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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19-01)


어려움 속에 이사야를 찾은 히스기야

열왕기하 19장 1-19절


‘하나님의 전능을 마주하는 일이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면 우리의 무능을 마주하는 일도 그에 못지않게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앗수르의 위협 앞에 철저히 자신과 그의 나라의 무능함을 깨닫습니다. 진정한 기도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 랍사게의 예루살렘 공격 사건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랍사게의 말은 예루살렘의 백성들을 위협하여 항복하게 만들기 위한 수사학적 연설로 시작되었지만, 이제는 여호와께서 개입하지 않으시면 여호와가 이방의 우상들과 다를 바 없는 무능한 신이 되고 마는 신학적인 문제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히스기야는 이 문제를 들고 여호와 앞에 나가 여호와의 도움을 구합니다.

 

히스기야가 이사야를 찾음(1-5)

참담한 치욕을 당해도 입을 다물어야 하는 약소국의 비애입니다. 그러나 출산할 기력이 없는 여인의 기도만큼 간절한 기도는 없을 것입니다. 힘이 남아서가 아니라 힘이 없기에 기도합니다. 기도하지 않아도 될 만큼 유능한 사람은 없습니다.

 

1히스기야 왕이 듣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두르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2왕궁의 책임자인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제사장 중 장로들에게 굵은 베를 둘려서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에게로 보내매 3그들이 이사야에게 이르되 히스기야의 말씀이 오늘은 환난과 징벌과 모욕의 날이라 아이를 낳을 때가 되었으나 해산할 힘이 없도다 4랍사게가 그의 주 앗수르 왕의 보냄을 받고 와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비방하였으니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그의 말을 들으셨을지라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들으신 말 때문에 꾸짖으실 듯하니 당신은 이 남아 있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소서 하더이다 하니라 5이와 같이 히스기야 왕의 신복이 이사야에게 나아가니(1-5)

 

신하들에게 랍사게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은 히스기야는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가린 후 여호와의 전에 들어갑니다.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두른 것은 커다란 재앙이 임했다는 상징으로 히스기야는 재앙이 임하자 여호와를 의지하기 위해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갑니다. 현재의 상황을 여호와께 알립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신탁을 받기 위해 랍사게의 말을 들은 엘리야김과 셉나와 제사장 중 연장자들에게 회개를 상징하는 굵은 베로 몸을 가리게 한 후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에게 보냅니다.

이사야에게 간 이들은 오늘은 환란과 징벌과 모욕의 날인데, 이는 아기들이 출구까지 왔는데 낳을 힘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 히스기야의 말을 그대로 전달합니다. 아기가 자궁 입구까지 나왔으나 출산할 힘이 없다는 속담은 재앙과 연결된 것으로, 아기를 출산할 때 산모가 제대로 힘을 주지 않으면 아기와 산모가 모두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는 이사야에게 특별히 랍사게가 하나님을 비방한 것에 대해 고발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허무한 우상과 달리 하나님께서는 실제로 존재하는 분이며, 그렇기 때문에 적들의 비방하는 말을 들으시고 옳고 그름을 판결하시고 심판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요청한 것은 하나님께서 함부로 말한 앗수르를 심판해주실 것과 랍사게와 앗수르 왕의 위협에 떨고 있는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자들을 위해 기도해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남아 있는 자’는 앗수르의 침략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는 예루살렘 사람을 의미 합니다. 이렇게 히스기야의 신하들이 여호와의 도움을 구하기 위해 선지 자 이사야를 찾아갑니다. 그래도 어려운 문제에 부딪혔을 때 여호와를 찾고 그의 말씀을 구하는 것은, 아직 히스기야와 예루살렘에 희망이 있음을 암시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만 빼고 세상의 논리들은 맞습니다. 그때 성도들이 많은 말로 반박하려고 해도 이길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개입이나 전제하지 않는 논쟁에 공연히 기어든 것은 지혜로운 일이 아닐 때가 많습니다. 그때 성도들에게 필요한 것은 조용히 하나님의 임재를 기다리는 것밖에 없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전한 이사야(6-7)

구약 시대는 나라의 무능이 그들이 믿는 신에 대한 무능으로 생각했습니다. 정복한 나라는 지배한 나라의 신을 무시하고 깔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의지할 여러 대상 중 더 나은 대상이 아니라 유일한 대상입니다. 유일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따라갈 때 놀라운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6이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 주에게 이렇게 말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앗수르 왕의 신복에게 들은 바 나를 모욕하는 말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7내가 한 영을 그의 속에 두어 그로 소문을 듣고 그의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고 또 그의 본국에서 그에게 칼에 죽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더라(6-7)

