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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13-02)


엘리사의 마지막 능력

열왕기하 13장 14-25절


오늘날 교회와 사회는 지도자의 자질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일상에서 선한 행실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증언해야 하는데, 말 따로 삶 따로 인 경우가 많습니다. 사표(師表)의 부재 속에 흠모할 만한 새로운 리더십이 출현하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런 지도자의 자격은 무엇입니까?

 

  • 북이스라엘의 왕 요아스 시대에 엘리사가 죽음을 맞이합니다. 엘리사는 제자를 보내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운 사건 이후에 전혀 등장하지 않다가 이곳에 엘리사의 죽음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시기는 엘리사가 예후를 왕으로 세운지 대략 10년도 더 지난 때입니다.

 

요아스에게 활을 쏘라고 한 엘리사(14-19)

지도자는 공동체가 불안과 두려움 속에 있을 때 담대한 겸손으로 확신을 넣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는 인간의 환경이나 능력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야 합니다. 많은 경우 공동체의 한계는 하나님의 능력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이 모자라기 때문에 찾아옵니다.

 

14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매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가 그에게로 내려와 자기의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하매 15엘리사가 그에게 이르되 활과 화살들을 가져오소서 하는지라 활과 화살들을 그에게 가져오매 16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왕의 손으로 활을 잡으소서 하매 그가 손으로 잡으니 엘리사가 자기 손을 왕의 손 위에 얹고 17이르되 동쪽 창을 여소서 하여 곧 열매 엘리사가 이르되 쏘소서 하는지라 곧 쏘매 엘리사가 이르되 이는 여호와를 위한 구원의 화살 곧 아람에 대한 구원의 화살이니 왕이 아람 사람을 멸절하도록 아벡에서 치리이다 하니라 18또 이르되 화살들을 집으소서 곧 집으매 엘리사가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땅을 치소서 하는지라 이에 세 번 치고 그친지라 19하나님의 사람이 노하여 이르되 왕이 대여섯 번을 칠 것이니이다 그리하였더면 왕이 아람을 진멸하기까지 쳤으리이다 그런즉 이제는 왕이 아람을 세 번만 치리이다 하니라(14-19)

 

예후에게 기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세운 후 등장하지 않던 엘리사는 50년이 지난 후에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 갑자기 등장합니다. 예후가 왕이 된 이후 엘리사의 남은 행적은 열왕기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습니다.

엘리사가 죽을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자 당시 이스라엘의 왕이던 요아스는 직접 그에게 문병을 갑니다. 이것은 매우 예외적인 상황이다. 이스라엘에서 선지자는 왕보다 신분이 낮기 때문에 왕이 선지자를 찾아 가는 일은 매우 드문 경우입니다.

왕이 선지자를 향해 ‘내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을 볼 때 요아스와 엘리사는 매우 가까운 사이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엘리사에게 간 요아스는 죽음을 앞둔 엘리사를 위해 울면서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엘리사가 열왕기하 2:12에서 엘리야가 승천하는 모습을 보면서 외쳤던 말과 같습니다.

요아스가 엘리사를 향해 이렇게 말한 것을 보면 요아스 왕은 엘리사를 상당히 의지하며 도움을 받았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일반적으로 아버지나 어머니와 같은 표현은 보호자를 의미하며, 엘리사를 병거와 마병이라고 부르는 것도 엘리사가 이스라엘의 보호자로서 적들로부터 이스라엘을 지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7절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아람과의 전쟁 후에 군사가 얼마 남지 않은 열악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존재는 더욱 중요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죽음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결정적인 전력을 잃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엘리사의 죽음은 이스라엘을 보호하는 마지막 방어벽이 무너지는 것과 같았습니다.

자신을 향해 절박한 심정으로 우는 요아스에게 엘리사는 마지막 선물을 한다. 엘리사는 두 가지 상징적 행위를 요아스에게 시킵니다. 먼저 활과 화살을 가져오라고 한 뒤 요아스 왕에게 활을 잡으라고 합니다. 여기서 요아스는 이해할 수 없는 엘리사의 말에 그대로 순종합니다. 그가 활을 잡자 엘리사는 자신의 손을 왕의 손 위에 얹고 동쪽을 향해 활을 쏘라고 명령합니다. 왕이 활을 쏘자 엘리사는 활 쏘기의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을 아람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여호와의 구원의 화살이라고 하며, 왕이 아벡을 완전히 쳐서 점령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해 줍니다.

그런 후에 엘리사는 다시 요아스에게 화살을 잡으라고 명령하고, 그가 화살을 잡자 땅을 치라고 합니다. 왕은 화살로 땅을 세 번 칩니다. 엘리사가 명령대로 한 것입니다. 요아스가 엘리사를 권위 있는 선지자로 생각했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요아스가 땅을 단 세 번만 치자 엘리사는 매우 강하게 화를 내면서 대여섯 번 정도 쳤으면 아람을 완전히 멸망시킬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합니다. 엘리사가 화를 낸 것은 요아스의 믿음 없음 때문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아람으로 인해 많은 고통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죽음을 앞둔 엘리사는 이스라엘 왕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로 아람을 완전히 멸망시킬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입니다. 그 마지막 기회를 요아스 왕의 소심함 때문에 날린 것입니다. 분명히 엘리사가 활과 화살이 아람과의 전쟁에서의 승리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면, 화살을 치는 행동의 의미도 이해했어야 했습니다. 아람을 ‘치다’라는 단어와 ‘땅을 치다’라는 단어는 모두 같은 단어입니다.

