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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12-01)


요아스의 선정과 실정

열왕기하 12장 1-21절


인생을 끝까지 잘 살아내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수많은 유혹과 지현과 위험을 만납니다. 바른 길을 가다가도 낭떠러지에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인생의 굴곡진 자리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합니까? 믿음은 선택의 문제입니다. 과념이 아니라 실제적인 모험입니다.

 

  • 요아스는 남 유다의 왕이 된 후 여호야다 제사장을 통해 종교개혁을 단행하는데, 제일 먼저 여호와의 백성들이 다시 언약을 맺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돌아오게 합니다. 바알 신전과 우상과 제단을 깨뜨리고 바알 제사장을 죽여 유다 땅에서 바알 숭배를 없앱니다. 남유다는 다윗 왕조를 회복하고 여호와 신앙을 회복합니다. 이 종교개혁은 아마사에 의해 계승됩니다.

 

요아스의 등극 공식과 평가(1-3)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을 때 하나님의 길에서도 벗어나게 됩니다. 자신의 삶에 하나님께서 떠나고 자신이 주인 되고, 하나님께서는 주변인이 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열정은 변함없어야 합니다. 끝까지 온전하고 지혜롭고 성실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1예후의 제칠년에 요아스가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사십 년간 통치하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시비아라 브엘세바 사람이더라 2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그를 교훈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되 3다만 산당들을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였더라(1-3)

 

이 단락은 요아스의 등극 공식으로 요아스는 에후 제7년에 유다의 왕이 되어 40년간 통치합니다. 40년간의 통치는 상당히 긴 기간으로 다윗, 솔로몬, 여로보암 2세가 40년 정도 다스렸습니다. 요아스의 어머니는 시비아로 브엘세바 사람입니다.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가르치는 동안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행하였습니다. 여호야다가 요아스의 스승이자 보호자 역할을 하였음을 뜻합니다. 아쉬운 것은 산당을 제거하지 않아서 백성들이 계속해서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고 분향하였다는 점입니다. 여호와께 제사 드리는 것은 오직 여호와께서 지정하신 성전과 지방 성소에서만 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산당은 주로 우상에게 제사하고 분향하는 곳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이 열왕기에서는 산당을 항상 부정적으로 표현하는 이유입니다.

 

성전 수리 명령을 따르지 않은 제사장들(4-8)

우상을 섬기게 되면 우리 마음 안의 성전도 파손되고 무너지네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도자가 생각해야 할 우선순위는 눈에 보이는 경제적인 풍요와 정치적인 성공이 아니라 마음의 성전을 수리하고 재건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령의 전이라고 할 수 있는 자신과 공동체의 무너지고 파손된 것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전적인 헌신이 필요합니다.

 

4요아스가 제사장들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성전에 거룩하게 하여 드리는 모든 은 곧 사람이 통용하는 은이나 각 사람의 몸값으로 드리는 은이나 자원하여 여호와의 성전에 드리는 모든 은을 5제사장들이 각각 아는 자에게서 받아들여 성전의 어느 곳이든지 파손된 것을 보거든 그것으로 수리하라 하였으나 6요아스 왕 제이십삼년에 이르도록 제사장들이 성전의 파손한 데를 수리하지 아니하였는지라 7요아스 왕이 대제사장 여호야다와 제사장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성전의 파손한 데를 수리하지 아니하였느냐 이제부터는 너희가 아는 사람에게서 은을 받지 말고 그들이 성전의 파손한 데를 위하여 드리게 하라 8제사장들이 다시는 백성에게 은을 받지도 아니하고 성전 파손한 것을 수리하지도 아니하기로 동의하니라(4-8)

 

공동체의 재정을 지혜롭게 사용해야 합니다. 재정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성전을 보수하는 선한 일이 지지부진하다가, 성전 수리 재정을 분리하자 다시 순탄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교회 재정을 함부로 쓰진 않습니까? 선한 일을 하되, 재정도 지혜롭고 선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요아스는 왕이 된 후 성전 수리 공사를 주도합니다. 여호람과 아하시야 왕은 아합 왕가의 영향을 받아 여호와 신앙에서 멀어졌고, 대신 바알 신당을 짓고 제단을 만드는 등 바알 숭배에 열심을 내었습니다. 그 결과 예루살렘 성전은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 신앙에 열심을 내던 요아스는 예루살렘 성전을 수리하여 예배를 회복하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11장부터 이루어진 유다 종교개혁의 절정이자 마지막 과제였습니다. 여기서 성전에 거룩하게 드리는 모든 은, 즉 헌금의 종류가 등장하는데, 사람이 통용하는 은은 출애굽기 30:12에서 생명의 속전으로 언급된 성전세 입니다. 몸값으로 드리는 은은 레위기 27:2에서 언급된 사람의 값을 여호와께 드리기로 서원한 값을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서 드리는 돈이 있습니다. 5절에서 제사장들이 각각 아는 사람에게서 받으라고 하는데, 여기서 아는 사람은 재무 담당관을 말하는 관용구입니다. 요아스는 성전에서 걷는 각종 세금과 헌금을 받아서 성전을 수리하라고 제사장들에게 명하였습니다. 하지만 요아스 왕 23년이 되도록 제사장들은 성전 수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요아스가 언제 성전 수리를 명령했는지 알 수 없지만, 상당 기간 동안 제사장들은 요아스의 명령을 수행하지 않았던 것이 분명합니다. 제사장들이 성전에 들어온 돈으로 성전 수리를 하지 않은 이유는 언급되지 않습니다. 다만 제사장들이 자신들의 몫을 챙기느라 성전 수리비를 남기지 않은 것 같습니다.

