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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096-01)


여호와께 합당한 온 땅의 예배

시편 96편 1-13절


 

세상의 시각으로 볼 때 ‘기독교’ 혹은 교회의 두드러진 특징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포교 활동일 것입니다. ‘포교’라는 말은 어떤 가르침을 널리 퍼뜨린다는 뜻이기 때문에 어떤 종교든 포교 활동한다고 할 수 있지만, 기독교는 특히나 더 적극적인 포교 활동을 합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서 ‘전도지’를 나눠주기도 하고 집집마다 찾아다니기도 합니다. 지하철에서 전도하는 사람들도 과거에는 많이 있었다.

 

  • 세상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권면이 담긴 시입니다. 그는 온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며, 다스리시는 왕이며,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따라서 이 시는 온 땅과 열방이 여호와 앞에서 숭고하고 거룩한 예배를 드리자고 요청합니다.

 

여호와를 송축하며 기이한 행적을 노래(1-3)

 

예배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것이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어떠하심과 하시는 일을 선포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지, 그것을 목적으로 예배가 드려진다는 말은 아닙니다. 즉, 참된 예배는 그 자체로 전도의 역할을 하는 것이지, 전도를 위해 예배를 드리라는 말은 아닙니다.

 

1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할지어다

2여호와께 노래하여 그의 이름을 송축하며 그의 구원을 날마다 전파할지어다

3그의 영광을 백성들 가운데에, 그의 기이한 행적을 만민 가운데에 선포할지어다(1-3)

 

시인의 첫마디는 단순하고 명쾌합니다.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1a) 여섯 개의 명령어가 연속됩니다. 노래하라-노래하라-노래하라-송축하라-전파하라-선포하라. 1-2절에 걸쳐 ‘노래하라’를 세 번 반복합니다. 시인은 ‘온 땅’을 호명하며 여호와께 노래하라고 요청합니다(1b). 온 땅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세계와 백성을 포함합니다. 그러면 불러야 할 ‘새 노래’는 어떤 내용입니까? 첫째, 그의 이름을 송축하고, 그의 구원을 날마다 전파해야 합니다(2). ‘송축하라’(바라쿠)는 기본형 ‘축복하다’(바라크) 동사의 강조 명령형이며 하나님께서 목적어일 때, 찬양과 격찬의 뜻을 갖습니다. 그리고 ‘전파하라’는 기쁜 소식을 가져온다는 뜻으로 구약에서 여호와의 구원 행위에 대한 기쁜 소식들을 전달할 때 사용됩니다(사 40:9; 41:27; 52:7; 60:6; 61:1; 나 1:15). 둘째, 그의 영광을 백성들 가운데, 그의 기이한 행적을 만민 가운데 선포해야 합니다(3). ‘선포하라’는 자세하게 열거하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구원 행위뿐만 아니라 그의 영광을 섬세하게 일일이 말하라는 의미입니다. ‘새 노래’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미래적인 일들에 대한 기대와 감격과 신뢰가 동반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영광’은 그의 현존이 눈으로 보이는 현시의 개념입니다. ‘영광’은 문자적으로 ‘무거움’입니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창조 세계 전체가 여호와의 영광, 곧 그의 무게로 가득 차 있으며(사 6:3), 구원의 역사 속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출 14:4, 17-18; 겔 28:22 참조). 따라서 여호와의 영광은 정적이지 않고 동적이며 그의 임재와 행위와 능력에서 나타납니다.

 

지극히 위대하신 여호와를 찬양(4-6)

우리에게 날마다 새로운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께서는 새 노래로 예배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는 변하지 않는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위대하신 하나님께는 위대한 예배가 합당합니다. 그런 예배가 드려져야 합니다. 이어지는 말씀에서 우리는 무엇이 여호와께 드려지는 예배에 합당한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4여호와는 위대하시니 지극히 찬양할 것이요 모든 신들보다 경외할 것임이여

5만국의 모든 신들은 우상들이지만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

6존귀와 위엄이 그의 앞에 있으며 능력과 아름다움이 그의 성소에 있도다(4-6)

