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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106-01)


신실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

시편 106편 1-12절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유는 그분의 본질적인 선하심과 영원한 인자하심에 있습니다. 우리의 감사는 하나님의 본질적인 선함과 끝없는 사랑을 기반으로 하며,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권능은 크고 놀라우며, 정의와 의를 지키는 자들에게 복이 주어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그분의 구원을 간구하며,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에게 주시는 복을 보고 기뻐해야 합니다.

 

 

  • 시편 106편은 시편 제4권을 종결하는 마지막 시편입니다. 여호와의 왕 되심과 그분의 통치의 주권성을 핵심 주제로 다루어온 4권은 105편에 이어지는 106편에서 아브라함 언약을 신실하게 지켜내시는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자세하게 다룹니다. 백성들은 불순종하여 언약관계를 깨뜨렸으나 여호와는 성실하셔서 그 언약관계를 끝까지 지켜내셨다는 것이 핵심 메시지이며 홍해 사건을 그 첫 번째 예로 다루고 있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는 명령(1)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선하심에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본질적으로 선하시며, 그의 모든 행동과 결정은 선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우리에게 안정과 평화를 주며, 그분이 우리에게 최선의 것을 주시기를 원하신다는 확신을 심어줍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그의 창조와 섭리, 그리고 우리의 삶 속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이 선하심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1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1)

 

시편 106편은 시편 4권을 종결하는 마지막 시편이며, 그 핵심 주제를 1절에서 명확하게 제시합니다. 여호와께 감사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호와께서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구절이 사실상 시편 4권의 종결 메시지이며, 다윗 언약이 무너진 것과 같은 포로기 상황에 처한 언약 백성들을 향한 구속사적 대답입니다.

이 표현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첫째는 ‘여호와께서 선하시다’라는 진술입니다. ‘선하다’의 원어는 ‘토브’인데, 이 단어는 ‘좋다’, ‘선하다’라는 의미를 지녔고, 단순한 감정적인 ‘좋음’이나 성격상의 ‘선한 성품’ 정도를 넘어서서, 구약성경에서는 상당한 종말론적 함의를 지니고 사용됩니다. 이 단어가 처음 쓰인 곳은 바로 창세기 1장인데,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는 과정에서 둘째 날을 제외하고 모든 날에 ‘보시기에 좋았다’라고 하여 대부분의 경우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다는 말은, 그냥 감정적 기쁨 정도를 넘어서서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이 완성되었기에 기쁨을 누리셨다’는 의미를 함축합니다.

둘째로,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라는 진술입니다. 이 구절은 사무엘하 7장 다윗 언약의 내용을 사실상 요약한 것입니다. 다윗에게 약속하신 바, 그의 나라가 영원하며, 결코 멸망하지 않고, 다윗의 후손을 통해서 하나님의 집이 완성될 것입니다. 그런데 시편 제4권이 수집된 역사적 배경은 다윗 언약이 무너진 것처럼 보이는 포로기로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다윗 언약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이것이 4권이 추구하는 신학적 질문인데, 이에 대한 대답이 106편에서 직설적으로 다시 등장하는 것입니다. 다윗 언약은 영원하며, 결코 멸망하지 않음은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께 감사해야 하는 자들에 대한 서술(2-5)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우리의 이해를 초월하며, 완전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놀라운 일들을 기억하며 찬양해야 합니다. 정의와 의를 행하는 삶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으로, 특별한 축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자격 없는 선물임으로, 그분의 구원을 바라보며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억하시고 구원으로 돌보아 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2누가 능히 여호와의 권능을 다 말하며 주께서 받으실 찬양을 다 선포하랴

3정의를 지키는 자들과 항상 공의를 행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4여호와여 주의 백성에게 베푸시는 은혜로 나를 기억하시며 주의 구원으로 나를 돌보사

5내가 주의 택하신 자가 형통함을 보고 주의 나라의 기쁨을 나누어 가지게 하사 주의 유산을 자랑하게 하소서(2-5)

 

2절은 수사의문문을 활용하여 여호와의 권능이 매우 크다고 선포합니다. 그를 찬양하는 것은 아무리 많이 해도 충분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여호와의 능력을 선포하려는 자들의 자격 조건은 무엇입니까? 찬양하는 자들에게 어떤 신앙의 사람이 되라고 106편은 권면하고 있습니까?

