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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19-02)


이사야를 통해 응답 받는 히스기야

열왕기하 19장 20-37절


죄 중에 가장 큰 죄가 있다면 교만일 것입니다. 교만은 하나님의 자리에 앉고자 하는 원죄의 중심핵입니다. C.S. 루이스의 표현에 의하면, 교만은 동물적 본성을 통해 오는 것이 아니라 지옥에서 곧장 나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언제 주로 교만해집니까?

 

  • 앗수르의 침입으로 위기에 처한 히스기야는 여호와 앞에 기도하며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하나님의 예언을 받았습니다. 이사야의 예언대로 앗수르 군대는 돌아가는 듯했습니다. 그러다가 유다 땅에 머물며 여전히 히스기야를 위협하자 히스기야는 좌절합니다. 그리고 다시 여호와 앞에 기도합니다. 여호와의 명예를 위해 유다를 구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이사야는 다시 히스기야의 기도에 대한 여호와의 응답을 전달합니다.

 

앗수르 왕에 대한 심판(20-28)

창조주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고만장합니다. 자신의 힘만 믿고 화려한 전과를 믿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이며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일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교만은 자신의 된 것이 하나님의 역사임을 인정하지 않을 때 찾아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앗수르 왕에 대해 심판하십니다.

 

20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보내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앗수르 왕 산헤립 때문에 내게 기도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 하셨나이다 21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에게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처녀 딸 시온이 너를 멸시하며 너를 비웃었으며 딸 예루살렘이 너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었느니라 22네가 누구를 꾸짖었으며 비방하였느냐 누구를 향하여 소리를 높였으며 눈을 높이 떴느냐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게 그리하였도다 23네가 사자들을 통하여 주를 비방하여 이르기를 내가 많은 병거를 거느리고 여러 산 꼭대기에 올라가며 레바논 깊은 곳에 이르러 높은 백향목과 아름다운 잣나무를 베고 내가 그 가장 먼 곳에 들어가며 그의 동산의 무성한 수풀에 이르리라 24내가 땅을 파서 이방의 물을 마셨고 나의 발바닥으로 애굽의 모든 강들을 말렸노라 하였도다 25네가 듣지 못하였느냐 이 일은 내가 태초부터 행하였고 옛날부터 정한 바라 이제 내가 이루어 너로 견고한 성들을 멸하여 무너진 돌무더기가 되게 함이니라 26그러므로 거기에 거주하는 백성의 힘이 약하여 두려워하며 놀랐나니 그들은 들의 채소와 푸른 풀과 지붕의 잡초와 자라기 전에 시든 곡초 같이 되었느니라 27네 거처와 네 출입과 네가 내게 향한 분노를 내가 다 아노니 28네가 내게 향한 분노와 네 교만한 말이 내 귀에 들렸도다 그러므로 내가 갈고리를 네 코에 꿰고 재갈을 네 입에 물려 너를 오던 길로 끌어 돌이키리라 하셨나이다(20-28)

 

히스기야는 앗수르 왕의 협박 편지를 가지고 기도하였습니다. 이제 하나님께 드린 기도에 대한 응답이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 히스기야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을 들려주십니다. 첫째는 앗수르 왕에 대한 심판입니다(19:20-28). 앗수르 왕에 대한 심판은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20-24절은 앗수르 왕에 대한 고발이고, 25-28절은 앗수르 왕에 대한 심판입니다.

 

⑴ 앗수르 왕에 대한 고발(20-24)

 

하나님께서는 시온의 처녀 딸이 앗수르 왕을 멸시하고 비웃을 것이며, 예루살렘의 딸이 머리를 흔들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 문장은 평행법으로 앗수르 왕이 여자들에게 비웃음당하고 조롱당하는 치욕을 겪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고대 근동에서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면 여성들이 나와 승리를 축하하며 노래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 장면은 그 반대로 전쟁에 패한 후에 적의 여성들에게 조롱당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머리를 흔든다’는 것은 그 대상을 경멸하고 조롱한다는 의미입니다. 여호와를 조롱하고 비방한 앗수르 왕이 제일 먼저 받을 벌이 경멸과 조롱입니다.

