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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15-01)

 


북이스라엘의 혼란과 아사랴 

열왕기하 15장 1-22절


권력이 사유화될 때 그 피해는 고스란히 백성의 몫이 됩니다. 이 무서운 파괴력 때문에 우리는 권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둠의 세력들은 이런 영적 비밀 때문에 권력에 집착하는 자를 우는 사자와 같이 찾고 있습니다. 교회는 영적인 분별력뿐만 아니라 역사적 정치적 분별력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 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 때 최고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하지만 열왕기 저자는 그를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왕이라고 평가하였습니다. 그도 역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로보암 2세 시대에 유다에서는 아사랴(웃시야)가 왕이 되었고, 그거 52년간 왕으로 통치합니다. 이 시기가 이스라엘과 유다 양쪽 왕국 모두 평화와 번역의 시대였습니다.

 

유다 왕 아사랴의 통치(1-7)

모든 권력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은 부패하기 쉽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할 수 있으므로 국가 권력에 대한 적절한 규제와 제한은 필수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권력이 남용되면 국민들이 피해를 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오는 큰 악행입니다.

 

1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제이십칠년에 유다 왕 아마샤의 아들 아사랴가 왕이 되니 2그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십육 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이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골리야라 예루살렘 사람이더라 3아사랴가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4오직 산당은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그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고 5여호와께서 왕을 치셨으므로 그가 죽는 날까지 나병환자가 되어 별궁에 거하고 왕자 요담이 왕궁을 다스리며 그 땅의 백성을 치리하였더라 6아사랴의 남은 사적과 행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7아사랴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다윗 성에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장사되고 그의 아들 요담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1-7)

 

본문은 더욱 급박하게 요동치는 남북 이스라엘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소용돌이치는 두 나라 모두 더 깊은 죄악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점차 멸망의 길로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나라의 멸망의 길을 끊을 자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문화가 중요합니다. 악이 만연하면 처음에는 괴롭지만 나중에는 내성이 생겨서 견딜 만해집니다. 자신도 생존하기 위해 자신도 악을 범하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자신도 악한 문화의 일부가 되어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심판이 닥치면 옴짝달싹도 못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여로보암의 통치 아래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을 때, 남 유다는 아사랴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16세에 왕으로 등극합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52년을 다스리는데,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왕위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사랴의 통치 기간이 긴 것은 아버지와 아들과 공동으로 통치한 기간이 포함되었기 때문으로 해석됩니다. 열왕기 왕들의 연대기는 정확하게 밝히기 어렵기 때문에 학자들마다 견해가 다릅니다. 아사랴의 평가는 아마샤와 동일한데,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신실하지는 못했습니다. 얼마든지 할 수 있었는데도, 그의 아버지처럼 산당을 제거하지 않아 백성들은 지도자의 묵인 아래 그 산당에서 분향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왕은 하나님만 믿기에는 그의 믿음이 적었고, 백성들은 혼합주의입니다.

 

아사랴의 가장 기억할 만한 사건은 여호와께서 그를 치셔서 나병에 걸리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된 원인을 열왕기에서는 생략하지만, 역대기에선 그가 마음이 교만해져 성전에 들어가 직접 향단에 분향하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역대기에 따르면 아사랴가 암몬을 쳐서 조공을 바치게 하였고 나라의 영토를 넓혔으며, 예루살렘 성에 망대를 세우고 견고하게 하는 등 많은 업적을 세웠지만, 바로 그런 번성과 성취 때문에 그가 교만해졌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열왕기는 업적이나 자세한 사항보다는 그가 하나님 보시기에 성했는지 악했는지에 대한 평가 자체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놀랍게도 52년 동안 이룬 업적과 사건들은 모두 생략하고 있습니다. 왕이 하는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관심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사랴의 나병은 나아만의 나병과 다른 병으로 보이는데, 나아만의 경우는 격리되지 않고 공적 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아사랴는 레위기에서 부정 하다고 간주되어 다른 곳에 홀로 격리되어야하는 종류의 나병으로 더욱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교만하게 얼굴을 들던 아사랴는 사람들 앞에 서도 얼굴을 들지 못하는 철저히 낮아진 상태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7절에서 바로 아사랴의 죽음에 대해 보고하고 있습니다. 그는 무사히 다윗 성에 있는 조상의 묘실에 안장되고 그의 아들 요담이 왕위를 계승합니다.

