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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14-01)


아마샤의 번성과 쇠퇴

열왕기하 14장 1-16절


어리석은 지도자는 힘을 정당하고 의로운 쪽으로 쓰지 않고 남용하다가 슬픈 최후를 맞이합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완수하는 것은 지도자로서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서로 분별하도록 돕는 공동체 속에 있을 때 우리는 과신(過信)에 빠지지 않고 견제와 균형을 갖게 됩니다.

 

  • 엘리사는 죽기 직전에 요아스에게 아람을 이길 기회를 주지만, 요아스는 그의 믿음 없음으로 말미암아 아람을 완전히 진멸할 수 있는 기회를 잃습니다. 하지만 엘리사의 예언대로 이스라엘은 아람을 세 번 이김으로써 빼앗겼던 성읍들을 되찾습니다. 이때 유다는 요아스의 아들 아마사가 새로운 왕으로 등극합니다. 이 두 왕국 간에 이전의 동맹관계는 사라지고 전쟁을 하게 됩니다.

 

유다 왕 아마새의 등극(1-4)

죄악에 물든 과거와 단절하거나 누적된 악습의 구조를 끊어버리는 것은 다시 태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바알체제는 승자독식과 위계질서를 숙명으로 받아들이도록 정교한 제의구조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왕정은 이러한 가나안 문화를 전복할 신앙의 능력이 결여되어 있었습니다.

 

1이스라엘의 왕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 제이년에 유다의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가 왕이 되니 2그가 왕이 된 때에 나이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구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호앗단이요 예루살렘 사람이더라 3아마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그의 조상 다윗과는 같지 아니하였으며 그의 아버지 요아스가 행한 대로 다 행하였어도 4오직 산당들을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1-4)

 

이 단락에는 유다 왕 아마샤의 등극 공식이 나옵니다. 아마샤는 유다 왕 요아스의 뒤를 이어 왕이 되는데, 그는 이스라엘 왕 요아스 시대부터 여로보암 시대까지 유다의 왕으로 있었습니다. 그는 이스아엘 왕 요아스가 죽은 뒤에도 15년간 더 살아 있었습니다. 그는 25세에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29년을 통치하였습니다. 이것을 보면 아마샤의 시대는 제한적이지만 평탄한 왕정 시대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여호앗단으로 예루살렘 사람입니다.

이스라엘과 다르게 유다가 어머니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은 일부다처 사회에서 왕이 여러 명의 왕비를 두었기 때문에 어느 왕비의 아들인지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이스라엘의 경우는 반정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머니의 이름보다는 아버지의 이름을 밝히고 있습니다.

 

3절은 아마샤에 대한 평가입니다. 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습니다. 하지만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완전히 합한 것은 아니었고, 그의 아버지 요아스 수준만큼 행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요아스는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했지만 산당을 없애지 않아서 아쉬움을 남겼는데, 아들 아마샤도 아버지처럼 산당을 제거하지 않았습니다. 산당은 이방신을 제사하고 분향하던 곳으로 이곳을 제거하지 않고 강력하게 금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백성들은 계속 산당에서 이방신들을 위해 분향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여호와와 함께 우상을 섬기는 영적 간음입니다.

 

아마샤와 요아스가 산당을 없애지 못한 것은 이스라엘 왕들이 여로보암의 황금 송아지를 없애지 못한 것과 같은 죄입니다. 이들은 여호와 종교는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방식대로 여호와만을 섬겨야 한다는 여호와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신을 다양하게 섬길 수 있다는 당시 문화를 따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당대의 관습을 벗어나거나 오랜 관행을 벗고 참다운 예배를 드리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아버지와 동일한 과오를 되풀이하여 저질렀기에 아마샤도 아버지처럼 반역자의 손에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열왕기하 14:19).

 

아마샤의 업적(5-7)

사람들은 대체로 실패보다 실수에 관대합니다. 그래서 일에 있어서도 실수에서 빚어진 그 어떤 것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라는 것이 주어질 수 있습니다. 모든 실수를 예방할 수는 없지만 해결해 나갈 수 있기에, 성공에 이르는 길은 수많은 실수로 포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대로 준비하지 않는 것이나 이 정도면 준비가 됐겠지라는 판단은 실수가 아닌 실력입니다. 실력이 그 정도이니 딱 그 정도의 판단을 내리게 됩니다.

