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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06-03)


사마리아 성을 포위한 현실

열왕기하 6장 24절-7장 2절


 

아람 왕 벤하닷이 사마리아를 포위하였는데,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안타깝다 못해 처참하기까지 합니다. 너무나 극단적인 모습이지만 엄연한 현실입니다. 혹 이것이 우리 시대의 모습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 아람과 얽힌 새로운 에피소드가 소개된다. 열왕기하 6:24-7:20은 하나의 단위로 벤하닷이 사마리아 성을 포위한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이 안에 자식을 먹는 이야기, 양식을 찾은 나병 환자의 이야기, 성문을 지키던 관리의 운명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여호람 시대가 아닌 여호아하스 시대의 이야기지만, 여호와의 권능과 무능한 왕이란 주제로 계속 연결되고 있기에 여기에 위치했을 것입니다.

 

아람의 포위로 심각해진 사마리아(24-25)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기에 처절한 아픔을 허락하여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시고 멸망의 길에서 돌이키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이 없어서 백성에게 고난이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백성에게 임할 저주를 분명히 말씀하시고(레위기 26:23-26; 신명기 28:49-57), 저주가 임할 때 자신을 돌아보도록 하셨습니다.

 

24이 후에 아람 왕 벤하닷이 그의 온 군대를 모아 올라와서 사마리아를 에워싸니 25아람 사람이 사마리아를 에워싸므로 성중이 크게 주려서 나귀 머리 하나에 은 팔십 세겔이요 비둘기 똥 사분의 일 갑에 은 다섯 세겔이라 하니(24-25)

 

그 후에는 아람군이 엘리사에게 큰 굴욕을 당한 사건 이후를 말합니다. 아람 왕 벤하닷은 소규모의 습격으로는 이스라엘을 점령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이번에는 전면적인 대규모 공격을 감행한다. 아람의 ‘온 군대’를 모았다는 것은 아람이 사마리아와의 전면전을 선포했다는 의미입니다.

벤하닷은 아람의 전군을 끌고 와 시마리아를 사람들이 드나들지 못하게 완전히 포위했습니다. 이렇게 포위된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사마리아 성안에 극심한 기근이 왔습니다. 기근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화자는 나귀 머리 하나에 은 80세겔이고 비둘기 똥 사분의 1갑에 은 5세겔이나 한다고 말합니다. 나귀 머리는 가장 맛이 없는 요리를 말하는 것으로, 이런 맛없는 요리에 은 80세겔을 주었는데, 한 달 월급이 은 1세겔이고 성인 남성이 서원할 때 내는 값이 50세겔인 것을 감안하면, 음식 한 그릇에 80세겔은 대단히 비싼 값입니다. 비둘기 똥을 식용으로 사용했는지 연료로 사용했는지 분명하진 않습니다. 1갑은 0.5리터 정도이므로 1/4은 125밀리리터 정도 되는 아주 적은 양입니다. 이렇게 적은 양에 은 5세겔을 주어야 할 성도로 사마리아의 물가는 지나치게 높았다고 말합니다. 물가가 이 정도면 거의 사람이 살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왕의 무능(26-30)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고 자비로운 공급자 역할을 중단하시면, 참극이 벌어집니다. 하지만 아무리 극단적인 아픔 속에 있더라도, 하나님을 내 삶의 왕의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그분의 말씀을 덮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현실에 대한 믿음으로 반응한 것도 중요합니다.