 

이스라엘 왕 스가랴의 통치(8-12)

모든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오지만, 인간의 자기중심적 욕망은 모반과 살인으로 얼룩진 권력을 만듭니다. 북 이스라엘의 왕실은 쿠데타로 피범벅이 되었고, 갖은 왕권 교체로 왕의 자리는 더는 권위 있는 영적인 지도력을 발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8유다의 왕 아사랴의 제삼십팔년에 여로보암의 아들 스가랴가 사마리아에서 여섯 달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며 9그의 조상들의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한지라 10야베스의 아들 살룸이 그를 반역하여 백성 앞에서 쳐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11스가랴의 남은 사적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니라 12여호와께서 예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네 자손이 사 대 동안 이스라엘 왕위에 있으리라 하신 그 말씀대로 과연 그렇게 되니라(8-12)

 

여기서부터는 이스라엘 왕국에서 계속 반란이 일어나 왕들이 짧은 시간에 계속해서 바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예후에게 약속하신 4대가 지나자 이스라엘은 반란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고 왕국은 혼돈에 빠집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왕과 왕가가 유지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유다 왕 아사랴의 통치 38년에 여로보암 2세가 마침내 죽고 그의 아들 스가랴가 왕이 됩니다. 그런데 그의 통치 기간은 6개월밖에 되지 않습니다. 스가랴 왕도 이전의 선조들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습니다. 스가랴의 경우는 그의 조상들의 행위대로'라는 문구가 추가되었는데, 이것은 그동안 예후 가문이 계속해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으며 이제 그 결과 예후 왕조는 망하고 이스라엘도 망하게 되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점점 임계점에 이르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스가랴가 통치한 지 6개월 정도 되었을 때 야베스의 아들 살룸이 반역하였고, 살룸은 백성들 앞에서 스가랴를 공격하여 죽이고 대신 왕이 됩니다. 스가랴의 업적은 일절 언급되지 않고 있으며, 다만 그가 왕이 되었고 또 때가 되어 죽었다는 언급이 전부입니다. 열왕기 저자는 이 반역 사건으로 예후 가문에 네 명의 후손이 이스라엘 왕위에 있으리라는 예언이 그대로 성취된 것이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열왕기 저자의 사상을 보여 주는 표현으로, 하나님의 예언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왕 살룸의 통치(13-16)

권력이 집중되면 갑질을 하고 상처를 주고 안하무인으로 아랫사람을 대하게 됩니다. 공익보다는 사익을 추구하기 쉽습니다. 권력을 남용하는 사람은 권력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음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이고, 그런 권력에 대항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예를 지키는 일이 됩니다.

 

13유다 왕 웃시야 제삼십구년에 야베스의 아들 살룸이 사마리아에서 왕이 되어 한 달 동안 다스리니라 14가디의 아들 므나헴이 디르사에서부터 사마리아로 올라가서 야베스의 아들 살룸을 거기에서 쳐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15살룸의 남은 사적과 그가 반역한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니라 16그 때에 므나헴이 디르사에서 와서 딥사와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사람과 그 사방을 쳤으니 이는 그들이 성문을 열지 아니하였음이라 그러므로 그들이 그 곳을 치고 그 가운데에 아이 밴 부녀를 갈랐더라(13-16)

 