 

히스기야가 전한 말을 들은 이사야는 그들에게 앗수르의 신하들이 한 여호와를 모욕하는 말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랍사게의 말을 자신에 대한 모욕으로 여기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앗수르 왕의 신복에게 들은 바 나를 모욕하는 말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은 그들의 말에 신경 쓰지 말라는 말입니다. 사실이 아닌 말이 성취된 듯 보이는 것이 세상의 역사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세상의 참 주인이시기에 그런 말이 역사가 되지 않도록 결코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나라가 그런 헛된 말에 의해서 무너지도록 그냥 두고 보실 분이 아닙니다. 그 대신 하나님께서는 다시 약속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앗수르 왕보다 약하다고 하는 말은 여호와에 대한 지식 없이 전략적으로 내뱉은 말로 그런 말이 하나님께 어떤 영향력을 미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대신 여호와를 조롱한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보응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 속에 거짓 소문을 퍼뜨려 본국으로 돌아가게 할 것이며, 또한 앗수르 왕은 본국에서 칼에 죽게 할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조롱한 자를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라는 약속하셨습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앗수르 왕은 풍문에 속아서 죽게 될 것입니다. 헛된 말로 함부로 하나님께 지껄인 자를 하나님께서는 헛된 말이 비수가 되어 돌아오게 하실 것이란 뜻입니다. 이사야를 통해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은 랍사게의 말에 흔들렸던 히스기야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주고 안심하게 해 주었습니다. 여기서 ‘그 속에 두시겠다’는 영은 열왕기상 22:22에서도 나오는데, 하나님의 명령으로 ‘거짓말을 하는 영’입니다. ‘거짓말하는 영’이 만든 소문은 거짓 소문들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헛되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조롱하던 인간들이 오히려 아무것도 아닌 거짓말에 놀아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이 얼마나 연약하고 어리석은 존재인지를 드러내시려는 것입니다.

‘랍사게가 돌아가다가’(8)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앗수르 진영에 이상한 소문이 퍼졌고, 그로 인해 갑자기 예루살렘에 대한 포위를 풀고 앗수르로 돌아가기 위해 길을 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말은 물거품처럼 없어졌지만, 다른 이들이 지어내는 헛된 말에는 사로 잡혀 죽게 될 것입니다. 거짓말을 잘 지어낸 자들이 거짓말에 잘 속는 것과 같은 위치였습니다. 이로써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첫 번째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예가 높아졌을 때 우리들이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 우리에게도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예가 진정하게 회복 될 때, 교회도 부흥을 이룰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명예를 위해 살 때,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명예는 땅에 떨어집니다. 이것은 곧 교회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성도들이 자신을 철저히 부인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 때, 교회도 살고, 우리도 살 것입니다. 이 단순한 진리가 침묵을 강요하고 있는 시대가 이 시대입니다.

 

앗수르 왕이 다시 협박함(8-13)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세상의 위협과 회유, 그리고 핍박까지도 도리어 자신들을 죽이는 ‘풍문’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만 믿고 위협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안개처럼 여기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안에 있는 성도들은 세상을 향해 더욱 담대해야 합니다.

 

8랍사게가 돌아가다가 앗수르 왕이 이미 라기스에서 떠났다 함을 듣고 립나로 가서 앗수르 왕을 만났으니 왕이 거기서 립나와 싸우는 중이더라 9앗수르 왕은 구스 왕 디르하가가 당신과 싸우고자 나왔다 함을 듣고 다시 히스기야에게 사자를 보내며 이르되 10너희는 유다의 왕 히스기야에게 이같이 말하여 이르기를 네가 믿는 네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앗수르 왕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겠다 하는 말에 속지 말라 11앗수르의 여러 왕이 여러 나라에 행한 바 진멸한 일을 네가 들었나니 네가 어찌 구원을 얻겠느냐 12내 조상들이 멸하신 여러 민족 곧 고산과 하란과 레셉과 들라살에 있는 에덴 족속을 그 나라들의 신들이 건졌느냐 13하맛 왕과 아르밧 왕과 스발와임 성의 왕과 헤나와 아와의 왕들이 다 어디 있느냐 하라 하니라(8-13)

 