 

26이스라엘 왕이 성 위로 지나갈 때에 한 여인이 외쳐 이르되 나의 주 왕이여 도우소서 27왕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를 돕지 아니하시면 내가 무엇으로 너를 도우랴 타작 마당으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포도주 틀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하니라 28또 이르되 무슨 일이냐 하니 여인이 대답하되 이 여인이 내게 이르기를 네 아들을 내놓아라 우리가 오늘 먹고 내일은 내 아들을 먹자 하매 29우리가 드디어 내 아들을 삶아 먹었더니 이튿날에 내가 그 여인에게 이르되 네 아들을 내놓아라 우리가 먹으리라 하나 그가 그의 아들을 숨겼나이다 하는지라 30왕이 그 여인의 말을 듣고 자기 옷을 찢으니라 그가 성 위로 지나갈 때에 백성이 본즉 그의 속살에 굵은 베를 입었더라(26-30)

 

이런 심각한 상황을 살피기 위해 왕이 성 위로 지나가며 시찰할 때, 한 여성이 자신을 도와달라고 외칩니다. 왕은 백성들의 요청을 듣고 일을 해결해주거나 재판을 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에, 백성들은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왕을 찾습니다. 그래서 이 여성이 왕을 부르며 이 상황에서 구원해달라고 간청한 것입니다.

여기서 ‘외치다’는 주로 고난 중에 구원해달라고 외칠 때 사용됩니다. 구원해 달라는 외침을 들은 왕은 여호와께서 돕지 아니하시면 자신은 도울 수가 없다고 대답합니다. 이 백성을 살리고 죽이는 문제에서 자신은 철저히 무능력함을 토로한 것입니다.

‘타작 마당으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포도주 틀로 말미암아 하겠느냐’에서 타작 마당이나 포도주 틀은 풍요의 원천을 가리키며,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이 있어도 여호와께서 곡식을 주시고 포도를 풍성하게 주셔야 타작 마당에서 타작을 하고 포도주 틀에서 포도주를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심각한 기근과 전쟁을 해결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여호와 한 분뿐이며,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여인이 무슨 일 때문에 불렀는지 구체적으로 묻습니다. 이에 대해 다른 여인을 가리키며 이 사람이 오늘은 너의 아들을 잡아먹고 내일은 내 아들을 잡아먹자고 이야기해서 자신의 아들을 삶아 먹었고, 다음날 네 아들을 내놓으라고 하니 자기 아들은 숨겼다는 것입니다. 정말 끔찍한 상황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심한 기근이 있을 때 최후의 수단으로 아이를 잡아먹는 일이 가끔 있었습니다. 이런 참혹한 이야기를 들은 왕은 옷을 찢으며 애도를 표합니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이 재앙의 상황을 애도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기 위해 성에서도 베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신명기 28:53-57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할 벌 가운데 심각한 기근으로 자기 아이를 먹는 재앙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현재 사마리아에서 벌어지는 이런 비인간적이고 끔찍한 일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약소국이기에 일어난 일도 아닙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서 벌어진 비극이며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와 엘리사를 통해서 숱하게 경고하시고 자신의 놀라운 권능을 보여주셨는데도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아서 생긴 결과인 것입니다.

 

엘리사에 대한 분노(31-33)

포위된 성읍에 인간이 살고 있지만 인간성이 사라졌습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자기 자식을 잡아먹다니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아무리 삶이 팍팍해지더라도 하나님이 부여하신 존귀한 주의 자녀로서의 품위와 인간다움은 지켜나가야 합니다.

 

31왕이 이르되 사밧의 아들 엘리사의 머리가 오늘 그 몸에 붙어 있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실지로다 하니라 32그 때에 엘리사가 그의 집에 앉아 있고 장로들이 그와 함께 앉아 있는데 왕이 자기 처소에서 사람을 보냈더니 그 사자가 이르기 전에 엘리사가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이 살인한 자의 아들이 내 머리를 베려고 사람을 보내는 것을 보느냐 너희는 보다가 사자가 오거든 문을 닫고 문 안에 들이지 말라 그의 주인의 발소리가 그의 뒤에서 나지 아니하느냐 하고 33무리와 말을 할 때에 그 사자가 그에게 이르니라 왕이 이르되 이 재앙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왔으니 어찌 더 여호와를 기다리리요(31-33)

 

이스라엘 왕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 참혹한 상황에 처한 것이 엘리사의 책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분노하며 그를 오늘 반드시 죽이겠다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합니다.

