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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107-02)


환난 중의 구원과 감사

시편 107편 23-43절


 

흔들리는 배 위에서 누군가 사정없이 하나님을 깨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잠들지 않으셨습니다. 뱃머리를 돌려 항구에 안착시킨 후 우리로 잠들지 말라고, 풍랑을 보내신 이유를 깨우치라고 말씀하십니다. 몇 번의 훈련 덕에 우리는 잠들지 않았다고 어깨를 들썩이며 말할 수 있었습니다.

 

  • 본문은 시편 107편의 후반부입니다. 앞서 나타난 세 개의 사이클에 이어서, 하나님의 구원하심 및 인자하심과 기적에 대한 찬양을 이어 나갑니다. 앞선 사이클보다 분량이 더 많으며, 그 이후는 사이클이 아닌 별개의 문단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구조를 형성합니다. 여호와의 행하심을 기억하는 지혜가 있어야 그분의 언약적 성실성을 이해할 수 있음을 제시하고, 인자하심의 주제와 지혜의 주제를 하나로 통합하면서 여호와 중심성의 메시지를 제공합니다.

 

풍랑에 빠진 자들을 구원하신 여호와(23-32)

우리의 인생에서도 우리는 때로 잘 나갈 때는 자신감에 차서 나아가지만, 예기치 못한 폭풍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건강의 문제, 재정적 어려움, 관계의 갈등 등 인생의 폭풍은 우리를 찾아옵니다. 이때 우리는 우리의 한계를 깨닫고 절망에 빠질 수 있습니다. 우리도 고난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23배들을 바다에 띄우며 큰 물에서 일을 하는 자는

24여호와께서 행하신 일들과 그의 기이한 일들을 깊은 바다에서 보나니

25여호와께서 명령하신즉 광풍이 일어나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도다

26그들이 하늘로 솟구쳤다가 깊은 곳으로 내려가나니 그 위험 때문에 그들의 영혼이 녹는도다

27그들이 이리저리 구르며 취한 자 같이 비틀거리니 그들의 모든 지각이 혼돈 속에 빠지는도다

28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29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도다

30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31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32백성의 모임에서 그를 높이며 장로들의 자리에서 그를 찬송할지로다(23-32)

 

23절은 앞서 살펴본 세 개의 사이클에 이어 네 번째 사이클을 시작합니다. 네 번째 사이클은 여러 면에서 앞선 경우들과 사뭇 달라서, 형식과 주제의 측면에서 명확한 발전의 양상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먼저 주제적 측면을 생각해봅시다. 묘사하려는 대상이 자연물에 의해 고통을 당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두 번째 사이클의 경우(11), 미련한 자라는 세 번째 사이클(17)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23절에 의하면 그들은 배를 바다에 띄우고 일하는 자들일 뿐이지, 어떤 죄악을 범한 자들은 아닙니다. 24절은 그들이 경험한 것이 여호와의 행하신 기이한 일들이라고 명확하게 말합니다. 즉, 네 번째 사이클은 사람의 연약함이나 죄악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여호와 하나님 그분의 일하심에 확실하게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 그들을 바다 물결을 통해서 위로 올리기도 하시고 밑으로 내리기도 하십니다(26). 하나님께서 그 뜻대로 올리기도 하시고 내리기도 하신다는 사실은 33-45절에 이르러 매우 구체적인 신학적 주제로 연결될 것이기 때문에 기억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25-27절은 사람의 인생이 여호와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바다 물결의 주제를 통해서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27절은 광풍에 흔들리는 인생을 취한 자 같다고 표현하면서, ‘그들의 지혜가 혼돈스럽게 된다’고 말하는데, 여기에 지혜의 주제가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살펴야 합니다. 세 번째 사이클에서는 미련한 자의 주제를 등장시켰는데, 네 번째 사이클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일하심 앞에서 사람의 지혜는 아무런 소용도 없고 혼돈스러움으로 그 종말을 맞게 될 뿐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23-32절은 자연물의 경우를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일하심에 보다 집중하고 있다는 주제적 특징을 보입니다.