랍사게는 고향으로 돌아가다가 앗수르 왕이 라기스를 정복하고 립나로 갔다는 소식을 듣고 앗수르 왕의 군대와 합류하기 위해 립나로 방향을 돌립니다. 그의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예언이 성취되는 듯하다가 중단되었습니다. 산헤립은 랍사게의 군대와 합류하여 립나를 함락하고 더 큰 규모의 군대로 예루살렘을 다시 공격하려고 랍사게를 불러들인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의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은 성취되지 못하였고, 오히려 다시 위협을 받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앗수르 왕은 자신과 싸우기 해서 구스 왕 디르하가가 온다는 말을 듣고 히스기야를 다시 위협하기 시작합니다. 구스 왕 디르하가는 애굽의 바로로 앗수르와는 적대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앗수르 왕 입장에서 구스 왕의 등장은 예루살렘 정복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다의 입장에서 보면, 때마침 등장한 우군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유다와 애굽이 동맹 관계에 있지는 않지만, 앗수르라는 공동의 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앗수르 왕은 이런 곤란한 상황 속에서 다시 히스기야에게 사자를 보내어 앞서 랍사게를 통해서 했던 협박을 다시 하고 있습니다. 그 협박한 편지의 내용은 두 가지로, 첫째는 하나님께서 앗수르 왕의 손에 예루살렘을 넘기지 않을 것이란 말에 속지 말라며, 둘째는 앗수르의 손에서 스스로 구원을 한 신들이 있었느냐고 협박한 것입니다.

왕이 전쟁하러 왔다고 하여 혹시라도 구스와 유다가 협공하면 앗수르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히스기야가 앗수르와 전쟁하러 나올지 모른다고 예상한 것입니다. 그것을 막기 위한 앗수르 왕의 술책입니다. 다만 여기서는 ‘진멸’이란 말을 첨가하여 전쟁하러 나오면 모두 죽이겠다고 강하게 협박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의 기도(14-19)

하나님의 이름이 훼손당하는 것을 보고 영적인 분노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가장 먼저 하나님을 하나님 되심이 알려지길 위해 강력하게 요청하면, 그를 높여주실 것입니다. 기도는 자신의 욕심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제자리에 세우는 것입니다.

 

14히스기야가 사자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보고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서 히스기야가 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 놓고 15그 앞에서 히스기야가 기도하여 이르되 그룹들 위에 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 16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여호와여 눈을 떠서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비방하러 보낸 말을 들으시옵소서 17여호와여 앗수르 여러 왕이 과연 여러 민족과 그들의 땅을 황폐하게 하고 18또 그들의 신들을 불에 던졌사오니 이는 그들이 신이 아니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 곧 나무와 돌 뿐이므로 멸하였나이다 19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천하 만국이 주 여호와가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리이다 하니라(14-19)

 

히스기야는 이런 앗수르 왕의 서신을 받고 다시 기가 막혔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말대로 랍사게가 예루살렘 포위를 풀고 앗수르로 돌아가는 것 같아 안심했는데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산헤립의 군대와 합류하여 더 큰 위협을 가하는 상황을 맞이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이 헛된 것 인가 하는 회의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히스기야는 여호와의 전으로 올라가서 앗수르 왕의 편지를 하나님 보시라고 펴놓고 기도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제일 먼저 여호와만이 유일한 하나님이시라는 것과 세상을 만드신 창조주시라는 것을 고백합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의 근본으로 이런 하나님만이 세상의 권세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시며, 악한 자는 심판하시고, 의로운 주의 백성은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뒤 히스기야는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눈을 뜨고 봐달라고 요청 합니다. 여기서 히스기야가 보고 들어달라고 요청한 것은 산헤립이 하나님을 비방한 말들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들으시고 이들의 무례함과 오만함을 직접 심판해달라는 암시가 들어있습니다. 앗수르 왕이 여러 나라들을 점령하고 그들의 신을 불태워버렸지만, 그들은 신이 아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12절에서 앗수르 왕이 자신이 정복한 나라의 신들이 아무도 구원하지 못했다고 말한 것에 대한 반박입니다. 히스기야의 이런 주장은 이사야 44장의 주장과 유사합니다. 즉, 여호와만이 신이지 우상들은 단지 돌이고 나무일뿐입니다. 오직 여호와만이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기에, 귀로 들을 수 있으로 볼 수 있으며 구원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히스기야는 여호와께 자신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해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렇게 되면 천하 만민이 여호와가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게 될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이런 고백은 이전에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때, 그리고 엘리야가 갈멜 산에서 바알 선지자들과 싸울 때 한 말과 동일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시고, 자신의 이름으로 싸우는 자들을 지키시는 이유는, 여호와가 살아계신 참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명예와 이름과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기도할 때 응답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싸울 때, 하나님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싸울 때,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싸울 때, 하나님께선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가장 무기력한 상황에서 가장 강력한 기도가 나옵니다. 참된 기도는 나의 무능함에 대한 뼈저린 고백과 하나님의 전능함에 대한 찬양이 만나는 지점에서 들려집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이유는 약해서가 아니라 충분히 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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