이 단락은 살룸 왕의 통치에 대한 단락으로 유다 왕 웃시야 제39년에 야베스의 아들 살룸이 사마리아에서 왕이 되었지만, 그는 겨우 한 달을 통치하는데 그칩니다. 북이스라엘에서 가장 짧은 기간 왕위에 있었던 사람은 시므리인데 그는 단 7일간 통치하였습니다(왕상 16:15-20). 살룸이 반역하여 왕이 된 지 한 달만에 가디의 아들 나헴이 디르사로부터 사마리아 왕궁으로 쳐들어와서 살룸을 죽이고 왕이 됩니다. 반란이 일어난 지 한 달 만에 또 반란이 일어났다는 것은 이때가 정치적으로 얼마나 불안정했는지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한 달밖에 안 다스린 살룸도 다른 왕들과 동일한 등극 공식과 죽음 공식을 갖는 것을 보면, 그 역시 왕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6절은 므나헴이 반역을 일으켰을 때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므나헴은 딥사를 점령할 때 문을 열고 자신을 환영하지 않았다는 이 유로 딥사 성과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과 그 성에 속한 모든 지역을 다 공격하고 죽였으며, 심지어 그곳에 있던 임산부의 배를 갈라 죽였습니다. 그는 자신을 반대한 딥사를 완전히 파괴하고 그곳 사람들의 씨를 말린 것입니다. 이것은 나헴이 얼마나 잔인한 인물인지를 보여줍니다. 므나헴이 얼마나 잔인한 인물인지를 보여줍니다. 므나헴의 이름 뜻은 ‘위로자’인데, 이름과는 정반대로 잔인한 살인자로 행동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왕 므나헴의 통치(17-22)

악한 자들의 통치하는 방법은 약한 자들에게는 혹독하고 가혹할 만큼 착취하여, 강자들에게 비굴해지는 것밖에 없습니다. 남의 희생을 밟고 얻는 부요와 지위를 축복이나 성공이라고 부르지 않고 ‘불의’라고 부릅니다. 북 이스라엘 왕 므나헴이 그 대표적인 모습입니다.

 

17유다 왕 아사랴 제삼십구년에 가디의 아들 므나헴이 이스라엘 왕이 되어 사마리아에서 십 년간 다스리며 18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평생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19앗수르 왕 불이 와서 그 땅을 치려 하매 므나헴이 은 천 달란트를 불에게 주어서 그로 자기를 도와 주게 함으로 나라를 자기 손에 굳게 세우고자 하여 20그 은을 이스라엘 모든 큰 부자에게서 강탈하여 각 사람에게 은 오십 세겔씩 내게 하여 앗수르 왕에게 주었더니 이에 앗수르 왕이 되돌아가 그 땅에 머물지 아니하였더라 21므나헴의 남은 사적과 그가 행한 모든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2므나헴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고 그의 아들 브가히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17-22)

 

잔인한 반란으로 왕이 된 므나헴은 사마리아에서 10년간 다스렸습니다. 반란이 성공하여 10년간은 안정적인 통치를 하였지만, 그 역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고, 여로보암의 죄에서 평생 떠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계속해서 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의 죄가 쌓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므나헴이 왕이 되었을 때의 앗수르 왕은 ‘불’이라는 사람인데(19), 그는 디글랏 빌레셀 3세와 동일 인물입니다. 앗수르는 디글랏 빌레셀 3세 때부터 강성해지기 시작했고, 이스라엘을 위협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므나헴은 앗수르가 쳐들어오자 은 천 달란트를 공물로 바치고, 이스라엘의 귀족들과 부자들에게서 강제로 은을 빼앗아 한 명당은 오십 세겔을 주고 앗수르의 용병을 데리고 옵니다. 그는 공물을 바치고 용병을 사음으로 왕권을 유지하고 영토를 유지하려고 하였습니다. 그 시도는 성공하였고 앗수르는 이스라엘에서 떠납니다. 앗수르의 기록에 따르면, 앗수르는 사마리아의 므나헴으로부터 한 차례 이상 조공을 받았다고 합니다.

 

므나헴이 돈으로 앗수르의 환심을 사고 앗수르의 용병으로 왕권을 강화하려고 한 것은, 그가 여호와 의지하지 않고 주변 강대국을 의지하려 한 것입니다. 므나헴은 이스라엘의 왕권은 여호와께서 주시고 거두지는 것이며, 이스라엘의 운명도 여호와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잊은 것입니다. 이로써 므나헴은 왕권을 유지했지만, 이스라엘의 힘은 점점 약해져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므나헴이 죽고 그의 아들 브가히야가 왕위에 오르지만,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반란이 일어납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점점 불안정한 상태가 되어갔지만, 그들은 여호와께 돌아오거나 부르짖지 않고 주변 강대국을 의지하며 점점 하나님과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무지와 어려석음이 권력을 악용하는 오용하는 사회를 만들었습니다. 정치는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인간의 반역과 오만이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영역입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권한을 제대로 사용하는지 예언자의 눈으로 감시하고 불의한 권력에 저항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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