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106-02)
불신앙의 증거인 원망과 불평
시편 106편 13-31절
감사는 우리의 믿음 생화을 굉장히 중요한 요소입 니다. 사도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나라”(살전 5:18)라고 하였습니다. 감사하지 못하는 상황 가운데 있게 되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지 않게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감사의 여부는 우리의 믿음의 척도라도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 감사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특권입니다.
- 본문은 시편 106편의 중반부로서, 언약 관계에 불순종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인자를 베푸신 이야기들을 이어 나갑니다. 고라 도당이 제사장이 되려 했던 사건, 금송아지 숭배 사건, 바알브올 사건 등이 주요한 스토리 라인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모든 기술의 초점은 이스라엘을 향해 끝까지 인내하시며 주도적으로 언약을 성취해나가신 하나님께 있습니다.
광야에서 반역한 이스라엘(1)(13-15)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잊지 않고 항상 그분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쉽게 욕망에 휘둘릴 수 있음을 보여주며, 우리의 욕망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최선의 것을 주시는 분이시며, 우리의 욕망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고 기다릴 때, 그분은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고 영혼을 강건하게 하십니다.
13그러나 그들은 그가 행하신 일을 곧 잊어버리며 그의 가르침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14광야에서 욕심을 크게 내며 사막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였도다
15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요구한 것을 그들에게 주셨을지라도 그들의 영혼은 쇠약하게 하셨도다(13-15)
이스라엘의 반역은 망각과 조급함에서 왔습니다. 스스로 넘지 못할 장애물을 만나면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그 어려움 주신 뜻을 상고하기보다 속히 불평과 원망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불평과 시험에 어울리는 재앙도 같이 주셨습니다. 주의 뜻을 구하고 주의 때를 기다리지 않은채 내 욕심이 채워지는 것은 결코 축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꺾고서라도 꼭 이뤄야 할 만큼 중요하고 절박한 일은 세상에 없습니다.
13절부터는 1-12절에 이어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반역한 일들을 설명해나갑니다. 먼저 13-15절은 이스라엘의 반역의 패턴을 제시합니다. 13절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잊었음을 지적하고, 광야에서 욕심을 내어 하나님을 시험했다고 평가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하신 일’을 ‘잊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과거에 하신 일을 잊게 될 때, 그들은 욕심에 떨어지게 되며, 결국 하나님을 시험하게 됩니다. 이때 벌어진 결과를 15절이 서술하는데, 바로 그들이 요구한 것을 주시기는 했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그들이 풍성하게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쇠약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은 핵심이 아니고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그 결과 오히려 더 쇠약해질 뿐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기억할 때,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게 되며, 쇠약해지지 않는 건강한 신앙의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습니다.
고라 도당의 반역(16-18)
우리는 교회와 공동체 안에서 시기와 반역의 죄를 경계하며,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들을 존중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두려워하고, 그분의 뜻에 벗어난 삶을 살지 않도록 항상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시기와 반역은 신앙과 공동체를 파괴하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겸손히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16그들이 진영에서 모세와 여호와의 거룩한 자 아론을 질투하매
17땅이 갈라져 다단을 삼키며 아비람의 당을 덮었고
18불이 그들의 당에 붙음이여 화염이 악인들을 살랐도다(16-18)
16절부터는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행한 반역의 일들을 차례로 언급합니다. 먼저 16-18절에서는 민수기 16장에 나오는 고라 일당의 반역 사건을 언급합니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을 질투했습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통치 질서와 구속 사역의 구조를 뒤흔들려 한 사건으로, 사회 조직적인 의미에서 해석하기보다 구속사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반역으로 해석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의 통치에 대해 반역한 고라의 무리에게 지진과 불이 벌로 주어졌습니다. 17-18절은 땅이 갈라져 그들을 덮었고 불이 그들을 살랐음을 설명합니다.