이제 구조적인 특징은 어떤지도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전의 사이클들은 후렴구1과 후렴구2가 모두 각각 두 절 정도의 분량이었는데, 네 번째 사이클에서는 그 후렴구들이 더 길어지는 확장 현상을 보입니다. 후렴구 1은 28-30절인데, 총 세 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28절에서 ‘부르짖음’과 ‘구원하심’의 주제를 설명한 후, 29-30절에서는 광풍을 잠잠하게 하시고 원하는 항구로 돌아가서 평안을 누리게 하신다는 사실을 설명합니다. 분량이 약간 길어진 것 정도 외에 큰 특징은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후렴구2는 31-32절인데, 일단 두 절 분량으로 생각됩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그분을 찬양하라는 후렴구의 기본적인 메시지를 전달한 후, 백성의 모임과 장로의 자리에서 여호와를 찬송하라고 권고합니다. 만약 우리가 후렴구가 여기서 마쳐지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후렴구는 이전 사이클들의 경우와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33-43절의 내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33-43절은 놀랍게도, 더 이상 지금까지 우리가 읽어온 107편의 사이클 형태를 전혀 취하지 않습니다. 고난에 대한 묘사가 등장하지도 않으며, 후렴구 1이나 후렴구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33절 이하의 여러 가지 경우에 네 번째 사이클의 중심 이미지였던 ‘물’과 관련된 표현들이 계속해서 등장합니다. 학자들마다 견해가 다르겠으나, 우리는 33-43절을 네 번째 사이클에서의 후렴구2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입니다. 즉,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부연 구절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편의상 이 부분을 따로 구분하여 설명해보도록 합니다.

 

인자하심을 지혜로 이해하라는 명령(33-43)

우리의 삶에서도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의 손길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교만을 꺾으시고 겸손하게 만드실 때가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회개하고 돌이킬 때, 하나님의 회복과 축복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 속에서 그분의 성품을 배우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신뢰해야 합니다.

 

33여호와께서는 강이 변하여 광야가 되게 하시며 샘이 변하여 마른 땅이 되게 하시며

34그 주민의 악으로 말미암아 옥토가 변하여 염전이 되게 하시며

35또 광야가 변하여 못이 되게 하시며 마른 땅이 변하여 샘물이 되게 하시고

36주린 자들로 거기에 살게 하사 그들이 거주할 성읍을 준비하게 하시고

37밭에 파종하며 포도원을 재배하여 풍성한 소출을 거두게 하시며

38또 복을 주사 그들이 크게 번성하게 하시고 그의 가축이 감소하지 아니하게 하실지라도

39다시 압박과 재난과 우환을 통하여 그들의 수를 줄이시며 낮추시는도다

40여호와께서 고관들에게는 능욕을 쏟아 부으시고 길 없는 황야에서 유리하게 하시나

41궁핍한 자는 그의 고통으로부터 건져 주시고 그의 가족을 양 떼 같이 지켜 주시나니

42정직한 자는 보고 기뻐하며 모든 사악한 자는 자기 입을 봉하리로다

43지혜 있는 자들은 이러한 일들을 지켜 보고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깨달으리로다(33-43)

 