 

5나라가 그의 손에 굳게 서매 그의 부왕을 죽인 신복들을 죽였으나 6왕을 죽인 자의 자녀들은 죽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함이라 곧 여호와께서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자녀로 말미암아 아버지를 죽이지 말 것이요 아버지로 말미암아 자녀를 죽이지 말 것이라 오직 사람마다 자기의 죄로 말미암아 죽을 것이니라 하셨더라 7아마샤가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사람 만 명을 죽이고 또 전쟁을 하여 셀라를 취하고 이름을 욕드엘이라 하였더니 오늘까지 그러하니라(5-7)

 

아마샤는 반역자들이 아버지 요아스를 죽이는 바람에 왕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왕위에 오르는 과정만큼이나 왕권을 강화하는 과정도 쉽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마침내 아마샤가 권력을 쥐고 왕권을 강화하여 정적들, 즉 아버지를 죽인 반역 세력을 제거합니다. 하지만 아마샤는 그의 자손들까지 모두 죽이는 일은 하지 않는데, 열왕기 저자는 그 이유를 아버지 죄 때문에 아들을 죽이지 말고 아들 죄 때문에 아버지를 죽이지 말라는 모세의 율법을 따랐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언급된 율법은 신명기 24:16입니다. 이 사상이 이전에는 잘 등장하지 않다가 명시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여기가 처음입니다. 에스겔 18:2-3에서 에스겔 선지자는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 로 그의 아들의 이가 시다’는 속담을 쓰지 말라고 합니다. 예레미야도 31:29-30에서 동일한 말을 합니다. 이것은 아마샤가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는 신실한 인물이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7절에서 아마샤의 업적은 에돔을 물리치고 영토를 넓힌 것으로 그는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과의 전쟁에 승리하고 포로로 잡은 만 명의 사람들을 절벽에서 떨어뜨려 죽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은 역대하 25:12에서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포로는 노예로 삼거나 팔고 그것도 여의치 않은 경우엔 죽였습니다. 그들이 다시 군인이 되어 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전쟁 방식입니다.

그들은 에돔에게 승리하면서 셀라를 취하게 되었는데, 오랜만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승리 소식입니다. 여기 셀라는 오늘날의 페트라와 인접한 지역으로 보입니다.

 

이 지역은 일시적으로 점령한 땅이 아니라 영구적으로 유다 땅에 편입된 땅입니다. 이 부분에서 열왕기 기자의 사상이 분명히 드러나는데, 아마샤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과 에돔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셀라를 정복한 것을 연결시켜서, 여호와께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전쟁의 승리를 주시고 땅도 얻을 수 있게 해주신다는 사상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성공과 실패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지 여부에 달린 문제라는 것을 여기서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유다의 전쟁(8-14)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며 걸려 넘어지는 암초와 같습니다. 왕의 교만으로 유다는 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고 왕도 무명의 사람에게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누가 왕을 죽였는지 밝히지 않는 것은 수모이자 비극입니다. 아마샤는 자기애라는 동굴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죽은 것입니다.

 

8아마샤가 예후의 손자 여호아하스의 아들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에게 사자를 보내 이르되 오라 우리가 서로 대면하자 한지라 9이스라엘의 왕 요아스가 유다의 왕 아마샤에게 사람을 보내 이르되 레바논 가시나무가 레바논 백향목에게 전갈을 보내어 이르기를 네 딸을 내 아들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라 하였더니 레바논 들짐승이 지나가다가 그 가시나무를 짓밟았느니라 10네가 에돔을 쳐서 파하였으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니 스스로 영광을 삼아 왕궁에나 네 집으로 돌아가라 어찌하여 화를 자취하여 너와 유다가 함께 망하고자 하느냐 하나 11아마샤가 듣지 아니하므로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가 올라와서 그와 유다의 왕 아마샤가 유다의 벧세메스에서 대면하였더니 12유다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한지라 13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벧세메스에서 아하시야의 손자 요아스의 아들 유다 왕 아마샤를 사로잡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예루살렘 성벽을 에브라임 문에서부터 성 모퉁이 문까지 사백 규빗을 헐고 14또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금 은과 모든 기명을 탈취하고 또 사람을 볼모로 잡고서 사마리아로 돌아갔더라(8-14)

 

왕권을 강화하고 에돔과의 전쟁에서 승승장구하던 아마샤는 이스라엘 왕 요아스에게 사자를 보내어 만나자고 제안합니다. 이 본문에선 아마샤가 요아스를 보자고 한 이유가 정확히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역대하 25:6-16에 따르면 유다군이 에돔을 공격할 때, 십만명의 이스라엘 군사를 용병으로 고용했지만, 유다가 돈을 주지 않고 돌려보냅니다.

