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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10-01)


아합의 후손을 숙청하는 예후

열왕기하 10장 1-17절


 

역사에서 완전한 인간이나 완벽한 순수함을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누가 온전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차선이나 차악을 선택할 수밖에 없고, 하나님의 뜻에 더 가까이 나아가기 위해 애쓸 뿐입니다. 불완전한 우리가 개혁을 수행할 때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 예후는 하나님께 왕으로 선택을 받은 후 거침없는 행보를 합니다. 제일 먼저 이스라엘 왕 요람을 죽었고, 그 다음 유다의 왕 아하시야를 죽인 후 그대로 이스르엘 궁으로 쳐들어가 태후 이세벨을 죽입니다. 요람의 시신은 나봇의 밭에 버리고 이세벨의 시신은 들짐승의 밥이 되도록 방치하며, 아들의 죽음도 평안할 수 없게 만듭니다. 예후의 아합 가문에 대한 심판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사마리아에 있는 아합의 후손들에게까지 미칩니다.

 

아합의 후손들을 모두 죽임(1-7)

종종 사회 지도자층이라는 자들이 고귀하고 능력 있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권력자들에게 부합하여 자신의 권세와 혜택을 누리지만, 막상 어려운 일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자신의 살 길을 찾기에만 급급합니다. 그리고 너무나 쉽게 배반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출세와 부와 권력을 위해서라면 기회주의자들입니다.

 

1아합의 아들 칠십 명이 사마리아에 있는지라 예후가 편지들을 써서 사마리아에 보내서 이스르엘 귀족들 곧 장로들과 아합의 여러 아들을 교육하는 자들에게 전하니 일렀으되 2너희 주의 아들들이 너희와 함께 있고 또 병거와 말과 견고한 성과 무기가 너희에게 있으니 이 편지가 너희에게 이르거든 3너희 주의 아들들 중에서 가장 어질고 정직한 자를 택하여 그의 아버지의 왕좌에 두고 너희 주의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더라 4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 왕이 그를 당하지 못하였거든 우리가 어찌 당하리요 하고 5그 왕궁을 책임지는 자와 그 성읍을 책임지는 자와 장로들과 왕자를 교육하는 자들이 예후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이라 당신이 말하는 모든 것을 우리가 행하고 어떤 사람이든지 왕으로 세우지 아니하리니 당신이 보기에 좋은 대로 행하라 한지라 6예후가 다시 그들에게 편지를 부치니 일렀으되 만일 너희가 내 편이 되어 내 말을 너희가 들으려거든 너희 주의 아들된 사람들의 머리를 가지고 내일 이맘때에 이스르엘에 이르러 내게 나아오라 하였더라 왕자 칠십 명이 그 성읍의 귀족들, 곧 그들을 양육하는 자들과 함께 있는 중에 7편지가 그들에게 이르매 그들이 왕자 칠십 명을 붙잡아 죽이고 그들의 머리를 광주리에 담아 이스르엘 예후에게로 보내니라(1-7)

 

이스르엘 왕궁에 있던 이세벨을 죽이고 이스르엘 궁전을 점령하면서 반란에 성공한 예후는 남은 아합의 후손들도 모두 제거하기로 합니다. 당시 사마리아에는 아합의 자손 70명이 있다고 알려줍니다. 본문에서 ‘아들’이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아들뿐 아니라 자손들을 통칭하므로 ‘자손’으로 번역하는 것이 적당합니다. 사마리아는 이스라엘의 수도였기에 이곳에 아합의 자손들이 번성하며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70명의 자손은 아합의 자손들이 상당히 번성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예후는 사마리아에 있는 장로들과 아합의 자손을 교육하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여기서 ‘이스르엘의 귀족들’이란 표현이 나오는데, 이들은 예후가 이스르엘을 점령할 때 예후를 피해 도망하여 사마리아로 간 귀족들일 것입니다. 첫 번째 편지를 보내어 아합의 후손 중에서 새로 왕을 뽑고 자신과 싸울 준비를 하라고 도전장을 보냅니다. 사마리아는 이스라엘의 수도이기에, 많은 군대와 병거와 말과 무기뿐만 아니라 튼튼한 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마리아 성이 예후를 상대해 전쟁하기에 충분한 물적 인적 자원이 있다는 것인데, 예후는 사마리아 귀족들이 이것을 믿고 새로운 왕을 세워서 자신에게 대항하겠느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예후는 새로운 왕에 대해 ‘훌륭하고 올바른 자’란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것은 조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있는 아합 가문에서 이런 사람을 찾을 리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자신 있으면 새로 왕을 세워 자신과 싸우자는 예후의 편지를 받은 사마리아의 귀족들은 매우 두려워합니다. 이들이 생각하기에 두 명의 왕들도 감당 못한 예후를 자신들이 맞서 싸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자 사마리아의 모든 관리들과 귀족들은 예후에게 우리는 당신의 종이고, 당신이 말하는 대로 모두 할 것이며, 당신만이 왕이라고 하면서 철저히 예후에게 복종할 뜻을 전달합니다.