 

엘리사가 사마리아로 사로잡아 온 아람 군대를 처리하지 않고 놓아주었기 때문에 아람 왕 벤하닷이 아람 군대가 받은 굴욕을 갚으려고 이처럼 전군을 이끌고 쳐들어온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왕은 엘리사를 죽임으로써 이 재앙으로 인한 죽음의 책임을 모두 엘리사에게 돌리려 합니다.

 

그때 엘리사는 사마리아에 있는 자신의 집에 있었고, 왕은 엘리사를 죽이려고 사람을 보냅니다. 하지만 왕이 보낸 사람이 도착하기 전에 엘리사는 이 사실을 미리 알고 장로들에게 살인자의 아들이 자신을 죽이려고 사람을 보냈다며, 망을 보다가 사람이 오면 문을 닫고 집 안으로 들이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여기서 왕을 ‘살인자의 아들’로 지칭한 것은 일차적으로는 ‘아합 왕의 아들’이란 의미이지만, 그가 곧 살인자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자신을 죽여 화풀이를 하려는 왕에 대해 엘리사는 살인자라고 부른 것입니다.

여기서 엘리사는 왕의 사자에게 죽지 않기 위해 장로들에게 보호해줄 것을 요청합니다. 전에 불만과 불병거의 호위를 받던 엘리사의 모습은 안 보이고, 장로들에게 보호를 요청하는 취약한 엘리사의 모습이 나옵니다. 하지만 불말과 불병거는 없어도 여전히 엘리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었습니다. 엘리사가 말하자마자 왕이 그를 죽이려고 보낸 사자와 함께 도착하였고, 그들은 재앙이 여호와께로부터 왔는데 언제까지 여호와를 기다려야 하냐고 묻습니다. 이것은 더는 기다릴 수 없고 기다리지도 않겠다는 말입니다. 더는 여호와의 말씀을 기다리지 않고 자신의 판단대로 엘리사를 죽이겠다는 뜻입니다. 이는 왕이 스스로 여호와께 대한 소망을 거두었음을 의미합니다.

 

엘리사의 응답과 장관의 불신(7:1-2)

하나님을 향한 기대감이 사라지면 그의 삶은 황폐하게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희망적인 메시지가 전해져도 그것은 현실 앞에 막혀서 들리지 않습니다.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로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한 것입니다. 왕의 장관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면서도 막상 하나님이 도우실 것이라고 하자 믿지 못합니다.

 

1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밀가루 한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고 보리 두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리라 하셨느니라 2그 때에 왕이 그의 손에 의지하는 자 곧 한 장관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하더라 엘리사가 이르되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니라(7:1-2)

 

더는 여호와께 희망을 걸지 않는 왕에게 엘리사는 여호와의 말씀을 전달합니다. 엘리사는 여기서 처음으로 선지자의 신탁 형식으로 여호와의 말씀을 전달합니다.

내일 이맘때 극심한 기근이 해결될 것입니다. 한 스아는 대략 7.3리터이며, 6:25에서 언급된 한 갑의 여섯 배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밀가루 한 스아가 비둘기 똥의 1/20 가격밖에 안 되는 셈입니다. 이 둘을 대조함으로써 양식이 풍성해질 것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왕의 측근인 장관은 이런 엘리사의 말을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 창문을 내신다 해도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비아냥거릴 뿐입니다. 이런 불신앙에 대해 엘리사는 네가 반드시 이 일을 볼 것이지만, 그것을 먹지는 못할 것이라는 심판을 선언합니다.

 

이런 장관의 불신앙적인 모습은 그 시대 이스라엘 백성의 불신앙의 모습을 대표합니다. 분명히 엘리사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씀을 선포했는데도, 고위 관리가 여호와의 말씀을 대놓고 무시한 것입니다. 왕은 물론이고 장관의 이 같은 반응은 그 시대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둔하고 하나님의 권위를 업신여기고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따라서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임을 암시합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모습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악한 세상은 본문이 말하는 대로 변해갈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 백성인 우리는 시대를 거슬러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귀함을 지키고,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과 기대감을 끝까지 붙들고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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