’(20) 땅에는 사나운 들짐승들이 넘쳐나 자녀를 해칠 것이고 길들이 황폐해질 것이며(22), 양식이 끊기고(26) 모든 성읍과 성소들이 폐허가 되면서 그 땅은 황무하게 될 것입니다(31-32). 마침내 그들은 자신들의 땅에서 추방되어 원수들의 땅으로 끌려가고(38-39), 그들은 황폐해질 것이나 역설적으로 아무도 없는 가운데 안식을 누릴 것입니다(4).

 

요약과 결론(46)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기 위해 주변 여러 민족이 보는 가운데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셨습니다. 비록 이스라엘은 구원의 은혜를 망각하고 죄를 범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반드시 그 언약을 이루실 것입니다. 성도는 이러한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고, 언약에 신실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46이것은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자기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모세를 통하여 세우신 규례와 법도와 율법이니라(46)

 

위기 전체를 통해 하나님의 규례를 선포한 이후, 26장에서 축복과 저주를 서술한 것은 언약 형식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형식입니다. 레위기에서는 전체 서술을 마무리하는 요약 진술이 세 차례 정도 나옵니다. 첫째는 제사법을 마무리하는 7:38이고, 둘째는 본문인 26:46이며, 마지막 셋째는 레위기 전체 마무리하는 27:34입니다. 모든 내용은 여호와께서 시내산(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령하신 계명라고 요약합니다. 결국 이 표현으로 시내산에서 주어진 만약의 말씀은 출애굽기와 함께 레위기 전체 내용도 포함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긴 저주 목록의 끝은 희망의 약속입니다. 징계의 목적이 형벌에 있지 않고 희복에 있기 때문입니다. 경고도 죄에서 돌이키라는 하나님의 호통이고, 돌이키면 산다는 호소입니다. 하나님의 본심에 진심 어린 회개로 응답해야 합니다. 그것이 희망의 길이고, 레위기를 주신 진짜 이유입니다.


구독과 아래 [광고베너] 클릭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