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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09-03)


이세벨의 비참한 최후

열왕기하 9장 27-37절


 

역사적인 교훈으로 악한 자는 언젠가는 심판을 받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권력과 재물, 정욕에 눈멀어 자신을 성찰하지 못합니다. 훗날 심판이 임하고 나서야 비로소 후회와 희한으로 가슴을 칩니다. 악인들의 비참한 말로를 보며 얻어야 할 교훈은 무엇입니까? 그러므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여 징벌로 향하는 길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 예후는 요람에 이어 남조 유다의 왕 아하시야를 뒤따라가 죽이고 이세벨을 죽이기 위해 이스르엘로 돌아옵니다. 자신을 맞이하는 이세벨을 보며 그녀를 던져 죽이라고 명령하였고, 그녀의 내시들이 그녀를 던져 죽입니다. 그리고 이세벨의 시체를 개들이 먹음으로 엘리야의 예언이 성취됩니다.

 

유다 왕 아하시야를 죽인 예후(27-29)

종종 세상에서 오늘 충성하던 사람이 내일은 배반하는 모습을 봅니다. 죄인과 손을 잡고 살아가면 주변 사람들은 그러한 모습을 눈여겨봅니다. 그리고 어느 한 순간에 주변 사람들이 배신하여 그동안 누렸던 영화와 권력이 한 순간에 사라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7유다의 왕 아하시야가 이를 보고 정원의 정자 길로 도망하니 예후가 그 뒤를 쫓아가며 이르되 그도 병거 가운데서 죽이라 하매 이블르암 가까운 구르 비탈에서 치니 그가 므깃도까지 도망하여 거기서 죽은지라 28그의 신복들이 그를 병거에 싣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다윗 성에서 그들의 조상들과 함께 그의 묘실에 장사하니라 29아합의 아들 요람의 제십일년에 아하시야가 유다 왕이 되었었더라(27-29)

 

예후가 이스라엘 왕 요람을 죽이면서 아합과 이세벨의 우상숭배와 악행 때문이라고 언급하는 것을 들은 아하시야는 자신의 어머니 아달랴가 요람의 형제이자 아합과 이세벨의 딸이므로, 자신도 아합 가문 사람으로 간주하여 죽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달랴가 유다 왕과 결혼한 이후 유다와 이스라엘은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아합 가문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열왕기 저자는 유다 왕 여호람과 아하시야에 대해 아합 집과 같다고 하며 악한 왕으로 평가하였습니다. 예후의 입장에선 자신이 아하시야의 삼촌 요람을 죽였기에 자신을 공격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아하시야도 죽이려고 한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하시야는 일단 할머니 이세벨이 있는 사마리아로 도망하기 위해 사마리아로 가는 남쪽 길인 벧하간 길로 도망합니다. 하지만 요람을 죽인 후 전력으로 쫓아오는 예후에게 결국 이스르엘에서 대략 16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이블르암에서 따라잡히게 되었고, 그곳에서 예후와 싸우다 중상을 입게 됩니다. 그러자 아하시야는 사마리아로 가려던 계획을 바꿔 므깃도로 도망갑니다. 므깃도는 이블르암 북서쪽에 위치하여 사마리아와는 거의 반대 방향에 있었습니다. 아하시야는 므깃도로 무사히 도망하지만, 예후와의 전투에서 입은 부상을 회복하지 못하고 그곳에서 죽었습니다. 그의 부하들은 시신을 병거에 싣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다윗 성에 있는 조상들의 묘실에 장사합니다. 아하시야가 조상의 묘실에 장사된 모습은 여호람의 시신이 나봇의 밭에 버려진 것과 대조를 이룹니다. 여호람은 죽어서까도 평안을 누릴 수 없었지만, 아하시야는 그나마 죽어서는 평안을 누리게 되었고, 이것은 하나님께서 다윗 가문에게 내린 특별한 은혜 때문입니다.

 

이세벨을 죽인 예후(30-33)

인간의 진정한 위엄한 기품은 화장을 하고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한다고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돈도 권력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하고 피조물과 그 백성의 자리를 지킬 때 존귀한 하나님의 형상을 누릴 수 있습니다. 비로써 주의 나라를 혼란과 부패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던 장본인이 제거되고 새로운 전기를 맞습니다. 심판의 손길은 단호하고 분명합니다.

