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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106-03)

 


지도자를 넘어뜨린 불신앙

시편 106편 32-48절


 

철의 녹은 겉면에만 얇게 슬면 사포로 닦아내면 되지만, 속까지 깊이 녹이 슬면 사포로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그 때는 도가니에 넣고 녹여야 합니다. 또한 다리가 긁혀서 피가 나면 약을 바르면 되고, 뼈에 금이 가면 깁스를 하면 되지만, 다리뼈 전체에 암세포가 가득하거나 썩어가고 있으면 자르는 수밖에 없습니다. 홍수 심판은 도가니에 깊이 녹슨 철을 넣는 것과 같고, 다리를 자르는 수술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 본문은 시편 106편의 마지막 시로서 결론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의 성실성, 즉 인자하심에 대한 최종적인 메시지를 제공합니다. 과거에 조상들에게 인자하심을 베푸신 여호와이시니, 현재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인자하심을 베풀어주셔야 한다는 것이 그 핵심입니다. 시편 4권을 마무리하면서 106편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대한 간절한 기대와 신뢰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므리바에서의 반역(32-33)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곧 죄의 다스림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매 순간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을 것인지, 죄의 다스림을 받을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마음대로, 원하는대로 하는 것이 자유이고 행복인 것 같지만, 그것은 바로 죄의 다스림을 받는 것임을 기억해야겠습니다.

 

32그들이 또 므리바 물에서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으므로 그들 때문에 재난이 모세에게 이르렀나니 33이는 그들이 그의 뜻을 거역함으로 말미암아 모세가 그의 입술로 망령되이 말하였음이로다(32-33)

 

앞선 금송아지 숭배 사건, 브올의 바알 사건에 이어서 32-33절은 이스라엘이 므리바에서 하나님께 반역한 사건을 서술합니다. 므리바 사건은 출애굽기 17장 및 민수기 20장에 두 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중 본문이 언급하는 것은 민수기 20장으로, 모세가 반석을 두 번 내려침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지 못하여 여호와께서 모세를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신 사건입니다.

32-33절에 따르면, 백성들이 여호와를 노하시게 했는데, 그로 인해서 재난이 모세에게까지 임하게 되었습니다. 백성들이 모세의 영혼을 분노하게 만들어, 모세가 민수기 20:10에서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라’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핵심은 백성들뿐 아니라 모세까지도 잘못을 범하게 되었다는 점을 지적하는 데 있습니다. 모세는 19-23절에 언급한 금송아지 사건에서는 하나님께 기도하여 언약을 다시 체결하게 하는 중심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세조차도 부족하여 죄를 범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전체는 지도자와 백성들을 막론하고 하나님 앞에 범죄한 자들이었습니다. 시편 4권의 맥락에서 볼 때, 모세의 범죄를 언급하는 이 구절은 의미심장합니다. 시편 4권을 시작하는 90편은 모세의 기도이고, 사람의 인생은 창조주이신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아님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시편 4권을 끝내는 106편에서는 그 모세조차도 하나님께 범죄한 인생이었음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4권 전체의 흐름에 있어서 사람의 자리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역사와 구원의 주인공이실 뿐입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포함한 이스라엘 민족의 반역에 과연 어떻게 반응하셨습니까?

 

사사 시대의 우상숭배와 이방 압제의 역사(34-43)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나안 땅 사람들을 진멸하라고 했던 것은 그들이 이방인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에게 죄가 가득 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의 죄를 심판하는 도구가 이스라엘 자손들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자손들의 죄가 가득 찼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앗수르 제국과 바빌론 제국을 도구로 삼아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를 치셨습니다.

