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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10-02)


예후의 업적과 평가

열왕기하 10장 18-36절


 

한 번뿐인 이생을 후회 없이 살 수 있다면 행복한 일입니다. 언젠가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서 냉정하고 준엄한 시각으로 성취와 과오를 평가받게 될 것입니다. 빛과 그림자를 모두 갖고 있는 예후의 삶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 아합의 아들 요람을 죽이면서 시작된 예후의 아합 왕가 심판은 아합의 아들 70명을 죽이고, 이스르엘에서 아합 왕가에서 권력과 부를 누리던 귀족들과 권문세가들을 모두 죽이고, 사마리아로 내려가 그곳에 남아 있던 아함에게 속한 모든 자들을 죽이는 데까지 이어졌습니다. 예후의 살육은 마지막 대상인 바알 숭배자들에게로 향하고 있습니다.

 

바알을 섬기는 자를 죽이기 위한 준비(18-24)

지도자의 기도와 말씀은 백성들이 여호와께서 하신 큰일을 기억하게 합니다. 그때 여호와를 경외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섬길 수 있고, 악을 행하여 멸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도자가 선하고 의로운 도를 전하며, 기도 쉬는 죄를 범하지 않도록 돕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18예후가 뭇 백성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되 아합은 바알을 조금 섬겼으나 예후는 많이 섬기리라 19그러므로 내가 이제 큰 제사를 바알에게 드리고자 하노니 바알의 모든 선지자와 모든 섬기는 자와 모든 제사장들을 한 사람도 빠뜨리지 말고 불러 내게로 나아오게 하라 모든 오지 아니하는 자는 살려 두지 아니하리라 하니 이는 예후가 바알 섬기는 자를 멸하려 하여 계책을 씀이라 20예후가 바알을 위하는 대회를 거룩히 열라 하매 드디어 공포되었더라 21예후가 온 이스라엘에 사람을 두루 보냈더니 바알을 섬기는 모든 사람이 하나도 빠진 자가 없이 다 이르렀고 무리가 바알의 신당에 들어가매 바알의 신당 이쪽부터 저쪽까지 가득하였더라 22예후가 예복 맡은 자에게 이르되 예복을 내다가 바알을 섬기는 모든 자에게 주라 하매 그들에게로 예복을 가져온지라 23예후가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과 더불어 바알의 신당에 들어가서 바알을 섬기는 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살펴보아 바알을 섬기는 자들만 여기 있게 하고 여호와의 종은 하나도 여기 너희 중에 있지 못하게 하라 하고 24무리가 번제와 다른 제사를 드리려고 들어간 때에 예후가 팔십 명을 밖에 두며 이르되 내가 너희 손에 넘겨 주는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도망하게 하는 자는 자기의 생명으로 그 사람의 생명을 대신하리라 하니라(18-24)

 

아합 왕가와 연관된 모든 사람을 죽이고 확실히 왕권을 장악한 예후는, 어느 날 자신이 바알을 섬기겠다고 선언합니다. 그것도 아합이 섬긴 것과 비교해서 자신은 더 많이 섬길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자신이 왕이 된 기념으로 바알을 위해 큰 제사를 지낼 것이니 바알의 모든 선지자들과 바알을 섬기는 모든 자들과 모든 제사장들을 자신에게 불러오라고 명령합니다. 한 사람도 빠지지 말고 와야 하고, 빠지는 사람은 죽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습니다.

 