 

30예후가 이스르엘에 오니 이세벨이 듣고 눈을 그리고 머리를 꾸미고 창에서 바라보다가 31예후가 문에 들어오매 이르되 주인을 죽인 너 시므리여 평안하냐 하니 32예후가 얼굴을 들어 창을 향하고 이르되 내 편이 될 자가 누구냐 누구냐 하니 두어 내시가 예후를 내다보는지라 33이르되 그를 내려던지라 하니 내려던지매 그의 피가 담과 말에게 튀더라 예후가 그의 시체를 밟으니라(30-33)

 

이블르암에서 아하시야에게 치명상을 입힌 예후는 더 이상 도망가는 아하시야를 뒤 쫓지 않고 뒤돌아 다시 이스르엘로 진격합니다. 그의 최종 목표가 이세벨이며 이세벨을 죽이는 것이 중상 입은 아하시야의 숨통을 끊는 것보다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예후가 이스르엘 왕궁으로 돌아왔을 때, 이세벨은 눈 화장을 하고 머리를 꾸미고, 왕궁의 창에 서서 이스르엘 왕궁으로 다가오는 예후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이런 이세벨의 행동은 최대한 태후로서의 위엄을 드러내기 위한 행동이며, 그녀의 자신만만하고 강한 성격을 잘 보여줍니다. 그녀는 끝까지 물러서지 않고 자신을 죽이러 오는 예후에 맞섭니다. 예후가 왕궁 문으로 들어오자 그를 향하여 ‘주인을 죽인 너 시므리여 평안하냐’고 묻습니다. 또 다시 ‘평안하냐’는 질문이 등장합니다. 요람이 예후를 만났을 때도 제일 먼저 한 질문이 ‘평안하냐’이었습니다. 그 역시 이 질문을 끝으로 예후의 손에 죽었습니다. 이세벨도 동일한 질문을 하며 예후를 맞이합니다. 이것은 이 상황이 전혀 평안하지 않다는 것을 드러내는 반어적 표현입니다. 여기서 이세벨이 예후를 시므리로 불렀는데, 시므리는 바아사에게 반역을 일으켰지만 겨우 7일 동안만 이스라엘의 왕위에 있다가 오므리가 반란을 일으키자 왕궁에 불을 지르고 죽은 인물입니다(열왕기상 16:15-18). 이것은 오므리 왕조에 반란을 일으킨 예후의 운명이 오므리 왕조의 반란으로 7일이란 짧은 시간 동안만 왕을 한 시므리의 운명과 같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세벨은 이 이름을 통해 예후를 조롱하고 저주하고 있습니다. 이세벨의 목소리를 들은 예후는 이세벨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이세벨이 있는 창을 올려보며 자신의 편에 설 자가 누구냐고 묻습니다. 예후는 ‘누구냐’를 반복하면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편에 서라고 독촉합니다. 이것은 매우 자신만만한 모습이며, 이세벨이 아무리 위엄 있는 듯이 행동해도 이미 상황은 자신에게 기울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내시 두세 사람이 테라스에서 이런 예후의 모습을 내려다보았고, 예후는 그들에게 이세벨을 밑으로 던지라고 명령합니다. 그러자 이세벨 곁에서 있던 내시들은 예후의 명령을 따라 이세벨을 밑으로 던져버립니다.

조금 전까지 자신을 주인으로 섬기며 수종을 들던 사람들이 갑자기 돌변하여 예후를 주인으로 여기고, 그의 명령을 따라 자신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아마 이세벨의 입장에서 예후의 반란보다 자신 곁에서 입의 혀처럼 굴던 하인들의 배신이 더 뼈아팠을 것입니다. 그녀의 피가 담과 말에까지 튀었다는 것은, 그녀가 창밖으로 내던져져 매우 비참하고 끔찍한 최후를 맞이했음을 뜻합니다. 더 나아가 예후는 그녀의 시체를 밟았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북이스라엘에 바알 신앙을 퍼뜨리고, 여호와의 선지자를 죽이며, 온 이스라엘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고, 그 영향력을 남유다까지 퍼지게 한 이세벨 왕비는 이렇게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었습니다.