이런 유다의 처사에 화가 난 북이스라엘 군사들은 사마리아에서 벧호론까지 모든 유다 성읍들을 약탈하였습니다. 아마샤가 요아스를 만나자고 한 시점은 약탈이 일어난 뒤로 보입니다.

이렇게 유다와 이스라엘 간에 분쟁이 있는 상황에서 아마샤는 요아스에게 전쟁을 하자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 전쟁은 항상 선전포고를 하고 먼저 말싸움을 한 후, 그 다음에 본격적으로 돌입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말은 일종의 선전포고인 것입니다. 그러자 요아스는 레바논 백향목과 가시나무의 비유를 들며 만남을 거절합니다. 여기서 레바논 백향목은 고대 근동에서 가장 값비싼 목재이고 가시나무는 가장 가치 없는 나무를 의미하며, 가시나무가 백향목에게 서로 결혼하자고 말하는 것은 가시나무가 주제 파악을 하지 못하고 백향목에게 함부로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함부로 깝죽거리 가시나무는 레바논의 들짐승에게 밟혀 최후를 맞이합니다.

 

10절에서 요아스는 네가 에돔을 쳐서 마음이 교만해졌기에 이런 제안을 하는 것이니 집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한 후, 그렇게 하지 않으면 화를 자초하여 망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하지만 아마샤는 요아스의 경고를 듣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도움을 받아 하나님의 승리를 누린 것을 잊은 채 아마샤는 자기 힘으로 승리했다고 자만한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아마샤의 상태를 정확히 알고 있던 사람은 요아스였던 것입니다.

결국 요아스와 아마샤는 벧세메스에서 전쟁을 하게 되었고, 아마샤는 패하여 도망합니다. 아마샤는 요아스에게 잡혀 예루살렘까지 끌려오고, 요아스는 예루살렘 성벽을 400규빗가량 헐어버리고, 성전과 왕궁의 곳간을 털어 보물들과 볼모로 잡은 사람들을 데리고 사마리아로 돌아갑니다. 완전한 요아스의 승리로 아마샤는 치욕을 당하고 유다의 수도는 파괴되고 약탈당하였습니다. 주변의 적에게 이기고 승승장구하던 아마샤가 동족 이스라엘에게 철저히 약탈당하고 파괴되는 수치를 당하게 된 것은 그의 교만에 대한 하나님의 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죽음(15-16)

온전한 리더십은 과욕을 부리지 않고 주어진 사명을 이룹니다. 다른 사람들 위에 굴림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자신이 누구인가 성찰하면서 자기를 알면 알수록 더욱더 자유롭고 원만해집니다. 그리고 주변에 모든 것을 포용하며 원활하게 조직을 인도해 나아갑니다.

 

15요아스의 남은 사적과 그의 업적과 또 유다의 왕 아마샤와 싸운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16요아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이스라엘 왕들과 사마리아에 함께 장사되고 그의 아들 여로보암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15-16)

 

이 단락은 요아스의 죽음에 대한 공식입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가장 기억할 만한 업적은 유다 왕 아마샤와의 전쟁에 서 이 긴 것이 라고 말합니다.

요아스는 큰 믿음을 가지지 못해 엘리사가 자신에게 준 큰 기회를 아쉽게 만든 인물이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예후에게 4대 동안 그 후손을 왕으로 세워주겠다고 약속하셨기에, 그도 무사히 왕권을 지켰고 아들 여로보암에게 왕권을 넘겨주고 죽었습니다. 그리고 평안히 사마리아의 묘실에 묻히게 됩니다.

이렇게 당시 이스라엘과 유다의 왕들은 온전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살았기에 대외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넘길 수 있었습니다.


죄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깨어 있는 경건의 연습이 필요합니다. 성령 안에서 분별력을 갖고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위험성을 간파해야 합니다. 죄는 맹목적인 상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괴력을 갖고 있습니다. 잘못된 길은 잘못된 선택이 낳은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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