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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18-01)

 


히스기야의 등극과 평가

열왕기하 18장 1-16절


 

무시로 성령 안에서 깨어 하나님을 의식하며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속도와 영상의 시대에 자신의 내면을 살피면서 사는 것은 신앙 유지하고 성장하는 열쇠입니다. 경건의 연습은 일상과 일터에서 지속적으로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여정에 제대로 지름길은 없습니다.

 

  • 열왕기 기자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단순히 강대국 앗수르의 침략에 의한 멸망으로 보지 않고, 여호와와 언약을 맺은 여호와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우상을 숭배하고, 여호와의 율법을 업신여겼기 때문에 여호와의 징벌을 받아 망했다고 설명합니다. 이스라엘의 흥망성쇠는 주변 강대국의 손에 갈린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손에 달렸다는 신명기적 관점을 드러낸 것입니다.

 

히스기야의 등극과 평가(1-4)

 

하나님의 진실한 백성은 얄팍한 피상성을 거부합니다. 중심으로부터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갈 때 그 사람의 가치나 나타납니다. 질기고 질긴 우상숭배를 과감하게 단절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히스기야는 전통과 관행과 풍습의 이름으로 자행되던 악을 조금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1이스라엘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제삼년에 유다 왕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가 왕이 되니 2그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구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비요 스가리야의 딸이더라 3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4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1-4)

 

히스기야는 이스라엘 왕 호세아 3년에 유다의 왕으로 등극합니다. 그가 왕이 되었을 때의 나이는 25세로 예루살렘에서 29년간 다스렸고,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비요 스가리야의 딸이었습니다. 히스기야가 왕이 되던 시기는 이스라엘이 전체적으로 앗수르의 지배를 받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는 여호와 앞에 악을 행하고 이스라엘의 길로 행하며, 우상숭배를 열심히 하였던 자신의 아버지 아하스와는 달리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는데,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처럼 정직하게 행했다는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히스기야 왕에 대한 매우 긍정적인 평가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결국 멸망하게 된 이스라엘의 왕들과 대조가 됩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한 것이 동 시대에 이스라엘이 망하는 사이에 유다는 망하지 않은 이유라고 열왕기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한 구체적인 일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4). 첫째로 여러 산당을 제거하였습니다. 그동안 많은 왕들이 우상들은 제거하였지만, 산당을 제거하지 않아 백성들이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게 만듦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히스기야는 가장 문제가 되었던 산당을 제거했다는 말이 제일 먼저 나옵니다. 둘째, 주상을 깨뜨리고 아세라 목상을 잘라내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섬기던 바알과 아세라와 같은 우상을 제거했다는 것입니다. 아세라의 경우는 매우 끈질기게 이스라엘 초기부터 이스라엘에게 신앙의 대상이 되어왔습니다. 셋째, 모세가 만든 놋뱀을 부수었습니다. 모세가 만든 놋뱀은 민수기 21:6-9에 등장하는 것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뱀에 물려 죽게 되었을 때 놋뱀을 보면 치료되었습니다. 이후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놋뱀을 병을 치료하는 능력이 있는 우상으로 섬기며 분향하였던 것 같습니다. 놋뱀에 대한 이야기는 민수기 이후 여기서 처음 언급되지만, ‘이때까지’란 말 속에서 놋뱀을 섬기는 것이 매우 오래된 전승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불뱀에 물려 죽게 되었을 때에 놋뱀을 보면 산다고 하는 것은 놋뱀 자체에 어떤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놋뱀을 보는 행위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신앙 행위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게 하는 역할이 끝나면 놋뱀은 없어져야 했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눈으로 보여준 놋뱀을 부수지 못하고 지금까지 간직하며 하나님이 아닌 놋뱀을 섬기는 지경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자꾸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어떤 물건이나 제도나 의식 등 눈에 보이는 것에 의존하는 것으로 대체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대한 신앙은 보이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의지한 히스기야(5-8)

여호와를 의지하고 그분과 연합하여 그분을 떠나지 않으면 여호와께서도 항상 동행하여 주십니다. 그 결과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고,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대담하게 대할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담대하게 앗수르 왕을 섬기지 않기로 결단할 수 있었습니다. 항상 골칫덩이였던 블레셋마저도 적수가 되지 못했습니다.

 

5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6곧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7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매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저가 앗수르 왕을 배반하고 섬기지 아니하였고 8그가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가사와 그 사방에 이르고 망대에서부터 견고한 성까지 이르렀더라(5-8)

 

이 단락은 구체적으로 히스기야가 어떻게 하나님을 믿었는지 설명합니다. 히스기야는 우상을 섬기고 놋뱀을 의지하던 사람들과 달리 여호와를 믿었습니다. 우리말에서 ‘의지하다’는 ‘믿다’라는 뜻으로 여호와 신앙에 바르게 서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6절은 ‘들러붙다’와 ‘떠나지 않다’라는 구문을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히스기야가 여호와를 믿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6절 하반절에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다는 신명기적 강조점으로 그의 믿음은 말씀을 지키는 행함이 동반된 믿음이었음을 나타냅니다.

7-8절은 하나님을 믿은 결과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여호와께서 그와 항상 함께하셨고 그가 전쟁하는 모든 곳에서 그는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함께하시면 전쟁에서 이길 것이라는 신명기 20:1-4 말씀이 성취되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렇게 여호와를 의지했기 때문에 히스기야는 이스라엘 왕과는 달리 앗수르를 섬기지 않았고, 오히려 블레셋과 싸워 이기기까지 하였습니다. 히스기야는 사르곤 2세가 전사하고 산헤립이 왕권을 강화하는 시기, 즉 앗수르가 혼란기에 있을 때 앗수르에게 독립을 선포하고 블레셋과 전쟁하여 승리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모든 사건에 대해 열왕기 저자는 여호와께서 히스기야와 함께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사마리아의 멸망(9-12)

하나님의 백성들이 언액을 멸시하고 율법을 따르지 않으면 형통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의 나라는 설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말씀 대접 받을 때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가 되고, 성도는 성도가될 수 있습니다.

