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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08-02)


아합의 집을 따른 유다 왕들

열왕기하 8장 16-29절


 

하나님 나라를 구하며 사는 길은 좁은 길이어서 찾는 이가 적지만,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넓어 들어가는 자가 많습니다. 유다 왕 여호람과 아하시야는 쉽고 편한 길을 선택하였으며, 그 귀결은 비참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는 결국 어떤 길을 가게 되겠습니까?

 

  • 열왕기상 19장부터 엘리야의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열왕기의 전형적인 문학 형식이 깨지고, 엘리야와 엘리사의 시작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그런데 열왕기하 8장 16-24절에서 유다 왕 여호람의 통치 이야기는 전형적인 등극 공식과 죽음 공식을, 다음 왕 아하시야는 전형적인 등극 공식을 보여줍니다. 이는 엘리야와 엘리사 이야기를 하던 중간에서 시대적 배경을 좀 더 분명하게 하기 위해 엘리사 당시 유다 왕들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집어넣은 것입니다.

 

유다 왕 여호람의 통치(16-23)

하나님 앞에서 ‘연합’은 그 자체로 정당화하지 않습니다. 무슨 가치를 위한 것인지에 따라 더 큰 악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몸집을 키워 권력을 누리는 데만 여념이 없는 뒤틀린 이합집산은 또 하나의 바벨탑을 쌓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6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아들 요람 제오년에 여호사밧이 유다의 왕이었을 때에 유다의 왕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이 왕이 되니라 17여호람이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삼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팔 년 동안 통치하니라 18그가 이스라엘 왕들의 길을 가서 아합의 집과 같이 하였으니 이는 아합의 딸이 그의 아내가 되었음이라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19여호와께서 그의 종 다윗을 위하여 유다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그와 그의 자손에게 항상 등불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음이더라(16-19)

 

이 단락은 유다 왕 여호람의 등극 공식으로, 그가 등국할 당시에 북이스라엘 왕은 아합의 아들 요람이며 요람이 통치한 지 5년 되던 해 왕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교차적으로 서로의 왕을 언급하여 연대기적 정보를 주고 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여호람이 등극할 당시 그의 아버지인 여호사밧이 여전히 살아 있었고 왕이었습니다. 여호사밧이 섭정 왕으로 물러나면서 아들인 여호람에게 왕위를 물려주었고, 실제적인 통치는 여호람이 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에선 여호사밧과 여호람을 모두 왕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람이 왕이 되었을 때의 나이는 32세이며, 레위인의 경우 제사장직을 수행할 수 있는 성인이 되었다고 인정되는 나이인 30세를 넘겼습니다.

여호사밧은 여호람이 성인으로서 왕이 되기에 충분한 나이가 되자 그를 왕으로 세운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8년을 통치합니다. 여호람은 그리 오래 살지는 못했는데, 열왕기 신학에서 왕들의 이른 죽음은 여호와의 심판 중 하나입니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것은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입니다. 여호람이 악하다고 평가받는 이유는 아합 가문이 행한 것처럼 행했기 때문입니다.

북이스라엘의 악함의 기준이 이전에는 여로보암이 단과 벧엘에 황금 송아지를 만들고, 이것을 여호와 대신 섬긴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합의 우상숭배와 불의가 더 악했기 때문에, 새로운 악함의 기준으로 등장했습니다. 유다 왕 여호람이 북이스라엘의 아합 집처럼 행한 이유는 그가 아합과 이세벨의 딸인 아달랴와 결혼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아달랴와 결혼하면서 북이스라엘의 우상숭배를 따라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선 유다의 집을 아합의 집을 멸망시키는 것처럼 멸망시키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셨습니다. 다윗에게 그의 자손들에게 항상 등불을 주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등불은 이스라엘에서 종종 생명과 번영을 비유적으로 상징했습니다. 즉 등불을 주셨다는 말은 다윗 왕가가 계속해서 지속되고 번영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는 뜻이며, 이는 사무엘하 7장에서 나단을 통해 다윗에게 주셨던 약속과 연결됩니다. 이 말은 현재 유다의 상황도 북이스라엘의 상황과 별반 다를 것이 없지만, 다윗과의 약속 때문에 유다를 참아주지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유다 왕 여호람의 행적과 죽음(20-24)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약속하신 것은 변치 않으십니다. 항상 그 약속을 기억하고 있으며 그 약속을 따라 변치 않는 사람으로 사람들을 대하십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 앞에 조아리게 하는 유일한 이유입니다.