이런 예후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대해 열왕기 화자는 예후가 바알 섬기는 자들을 멸망시키기 위해서라고 해설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바알을 위한 성회를 열겠다고 공표한 예후는 사람들을 보내어 바알을 섬기는 자들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불러 모았습니다. 여기서 ‘바알을 섬기는 자’란 단순한 예배자가 아니라 바알 신전이나 신당에서 일정한 직분을 가지고 일하는 봉사자들을 말합니다. ‘한 명도 남겨진 사람이 없다’는 표현은 예후가 철저하게 바알을 섬기는 자를 죽이려고 계획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바알을 섬기는 자들을 바알 신당에 모두 불러 모으니 그들이 바알 신당을 가득 메웠습니다. 이는 북이스라엘에서 바알 숭배가 얼마나 성행했는지를 보여줍니다. 바알 신앙이 이렇게 부흥하게 된 원인은 이세벨이 아합과 결혼하면서 바알 선지자들을 들여온 탓이었습니다. 그녀는 이스라엘에 들어오자 사마리아에 바알 신전을 지었고,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를 후원하며 바알 신앙을 이스라엘 땅에 전파하는 데 열성을 다하였습니다. 대신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일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나라 이스라엘에서 여호와 신앙은 점차 잊히고 바알 신앙이 부흥하게 된 것입니다. 아합과 이세벨은 이 때문에 하나님께 혹독한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바알을 섬기는 자들을 신당에 모두 몰아넣은 예후는 이들에게 예복을 주라고 명령합니다. 여기서부터 독자들과 바알을 섬기는 자들 사이에 지식의 차이로 인한 아이러니가 발생합니다. 예후가 이들에게 예복을 주고 바알을 섬기는 자들에게 여호와의 종은 한 명도 여기 있지 못하도록 내보내라고 말할 때, 바알을 섬기는 자들은 예후가 자신들을 특별하게 생각해서 예복을 주고, 제사에 부정이 타는 것을 방지하고 바알만을 섬기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여호와의 종들을 모두 내보내라고 말한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를 통해 이들은 예후가 정말 바알 숭배자가 되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이들은 예후가 시키는 대로 행동하며 예후를 믿었습니다. 그러나 화자를 통해 예후의 의도를 알고 있는 독자는 이 모든 행동이 바알을 섬기는 자들만을 따로 구분하여 죽이려고 준비하는 작업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후는 매우 교묘한 방법으로 바알을 섬기는 자들만 분리하여 한꺼번에 죽이기 쉬운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23절에서 보면 예후가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과 같이 움직이는데, 여호나답은 15절에서 예후를 따르기로 결심한 후 예후의 종교개혁을 돕는 가장 핵심적인 인물이 됩니다. 16절에서 보듯이 예후와 여호나답은 여호와를 위한 열심'이란 부분에서 서로 마음이 일치하였습니다. 예후는 바알 숭배자들이 아무 의심 없이 번제와 다른 제사들을 드리기 위해 신당으로 들어갈 때, 따로 80명의 병사들을 불러 신당 밖에 두고, 그들에게 신당에 있는 사람들을 한 사람도 도망가지 못하게 하라고 엄히 당부합니다. 그들 손에 넘겨준 자를 도망가게 한 사람은 자신의 생명으로 대신해야 한다는 무서운 명령을 내립니다. 이렇게 예후는 바알을 섬기는 자들을 잡을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신당으로 들어갔으며,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른 채 바알에게 제사 드리는 데만 전념하였습니다.

 

바알을 섬기는 자들을 죽이고 바알 신당을 부숨(25-28)

악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맞서야할 전략의 중요성을 볼 수 있습니다. 삶의 영역들을 철저히 평가하고, 부족하거나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 반성해서 제대로 살아갈 것을 수립해야합니다. 예후가 주도면밀하고 은밀하게 바알 숭배자들을 척결할 전략을 세웠던 것처럼, 지금 이 악한 시대에 맞서기 위해 신중하고 지혜로운 전략을 가지고 있어야겠습니다.

 

25번제 드리기를 다하매 예후가 호위병과 지휘관들에게 이르되 들어가서 한 사람도 나가지 못하게 하고 죽이라 하매 호위병과 지휘관들이 칼로 그들을 죽여 밖에 던지고 26바알의 신당 있는 성으로 가서 바알의 신당에서 목상들을 가져다가 불사르고 27바알의 목상을 헐며 바알의 신당을 헐어서 변소를 만들었더니 오늘까지 이르니라 28예후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중에서 바알을 멸하였으나(25-28)

 

드디어 바알을 위한 제사 드리기를 마치자, 예후는 병사들에게 안으로 들어가서 한 사람도 나가지 못하게 하고 다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예후의 명령을 받은 호위병과 지휘관은 칼로 그들을 죽여 밖에 던졌습니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바알 신전이 있는 도시로 가서 바알 신전의 주상들을 끌어내서 불태워버립니다. 바알의 목상과 신전을 헐어버리고, 그곳에 화장실을 두었습니다. 이것은 그 장소를 부정한 곳으로 만들어 다시는 신당이나 제단을 세울 수 없도록 하는 조치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대변은 부정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수많은 바알 숭배자들이 바알을 위해 성대한 제사를 드리고 기도를 올렸지만, 바알은 자신의 종들은 물론이고 자신의 집과 신상도 지키지 못하고 있으며, 바알을 섬긴 사람들은 바알에게 아무도 구원받지 못하고 바알 때문에 죽임을 당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바알이 참 신이 아니라 한낱 나무 기둥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바알이 진정한 신이라면 이런 재앙에서 자신의 숭배자들을 구원했을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선지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섬기는 우상들이 여호와의 심판의 날에 너희를 구원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예후는 이스라엘 안에서 바알을 완전히 제거하였습니다.