금송아지 숭배의 반역(19-23)
은혜에 대한 망각은 우상숭배를 낳습니다. 이스라엘은 모세가 없는 사이에 아론을 부추겨 황금 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했습니다. 출애굽의 구원자를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홍해에서 보여주신 이적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받은 구원의 은총을 멸시하고, 스스로 구원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19그들이 호렙에서 송아지를 만들고 부어 만든 우상을 경배하여
20자기 영광을 풀 먹는 소의 형상으로 바꾸었도다
21애굽에서 큰 일을 행하신 그의 구원자 하나님을 그들이 잊었나니
22그는 함의 땅에서 기사와 홍해에서 놀랄 만한 일을 행하신 이시로다
23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멸하리라 하셨으나 그가 택하신 모세가 그 어려움 가운데에서 그의 앞에 서서 그의 노를 돌이켜 멸하시지 아니하게 하였도다(19-23)
19절부터는 또 하나의 사건을 해설합니다. 바로 출애굽기 32-34장의 금송아지 숭배 사건입니다. 이 금송아지 숭배 사건은 고라 도당의 반역보다 먼저 일어난 일인데. 106편에서는 고라 사건 뒤에 배열되어 있습니다. 106편의 서술이 연대기적인 순서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16-18절의 고라 사건은 한 가족과 무리의 반역이었던 데 반해, 19-23절의 금송아지 숭배 사건은 언약 백성 전체의 반역이었습니다. 더 중요한 사건을 뒤쪽에서 취급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금송아지 사건은 가장 근원적인 의미에서의 반역 사건입니다.
19절이 말하는 바와 같이. 이스라엘은 언약을 체결했던 호렙산에서 모세가 그 산 위에서 하나님과 만나 성막 건설에 대해 듣고 있던 그 순간에,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하였습니다. 송아지를 만들고 경배했는데, 20절이 서술하는 바와 같이 그 사건은 그들의 영광을 소의 형상으로 바꾼 행위였습니다. 개역개정에는 ‘자기 영광’으로 번역되어 있지만, 원문을 직역하면 ‘그들의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심 받은 영광을 우상으로 대체하고 말았던 반역의 행위입니다. 이 사건의 의미는 21-22절에서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그들을 위해서 행하신 일과 그 구원자 하나님을 그들이 ‘잊었다’는 것입니다. 22절이 말하는 애굽 땅에서의 재앙은 105편에서 서술되었고, 홍해에서 행하신 일은 106:1-11에서 서술되었습니다.
105편과 106편 초두에서는 ‘기억함’의 증요성이 선포된 바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점은 13-15절에서도 반복적으로 제시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또다시 하나님께서 형하신 일을 잊은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인간적인 생각에 빠져 금송아지를 숭배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이에 대하여 진노하시고 심판하셔야 마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3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또다시 용서하셨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며, 동시에 하나님께서 구속사 가운데 거듭 행하신 패턴이기도 합니다. 23절의 내용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럼으로써 백성들과 하나님 사이의 갈라짐이 메꾸어지고, 진노함이 돌이켜졌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반역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또다시 언약의 성실함을 베푸셨습니다.
광야에서 반역한 이스라엘(2)(24-27)
약속에 대한 불신은 멸망을 낳습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한 사람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모두 가나안 사람들의 위용에 놀라 기쁨의 땅을 선물로 받기를 거절하였습니다. 도리어 원망의 소리는 키우고 하나님의 음성에는 귀를 막았습니다. 그 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현실의 난관 앞에서 허튼 소리로 전락한 것입니다.