3절은 ‘정의와 공의’를 지키며 행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정의’와 ‘공의’ 즉, ‘쩨다카’와 ‘미쉬파트’는 사무엘하 8:15에서 사용된 어휘 조합으로, 다윗 언약을 받은 다윗이 언약의 당사자로서 행했을 때 맺은 열매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즉, ‘정의’와 ‘공의’란 하나님의 언약적 통치가 이루어졌을 때 나타나게 되는 언약의 열매요 언약적 통치의 원리입니다. 3절은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성실성이 영원하므로, 그 다스림을 받는 백성들은 항상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1절과 3절은 사실상 다윗 언약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과 그 은혜의 약속을 받은 자들의 삶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4절은 여호와께 드리는 간구의 기도인데, 여호와께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기억하다’라는 단어가 매우 중요합니다. ‘기억하다’는 이미 105편에서도 등장한 어휘였는데, 하나님께서 언약을 기억하시므로 우리가 그분의 언약적 행하심을 기억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105편의 흐름을 반추할 때, 106:4에서 여호와를 향하여 ‘기억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언약적 관계에 근거한 기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5절에는 ‘주의 택하신 자가 형통함을 보게 하소서’라는 간구가 등장합니다. 여기서 ‘형통함’은 ‘토바’라는 단어로, 1절의 ‘토브’와 연결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그 택하신 자가 누리게 해달라는 것으로, 하나님의 언약적 성실성을 경험하게 해달라는 요청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선하심’을 누리면 어떤 결과가 오게 됩니까? 5절의 나머지 부분이 이를 설명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나누게 가지게 되며, 주님의 유산을 자랑하게 될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여기서 ‘유산’의 원어 ‘나할라’는 ‘기업’으로 번역되는 단어입니다. 기본적으로 ‘나할라’는 기업으로 나누어 주는 땅을 뜻하며, 더 깊이 들어가면 기업으로 누리게 되는 하나님 나라의 분깃을 의미하게 됩니다. 즉, 4-5절은 하나님의 언약적 성실성에 기초하여 자신들을 회복시켜주실 것을 요청하며, 그 결과로 누리게 될 은총에 대해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정의와 공의를 지켜 언약적 백성의 삶을 살아야 함도 함께 서술합니다.

 

언약 백성의 범죄에 대한 서술(6)

우리의 조상들이 죄를 지었듯이, 우리도 동일하게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죄의 고백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의 첫걸음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숨기지 말고,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의 조상들이 반복적으로 죄를 범했듯이, 우리도 끊임없이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이러한 연약함을 깨닫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를 구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입니다.

 

6우리가 우리의 조상들처럼 범죄하여 사악을 행하며 악을 지었나이다(6)

 

1-5절은 106편의 도입부에 해당하며 다윗 언약 본문에 근거하여 이상적인 언약 백성의 삶을 묘사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이 실제로 역사 속에서 경험한 것은 1-5절의 내용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6절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 앞에 범죄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범죄하여 악을 지었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의와 공의를 행하지 않았고, 그리하여 하나님의 언약 백성다운 삶을 살아내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사실상 “우리가 잘못 행하였기에 다윗 언약이 끝난 것입니까? 하나님의 도우심은 더 이상 없는 것입니까?”라는 질문입니다. 그런데 6절은 매우 독특하게도, 이러한 자신들의 범죄 사실을 조상들의 범죄와 연관시키고 있습니다. 자기들처럼 조상들도 범죄하였다는 것입니다. 106편은 왜 조상들의 범죄 사실을 언급하기 시작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과거를 돌아보면서, 그 과거의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을 통해 현재의 상황에 대한 대답을 찾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홍해에서의 범죄와 하나님의 인자하심(7-12)

성경을 통해 우리의 연약함과 불순종을 되새기게 합니다. 우리는 자주 하나님의 기적과 은혜를 잊고 불신과 두려움에 빠지곤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시고, 적군을 물로 덮어 없애심으로 그분의 신실하심과 강력한 능력을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경험하게 하시고, 그분의 신실하심을 깊이 인식할 때, 비로소 진정한 찬양을 드릴 수 있습니다.

 

7우리의 조상들이 애굽에 있을 때 주의 기이한 일들을 깨닫지 못하며 주의 크신 인자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바다 곧 홍해에서 거역하였나이다

8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그들을 구원하셨으니 그의 큰 권능을 만인이 알게 하려 하심이로다

9이에 홍해를 꾸짖으시니 곧 마르니 그들을 인도하여 바다 건너가기를 마치 광야를 지나감 같게 하사

10그들을 그 미워하는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며 그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셨고

11그들의 대적들은 물로 덮으시매 그들 중에서 하나도 살아 남지 못하였도다

12이에 그들이 그의 말씀을 믿고 그를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도다(7-12)

 

7절부터는 홍해 사건을 묘사해나갑니다. 홍해 사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을 거역하였음을 지적합니다. 7절은 조상들이 애굽에 있을 때 주님의 ‘인자하심’을 기억하지 않았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두 단어가 함께 등장하는데 바로 ‘기억하다’와 ‘인자하심’입니다. 인자하심을 기억해야 하는데, 조상들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럼으로써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리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이런 백성들을 향해서 어떻게 반응하셨습니까? 그에 대한 대답이 8-11절에 길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8절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그들을 구원하셨다고 대답합니다. 9절은 홍해를 꾸짖으셔서 그 바다를 마른 광야를 지나가듯 건너가게 하셨다고 선언합니다. “바다”로 번역된 ‘트홈’은 창세기 1:2에 사용된 단어로, 홍해 사건은 사실상 ‘재창조’의 사건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무질서를 그의 창조의 권능으로 다스리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해내신 것입니다. 10절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원수의 손에서 건지셨음을 말하고, 11절은 그 대적들을 물로 덮으셔서 하나도 살아남지 못했음을 말합니다. 12절은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찬양하는 데까지 이르렀다고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믿지 않음으로 그 신앙이 넘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고, 오히려 창조의 권능으로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자신의 이름, 즉 언약의 이름인 ‘여호와 되심’을 드러내려 하셨기 때문입니다. 1절에서 선 또한 다윗 언약에 나타난 ‘헤세드’는 다윗 언약 때 처음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 이전부터 하나님은 이미 ‘헤세드’의 하나님이셨고, 한 번 계획하시고 약속하신 것은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이루시는 분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위대한 행적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삶의 중요성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찬양하고, 그분이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을 기억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날마다 기억하며, 그분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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