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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105-02)


믿음의 여정: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

시편 105편 12-23절


 

우리에게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와 그분의 세밀한 계획을 믿고 의지하라는 도전을 줍니다. 우리의 삶에도 예상치 못한 어려움과 고난이 닥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위해 일하시고 인도하시며, 우리의 미래를 위해 미리 준비하신다는 사실을 이 본문을 통해 확신할 수 있습니다.

 

  • 이 시편의 둘째 연은 창조의 주님이 역사의 주관자라는 사실을 노래합니다. 찬송시의 형태지만 이스라엘이 하나의 국가로 수립되기 이전 나그네처럼 이 민족 저 민족으로 떠돌던 나그네의 삶을 회고하는 내용입니다. 특히 땅의 기근과 요셉이 노예로 팔린 사건을 되돌아보는 것은 역사의 때를 정하시는 하나님 섭리가 어떻게 진행되고 그의 약속이 어떻게 성취되는가를 보여주는 교훈의 목적이 큽니다.

 

이스라엘 선조의 가나안을 향한 여정(12-15)

우리의 삶에 어려운 상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려움과 도전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힘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어떻게 무력해 보이는 이스라엘을 지키셨는지, 그리고 그분의 신실한 보호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사실을 새롭게 발견하며, 하나님의 신뢰를 더욱 확고히 할 수 있습니다.

 

12그 때에 저희 사람 수가 적어 매우 영세하며 그 땅에 객이 되어

13이 족속에게서 저 족속에게로, 이 나라에서 다른 민족에게로 유리하였도다

14사람이 그들을 해하기를 용납지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왕들을 꾸짖어

15이르시기를 나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건드리지 말며 나의 선지자들을 해하지 말라 하셨도다(12-15)

 

이스라엘 백성이 아직 소수에 불과하고 나그네로 이 땅 저 땅을 떠돌아다닐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호하신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적은 수였을 때에도 강한 왕들과 민족들로부터 그들을 지키셨습니다. 그들을 해하려는 자들에게 경고하시며, 기름부음 받은 자들과 선지자들을 건드리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이로써 하나님께서는 작은 시작을 가진 이스라엘을 향한 자신의 신실한 보호와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1) 떠도는 나그네와 같은 이스라엘(12-13)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할 것이라 약속하셨지만(105:11), 시인은 즉시 차지할 수 없었던 이유를 밝힙니다. 사람들의 수가 적었고 나그네로 살았습니다(12). 아브라함과 후손들이 가나안 땅의 이곳저곳을 떠돌고 배회하면서 살았습니다(창 12-35장). 아브라함이 거주할 땅을 약속받았지만(창 15:7), 실현되기까지는 수백 년이 걸렸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족속에서 저 족속으로, 이 나라에서 또 다른 나라로 떠돌아다녔습니다(13). 이스라엘의 선조가 매우 취약하고 무기력한 소수의 나그네로 살았다는 점을 분명히 드러낸 것입니다. 그들은 거주할 집도 없이 정착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이동하며 살았습니다. 두 시행을 통해 시인은 이스라엘의 선조가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소수자들의 위태로움과 불안정한 상황이었으며, 하나님의 절대적이고 특별한 보호가 필요함을 제시합니다.

 