33-43절은 네 번째 사이클의 후렴구2의 연장선상에 있는 부연 설명입니다. 그런데 그 문예적 형식은 지금까지 107편에서 나오지 않은 형태로, 한 가지 주제를 집중적으로 다루어 나갑니다. 그 주제는 ‘여호와의 주권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을 주관하는 능력을 가지고 계셔서 그 뜻대로 모든 일들을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구절들에서는 주로 ‘대조’의 기법을 활용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묘사합니다. 33-35절은 먼저 자연물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을 말하는데, 사실 이 내용들은 상징적 의미를 지녔습니다. 33-34절은 여호와께서 강이 변하여 광야가 되게 하시며 옥토가 변하여 염전이 되게 하신다 하여 심판적 의미의 신적 능력을 묘사했고, 35절은 광야가 변하여 연못이 되게 하신다 하여 구원적 의미의 신적 능력을 묘사했습니다. 심판과 구원을 뜻대로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36-39절은 33-35절의 내용을 인간의 삶과 연결시킵니다. 광야가 변하여 연못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주린 자들로 하여금 그 연못 곁에 살면서 성읍을 건설하게 하시고(35), 밭을 경작하고 풍성한 소출을 거두게 하십니다(36). 37-38절은 하나님의 능력을 인간의 번성과 감소라는 주제로 표현해냅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면 번성하게 되지만(38), 하나님께서 뜻을 달리하시면 그 수가 감소하게 됨을 말합니다(39). 모든 내용들의 초점은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행위에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40-41절은 이런 모든 내용을 인간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로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합니다. 40절은 여호와께서 고관들에게서 풍성한 삶을 빼앗아 가신다고 말하며, 41절은 여호와께서 궁핍한 자들을 높이신다고 말합니다. 40-41절의 의미는 단순히 사람의 높고 낮음에 있지 않습니다. 초점은 높이고 낮추시는 권세가 오직 여호와께 있다는 데 있습니다. 42-43절은 이러한 모든 내용을 요약하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제까지 사람들에 대해 평가하는 표현이 없었던 것과는 달리, 42-43절은 사람의 중심과 행위에 대한 평가적 표현들이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먼저 42절을 보면, 인간을 정직한 자와 사악한 자로 구분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사람을 두 종류로 나눠 표현하는 것은 주로 잠언에 등장하는 방식으로, 전형적인 지혜문학의 문예 형태입니다. 107편이 지혜적 요소를 지니고 있음이 더 분명해집니다. 정직한 자 즉 곧은 길을 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 행위를 보며 기뻐할 것이나, 사악한 자는 하나님의 통치로 인해 낮아지고 심판받게 될 것이기에 그 입을 결국 봉하게 될 것입니다. 43절은 107편 전체를 결론지어 주는 구절이며, 동시에 시편 제5권을 열어주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43절은 인간을 두 범주로 나누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반드시 되어야 하는 한 범주를 소개합니다. 바로 ‘지혜 있는 자’ 즉 ‘지혜자’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지혜자입니까? 43절 후반절이 밝히 보여주는데, 바로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깨달은 자들’입니다. 지혜라는 주제와 언약적 성실성이라는 주제는 좀처럼 함께 등장하지 않는데, 43절에서 함께 연결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 즉 언약적 성실성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인데, ‘깨닫다’라는 말은 지혜 어휘입니다. 즉 인자하심이 무엇인지 지혜의 관점에서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동안 시편 1-4권을 통해서 하나님의 언약적 성실성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특별히 105편과 106편에서는 아브라함 언약이 주어진 이후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언약을 성실하게 지키시고 성취해 오셨는지를 세밀하게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하나님의 언약적 성실하심을 더 자세하게 살펴야 하며, 그것도 지혜의 관점에서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지혜는 단순히 삶을 살아내는 기술 정도를 넘어서서, 구속역사를 삶의 구체적인 현장에 적용한 개념으로 이해됩니다. 시편 107편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한 인생들의 여러 가지 경우를 네 개의 사이클로 보여주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여호와 하나님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하심을 깨닫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는 것과, 언약에 대한 성실하심에 대한 문제, 즉 시편 4-5권의 주제인 포로공동체의 회복과 다윗 언약의 회복이라는 문제에 있어서 역시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라는 주제가 중요함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난 속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과 자비를 보았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어떠한 폭풍이나 광야를 만나더라도, 하나님께 부르짖고 그분의 구원을 경험할 수 있음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그분의 은혜에 감사하며 찬양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선하신 목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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