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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15-02)


멸망 직전 북이스라엘의 대혼란

 

열왕기하 15장 23-38절


우리 사회는 최근 정치의 무질서와 혼돈을 경험했습니다.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냉소적이고 비판적인 진물들이 쏟아졌습니다. 열왕기를 읽고 묵상해야 하는 중대한 이유가 분명해졌습니다. 성경 역시 인간의 정치와 하나님의 배후 정치를 생생하게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므나헴 이후 이스라엘의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어 계속해서 반란이 일어나 베가, 호세아가 반란을 일으키고 왕이 됩니다. 앗수르의 침략은 더욱 거세져 이스라엘 땅을 점령하고 사람들을 포로로 끌고 가는 지경이 됩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격동의 마지막 시기를 겪고 있지만, 유다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한 왕인 웃시야와 요담으로 인해 이스라엘보다는 덜 불안정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왕 브가히야의 통치(23-26)

‘여로보암의 길’은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하나님의 진리와 계시, 역사를 왜곡하거나 권력에 종교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권력은 우상이 되고, 과정은 무시됩니다. 아무리 국가적 번영의 주역이었습니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권력은 모두 헛된 것이 됩니다.

 

23유다의 왕 아사랴 제오십년에 므나헴의 아들 브가히야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이 년간 다스리며 24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한지라 25그 장관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반역하여 사마리아 왕궁 호위소에서 왕과 아르곱과 아리에를 죽이되 길르앗 사람 오십 명과 더불어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었더라 26브가히야의 남은 사적과 그가 행한 모든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니라(23-25)

 

므나헴이 죽은 후 그의 아들 브가히야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단지 2년간 다스립니다. 므나헵이 매우 잔인하게 백성들을 다루었기 때문에, 그의 통치 기간에 불만을 품고 있던 세력이 어린 새 왕이 등극하자 반란을 일으킨 것입니다.

브가히야에 대한 평가도 이전의 이스라엘 왕과 동일하게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고,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브가히야에 대한 다른 업적은 언급되지 않고, 단지 그의 부하인 베가가 길르앗 사람 50명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고, 사마리아에 있는 왕궁의 요새에서 브가히야와 그의 부하인 아르곱과 아리에를 죽였다는 사실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호위소’로 번역된 ‘아르몬’는 왕궁 내에 있는 구조물로 종종 요새로 번역됩니다. 즉, 반란이 일어날 경우 성내에서 방어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하지만 이런 성내 방어 요새도 최측근의 배신에는 무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베가는 브가히야의 군대 장관 혹은 신하로 소개되는데, 이것은 그가 므나헴의 최측근 신하로서 보좌하던 인물이었음을 의미합니다.

므나헴은 상당히 잔인하게 백성을 다루고 전쟁을 한 인물입니다. 그의 죽음 이후 그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던 인물들이 므나헴의 측근이었던 베가를 중심으로 모여 반란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베가의 반란을 가장 지지한 곳이 길르앗으로 그곳에서 50명의 용사를 보내 베가의 반란을 도왔습니다, 이렇게 브가히야는 길가나 전쟁터가 아닌 자신의 왕궁 요새 안에서 최측근의 배신으로 죽임을 당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면 광야 길도, 저들이 에워싼 전쟁터도 안전하지 하나님께서 지켜주지 않으시면 자신의 왕궁 요새도 안전한 곳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왕 베가의 통치(27-31)

참된 권위가 상실된 곳에 권위를 무시하는 경향이 독버섯처럼 펴집니다. 책임이 사라지고 반역을 향한 권리만 주장됩니다. 유지되고 계승되어야 할 가치와 정신은 사라지고, 무질서의 혼돈만 남습니다. 부패와 혹정은 혁명을 부르지만, 권위 상실은 공동체의 와해를 가져옵니다.

 

27유다의 왕 아사랴 제오십이년에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이스라엘 왕이 되어 사마리아에서 이십 년간 다스리며 28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29이스라엘 왕 베가 때에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이 와서 이욘과 아벨벳 마아가와 야노아와 게데스와 하솔과 길르앗과 갈릴리와 납달리 온 땅을 점령하고 그 백성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옮겼더라 30웃시야의 아들 요담 제이십년에 엘라의 아들 호세아가 반역하여 르말랴의 아들 베가를 쳐서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31베가의 남은 사적과 그가 행한 모든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니라(28-31)

 

이스라엘 왕 베가가 왕이 되었을 때 유다는 아사랴(웃시야) 52년입니다. 베가는 20년간 이스라엘의 왕로서 다스렸지만, 그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고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베가 때 앗수르의 왕은 디글랏 빌레셀 3세이며, 당시 앗수르는 가장 강력한 국력을 가진 상태였습니다. 결국 앗수르는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이스라엘 북쪽 도시들을 점령하였습니다.