 

34그들은 여호와께서 멸하라고 말씀하신 그 이방 민족들을 멸하지 아니하고 35그 이방 나라들과 섞여서 그들의 행위를 배우며 36그들의 우상들을 섬기므로 그것들이 그들에게 올무가 되었도다 37그들이 그들의 자녀를 악귀들에게 희생제물로 바쳤도다 38무죄한 피 곧 그들의 자녀의 피를 흘려 가나안의 우상들에게 제사하므로 그 땅이 피로 더러워졌도다 39그들은 그들의 행위로 더러워지니 그들의 행동이 음탕하도다 40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맹렬히 노하시며 자기의 유업을 미워하사 41그들을 이방 나라의 손에 넘기시매 그들을 미워하는 자들이 그들을 다스렸도다 42그들이 원수들의 압박을 받고 그들의 수하에 복종하게 되었도다 43여호와께서 여러 번 그들을 건지시나 그들은 교묘하게 거역하며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낮아짐을 당하였도다(34-43)

 

본문은 이스라엘이 우상을 숭배한 역사를 상세하게 기술해 내려갑니다. 먼저 34-39절은 우상숭배 사건을 설명합니다. 34-36절은 사사기 1-2장의 내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방 백성의 영향으로 이스라엘은 결국 이방의 우상까지 섬기게 되었습니다. 37-39절은 이방 제사 방식을 받아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녀를 죽여 제물로 바친 죄악상을 기술합니다. 여기서 38절은 매우 중요한데, 자녀들의 피를 흘려 제물로 바친 것은 우상숭배의 죄일 뿐 아니라, 동시에 살인죄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38절은 도피성 규정을 설명하는 민수기 35:33과 연결됩니다. 도피성은 하나님 나라의 안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제도로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가나안 땅이 하나님의 안식을 실현시키기 위한 영역임을 보여줍니다. 살인 행위에 대한 보복 때문에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는 일을 방지하는 것이 도피성 규정임을 생각할 때, 38절의 ‘피가 땅을 더럽혔다’는 언급처럼 하나님 나라의 기업인 가나안 땅에서 우상을 숭배하고 자녀를 제물로 바치는 살인죄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음이 분명합니다. 39절은 이러한 이스라엘의 행위를 ‘음탕하다’고 규정합니다. 여기서 ‘음탕하다’라고 번역된 단어는 ‘자나’로, ‘음란한 행위를 하다’ 혹은 ‘간음하다’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은 우상숭배를 함으로써 남편이자 주인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에게로 떠나갔다는 죄악상을 명확하게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40-43절은 사사기에 나타나는 이스라엘의 배역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을 서술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배역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고 돌이키시기 위해 이방 나라를 사용하여 이스라엘을 압제하게 하셨습니다. 이를 40-41절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업을 미워하셔서 이방 나라의 손에 넘기셨다고 표현합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 밖으로 포로로 잡혀갔다기보다는 이방 나라들이 이스라엘 땅에 들어와서 그들을 사로잡아 사실상의 포로 상태로 만들었다고 해석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42절이 말하듯이,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주신 가나안 땅에서 원수들에게 복종하게 되는 수치를 경험하였습니다. 43절은 이러한 우상숭배와 열방 압제가 많이 일어났음을 지적합니다. 사사기에서 말하듯이, 이스라엘의 배도는 계속 반복되었고, 그 배역의 수준은 점점 더 심해져만 갔습니다.

 

인자하심을 베푸신 여호와(44-46)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받은 유업을 멸시하니 하나님도 미워하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미워하고 도움의 손을 뿌리치니 하나님도 도움의 손길을 거두시고 그들을 미워하는 이방의 손에 자기 백성을 넘기셨습니다. 여러 번 용서하고 구원하셨지만, 교묘하게 거역하여 스스로 원수의 압제와 굴종을 자초한 결과였습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의 사랑은 죄악을 묵인하는 맹목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44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실 때에 그들의 고통을 돌보시며 45그들을 위하여 그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 크신 인자하심을 따라 뜻을 돌이키사 46그들을 사로잡은 모든 자에게서 긍휼히 여김을 받게 하셨도다(44-46)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방의 손에 넘긴 것으로 끝내지 않으셨고, 구원의 손길을 베푸셨습니다. 사사기에서는 백성들이 부르짖을 때 사사를 보내서 구원하신 패턴을 볼 수 있는데, 44-46절은 사사기의 패턴 자체를 기술하기보다, 그렇게 구원하신 하나님의 언약적 성품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44절은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실 때에 그들의 고통을 돌보셨다’라고 말하는데, 이 구절은 107편에 나타나는 후렴구와 유사하므로 주목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45절은 여호와께서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실 때, 그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인자하심을 베푸셨다는 사실을 선언합니다. ‘인자하심’이란 하나님께서 언약을 반드시 성취하시고야 만다는 언약적 성실성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을 한 번 언약 백성으로 삼으셨기에,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며, 결국 구원하고야 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백성들의 범죄와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실패하지 않으며, 하나님 자신의 성실하심으로 인해서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구원에 대한 요청(47)

