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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05-02)


탐욕으로 망하는 게하시

열왕기하 5장 15-27절


 

작은 불씨가 무섭다는 것은 그것이 불로 발화가 되었을 알 수 있습니다. 산에 던진 작은 불씨가 점점 커져 큰 산불이 되듯이 순간적인 욕심으로 시작한 거짓말이 점점 커져 감당키 어려운 큰 죄가 되기도 합니다. 불은 커지기 전에 꺼야 합니다. 죄도 마찬가지로 시작할 때 멈추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죄가 온 몸을 불사를 때가 있습니다.

 

  • 나아만이 엘리사에게 갔을 때 엘리사는 나와 보지도 않고 시종을 보내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담그면 나을 것이란 말만 전합니다. 나아만이 엘리사의 무례함과, 기대와 달리 너무나 간단한 방법 때문에 화를 내며 돌아가려고 할 때, 또 다시 종의 말을 듣고 요단강에 들어가서 병 고침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병 고침을 받은 나아만은 여호와가 어떤 분인지 알게 되었고 여호와에 대한 신앙고백을 합니다.

 

예물을 거절하는 엘리사(15-16)

견물생심은 죄인의 본성입니다. 사람의 눈을 가리는 가장 짙은 어둠은 재물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마태복음 6:24). 재물은 복이 될 수 있지만 재앙의 근원이 되기도 합니다.

 

15나아만이 모든 군대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의 앞에 서서 이르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청하건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하니 16이르되 내가 섬기는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 앞에서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더라 나아만이 받으라고 강권하되 그가 거절하니라(15-16)

 

엘리사의 말대로 행하여 병이 낫게 된 나아만은 군대를 이끌고 엘리사에게 다시 옵니다. 그때 나아만은 엘리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엘리사 앞에 선 나아만은 이스라엘을 제외한 모든 땅에는 신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나아만은 이전의 교만하고 자기 과시적인 모습에서 변하여 매우 겸손하게 이스라엘에 계신 신만이 진정한 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하며, 자신을 당신의 종'이라고 칭합니다. 나병에서 치유되는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을 맛보자 바로 태도가 바뀐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준비한 예물을 받아달라고 요청합니다. 하지만 엘리사는 자신이 섬기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면서 절대로 그 예물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나아만이 엘리사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예물을 받으라고 강요하다시피 하였지만, 엘리사는 끝끝내 거절합니다.

4장에서 본대로 당시 엘리사나 엘리사의 제자들은 경제적으로 늘 어려웠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왕과 귀족들을 비롯하여 일반 백성들까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선지자 엘리사와 선지자의 제자들을 돌보는 사람도 없었고, 은 몇 개, 떡 몇 덩이를 가져와 하나님의 신탁을 구하는 사람도 별로 없었기에 선지자들은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웠습니다. 엘리야도 늘 쫓겨 다니며 어려운 생활을 했다. 그렇기에 나아만이 주는 어마어마한 예물은 선지자와 선지자 생도들의 삶을 좀 더 편안하고 윤택하게 바꿔줄 수 있었지만, 엘리사는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를 돈과 바꾸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거저 행하라고 명하신 대로 아무것도 받지 않고 하나님의 권능을 행했으며,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믿고 하나님께서 살라고 하신 가난한 삶을 선택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자로서의 합당한 반응을 나타내야 합니다. 하나님만 인정하며 오직 하나님만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부요함을 보지 못하고 이 땅의 재물을 집착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호와만 섬기겠다고 맹세한 나아만(17-19)

새롭게 교회에 출석한 성도들은 넘어지기 쉽습니다. 옛 습관을 버리고, 거룩과 순결로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그들을 조금만 더 배려하고, 더 사랑하며, 더 소중히 여기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결단한 나아만에게 엘리사는 그를 지혜롭게 인도하고 있습니다.

 

17나아만이 이르되 그러면 청하건대 노새 두 마리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물과 다른 희생제사를 여호와 외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18오직 한 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의 신당에 들어가 거기서 경배하며 그가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19엘리사가 이르되 너는 평안히 가라 하니라 그가 엘리사를 떠나 조금 가니라(17-19)

 