(2) 억압을 용납하지 않으시는 하나님(14-15)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던 이스라엘 선조들은 위태로웠습니다(12-13). 그러나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이든 그들을 억압하지 못하게 하셨고, 그들 향해 대항하는 왕들을 꾸짖으셨습니다(14). 어느 시대든 나그네로 떠돌며 안주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삶은 취약하고 불안정합니다. 소수자들은 힘을 가진 자들에 의해 착취당할 위험성이 훨씬 더 큽니다. 아브라함이 이집트 왕과 아비멜렉에게 아내 사라를 빼앗길 뻔했고(창 12:7;창 20:3), 아들 이삭도 그랄 땅에 거주하는 동안 아버지와 비슷하게 생존의 위협을 느끼고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여야 했습니다(창 26:6-11). 이때마다 하나님의 적극적인 도우심이 있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하나님의 직접화법을 인용하는 방식으로 전합니다. “손대지 말라, ‘나의 기름 부음 받은 자들’(메쉬하이) ‘선지자들’(네비아이)을 해하지 말라.”(15) 시인은 ‘기름 부음 받은 자’(마쉬아흐 ‘선지자’(나비)의 복수형을 교차 병행시켜 동의어처럼 표현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애굽 왕과 아비멜렉에게 나타나서 경고하신 것에서 드러납니다(창 20:7). 구약에서 ‘기름 부음 받는 자’(마쉬아흐)는 왕, 선지자, 제사장 직분을 가진 자들을 가리킬 때 사용합니다. 그런데 흥미롭게 시인은 백성 전체를 복수형의 메시아와 선지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왕, 선지자, 제사장이라는 특별한 지위를 백성 전체에게 확장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언약을 지키면 모든 민족 중에서 내 보물로 삼고, 제사장 나라가 되고,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과 맞닿습니다(출 19:5-6).

 

가나안 땅의 기근과 요셉(16-23)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의 모든 순간을 주관하시며, 때로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일하십니다. 우리는 믿음의 선배들의 이야기를 통해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함을 배우게 됩니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도전과 어려움도 하나님의 큰 계획의 일부임을 믿으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을 확신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6그가 또 그 땅에 기근이 들게 하사 그들이 의지하고 있는 양식을 다 끊으셨도다

17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18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19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20왕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석방함이여 뭇 백성의 통치자가 그를 자유롭게 하였도다

21그를 그의 집의 주관자로 삼아 그의 모든 소유를 관리하게 하고

22그의 뜻대로 모든 신하를 다스리며 그의 지혜로 장로들을 교훈하게 하였도다

23이에 이스라엘이 애굽에 들어감이여 야곱이 함의 땅에 나그네가 되었도다(16-23)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행하신 일들을 서술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기근을 보내어 땅을 시험하시고, 요셉을 먼저 애굽으로 보내셨습니다. 요셉은 종으로 팔렸으나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결국 애굽의 총리가 되어 가족을 구원하게 됩니다. 요셉의 지혜와 하나님의 인도로 인해 야곱과 그의 자손들이 애굽으로 내려가 번성하게 됩니다. 이 구절들은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이 요셉의 삶을 통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보여줍니다.

 

(1) 땅의 기근과 노예로 팔린 요셉(16-19)

 

시인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가나안 땅에 거주할 때를 회고합니다. 그(하나님)가 그 땅에 기근을 불러들이셨고 온갖 양식을 끊어버리셨습니다(16; 참조. 창 12장;41-45장).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이 여기저기 떠돌던 생활이 이미 언급되었으니(12-15), 이것은 야곱과 그의 가족들이 기근으로 인해 이집트로 가게 된 때를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으니, 그는 노예로 팔린 요셉입니다(17). 그런데 요셉이 ‘종’으로 팔린 사건은 그 형제들의 시기와 질투에 의한 것이었습니다(창 36장). 그러나 이 사건은 하나님의 ‘종’(에벧) 아브라함에 대한 언급으로 되돌리는 효과가 있습니다(6). 이 지점에서 시인은 기근이 하나님의 뜻이었고, 앞서 보낸 ‘한 사람’(이쉬)이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종’의 역할을 한 것이라고 불편했던 가족사를 신학적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종이라는 단어에 역설이 숨어 있습니다. 종을 뜻하는 히브리어 ‘에벤’은 ‘섬기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문자적으로 다른 누군가에게 귀속된 사람이고, 누군가에 의해 부당한 취급을 받기 쉬운 존재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하나님의 뜻이 연약한 선조 중 ‘한 사람’ 요셉의 고통을 통해 실현된 것입니다. 시인은 요셉의 고통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들이 그의 발을 차꼬에 채우고, 그의 목은 쇠사슬에 매였다’(18). 이 두 형틀, 차꼬와 쇠사슬은 죄인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하는 도구인 만큼 요셉의 비참함을 상상하게 합니다. 그러나 시인은 요셉의 고된 삶을 간결하게 절제된 문장으로 표현했습니다. 말하자면 요셉의 비참함은 ‘그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19)라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를 단련시켰다(19b)고 덧붙입니다. 즉 여호와의 말씀이 성취될 때까지 노예 신분으로 옥중에서 혹독한 고생을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그가(하나님이) 그를(요셉을) 단련하셨다(19b)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단련한다’(차라프)는 것은 용광로에서 광물을 불순물없이 단단하게 할 목적으로 정련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순수하고 깨끗하게 다듬어 품위 있는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 그가 진실했음을 증명할 때까지’(till the word of the LORD proved him true, NIV)라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즉 시인이 요셉 이야기로 전환하면서 요셉을 통해 성취된 하나님 말씀의 결과를 표현한 것입니다.