29절에서 언급된 이욘과 아벨벳 마아가와 야노아와 게데스와 하솔과 길르앗과 갈릴리와 납달리는 이스라엘의 북쪽 지역 지명들로서 이스라엘이 북쪽 지역을 거의 전부 앗수르에게 빼앗겼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앗수르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이때가 주전 733년경이며, 기록에 따르면 만 삼천 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앗수르로 끌고 갔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포로로 끌고 가는 것은 이스라엘이 다시는 경제, 군사적으로 회복하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이 시기에 호세아는 반란을 일으켜서 베가를 죽이고 대신 왕이 됩니다. 호세아의 반란은 단순히 왕권을 차지하기 위한 이전의 반란과 성격이 다릅니다. 디글랏 빌레셀의 기록에 따르면 그들은 자신들의 왕인 베가를 폐위했고, 내가 그들을 다스릴 왕으로 호세아를 세웠다고 합니다. 즉, 베가는 앗수르의 손에 의해 제거되었고, 앗수르의 하수인인 호세아가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으로 등극한 것입니다. 31절은 베가의 죽음 공식으로 베가도 비록 반란으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지만 정식 왕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유다 왕 요담의 통치(32-38)

불순종에 빠진 권력자를 하나님께서 버리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현하기 위해 선택된 자가 그 뜻을 거역하면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을 불러서 버린 사람을 대신하게 하십니다. 소명과 사명에의 충성이 생명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32이스라엘의 왕 르말랴의 아들 베가 제이년에 유다 왕 웃시야의 아들 요담이 왕이 되니 33나이가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육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루사라 사독의 딸이더라 34요담이 그의 아버지 웃시야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35오직 산당을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그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요담이 여호와의 성전의 윗문을 건축하니라 36요담의 남은 사적과 그가 행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37그 때에 여호와께서 비로소 아람 왕 르신과 르말랴의 아들 베가를 보내어 유다를 치게 하셨더라 38요담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조상 다윗 성에 조상들과 함께 장사되고 그 아들 아하스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32-38)

 

이야기는 유다 왕조로 넘어갑니다. 유다 왕조는 이스라엘 왕 베가 2년에 웃시야의 아들 요담이 왕이 됩니다. 요담은 아버지 웃시야가 나병에 걸려 별궁에 격리되었기 때문에, 웃시야를 대신해 여러 해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그리고 웃시 야가 죽고 나서 정식으로 왕위에 오릅니다. 그의 어머니는 사독의 딸 여루사입니다.

이전 유다 왕의 태후는 출신 지역으로 소개한 반면, 요담의 어머니는 사독 가문의 딸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사독 가문은 유다의 대제사장 가문으로 웃시야가 사독 가문의 딸과 결혼했다는 것은 왕실과 제사장 가문의 결혼으로 유다 왕정이 여호와 신앙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완전하게는 것은 아닌데, 34절에서 요담에 대한 평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이전의 왕들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였지만 산당을 제거하지 않았고, 백성들이 여전히 우상에게 분향하게 하였습니다. 한 번 잘못 들어온 우상숭배는 제거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이 시대에 유다에서 활동하던 이사야 선지자는 당시 유다에 대해 비판하면서 자신의 하나님인 여호와를 모르고 우상을 섬기는 것에 대해 비판합니다(이사야 1:29). 요담의 업적은 예루살렘의 위쪽 문을 건축한 것입니다. 이것은 사독 가문의 어머니의 영향으로 예루살렘 성전 제의를 중요하게 여겨 설전을 보수하고 개축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런 요담의 모습은 하나님을 섬기면 서도 뿌리 깊은 악습을 뽑아내지 못하는 모습으로, 호세아 선지자가 말한 것처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이 있었다면 산당까지 완전히 제거했을 것입니다.

 

유다 왕국에서 여호와의 산당까지 제거하며 올바른 신앙으로 돌아간 인물은 후에 등장하는 히스기야 왕과 요시야 왕뿐입니다. 히스기야의 경우는 우상을 제거하라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에 순종하였고요시야의 경우는 성전에서 발견된 율법책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개혁해야 한다고 이야기해 준 훌다 선지자의 말을 믿고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요담 당시에도 이사야 선지자가 유다에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이사야 6장에 나오는 이사야의 소명 기사는 웃시야가 죽고 요담이 왕으로 즉위하던 때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담은 이사야의 말을 온전하게 순종하진 못했습니다. 요담이 우상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순종하지 않자, 하나님께서는 아람과 이스라엘의 동뎀담은 이사야의 말을 온전하게 순종하진 못했습니다. 요담이 우상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순종하지 않자, 하나님께서는 아람과 이스라엘의 동맹군을 보내 유다를 공격하게 하십니다. 당시에는 앗수르가 너무 강력하여 이에 위협을 느낀 아람과 이스라엘이 동맹을 맺고 앗수르에 대항하였고, 이 동맹에 유다가 참여하기를 촉구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촉구에 응하지 않았기에 이들은 유다를 공적하게 되는데, 열왕기 저자는이 모든 일을 여호와께서 주관하고 계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38절은 요담에 대한 죽음 공식입니다. 요담은 죽은 후에 다윗 성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아하스가 그를 대신해 왕이 되었습니다. 계속되는 이스라엘이 반란과 대조적으로 유다는 평안하게 왕위가 계승되었습니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여호와 잎에서 정직하게 행한 왕들을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서 저자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왕을 세우시고 보호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원대한 구원의 계획은 그 뜻과 이야기를 알고 순종한 사람들에게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자유로운 선택은 인간의 자유로운 결정 속에서 드러납니다. 생명을 위한 우리의 선택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歷史)와 만나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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