 

20여호람 때에 에돔이 유다의 손에서 배반하여 자기 위에 왕을 세운 고로 21여호람이 모든 병거를 거느리고 사일로 갔더니 밤에 일어나 자기를 에워싼 에돔 사람과 그 병거의 장관들을 치니 이에 백성이 도망하여 각각 그들의 장막들로 돌아갔더라 22이와 같이 에돔이 유다의 수하에서 배반하였더니 오늘까지 그러하였으며 그 때에 립나도 배반하였더라 23여호람의 남은 사적과 그가 행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4여호람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조상들과 함께 다윗 성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아하시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20-24)

 

이 단락은 여호람의 대표적 행적을 언급하는데, 여호람 때에 에돔이 유다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왕을 세웠습니다. 사무엘하 8장에 따르면, 다윗이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사람 만 팔천 명을 죽이고 에돔에 수비대를 두면서 에돔을 속국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면서 사무엘서 기자는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다고 평가합니다. 즉, 다윗이 에돔을 속국으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은 여호와를 성실하게 따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호람 때 에돔이 속국에서 벗어나 독립했다는 것은 여호람의 범죄 때문에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주셨던 호의를 거두셨다는 의미입니다.

다윗이 승승장구하고 그가 참여한 모든 전쟁에서 승리하며 이스라엘을 크게 번성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여호와 앞에서 신실하였고,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셨기 때문일 뿐 다윗 자신의 능력이 출중해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사람들이 보기에 성공으로 보이는 결과가 나오면 하나님보다는 그 사람 자신에게 능력이나 비법이 착각하여 그 비법을 배우려고만 합니다. 하지만 여호와 앞에 신실하게 살면서 여호와와 동행하는 것이 다윗이 형통할 수 있었던 유일한 비법이었습니다.

 

여호람은 에돔의 배신을 응징하고 다시 되찾기 위해 모든 병거를 모아 사일로 갑니다. 그리고 자신을 에워싸고 있던 에돔 군사들과 병거들을 밤에 기습하여 전쟁을 일으킵니다. 이 문장은 여호람이 적극적으로 전쟁을 지휘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결과는 완전한 패배였습니다.

군사들은 모두 흩어져 각자 집으로 도망가기에 바빴습니다. 여호람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도 여호람을 돕지 않았기에, 이전에 누리던 영화가 하나둘씩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에돔은 유다의 통치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습니다(22). 또한 여호람 때 립나도 유다에게 반역을 일으켰습니다. 립나는 여호수아 10:30에서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 시에 싸워 점령한 지역인비다. 그런데 오랫동안 점령지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던 립나도 독립하려고 반역하였습니다. 여기서 립나와 에돔이 같은 시기에 반역하였다는 것을 강조하여 여호람 때 유다의 힘이 매우 약화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더는 유다를 지키지 않으셨음을 의미합니다.

23-24절은 죽음 공식입니다. 여호람 왕에 대한 기록은 에돔과의 전쟁이 전부입니다. 여호람을 이어서 그의 아들 아하시야가 유다의 왕이 되었습니다.

 

유다 왕 아하시야의 행적(25-29)

하나님께서는 악을 근절하기 위해 심판을 치밀하게 계획하고 실행하십니다. 당장은 악이 이기는 것처럼 보일 수 있고, 심판을 잘 피해 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한순간도 잊지 않고 심판을 준비하십니다.