 

예후에게 말을 전하는 사람들의 명단을 자세히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는 사마리아에 있는 모든 귀족과 지도자들과 관리들이 예후를 두려워하고 있으며, 또 그에게 복종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입니다. 이런 말을 예후에게 전하자, 예후는 다시 편지를 보내 자신의 신하가 된 징표로 내일까지 아합의 자손들의 머리를 이스르엘로 가져오라고 요구합니다. 여기서도 예후는 간접적으로 이세벨을 죽인 것처럼 자신에 대한충성의 징표로 아합의 자손들을 죽이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귀족들은 즉시 아합의 자손들을 죽여 그 머리를 자르 고 광주리에 담아 예후에게 보냅니다. 조금도 시간을 지체하거나 망설이지 않습니다.

왕자들을 죽인 자들이 그들을 키운 귀족들이라고 말 것은 아합 왕조에서 권세와 혜택을 누리던 자들이 자신들의 살 길을 찾기 위해 너무 쉽게 배신하였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이세벨을 섬기던 내시가 예후의 말 한마디에 배신한 것과 동일합니다. 이것을 통해 아합 왕조에서 권세를 누리던 자들은 충성과 신의로 아합 왕조를 섬긴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출세와 권력과 부를 위해 움직인 기회주의자들이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합의 후손의 시신을 통해 경고함(8-11)

정권이나 사회에 타락하면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바르게 세우려는 개혁 세력들이 일어납니다. 새로운 변화를 이루자고 주장하는 것이 나쁜 방향이 아니라면 진행되어 가야 합니다. 하지만 개혁되는 과정에서 애매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정도를 지키며 실행해야 합니다. 예후는 철저하게 아합의 후손을 진멸해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8사자가 와서 예후에게 전하여 이르되 그 무리가 왕자들의 머리를 가지고 왔나이다 이르되 두 무더기로 쌓아 내일 아침까지 문 어귀에 두라 하고 9이튿날 아침에 그가 나가 서서 뭇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의롭도다 나는 내 주를 배반하여 죽였거니와 이 여러 사람을 죽인 자는 누구냐 10그런즉 이제 너희는 알라 곧 여호와께서 아합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그의 종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제 이루셨도다 하니라 11예후가 아합의 집에 속한 이스르엘에 남아 있는 자를 다 죽이고 또 그의 귀족들과 신뢰 받는 자들과 제사장들을 죽이되 그에게 속한 자를 하나도 생존자를 남기지 아니하였더라(8-11)

 

예후는 사마리아의 귀족들이 가져온 아합 가문 왕자들의 머리를 성분 바깥쪽 문 앞에 두 무더기로 쌓아 내일 아침까지 두라고 명령합니다. 이것은 앗수르의 관습과 같은데, 적이나 반역자의 복을 쌓아 전시함으로써 반역에 대한 경고와 두려움을 주려는 것입니다.

예후는 이 방법을 통해 자신을 반대하고 그 대신 아합 가문의 편을 들면 그 결과가 어떠할지를 강하게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 날 예후는 백성들에게 나가 이 광경을 자신의 반역이 정당하다는 것을 알리는 기회로 삼습니다. 그는 백성들에게 ‘너희는 의롭다.’고 선언합니다. 자신은 자신의 주인에게 반역하고 그를 죽였다고 합니다. 이 사람을 죽인 사람은 누구냐고 묻고 있는데, 이는 마치 왕자들의 죽음에 대해서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말한 것입니다. 왕과 왕자들의 죽음에 대해 백성들은 아무런 죄가 없고, 다만 자신은 왕을 죽인 것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왕을 죽이고 누군지 알 수 없는 사람들에 의해 왕자들이 죽임을 당한 것은, 모두 엘리야를 통해 하나님께서 아합의 집에 내리신 예언의 성취라고 선언합니다. 즉, 자신이 아합을 죽인 것과 아합의 왕자들이 죽임당한 것 모두가 하나님께서 승인하신 정당한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후는 백성들에게 너희는 의롭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기서 예후는 여호와의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음을 선포합니다. 이것이 예후의 진정한 신앙고백인지, 아니면 자신의 반역을 정당화하기 위한 말인지 앞으로 그가 하는 행동을 보면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반역을 성공한 예후는 이스르엘에 남아있던 아합의 가족들과 그의 신하들과 아합 왕가의 후원을 받으며 권세를 누리던 모든 사람들과 제사장들까지 다 죽였습니다. 여기서 제사장들은 여호와의 제사장이 아니라, 이세벨의 보호를 받던 바알과 아세라의 제사장들입니다. 이렇게 예후는 모든 부분에서 아함 왕가의 사람들을 제시하였습니다.