 

시인은 여호와만의 차별성을 서술하며 찬양합니다. 즉, 여호와의 탁월한 타자성과 거룩성입니다.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모든 신들보다 두려워할 것이라 노래합니다(4). 여호와의 탁월한 다름, 곧 타자성을 다른 신들보다 ‘크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강조합니다. 그 압도적인 위엄 때문에 여호와는 경외, 곧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모든 신들은 돌이나 나무로 조각된 ‘우상들’, 즉 ‘무가치한 것’에 불과하지만 그는 하늘을 지으셨습니다(5). 하늘을 지으신 창조자는 들을 수도 볼 수도, 말할 수도 없는 우상들과 다릅니다. 여호와는 듣고 보고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시인은 여호와의 이중적인 고매한 지위를 창조와 연결 짓습니다. 이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으로부터 모든 생명과 새로움이 흘러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존귀와 위엄이 그의 앞에 있고, 능력과 아름다움이 그의 성소에 있습니다(6). 존귀와 위엄은 왕의 품격에 어울리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그 왕권은 능력과 아름다움(또는 찬란함)이며, 그것은 성소로부터 흘러나옵니다. ‘성소’는 하나님의 임재가 드러나는 거룩한 장소입니다. 따라서 여호와의 위대한 왕권을 성전에 계신다는 인격화한 이미지로 드러낸 것입니다.

 

만국의 족속들아,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라(7-9)

하나님께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꼭 헌금을 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무엇이든 하나님께 드릴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와야 한다는 말입니다. 당연히 그것은 ‘준비’되어야 합니다. 귀한 사람에게 주는 선물은 오래 고민하면서 고르고 또 고르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예물도 그런 것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기도하든, 찬양하든, 성경을 읽든, 그냥 되는 대로가 아니라 잘 준비하여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새 것으로 드려야 합니다.

 

7만국의 족속들아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8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예물을 들고 그의 궁정에 들어갈지어다

9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온 땅이여 그 앞에서 떨지어다(7-9)

 

시인은 여호와의 찬란함을 서술한 후에(6), 만국의 ‘족속들’을 호명하면서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리라고 반복합니다(7). 여호와를 찬양하는 것은,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에게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이는 여호와가 온 세계를 만드신 창조자이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하나의 혈연관계처럼 묶인 거대한 ‘가족’이 되어 여호와를 찬양하도록 부름을 받습니다. 모두가 한 가족이 되어 창조된 세계의 왕이신 통치자 여호와께 그의 이름에 어울리는 영광을 돌리고, 예물을 바치고 그의 궁정에 들어가도록 요청받습니다(8).

시인은 ‘드려라-바쳐라-들어가라’ 세 개의 명령형을 사용하여 여호와 앞에 경의를 표하는 일에 가담하도록 격려합니다. 시인은 ‘온 땅’을 호명하면서 숭고함과거룩함으로 여호와께 예배하고, 그분 앞에서 떨라고 요청합니다(9). 시인의 문장을 엄밀하게 표현하면, ‘숭고한 거룩함 안에서’ 여호와께 예배하라, ‘그의 앞에서’, 그의 임재 앞에서(문자적으로, ‘그의 얼굴 앞에 있으니’) 전율하라는 명령형입니다. ‘예배하라’는 몸을 깊이 구부리는 행위와 관련된 것이며, 히브리 시행의 평행 관계가 잘 보여주듯 ‘예배하라’는 몸을 떠는 행위와 같은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은 폭력 앞에 노출된 존재의 공포가 아니라 숭고함과 거룩함으로 인해 온몸에 전율을 느끼는 몸의 진동입니다.

 

만민을 공평하게 심판하시는 여호와(10-13)

당연히 우리가 이런 예배를 드려야 함을 요구합니다. 서두에 말했듯, 시편 96편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온 땅을 대상으로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을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당연히 이런 예배를 드려서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날마다 선포해야 합니다.