원래 성전세는 제사와 성전 관리를 위해서 사용됩니다. 하지만 당시는 이런 용도보다는 제사장들이 개인적으로 사용하였던 것 같습니다. 제사장에게 맡겼던 성전 수리가 제대로 되지 않자 요아스는 대제사장 여호야다와 제사장들을 불러 성전 수리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질책하고 제사장들에게 재무담당관에게서 돈을 받지 말라고 명령한비다. 이것은 제사장들이 성전 수입에 손대는 것을 금지한 것입니다. 왕이 대제사장과 제사장을 불러 제사장들이 성전 수입에 관여하지 말라고 명령하는 것을 보면, 요아스 왕의 왕권이 매우 강화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아스가 예루살렘 성전 수리에 상당히 관심을 갖고 중요한 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도 보여줍니다. 왕의 명령을 들은 제사장들은 성전 수입과 성전 수리에서 손을 떼는 것에 동의합니다. 이제 이들은 성전 수입에 대한 권리도 성전 수리에 대한 책임도 갖지 않게 되었습니다. 제사장의 권한은 점점 약화되고, 왕의 권력은 점점 강화되었습니다.

 

성전에 드린 은으로 성전을 수리함(9-16)

교회에서는 성실하고 믿을 수 있는 직분자를 세워 헌금을 투명하게 관리하고 집행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역자 사례도 합리적으로 지불되어야 합니다. 목적 헌금은 다른 용도로 사용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헌금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사역자들이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모범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9제사장 여호야다가 한 궤를 가져다가 그것의 뚜껑에 구멍을 뚫어 여호와의 전문 어귀 오른쪽 곧 제단 옆에 두매 여호와의 성전에 가져 오는 모든 은을 다 문을 지키는 제사장들이 그 궤에 넣더라 10이에 그 궤 가운데 은이 많은 것을 보면 왕의 서기와 대제사장이 올라와서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대로 그 은을 계산하여 봉하고 11그 달아본 은을 일하는 자 곧 여호와의 성전을 맡은 자의 손에 넘기면 그들은 또 여호와의 성전을 수리하는 목수와 건축하는 자들에게 주고 12또 미장이와 석수에게 주고 또 여호와의 성전 파손한 데를 수리할 재목과 다듬은 돌을 사게 하며 그 성전을 수리할 모든 물건을 위하여 쓰게 하였으되 13여호와의 성전에 드린 그 은으로 그 성전의 은 대접이나 불집게나 주발이나 나팔이나 아무 금 그릇이나 은 그릇도 만들지 아니하고 14그 은을 일하는 자에게 주어 그것으로 여호와의 성전을 수리하게 하였으며 15또 그 은을 받아 일꾼에게 주는 사람들과 회계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성실히 일을 하였음이라 16속건제의 은과 속죄제의 은은 여호와의 성전에 드리지 아니하고 제사장에게 돌렸더라 (9-16)

 

왕이 결정하자 여호야다는 상자를 가져다가 뚜껑에 구멍을 뚫어 제단 곁에 두었다. 성전으로 가져오는 모든 돈을 문 지키는 제사장들이 받아 그 상자에 다 집어넣었습니다. 돈이 모이면 왕의 서기와 대제사장 전에서 받은 그대로 자루에 넣어 묶은 뒤 저울에 달아 계산하였습니다. 그 돈을 그대로 성전 관리하는 사람들에게 주면, 그가 성전을 수리하는 목수들과 건축가들과 미장이와 석수에게 주었고, 또 필요한 물품들을 사는 데 사용하였습니다.

11-13절에서 성전 수리를 위해 모인 돈이 얼마나 꼼꼼하고 적절하게 지출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런 긴 목록은 성전을 수리하는 데 많은 돈과 일꾼들이 필요했다는 것을 말해주며, 동시에 성전이 오랫동안 방치되어 수리할 곳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보여줍니다. 13-14절에서 성전의 돈은 수리 이외의 용도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5절에서는 성전 수리를 맡은 관원에 대한 평가가 나옵니다. 그는 매우 믿을 만하여 맡긴 돈에 대해선 전혀 신경 쓸 일이 없었습니다. 이런 모습은 성전 수리 비용을 주었지만 자신들이 사용하느라 성전 수리를 하지 못한 제사장들의 불성실함과 대조를 이룹니다. 대제사장 여호야다는 여호와를 잘 섬기는 인물이었지만, 일반 제사장들은 여호야다 만큼 여호와를 섬기는 데 성실하지 않았고 나태했던 것입니다. 제사장들의 기강이 흐트러졌기에, 요아스가 대제사장을 직접 불러 이들이 수리하는 것을 못하게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맡긴 것입니다. 요아스와 여호야다의 종교개혁이 완전하지는 못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일반 제사장들은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회복되면서 점점 제물이 늘고 수입 많아지고 권위도 회복되자 그 번영의 열매에 젖어 정작 자신들이 섬겨야 할 여호와께는 소홀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6절에선 제사장의 몫을 언급하는데, 요아스는 원래 제사장의 몫인 속죄제와 속건제의 은을 제사장 몫으로 돌렸습니다. 제사장들이 지나치게 재물을 취하는 것은 막고, 그 대신 율법이 정하는 적절한 몫을 갖게 한 것입니다.