 

예후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과 한계(29-31)

오늘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경우에만 하나님의 뜻을 좇는 것을 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그 마음에 영적인 변화 없이 사는 자일 것입니다. 그들은 마음이 강퍅하여져서 형식만을 고집합니다.

 

29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 곧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에서는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30여호와께서 예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나보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되 잘 행하여 내 마음에 있는 대로 아합 집에 다 행하였은즉 네 자손이 이스라엘 왕위를 이어 사대를 지내리라 하시니라 31그러나 예후가 전심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며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29-31)

 

이 단락은 예후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입니다. 29절과 31절에서 반복되는 것은 비록 예후가 바알을 이스라엘 안에서 완전히 제거하였지만, 여로보암의 죄, 즉 단과 벧엘에 있는 황금 송아지를 섬기는 죄에서는 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여로보암 이후부터 내재적으로 깊게 가지고 있는 죄악이기 때문에, 이것이 죄인지 아닌지도 구분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바알은 후대에 외부에서 들여온 신이기에 우상숭배로 규정하고 제거하기 쉬웠지만, 몇 백 년 동안 북 이스라엘 역사와 함께 이어져 온 잘못된 여호와 종교는 개력 자체가 불가능해진 상태였던 것입니다. 결국 이런 잘못된 여호와 종교는 북이스라엘이 멸망할 때까지 버리지 못하여 결국 북이스라엘이 멸망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됩니다. 한 번 잘못 형성된 관습이 교회와 공동체 안으로 들어왔을 때, 이것을 없애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보여주는 예입니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예후의 아합 가문 심판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조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후가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한 것과 하나님 마음에 들게 아합 집에 행한 것을 칭찬하십니다. 우리가 볼 때 예후가 아합 집에 대해 너무 가혹하게 한 것은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만, 예후가 아합 집에게 행한 것은 여호와의 전쟁이 있습니다. 가나안의 우상과 그 거주민을 진멸하였듯이, 에후는 아합 집과 그 우상을 제거하는 진멸 전쟁을 수행한 것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않았다’는 말이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순종에 대한 축복으로 하나님께서는 예후에게 4대 동안 왕위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다만 다윗과 같이 영원한 왕좌를 약속하지 않으신 것은 여로보암의 죄를 제거하지 않은 한계 때문입니다.

 

예후의 남은 업적과 죽음(32-36)

평가에 따른 축복과 저주는 언약이지 기복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심으로 찾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려고 하기보다 오늘도 자신을 위해서 행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먼저 바라보는 신실함으로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신실한 자들을 통해서 일하시고, 우리 사회를 아름답게 만들어 가십니다.

 

32이 때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서 땅을 잘라 내기 시작하시매 하사엘이 이스라엘의 모든 영토에서 공격하되 33요단 동쪽 길르앗 온 땅 곧 갓 사람과 르우벤 사람과 므낫세 사람의 땅 아르논 골짜기에 있는 아로엘에서부터 길르앗과 바산까지 하였더라 34예후의 남은 사적과 행한 모든 일과 업적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35예후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사마리아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36예후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린 햇수는 스물여덟 해이더라(32-36)

 

예후의 남은 업적에서 중요한 것은 아람의 하사엘의 공격으로 이스라엘이 요단 동편 지역을 모두 아람에게 빼앗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33절에 언급된 지역은 요단 동면 지역 전부입니다. 열왕기 저자는 예후가 여로보암의 죄를 완전히 제거하지 않은 것에 대의 이스라엘에 내린 벌이라고 해석합니다. 신명기 3:12-13을 보면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않은 벌로 아람의 손에 넘겨주신 것입니다. 34-36절은 죽음 공식으로 예후는 평안히 조상의 묘실에 안장 되고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왕위를 잇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평가와 하나님의 평가는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역사의 평가를 두려워하면서 절제하고 지혜롭고 진취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 나라 역사에서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까? 세상이 기억할 만한 성취가 하나님 나라에서는 어떤 의미로 남을 것 같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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