 

10모든 나라 가운데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세계가 굳게 서고 흔들리지 않으리라 그가 만민을 공평하게 심판하시리라 할지로다

11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며 바다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외치고

12밭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은 즐거워할지로다 그 때 숲의 모든 나무들이 여호와 앞에서 즐거이 노래하리니

13그가 임하시되 땅을 심판하러 임하실 것임이라 그가 의로 세계를 심판하시며 그의 진실하심으로 백성을 심판하시리로다(10-13)

 

10절은 이 시편의 핵심 문장입니다. 특히 10절에는 세 가지 분명한 확신이 표현되었습니다. 첫째, 시인은 “민족들 가운데서 ‘여호와가 통치하신다’고 말하라!” 요청합니다(10a). 시인이 앞서 3절에서 여호와의 기이한 행적을 일일이 열거하라고 요청한 것처럼, 우리가 말하자고 다시 호소합니다. 이는 여호와가 이스라엘만이아니라 세상을 다스리는 왕의 권세를 가졌음을 선포하자는 부름입니다. 둘째, 시인은 세계가 굳게 서 있고 흔들리지 않으리라(10b) 말합니다. 이는 창조된 세계가 처음 만드신 그대로 요동 없이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태양을 비롯한 온 우주의 질서가 흔들림 없이 하나님 창조의 의지대로 운행될 것을 확신하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셋째, 그가 만민을 공평하게 심판하실 것입니다(10c). 여호와가 공평하게 악인들을 처벌하고 의인들을 보호하시고 도와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표명한 것입니다. ‘심판하다’ 동사는 법적으로 선고를 내리는 법정 용어입니다. 법정 선고를 통해 정의가 실현됩니다. 따라서 여호와는 정의를 실행하는 판결자로서 여호와가 판결의 고유한 권한을 가지셨음을 선포한 것입니다. 여호와의 통치와 흔들림 없는 세계, 그의 심판을 기뻐하는 존재들이 있습니다. 시인은 하늘, 땅, 바다, 거기에 충만한 것, 밭, 밭에 있는 모든 것, 숲의 모든 나무가 즐거워하고, 기뻐 소리치고, 즐거워하고, 즐겁게 노래한다(11-12)고 말합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의 완벽함을 말하려는 것처럼 일곱 가지만 언급했습니다. 인간을 제외한 자연 세계 모두가 여호와의 심판을 기뻐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인간의 생존이 가능하도록 안전한 집으로서 존재하는 지구 곳곳의 동식물들은 인류의 착취와 죄 때문에 파괴되었습니다(참조. 만물의 탄식, 롬 8:18-22). 따라서 여호와의 심판은 자연 세계가 온전하게 회복하는 시간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하늘과 땅, 바다와 바다 생물들, 밭과 그 식물들, 숲의 나무 모두가 기뻐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시인은 자연 세계의 회복과 기쁨이 도래할 것을 노래합니다. 시인은 끝으로 다시 한 번 여호와의 심판을 강조하며 그의 왕권을 확언합니다. 시인은 그들이 여호와 앞에 있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오시기 때문이다. 그가 땅을 심판하기 위해 오시기 때문이다’(13ab). 시인은 ‘왜냐하면 그가 오시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가 오시기 때문이다’를 연속적으로 반복하여 여호와의 오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그가 오시는 이유는 심판을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시인의 마지막 말은 더 의미심장합니다. 그가 의로 세계를 심판하실 것이고, 그의 진실하심으로 백성들을 심판하실 것이라(13cd) 말합니다. 시인은 법정의 판사처럼 ‘의’로, 그의 ‘진실하심’으로 판결하시는 하나님을 서술합니다. 여호와의 판결(심판) 근거는 정의와 신실함, 곧 진실함에 입각한 것입니다. 여호와가 오시는 그날을 누구도 알 수 없지만, 그가 오시는 이유는 땅과 백성을 심판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모두 우주 만물의 통치자이며 판결자의 심판을 말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시인은 강력히 호소합니다. ‘모든 나라 가운데 말하라!’(10; 3 참조)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예배가 그냥 우리끼리 좋아서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하나님을 선포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예배가 전도이고 선교입니다.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로 예배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을 온 땅에 선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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