 

아람 왕 하사엘에게 공물을 바친 요아스(17-18)

하나님의 사역에 열정적으로 참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우상을 허용하는 이중적인 모습은 없는지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지도자라면 자신의 이중적 신앙으로 인해 공동체가 악영향을 받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적 징계받을 때 쉽게 낙심하지도 말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가볍게 여기지도 말아야 합니다.

 

17그 때에 아람 왕 하사엘이 올라와서 가드를 쳐서 점령하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오고자 하므로 18유다의 왕 요아스가 그의 조상들 유다 왕 여호사밧과 여호람과 아하시야가 구별하여 드린 모든 성물과 자기가 구별하여 드린 성물과 여호와의 성전 곳간과 왕궁에 있는 금을 다 가져다가 아람 왕 하사엘에게 보냈더니 하사엘이 예루살렘에서 떠나갔더라(17-18)

 

요아스 때 아람 왕 하사엘이 가드를 점령하고 예루살렘까지 쳐들어오려고 하였다. 이 시기에 앗수르가 아직 남쪽까지 힘을 발휘하지 않았기에 아람의 국력이 가장 강성하였습니다. 따라서 요아스는 하사엘이 예루살렘으로 오지 못하도록 하사엘에게 공물을 바쳤고, 하사엘에게 준 공물은 예루살렘 성전에 있던 여호와의 성물들입니다. 화자가 유다 왕 여호사밧 때부터 요아스 때까지 모아두었던 성물과 금들을 모두 하사엘에게 주었다고 말하는 것을 볼 때 유다가 매우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요아스는 이 위기에서 여호와께 부르짖고 도움을 구하기보다는 여호와의 전의 재물을 내주는 손쉬운 방법을 택하였습니다. 요아스가 여호야다의 가르침을 받을 때는 여호와 보시기에 바르게 살았지만, 왕권이 강화되고 여호야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면서부터는 여호와께 대한 신앙도 약해졌던 것입니다,

 

요아스의 죽음(19-21)

우리를 신앙적으로 이끌어 주는 지도자나 목회자의 영향력을 받지 못할 때 우리는 진정한 믿음의 시험대에 오르게 됩니다. 자신이 스스로 말씀ㅁ을 따라 마음을 지키고 언약에 충성할 수 있는 신앙인이 되지 못하면 사람들의 평가와 요구에 의해 풍랑 가운데 위태로운 배처럼 요동하게 됩니다. 결국 변함없는 언약의 말씀 대신 인간을 의지하는 신앙은 모래 위해 쌓은 성과 같습니다.

 

19요아스의 남은 사적과 그가 행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0요아스의 신복들이 일어나 반역하여 실라로 내려가는 길 가의 밀로 궁에서 그를 죽였고 21그를 쳐서 죽인 신복은 시므앗의 아들 요사갈과 소멜의 아들 여호사바드였더라 그는 다윗 성에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장사되고 그의 아들 아마샤가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19-21)

 

결국 요아스는 자신의 신복들의 반란으로 밀로 궁에서 살해당합니다. 그가 왜 신복들의 반란으로 죽임을 당했는지 알 수 없지만, 말년에 여호와를 온전히 의지하지 않고 여호와의 성전 기명을 하사엘에게 갖습니다.

바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요아스는 반란자의 손에서 살아아 왕이 되었지만, 결국 반란자의 손에 죽는 기구한 삶을 살았다. 요아스의 죽음은 유다의 종교개혁에 한계가 있었음을 말해준다. 오랜 우상숭배와 그릇된 여호와 경배에 대해 종교개혁을 단행하고 성전을 수리하였지만, 산당의 잔존에서 보듯이 이교적인 것이 여전히 유다 땅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었으며, 그것이 결정적인 순간에 영향을 미쳐 여호와를 의지하기보다 돈과 권력이라는 세상적인 방법을 위지하게 만든 것입니다.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가 왕위에 올라 다윗 왕권은 계속 이어집니다. 하나님의 자비가 그치지 않은 것입니다.


스스로 많은 것을 성취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교만이 싹틉니다. 은혜를 망각하고 사람의 힘을 이지할 때 위기가 찾아옵니다. 자신의 업적을 의지할 때 존재와 삶이 위태해집니다. 오늘도 여전히 주 앞에 신실하게 살고 있습니까? 유혹을 이기고 끝까지 신실하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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