엘리사가 완강하게 거절하자 나아만은 엘리사의 말을 따르기로 합니다. 다만 노새 두 마리에 실을 수 있을 만큼 흙을 달라고 요청합니다. 본문에서는 정확하게 그 이유를 말하고 있지 않지만, 흙을 달라고 하면서 이제부터는 다른 신을 위한 번제와 희생 제사를 드리지 않고 오직 여호와만을 위해 제사를 드리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는 여호와의 놀라운 권능을 체험한 순간 여호와만이 참 신이 라는 것을 고백하고 여호와만을 섬기겠다고 말하며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 된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나아만이 여호와께 제사드릴 제단을 만들기 위해 이스라엘의 흙을 가지고 가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고대 근동에서 신들은 각 지역에 묶여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살고 계시는 이스라엘의 흙을 아람으로 가지고 와서 자신이 사는 곳에서도 문제 없이 하나님을 섬기려는 신앙의 발로에서 나온 요청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나아만의 모습은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과 좋은 대조를 이룹니다. 엘리야와 엘리사를 통해 수많은 권능을 보고도 여전히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스라엘의 왕과 지도자들과 백성들과 달리, 나아만은 단 한 번 기적을 체험하고도 하나님만이 참 신이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나아만이 엘리사에게 한 가지 양해를 구하는데, 자신의 주인인 아람 왕이 림몬 신당에 들어가서 절할 때 왕이 자신의 손을 의지하기 때문에, 자신도 림몬 신당에 들어가 절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왕이 자신의 손을 의지한다는 것은 자신이 왕의 오른팔 역할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비록 지금 여호와만을 섬기겠다고 신앙을 고백했지만, 그의 육신의 주인인 아람 왕을 완전히 떠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가 림몬신을 섬기지 않기 위해 아람 왕을 떠나는 것은 결심한다고 되는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개인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정치, 군사적인 문제 등 여러 고려 사항들이 얽혀 있다. 따라서 여호와만을 섬기기로 회심하고 영적 주인을 바꾸었지만, 육신의 주인인 아람 왕은 버리지 못한 것입니다. 대신 나아만 앞뒤로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길 원한다는 말을 반복하면서 매우 조심스럽게 엘리사의 허락을 구하고 있습니다.

 

이런 나아만의 간곡한 요청에 엘리사는 ‘평안히 가라’고 답해줍니다. ‘평안히 가라’라는 구문은 출애굽기 4:18에서 이드로가 모세의 요청을 허락하는 의미로 한 말이고, 사무엘상 1:17에서는 엘리가 한나의 말을 듣고 그의 기도가 응답되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한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엘리사가 나아만에게 ‘평안히 가라’고 말한 것은 나아만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석할 때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어서 죄에 대해서 유보 조항을 둔다는 것은 온전한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는 죄는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죄에서 과감하게 떠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엘리사가 나아만의 요청을 승인해준 이유는, 그가 이제 막 개종한 이방인으로 신앙이 아직 연약한 자였기 때문입니다. 비록 개종을 하였지만, 이스라엘에서 살지 않고 아람으로 돌아가 다른 신을 섬기는 이방인들 사이에서 살아가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막 개종한 나아만에게 완전한 율법 준수를 요구한다면, 어려움 속에서 믿음을 잃거나 그와 그의 가족이 전부 죽을 수 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엘리사는 어쩔 수 없는 그의 처지를 인정해준 것입니다. 이방 땅에서 목숨을 내놓고 믿음을 지킨 다니엘과 세 친구와 같은 순교적 믿음을 갓 회심한 나아만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나아만에게서 예물을 받은 게하시(20-23)

‘소탐대실(小貪大失)’이란 말이 있습니다. 작은 것을 챙기려다가 큰 것을 잃어버린 것을 말합니다. 작고 하찮은 것을 내려놓고 크고 귀중한 것을 잡는 것이 지혜고 신앙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가치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이 지혜입니다. 게하시는 작은 돈 챙기려다가 하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20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스스로 이르되 내 주인이 이 아람 사람 나아만에게 면하여 주고 그가 가지고 온 것을 그의 손에서 받지 아니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를 쫓아가서 무엇이든지 그에게서 받으리라 하고 21나아만의 뒤를 쫓아가니 나아만이 자기 뒤에 달려옴을 보고 수레에서 내려 맞이하여 이르되 평안이냐 하니 22그가 이르되 평안하나이다 우리 주인께서 나를 보내시며 말씀하시기를 지금 선지자의 제자 중에 두 청년이 에브라임 산지에서부터 내게로 왔으니 청하건대 당신은 그들에게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주라 하시더이다 23나아만이 이르되 바라건대 두 달란트를 받으라 하고 그를 강권하여 은 두 달란트를 두 전대에 넣어 매고 옷 두 벌을 아울러 두 사환에게 지우매 그들이 게하시 앞에서 지고 가니라(20-23)

 

20절부터는 나아만에게서 게하시에게로 초점이 바뀝니다. 그는 주인 엘리사가 나아만의 병을 고쳐주고도 그가 가지고 온 예물을 하나도 받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 분개합니다. 따라서 그 뒤를 달려가서라도 반드시 뭐든지 받아내겠다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합니다.