 

유다 왕 아하시야의 형제들을 죽임(12-14)

종종 잔혹한 살육이나 전쟁으로 통해 하나님의 정의를 구현한다는 명목을 삽니다. 이러한 모습은 낯설고 당황스럽게 보이지만, 세계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우상숭배와 불순종의 죄가 얼마나 큰지를 환기시킵니다.

 

12예후가 일어나서 사마리아로 가더니 도중에 목자가 양털 깎는 집에 이르러 13예후가 유다의 왕 아하시야의 형제들을 만나 묻되 너희는 누구냐 하니 대답하되 우리는 아하시야의 형제라 이제 왕자들과 태후의 아들들에게 문안하러 내려가노라 하는지라 14이르되 사로잡으라 하매 곧 사로잡아 목자가 양털 깎는 집 웅덩이 곁에서 죽이니 사십이 명이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더라(12-14)

 

이스르엘에서 반정을 완성한 에후는 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로 갑니다. 가던 도중에 ‘목자가 양털 깎는 집’이라고 번역하고 있는, ‘벧에케 드하로임’이란 곳에 들르게 됩니다. 이곳은 사마리아로 가는 길목에 있는 지역이 아니라, 사마리아 북서쪽에 위치한 산이 지역으로 부자가 양들을 모으는 장소로 사용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 지역은 길에서 벗어난 외딴 곳에 있기 때문에, 예후는 사마리아로 가는 길에 어쩌다 들른 것이 아니라 일부러 간 것입니다.

이곳에 도착한 예후는 아하시야의 형제들을 만나서 그들이 누구인지 묻습니다. 그러자 자신들을 아하시야의 형제들이라고 소개하며, 왕의 아들들과 태후의 아들들에게 샬롬의 인사를 하러 간다고 대답합니다.

여기서 왕과 태후는 요람과 이세벨을 말합니다. 이들은 아직 요람과 이세벨과 아하시야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지 못한 것입니다. 이 것을 보면 예후는 이들에 대한 소식을 먼저 듣고 반역의 소식이 알려지기 전에 미리 아하시야의 형제들, 즉 이세벨의 자손들을 죽이기 위해 온 것입니다. 여기서도 ‘샬롬’이란 인사가 등장합니다. 예후의 이야기에서 ‘샬롬’이란 인사는 항상 죽음의 인사였는데 여기서도 예외는 아닙니다. 신분을 확인하자마자 예후는 이들을 모두 사로잡아 ‘벤에케드’의 웅덩이에서 42명이나 되는 이들을 모두 죽입니다. 여기서도 후렴구처럼 한 사람도 남기지 않았다고 설명합니다.

 

사마리아에 있는 아합의 신하들을 진멸함(15-17)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는 말로 모든 활동을 얼마든지 정당화할 수 있는 연약한 자들입니다. 분별없는 열정이나 이기적인 야망과 결합된 열심을 잘 점검하여, 동기와 결과만으로 불의한 과정을 정당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15예후가 거기에서 떠나가다가 자기를 맞이하러 오는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을 만난지라 그의 안부를 묻고 그에게 이르되 내 마음이 네 마음을 향하여 진실함과 같이 네 마음도 진실하냐 하니 여호나답이 대답하되 그러하니이다 이르되 그러면 나와 손을 잡자 손을 잡으니 예후가 끌어 병거에 올리며 16이르되 나와 함께 가서 여호와를 위한 나의 열심을 보라 하고 이에 자기 병거에 태우고 17사마리아에 이르러 거기에 남아 있는 바 아합에게 속한 자들을 죽여 진멸하였으니 여호와께서 엘리야에게 이르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15-17)

 

사마리아로 가는 도중 예후는 자신을 만나기 위해 나온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을 만납니다. 레갑이 어떤 사람인지 분명하진 않지만, 예레미야에 따르면 레갑 족속은 레갑의 아들 요나답이 이들에게 남긴 말을 철저히 순종하는 사람들로 매우 긍정적으로 그려집니다. 하지만 그 전에 레갑이 어떤 사람인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여호나답은 예후와 동맹을 맺은 첫 번째 인물입니다. 여호나답과 사마리아로 간 예후는 거기서도 남아 있는 아합의 사람들을 모두 죽입니다. 이런 예후의 행동에 대해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해 말씀하신 것을 성취한 것으로 해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비심 없는 철저한 예후를 통해 아합 가문에게 내리신 심판 예언을 모두 실행하셨습니다. 우리는 예후의 무자비함을 두려워하지만, 이런 예후를 심판자로 선택하시고, 이를 통해 죄인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예후의 개혁과정에 권력을 향한 이기적 야망이 숨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합 가문의 가혹한 통치를 배경으로 본문을 일어야 하며, ‘이르신 말씀과 같이 되었다’는 저자의 해석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불의한 권력은 반드시 심판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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