악인들을 향한 심판이 하나님 나라 계획과 언약의 포기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르짖는 소리에 다시 언약을 기억하시고 긍휼을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끝이 어딘지 모릅니다. 항상 근신해야 하지만, 동시에 아무도 쉽게 포기해서도 안 됩니다.

 

47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여 우리를 구원하사 여러 나라로부터 모으시고 우리가 주의 거룩하신 이름을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찬양하게 하소서(47)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106편 전체의 내용은 이스라엘의 반역과 배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인내하시면서 그들에게 인자하심을 베푸셨다는 데 핵심이 있습니다. 이 모든 서술들은 ‘과거에 행하신 인자하심의 역사’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과거 역사의 서술은 그 목적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과거 역사의 기술은 항상 현재를 향한 투영이 목적입니다. 과거를 배움으로써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건설하는 것이 역사 서술의 목적인 것입니다. 과거에 행하신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말하는 것은, 현재의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인자하심을 행하실 것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점이 47절에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47절은 여호와를 ‘우리 하나님’으로 부르면서 시작합니다. 이 표현은 출애굽기 6:7의 언약 공식의 일부로서, 자신들이 하나님과 언약 관계를 맺고 있음을 상기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시편 4권의 맥락에서 보자면, 포로기 상황에 처해 있는 이스라엘은 과거에 행하신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근거로, 자신들을 구원하여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47절은 ‘우리를 구원하사 여러 나라로부터 모으소서’라고 말합니다. 과거에도 이스라엘은 범죄하였고 언약 관계가 깨졌었지만,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인해 회복되었었으니, 그 인자하심의 은혜를 지금 다시 주셔서 깨어진 언약 관계가 회복될 수 있도록 동일한 은혜를 베풀어달라고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송영(48)

아직 고향 땅 예루살렘에 이르지는 못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그들을 구원하시고, 열방 중에 흩어진 그의 백성을 다시 한번 모아주셔서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감사하며 찬양하게 해 줄 것을 간구합니다. 그리고 모인 청중들을 향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토록 찬양하라고 외친 후 할렐루야로 기도를 마칩니다.

 

48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양할지어다 모든 백성들아 아멘 할지어다 할렐루야(48)

 

본문은 106편을 마무리하는 구절인 동시에 시편 4권 전체에 대한 송영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 영원할 것을 노래합니다. 인자하심을 베푸시는 여호와는 영원하시고, 온 피조물 가운데 항상 계시는 왕이시며, 그 인자하심은 영원합니다. 따라서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도, 스스로는 연약하고 허물이 많지만,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와 그분의 인자하심을 기억하고 의뢰할 때 다시금 구원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106편 및 제4권이 노래하는 여호와의 왕 되심에 대한 마지막 메시지입니다.


하나님보다 우리를 크게 생각하는 오만함을 버리고, 내 인생을 하나님보다 더 잘 꾸려갈 수 있다는 착각도 버리고, 우리를 찾아와 주시는 영원한 사마리아사람, 영원한 이웃인 주님의 은총을 덧입어, 우리가 서 있는 곳을 은혜와 찬양의 터전으로 가꾸어가는 한 날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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