 

25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아들 요람 제십이년에 유다 왕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니 26아하시야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일 년을 통치하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달랴라 이스라엘 왕 오므리의 손녀이더라 27아하시야가 아합의 집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니 그는 아합의 집의 사위가 되었음이러라 28그가 아합의 아들 요람과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아람 왕 하사엘과 더불어 싸우더니 아람 사람들이 요람에게 부상을 입힌지라 29요람 왕이 아람 왕 하사엘과 싸울 때에 라마에서 아람 사람에게 당한 부상을 치료하려 하여 이스르엘로 돌아왔더라 유다의 왕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가 아합의 아들 요람을 보기 위하여 내려갔으니 이는 그에게 병이 생겼음이더라(25-29)

 

25-26절은 유다 왕의 등극 공식입니다. 여호람이 죽은 후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고, 왕이 될 때 나이는 22세였습니다. 그의 통치 기간은 1년에 불과했습니다. 유다의 다른 왕들처럼 어머니 이름이 소개되고 있는데, 아하시야의 어머니는 아달랴이며 그녀는 오므리의 손녀, 즉 아합의 딸입니다. 열왕기 저자가 오므리의 손녀로 아달랴를 소개한 것은 오므리 왕이 시작한 결혼 동맹 때문에 우상숭배의 영향이 손녀와 아달랴에게까지 미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므리 왕조의 죄가 유다까지 강하게 영향을 미쳤으며, 그 결과 유다 왕조도 하나님에게서 더욱 멀어지게 된 것입니다.

 

27절은 아하시야에 대한 평가입니다. 아하시야에 대해서도 여호람과 동일한 평가를 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하시야도 가장 악하다고 평가받은 아합의 집과 동일합니다. 그 이유는 아하시야가 아합의 사위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아하시야는 아달랴의 아들이고 아합의 외손자입니다. 여기서 ‘사위’는 ‘사위의 후손’이란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즉, 아하시야가 부정적인 평가를 받게 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어머니 아달랴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여호람과 아하시야 모두 아달랴로 인해 부정적인 평가를 받게 되었는데, 아달랴가 어떤 인물인지는 열왕기하 11장에 나옵니다. 아하시야는 아합의 아들 요람을 돕기 위해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하사엘과 전쟁하였고, 요람이 부상을 입습니다. 그로 인해 전쟁은 중단됩니다. 여기서 요람은 열왕기하 3장에 등장하는 아합의 아들 여호람과 동일한 인물입니다. 요람은 대략 주전 852-841년까지 재위했고, 이때 남유다의 왕은 여호사밧, 여호람, 아하시야였습니다.

이 전쟁에서 북이스라엘 왕 요람은 부상을 입습니다. 아마 아하시야는 북왕조와 아람의 계속되는 갈등 속에서 북왕조를 돕기 위해 참전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서로 친밀했던 것은 아달랴라는 연결의 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하시야와 요람은 외삼촌과 조카 사이입니다. 이렇듯 친밀한 친족 관계라서, 요람이 아람과의 또 다른 전쟁에서 부상을 입자 그를 보기 위해 아하시야가 이스라엘을 방문합니다. 열왕기 저자는 이런 두 왕국의 교류가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고 오히려 아합 왕조의 악한 영향이 남유다까지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합니다. 이것은 오므리와 아합이 바알 선지자인 이세벨을 이스라엘에 들인 죄가 얼마나 큰지 보여주고 있으며, 다음 장에 등장할 오므리 왕조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일은 선택과 태도, 결단으로 나타납니다.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우며 힘을 추구하는 동맹은 분열과 배신과 파멸을 낳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혈연, 지연, 학연을 의지하여 세를 키우는 세상을 본받지 말고, 하나님 앞에 진실하고 정직한 길을 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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