24그들이 그 기쁨의 땅을 멸시하며 그 말씀을 믿지 아니하고
25그들의 장막에서 원망하며 여호와의 음성을 듣지 아니하였도다
26이러므로 그가 그의 손을 들어 그들에게 맹세하기를 그들이 광야에 엎드러지게 하고
27또 그들의 후손을 뭇 백성 중에 엎드러뜨리며 여러 나라로 흩어지게 하리라 하셨도다(24-27)
24-27절은 이스라엘이 다시금 광야에서 하나님께는 역한 사실을 기술합니다. 24-25절이 먼저 백성들의 죄악의 내용을 고발하는데, 그들이 기름의 땅을 멸시하고 말씀을 믿지 않았고, 장막에서 원망하고 주님께 물 순종했다는 사실입니다. 26절은 그 결과를 명시합니다. 하나님께서 손을 들어 백성들을 광야에 엎드러지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손’은 신인동형론적 표현으로, 실제로 하나님께 손이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행하심을 인간의 육신적 형태로 비유하여 표현한 것으로,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손’은 심판과 구원을 동시에 상징합니다. 궁극적인 하나님의 신현을 뜻하는 표현입니다. 26절에서 하나님의 손은 불순종하고 언약을 저버린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27절은 그들을 열방 증에서 무너지게 하시고 이방 중에 흩으실 것을 선언합니다. 아브라함 언약을 따라 열방을 향한 축복의 통로로 서야 하는 이스라엘이(창 12:3). 시내산 언약을 따라 열방을 회복케 하는 제사장 나라로 쓰임 받아야 하는 민족임에도(출 19:6). 그들은 불순종함으로 이방 앞에 패배하고 이방 가운데 흩어질 운명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바로 이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행하실지가 해석의 초점이 됩니다. 그 예로 우리는 바알브올 사건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알브올의 반역(28-31)
우리는 일상에서 다양한 유혹에 직면할 때, 하나님을 떠나 죄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죄는 항상 결과를 낳고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올 수 있으므로, 회개의 마음으로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우리의 의로운 행동과 회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고 진노를 멈추게 할 수 있습니다.
28그들이 또 브올의 바알과 연합하여 죽은 자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어서
29그 행위로 주를 격노하게 함으로써 재앙이 그들 중에 크게 유행하였도다
30그 때에 비느하스가 일어서서 중재하니 이에 재앙이 그쳤도다
31이 일이 그의 의로 인정되었으니 대대로 영원까지로다(28-31)
바알브올은 ‘브올의 바알’이라는 뜻인데, ‘바알’은 ‘주인’이라는 의미와 ‘바알 신’이라는 의미 모두로 사용됩니다. 따라서 바알브올은 브올 지역에서 섬겼던 우상 바알을 뜻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 제단의 제물을 먹고 그 제사 행위에 동참함으로써 하나님을 진노하시게 했고, 그로 인해서 이스라엘에게 큰 전염병이 돌게 되었습니다(민수기 25장 참조). 마땅히 심판받아야 할 범죄행위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바로 이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반응하셨는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앞선 금송아지 숭배 사건에서는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스라엘을 다시금 언약 백성으로 회복시키신 하나님께서 이제 여기서는 어떻게 행하실 것입니까? 앞선 사건에서 모세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비느하스의 중재를 사용하셨습니다.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 비느하스가 일어나 죄인들을 심판했고, 이를 지켜보신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을 용서하시고 재앙을 그치셨습니다. 31절은 이러한 비느하스의 행위가 하나님 앞에서 그의 ‘의’가 되었다고 서술합니다. 여기서 ‘의’로 번역된 원어는 ‘쩨다카’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세워졌음을 의미합니다. 비느하스가 한 행위로 인해 이스라엘이 보존되었고, 그 자신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가운데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금송아지 사건에서는 모세 때문에, 바알 브올 사건에서는 비느하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진노를 돌이키시고 언약 백성을 지켜내셨습니다. 106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끊임없이 하나님께 반역했음을 말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백성들과의 언약 관계를 지켜내셨음을 서술합니다. 진노하시는 것이 합당함에도, 백성들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언약적 성실성이 계속 시 전체의 주제로 발전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진심으로 회개하고, 의로운 삶을 실천해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죄의 유혹을 경계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며, 그분의 공의와 사랑을 증거하는 모든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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