22절에서 앗수르 왕에 대한 하나님의 불쾌감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단 하나님을 비방하고 꾸짖은 앗수르 왕의 오만함에 대해 꾸짖으신 뒤, 그 오만함의 대상이 바로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인 자신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소리를 높이다’, ‘눈을 높이 뜨다’는 교만한 자의 행동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로 표현하는 것은 가장 이사야적인 표현입니다.

23-24절은 앗수르 왕의 말을 직접 화법으로 인용하며 앗수르 왕의 오만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앗수르 왕이 많은 전차를 가지고 높은 산과 깊은 골짜기를 정복하고, 그곳을 전부 파괴하고 수풀만 무성한 숲의 가장 깊은 곳까지 갔다는 표현은 앗수르 왕의 군대가 땅의 모든 곳을 정복했다고 자랑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24절에서는 앗수르 왕이 물을 조종하는 것으로 묘사합니다. ‘내가 땅을 파서 이방의 물을 마셨고’는 많은 지역을 정복하여 그곳을 새롭게 건설할 때, 자신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물을 얻을 수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나의 발바닥으로 애굽의 모든 강들을 말렸다’는 것은 24절 상반절과 대조되는 것으로 자신은 수량이 풍부하기로 유명한 애굽의 물도 말려버릴 수 있다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발바닥으로 말린다는 것은 자신의 군대가 그 지역을 점령하면 완전히 초토화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앗수르 왕의 모습은 홍해를 가르시고, 비구름을 몰고 오시며, 땅에 풍요의 비를 내리시는 하나님의 모습과 유사하게 그리면서, 자신에게 신적인 능력이 있다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⑵ 앗수르 왕에 대한 심판(25-28)

 

이런 앗수르 왕의 오만한 말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 25절부터 등장으로 시작하는 것은 남들은 다 알고 있는데, 너만 모른다는 뉘앙스의 조롱입니다. 그러면서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행하시고 옛날부터 정하신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앗수르 왕이 아무도 침략할 수 없었던 강한 성읍들도 정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정복당한 백성들은 두렵고 부끄러워 마치 시든 풀처럼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정복당한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 앞에선 시든 풀 같은 연약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세상을 다스리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인간은 하나님의 계획을 실행하는 존재라는 것을 분명히 나타냅니다. 온 세상의 진정한 왕은 세상을 정복했다고 자랑하는 앗수르 왕이 아니라, 그가 세상을 정복하게끔 계획하시고 실행하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27절에서 다시 하나님은 앗수르 왕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그가 하나님께 분노를 품고 있다는 것도 알고 계십니다. 앗수르 왕이 말한 분노와 교만한 말을 하나님께서 다 듣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다 듣고 계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이방신들처럼 돌이나 나무로 만들어진 우상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알고 계신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모르는 앗수르 왕의 한계와 어리석음과 대조됩니다. 앗수르 왕의 악한 말을 들으신 하나님의 판결은 갈고리를 네 코에 꿰고 재갈을 입에 물려 오던 길로 돌아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앗수르가 관행적으로 포로를 다루던 모습으로 자신들이 포로에게 행한 것처럼, 이제 앗수르 왕이 이런 치욕을 당할 것이란 뜻입니다. 앗수르로 돌아갈 것이라는 말은 산헤립이 더 이상 유다를 공격하지 못하고 퇴각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오만하고 악한 산헤립에게 벌을 내리심으로써 산헤립의 정복은 실패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유다를 지키실 것을 약속하심(29-34)

사람들에게 의해 고난을 당한 사람들은 비록 상처는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회복의 시간은 그리 오래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 백성을 살리시려는 하나님의 열심 때문입니다. 교만은 자신의 열심히 하나님의 열심을 앞서려고 할 때 어김없이 찾아옵니다.