 

(2) 노예 신분에서 주인 신분으로(20-23)

 

고통의 시간은 정해져 있습니다. 왕이 사람을 보내 그를 석방했고, 뭇 백성의 통치자가 그를 풀어주었습니다(20).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석방을 인간 왕을 통해 실행하셨습니다. 당시 왕을 애굽 왕이라고 언급하지 않지만, 당시 요셉을 자유롭게 풀어준 왕은 애굽 왕이다. 애굽의 바로는 그때 하나님 뜻을 실행하는 도구였던 셈입니다. 시인은 왕이 요셉을 가장 신뢰하는 관리자로 삼은 것을 통치자를 세운 것처럼 표현했습니다. 즉 왕이 자기 집의 “주관자”, 정확히 ‘주인’으로, 모든 재산을 관리하는 자로 삼았습니다(21). 이는 하나님께서 요셉을 바로 대신 ‘주인’(아돈)과 ‘통치자’(모쉘)로 삼았다는 뜻입니다. 바로는 명목상일 뿐 요셉이 실질적인 애굽의 통치자였다는 말로 들립니다. 곧이어 요셉은 자기 뜻대로 관료들을 다스리고 장로들을 지혜롭게 가르쳤습니다(22). 노예(종)로 팔려 왔던 요십이 ‘주인’이 되고, 왕 대신 왕실의 관료들을 자기 ‘뜻’(네페쉬)대로, ‘의지’대로 다스리며, 국가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장로 집단을 지혜롭게 교육하는 자로 탈바꿈한 것입니다. 요셉은 바로의 법정에서 중요한 일을 하는 자들의 지혜 교사였습니다. 이러한 지위는 요섭이 7년의 풍년과 7년의 기근에 대한 꿈을 꾸고 해석한 일(창 41장) 이후의 변화입니다. 이 모든 일을 통해 하나님의 신실함에 의해 보호받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게 합니다. 그러고서 이 연의 마지막 시행에서 이스라엘이 애굽으로 들어갔고, 야곱이 함의 땅 곧 애굽에서 나그네로 살았습니다(23). 시행 사이에 생략된 사건들 속에서 시인이 강조하는 것은 ‘나그네’입니다. 둘째 연의 시작이 ‘나그네들’인 것처럼(12) 야곱이 ‘나그네로 살았다’는 말이 서로 호응합니다. 시의 핵심은 사실상 애굽의 살림과 국정의 책임자인 요셉에 의해 아버지 야곱과 그의 형제들과 후손들이 가나안의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왔던 역사에 대한 간결한 회고입니다. 회고의 목적은 하나님 은혜의 중요성과 역사의 교훈을 통해 삶의 지혜를 얻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그네와 같은 약자들을 통해 말씀하시고,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신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탄식,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 구원하셨다는 말은 그들의 탄식과 신음 소리가 곧 하나님의 뜻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애굽의 종으로 팔려갔던 요셉을 통해 애굽 전역과 야곱의 집안 전체를 구원하신 것처럼, 나그네요 종이 세상을 구원할 자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이 땅의 나그네를 억압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이 안전할 때 우리 사회 전체가 안전해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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