요아스는 화살로 땅을 치라는 소리를 듣고 세 번만 친다. 요아스가 엘리사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만약 믿었다면 아람을 멸망시킬 만큼 격렬하게 쳤을 것입니다. 이런 믿음 없음 때문에 위대한 선지자 엘리사가 생존해 있는데도 아람에게 약탈당하고 점령당한 것입니다. 왕은 엘리사가 하늘의 군대로 불릴 수 있는 권능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온전히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람과의 전쟁 속에서도 하나님께 부르짖거나 엘리사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지 않은 것입니다.

당시 하사엘이 왕으로 있는 아람은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자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왕들은 그를 이길 수 있다는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하사엘 왕도 여호와께서 세우셨다는 것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왕을 세우기도 하시고 폐하기도 하시며, 나라를 일으키기도 하시고 멸하기도 하는 역사의 주인이심을 정작 선민 이스라엘은 믿지 못한 것입니다.

 

엘리사의 죽음(20-21)

지도자는 주께 받은 섬김과 세움의 은사를 다 쓰고 가야 합니다. 죽어서 이름을 남기는 일은 살았을 때 그 존재와 삶으로 생명의 자리를 고수한 자에게만 주어집니다. 바울은 자신을 죽음에 넘겨지는 자로 자각하며 살았습니다. 지도자는 예수님처럼 삶과 피로 말하는 사람입니다.

 

20엘리사가 죽으니 그를 장사하였고 해가 바뀌매 모압 도적 떼들이 그 땅에 온지라 21마침 사람을 장사하는 자들이 그 도적 떼를 보고 그의 시체를 엘리사의 묘실에 들이던지매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곧 회생하여 일어섰더라(20-21)

 

엘리사는 아쉬움을 남기고 세상을 떠납니다. 그리고 그가 살았던 요단 근처에 매장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사가 죽은 뒤 새해가 되자 모압에서 도적 떼가 그곳을 습격합니다. 이스라엘의 새해는 봄(3-4월 정도)인데, 이 시기는 춘궁기이기 때문에 양식을 구하기 위해 이웃 나라의 도시들을 습격하는 사례가 종종 있었습니다.

엘리사가 묻힌 곳도 모압의 도적 떼가 습격해 왔고, 그때 마침 장사 지내기 위해 시신을 메고 가던 사람들이 그들을 보고 놀라 시신을 급한 대로 엘리사의 묘실에 던져 넣었습니다. 그런데 시신이 엘리사의 뼈에 닿자마자 살아나고 일어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엘리사는 살아 있는 동안에도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이적을 베풀었는데, 죽어서도 사람을 살리는 능력을 보여준 것입니다. 엘리사는 죽었지만 엘리사를 통해 역사하시던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시고, 그의 권능은 여전히 놀랍다는 것을 이 사건을 통해 보여주며, 여호와께서 아직도 이스라엘에 역사하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희망의 메시지로 하나님께서 여전히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고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음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의 성읍들을 회복한 요아스(22-25)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은 오래 참으면서 자기 백성이 정신을 차리고 돌아오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과 같습니다. 지도자는 그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으로 백성들에게 전하는 사람이요, 그 은혜에 화답하며 전하는 사람입니다.

 

22여호아하스 왕의 시대에 아람 왕 하사엘이 항상 이스라엘을 학대하였으나 23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풀며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돌보사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시고 이 때까지 자기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셨더라 24아람의 왕 하사엘이 죽고 그의 아들 벤하닷이 대신하여 왕이 되매 25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하사엘의 아들 벤하닷의 손에서 성읍을 다시 빼앗으니 이 성읍들은 자기 부친 여호아하스가 전쟁 중에 빼앗겼던 것이라 요아스가 벤하닷을 세 번 쳐서 무찌르고 이스라엘 성읍들을 회복하였더라(22-25)

 

이 단락에서도 또 하나의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아람이 아무리 이스라엘을 점령하고 멸망시키려고 애를 써도 이스라엘을 멸망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강하거나 아람이 약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세우신 언약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여전히 은혜를 베푸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겨 돌보시며, 이스라엘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열왕기 저자는 여기서 자신의 신학을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이스라엘의 왕들이 하나님만을 섬기겠다고 맹세한 시내산 언약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시내산 언약 때문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하신 무조건적인 선택과 은혜의 언약 때문에 이스라엘을 여전히 버리지 않고 은혜를 베풀고 계셨습니다. 열왕기 저자는 시내산 언약이 아닌 더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언약인 아브라함의 언약에 기대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열왕기 저자가 생각할 때 시내산 언약만으로 판단하면 현재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버림받아 심판 받아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24절에서 아람 왕 하사엘이 죽고 벤하닷이 왕이 되면서 아람과 이스라엘의 관계에 변화가 찾아옵니다. 25절에서 요아스가 벤하닷의 손에서 성읍을 다시 빼앗아 왔습니다. 엘리사의 말대로 세 번 아람을 쳐서 이기고 이스라엘 성읍을 회복한 것입니다. 엘리사의 예언이 정확하게 성취되었는데, 이는 아직 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지만 이런 은혜는 한계 없는 은혜가 아니다. 이스라엘이 그 은혜를 소홀히 여기면서 점점 그 끝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뼈의 상태로도 생명을 살리는 엘리사, 그는 끝까지 자신의 백성과 함께하며 생명을 주었습니다. 신아의 계승은 지도자를 본받는 일일진대, 참 지도자는 온데간데없고 가짜 리더십이 횡행하는 이 시대에 하늘의 은혜를 품은 영혼의 목자들이 나올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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