이런 게하시의 맹세는 아무것도 받지 않겠다는 엘리사의 맹세와 분명히 대조됩니다. 엘리사는 여호와의 권능을 돈을 얻는 일에 이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게하시는 이런 호의를 베풀었으면 많은 돈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나아만은 이방인이고 부자이니 돈을 받는 것은 더욱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게하시는 나아만의 뒤를 쫓아가서 인사를 한 뒤 나아만에게 엘리사가 자신을 보냈고, 선지자의 제자 두 명이 왔으니, 그들을 위해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을 달라고 말씀하셨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아무것도 안 받겠다고 맹세까지 한 엘리사가 말을 번복할 법한 핑계를 만들기 위해 갑자기 두 명의 제자를 들먹이는 재치까지 보입니다.

이런 게하시의 말을 나아만은 의심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기쁜 마음으로 은 두 달란트와 옷 두 벌을 건네줍니다. 나아만의 입장에서는 엘리사가 워낙 강하게 거절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드리지 못하고 온 것이 내심 마음에 걸렸을 것이고, 이런 참에 게하시를 통해 엘리사가 무엇을 달라고 하자 기쁜 마음으로 준 것입니다. 그는 게하시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겸손하고 정직한 마음을 요구하십니다. 겸손히 순종한 나아만에게는 병 고침의 은혜를 베푸셨지만, 욕심에 이끌려 거짓을 행한 게하시에게는 문둥병을 주셨습니다. 지금 당신의 마음과 태도는 어떻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내 마음과 태도를 점검하시길 바랍니다.

 

나병이 발병한 게하시(24-27)

종종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속여서 재물을 얻습니다. 그것을 밭에 숨길 수 있겠지만, 그 탐욕의 형태마저 숨길 순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중심까지 보시는 하나님을 보며 깨끗한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게하시는 부패한 욕심으로 재물을 얻었지만 또 한 가지 나병도 얻었습니다.

 

24언덕에 이르러서는 게하시가 그 물건을 두 사환의 손에서 받아 집에 감추고 그들을 보내 가게 한 후 25들어가 그의 주인 앞에 서니 엘리사가 이르되 게하시야 네가 어디서 오느냐 하니 대답하되 당신의 종이 아무데도 가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26엘리사가 이르되 한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이할 때에 내 마음이 함께 가지 아니하였느냐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이냐 27그러므로 나아만의 나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 하니 게하시가 그 앞에서 물러나오매 나병이 발하여 눈같이 되었더라(24-27)

 

나아만에게서 은 두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챙긴 게하시는 엘리사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언덕쯤에서 미리 전대와 옷을 받아 자신의 집에 숨깁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모를 엘리사가 아니었습니다.

엘리사는 게하시를 불러 어디 다녀오느냐 묻습니다. 마치 하나님에서 가인에게 동생이 어디 있냐고 묻는 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엘리사가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라 게하시가 회개할 기회를 주려고 한 질문입니다. 엘리사의 물음에 거짓말을 했지만, 엘리사는 이미 다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게하시는 그 기회를 놓치고 결국 엘리사를 통해 나아만이 해방된 나병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치유의 사건을 개인적인 탐욕의 기회로 삼은 게하시는 결국 그의 욕심과 거짓말의 결과로 저주를 받아 몸에 문둥병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들의 운명이 바뀐 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불신앙과 이방인의 신앙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얼마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보여줍니다.

 

탐심을 부리지 말아야 합니다. 엘리사의 종 게하시의 마음에 생긴 욕심은 자라서 거짓말을 낳았고, 그 거짓말은 그의 몸에 문둥병을 가져왔습니다. 욕심은 죄를 낳고 죄는 점점 자라 죽음을 가져옵니다(야고보서 1:15). 지금 당신이 욕심내는 것들을 무엇입니까? 욕심에 이끌리지 않기 위해선 깨어 있어야 합니다.


견물생심, 소탐대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실천적 무신론은 죄인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어리석은 게하시는 하나님을 지워버렸습니다. 하나님을 없는 것처럼 만들어버렸습니다. 그의 삶은 자신의 고백과 지식을 배반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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