 

29또 네게 보일 징조가 이러하니 너희가 금년에는 스스로 자라난 것을 먹고 내년에는 그것에서 난 것을 먹되 제삼년에는 심고 거두며 포도원을 심고 그 열매를 먹으리라 30유다 족속 중에서 피하고 남은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를 내리고 위로 열매를 맺을지라 31남은 자는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피하는 자는 시온 산에서부터 나오리니 여호와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32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을 가리켜 이르시기를 그가 이 성에 이르지 못하며 이리로 화살을 쏘지 못하며 방패를 성을 향하여 세우지 못하며 치려고 토성을 쌓지도 못하고 33오던 길로 돌아가고 이 성에 이르지 못하리라 하셨으니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시라 34내가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였더라(29-34)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부르짖음에 사랑과 긍휼로 반응하시고, 악인들의 교만에 대해서는 심판으로 응징하실 것입니다. 이 확신을 품고 자신의 문제를 하나님께 구하시면, 자신보다 더 잘 알고 계시는 줄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⑴ 곡식을 풍성하게 허락하심(29-31)

 

두 번째 하나님의 약속은 유다의 초목들의 회복을 징조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앗수르에 의해 파괴된 유다의 초목과 과실들이 3년에 걸쳐서 회복될 것을 말씀하시는데, 올해와 내년은 씨를 뿌리지 않았는데도 그냥 자란 곡물들을 먹을 것이고, 3년째가 돼서야 비로소 농사지은 것을 먹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30절에서는 농사 이미지를 통해 유다의 남은 자들도 회복될 것을 약속하십니다. 남은 자들은 앗수르의 침략에서 살아남은 사람들로 이 들은 예루살렘에서 나오고, 시온으로 도망간 사람들도 다시 유다로 돌아올 것을 약속하십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에 대한 보증으로 하나님께선 자신의 이름을 거신다 본문에서 하나님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리라고 한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자신이 직접 이 모든 일을 성취하실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의지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⑵ 앗수르가 못 쳐들어오도록 약속(32-34)

 

세 번째 약속은 앗수르 왕이 예루살렘으로 쳐들어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32절에서 이 성에 오지 못하고, 화살도 쏘지 못하고, 방패도 성을 향하여 세우지 못하고, 토성을 쌓지도 못한다고 하는데, 여기 언급된 것은 고대 사회에서 성을 점령하기 위해 하는 모든 전쟁 방식을 열거한 것입니다. 33절은 한걸음 더 나아가 공격은 고사하고 성에 오지도 못하고 되돌아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지막에 이 모든 것이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확인시켜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을 보호하시는 이유는 여호와 자신과 여호와의 총 다윗 때문이다, 하나님과 다윗이 세운 언약 때문에 예루살렘으로 대표되는 유다를 보호하시고 구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유다의 악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자신이 세우신 언약에 충실하신 분이라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우리 신앙의 기반이 우리 마음이나 우리 자신의 의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합니다.

 

하나님 예언의 성취(35-37)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오만한 인생이 추락하는 것은 하루아침에도 가능합니다. 그리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심으로 스스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이 모든 일을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일해 가신다고 소개합니다.

 

35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36앗수르 왕 산헤립이 떠나 돌아가서 니느웨에 거주하더니 37그가 그의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경배할 때에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쳐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그들이 도망하매 그 아들 에살핫돈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35-37)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을 지키십니다.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앗수르 군대를 치기 위해 나왔고, 여호와의 전쟁으로 십팔만 오천 명이 하룻밤 사이에 죽었습니다. 화자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설명하지 않는데, 이것이 구약성경이 여호와의 전쟁을 서술하는 방식입나이다 이렇게 하룻밤 사이에 자신이 자랑하던 군대를 일은 산헤립은 앗수르로 돌아갔고, 그곳에서 아들들에게 살해당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들이 성취되면서 유다에 대한 앗수르의 위협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히스기야는 기도로 앗수르의 무서운 군대를 물리치고 유다와 예루살렘을 지켰습니다.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롯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시고 이루십니다. 나를 위한 일이기 이전에 하나님 당신의 이름과 영광을 위한 일입니다. 구원이 나의, 나에 의한, 나를 위한 일인 줄 착각할 때, 교만은 나를 패망의 길로 이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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