 

이세벨에 대한 예언이 성취됨(34-37)

잘못된 옛 유산을 청산하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고 악을 답습하며 패역의 길을 갈 수도 있습니다. 역사적 기로에 섰을 때, 지도자와 공동체는 신중하고 바른 선택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의와 정의를 바르게 세워야 합니다.

 

34예후가 들어가서 먹고 마시고 이르되 가서 이 저주 받은 여자를 찾아 장사하라 그는 왕의 딸이니라 하매 35가서 장사하려 한즉 그 두골과 발과 그의 손 외에는 찾지 못한지라 36돌아와서 전하니 예후가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그 종 디셉 사람 엘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라 이르시기를 이스르엘 토지에서 개들이 이세벨의 살을 먹을지라 37그 시체가 이스르엘 토지에서 거름같이 밭에 있으리니 이것이 이세벨이라고 가리켜 말하지 못하게 되리라 하셨느니라 하였더라(34-27)

 

이렇게 이세벨을 죽인 예후는 이세벨의 시체를 그대로 두고 왕궁으로 들어가 먹고 마시며 잔치를 즐깁니다. 그는 일부러 이세벨을 장사 지내는 것을 지연시키며, 그녀의 비참한 죽음을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알렸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잔치를 하던 중, 예후는 갑자기 생각난 것처럼, 이세벨을 장사 지내라고 명령합니다. 그는 이세벨을 저주받은 여자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저주대로 처벌받은 여자라는 의미입니다. 저주받은 여자이지만, 장사 지내주는 것은 그녀가 왕의 딸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예후는 이세벨을 이스라엘의 왕비로 보지 않고 이방 나라의 공주로 부르며 경멸하고 있습니다. 예후의 명령을 받은 사람들이 이세벨을 장사하려고 이세벨의 시신을 찾았지만, 그들은 두개골과 두 발과 두 손밖에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예후가 먹고 마시며 잔치를 벌인 사이에 이세벨의 시신은 짐승들에 의해 훼손되고 유실되었던 것입니다 이세벨은 죽은 후에도 시신이 먹히는 성경 역사상 가장 끔찍한 저주를 받은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이 말을 예후에게 전하자, 예후는 이런 이세벨의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해 예언하신 말씀이 것이라고 평가합니다.

이스르엘의 토지에서 개들이 이세벨의 살을 먹을 것이라는 예언은 열왕기상 21:23에 나옵니다. 하지만 37절에서 ‘그 시체가 이스라엘 토지에서 거름같이 밭에 있으리니 이것이 이세벨이라고 가리켜 말하지 못하게 되리라 하셨느니라’는 예언에 없는 말이며, 이것은 엘리야의 예언을 예후가 해석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즉, 이세벨의 시신이 산산이 부서지고 없어져 이스르엘 땅에 거름처럼 흡수되고, 이세벨의 흔적이 이스라엘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예후는 개가 먹을 것이란 엘리야의 저주를 이세벨의 존재가 이스라엘 땅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이것은 악인의 이름이 기억되지 않고 사라지는 벌을 받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여호와를 대적하는 일에 앞장섰던 이국의 공주이며 철저한 바알 신봉자였던 이세벨은 여호와께서 내린 심판을 받고 역사상 가장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되었습니다.

여호와의 대적은 시스라처럼, 이세벨처럼, 아합처럼, 이렇게 하나님께 심판을 받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후라는 인물이 상당히 단호한 성격의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여호와의 선택을 받은 이후 아합 가문의 사람들을 죽이는 데 조금도 망설이거나 자비를 베풀지 않았습니다. 이런 예후의 성격이 하나님께서 아합 가문을 심판하는 데 적합했기 때문에, 그를 아합 가문의 심판자로 이스라엘의 왕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이 땅도 부패한 권력을 단죄하고 새로운 역사를 시작한 가선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지금도 죄악들을 청산하고 일소하여 정의와 인애에 기초한 사회를 세울 전기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생명과 평화, 정의의 가치가 개인과 공공의 삶에 반영될 수 있도록 역할을 다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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