 

9히스기야 왕 제사년 곧 이스라엘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제칠년에 앗수르의 왕 살만에셀이 사마리아로 올라와서 에워쌌더라 10삼 년 후에 그 성읍이 함락되니 곧 히스기야 왕의 제육년이요 이스라엘 왕 호세아의 제구년에 사마리아가 함락되매 11앗수르 왕이 이스라엘을 사로잡아 앗수르에 이르러 고산 강 가에 있는 할라와 하볼과 메대 사람의 여러 성읍에 두었으니 12이는 그들이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그의 언약과 여호와의 종 모세가 명령한 모든 것을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더라(9-12)

 

히스기야가 여호와와 함께하며 형통했던 것과 대조적으로 이 단락에서는 사마리아의 멸망을 다시 한 번 언급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 4년 곧 이스라엘 왕 호세아 7년에 앗수르의 왕 살만에 셀이 사마리아로 올라와서 포위하였고, 3년 동안 버티다 결국 호세아 9년 히스기야 6년에 사마리아가 함락됩니다. 10절은 문장 앞뒤로 ‘함락하다’는 사마리아가 함락된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1절은 앗수르 왕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고산 강가에 있는 할라와 하볼과 메대 사람의 여러 성읍에 포로로 끌고 갔다는 것을 보고합니다. 12절은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함락당한 이유를 설명하는데, 그것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않았고 언약과 모세가 명령한 것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 멸망한 사마리아는 현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전쟁에 이긴 히스기야와 대조됩니다. 이것은 열왕기 저자의 관점이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면 형통하고 순종하지 않으면 멸망한다고 말하는 신명 기적 관점을 따르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앗수르에게 조공을 바친 히스기야(13-16)

사람들은 항상 완전할 수 없습니다. 현실 속에서 마음이 흔들이기도 합니다. 특히 어려운 일을 만나면 그 사람의 본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히스기야는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점령당하자 하나님을 신뢰하던 마음이 흔들렸고 가장 현실적인 대안을 찾기 시작합니다. 그의 행동은 하나님을 무기력하고 초라한 분이 되도록 만들어 버렸습니다.

 

13히스기야 왕 제십사년에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들을 쳐서 점령하매 14유다의 왕 히스기야가 라기스로 사람을 보내어 앗수르 왕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나를 떠나 돌아가소서 왕이 내게 지우시는 것을 내가 당하리이다 하였더니 앗수르 왕이 곧 은 삼백 달란트와 금 삼십 달란트를 정하여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내게 한지라 15히스기야가 이에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을 다 주었고 16또 그 때에 유다 왕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성전 문의 금과 자기가 모든 기둥에 입힌 금을 벗겨 모두 앗수르 왕에게 주었더라(13-16)

 

이야기는 다시 히스기야로 돌아옵니다. 히스기야 14년에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유다에 쳐들어와 유다의 견고한 성읍들을 쳐서 점령합니다. 산헤립이 쳐들어온 이유는 이전에 빼앗긴 블레셋에 대한 통제권을 다시 얻고, 유다의 요새화된 성읍들을 파괴함으로써 블레셋 평야의 동쪽에 가해지는 유다의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서 있습니다. 산헤립의 기록에 따르면, 성벽으로 둘러싸인 성채들과 수많은 마을들을 비롯해서 유다의 요새화된 성읍 46개를 점령했다고 하는데, 점령된 많은 성읍들은 해안 평야에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산헤립의 공격이 강해지자 히스기야는 앗수르 왕 산헤립에게 항복하고 그에게 조공을 바치겠다고 약속합니다.여기서 ‘죄를 지었다’는 표현은 왕의 말을 어겼다는, 즉 항복한다는 의미입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은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은 300달란트와 금 30달란트를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히스기야는 이 돈을 충당하기 위해 다른 왕들처럼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의 은을 주었다. 하지만 이것으론 모자라 성전 문의 금과 기둥에 입힌 금까지 모두 벗겨서 앗수르 왕에게 주었습니다. 이것은 산헤립이 이끄는 앗수르 군대가 매우 강성하여 히스기야가 갑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상태가 계속되면 유다도 이스라엘과 같은 운명이 될 수밖에 없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독자들은 하나님을 잘 믿는 히스기야도 결국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아 멸망당한 사마리아와 같은 운명이 될지 여부가 궁금해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강대국 앗수르의 손에서 히스기야를 구원하실지, 아니면 유다를 망하게 하실지 궁금한 상태로 다음 부분을 기대하도록 남겨두고 있는 것입니다.

 

종종 위기가 닥치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에 인간적인 방법으로 위기에서 벗어나고 하는 모습을 봅니다. 이 모습은 히스기야의 모습으로 사실 오늘 우리들의 모습에서도 위기와 고난의 때에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어떤 분으로 다가옵니까! 어떤 상황 속에서도 유일한 힘이시고 능력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신뢰해야 합니다.


배움은 회심을 낳고 회심은 배움을 통해 일어납니다. 배움은 사실에 대한 얄팍한 읊조림이 아니라 죽음을 거부하려는 생명을 향한 투신과 몰입입니다. 배움이 멈춘 곳에는 두 마음으로 충만한 영적 간음이 계속됩니다. 회심은 근본적인 사상의 전환이고 욕망의 재조정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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