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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45-02)


숨어 계신 유일하신 하나님

이사야 45장 8-17절


 

이해할 수 없다고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내 뜻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함부로 불평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생각과 판단을 넘어서 계시는 분입니다. 창조주이시자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없습니다. 자기 뜻대로 되는 것이 없다 여겨질 때, 정작 보아야 할 진실은 무엇입니까?

 

  •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도구로 바사 왕 고레스를 선택한 여호와의 결정(44:24-45:7)에 문제를 제기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창조주의 권한과 권위로 이들의 이의 제기를 단호하게 거절하십니다. 창조주의 결정에 반발하는 자들은 토기장이에게 ‘너는 무엇을 만드느냐?’며 대드는 질그릇 조각이나 진흙돠도 같습니다.

 

구원을 창조하시는 여호와(8)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을 들어 메시야로 삼으신 이유는 자기 백성을 위햐서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 세속 국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주님께 아뢰고, 그분께 의탁하며 그 섭리에 순종해야 합니다.

 

8하늘이여 위로부터 공의를 뿌리며 구름이여 의를 부을지어다 땅이여 열려서 구원을 싹트게 하고 공의도 함께 움돋게 할지어다 나 여호와가 이 일을 창조하였느니라(8)

 

빛과 어둠과 평안과 환난을 지으시는 여호와께서 예비하신 구속사의 범위가 이스라엘을 넘어 온 땅으로 확장됩니다. 하늘과 구름이 이슬과 비를 내려 땅이 풍족한 결실을 보게 하듯이(55:10), 여호와께서 의의 비를 내리셔서 땅이 공의의 싹을 틔우고 구원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주시는 구원과 공의를 땅에 사는 모든 민족이 경험하게 됩니다. 여호와의 명령이 이를 가능하게 합니다.

‘공의’는 승리나 구원을 의미하는데, 구름이 흘려 내리는 공의(체데크)와 땅이 싹트게 하는 공의(처다카) 사이에는 양태의 차이가 있습니다. 전자는 ‘공의(구원)의 결정’이고, 후자는 ‘공의(구원)의 상태’입니다. 여호와께서 구원을 결정하시고 땅에 구원이 편만하게 하십니다. “창조하였느니라”는 예언자적 완료로 주체가 “나 여호와” 이기에 반드시 이뤄질 것을 보여줍니다. 동사 ‘창조하다’는 여호와께서 결정하신 땅의 구원이 새로운 창조 행위에 해당함을 시사해주기도 합니다. 창조주 여호와의 남다른 개입에 의해 공의가 통치하는 새로운 구원 시대가 온땅에 임하게 됩니다. 현재 문맥에서 보자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해방자로 부르신 고레스가 그분의 구원 결정에 따라 땅에 공의도 세웁니다.

 

여호와의 절대주권(9-13)

우리의 작은 지혜로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려는 시도 자체가 어리석을진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따질 수 있겠습니까? 가끔 하나님께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시지만,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큰 그림 안에 있음을 맏어야 합니다. 교회가 세상보다 못해 보이고 불신자들이 성도들보다 더 형통해 보여도, 그 뒤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사용하셔서 우리에게 복 주심을 깨닫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9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이와 더불어 다툴진대 화 있을진저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너는 무엇을 만드느냐 또는 네가 만든 것이 그는 손이 없다 말할 수 있겠느냐 10아버지에게는 무엇을 낳았소 하고 묻고 어머니에게는 무엇을 낳으려고 해산의 수고를 하였소 하고 묻는 자는 화 있을진저 11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너희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며 또 내 아들들과 내 손으로 한 일에 관하여 내게 명령하려느냐 12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내 손으로 하늘을 펴고 하늘의 모든 군대에게 명령하였노라 13내가 공의로 그를 일으킨지라 그의 모든 길을 곧게 하리니 그가 나의 성읍을 건축할 것이며 사로잡힌 내 백성을 값이나 갚음이 없이 놓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9-13)

 

하나님께서는 절대타자로서 존재하십니다. 땅의 일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늘의 일도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땅의 사람뿐 아니라 ‘하늘의 모든 군대에게 명령’(12)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없이 된 일이 하나라도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땅과 하늘의 모든 일의 주체이시며, 그 일을 주관하시는 만유의 주이십니다.

 

(1) 창조주의 결정에 이의 제기하는 자들(9-10)

 

처음 두 절은 화의 선포입니다. 예언자는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에 불만을 토로하는 자들에게 토기장이의 비유를 사용해 화를 선포합니다. 질그릇 한 조각에 불과한 자가 자기를 빚으신 분과 다툴 수 있겠습니까? 진흙이 자기를 빚으시는 분께 ‘당신은 무엇을 만들고 있는 거요’, ‘당신이 만든 것에는 손이 없지 않소’하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질그릇도 아닌 질그릇 한 조각이, 한 조각도 아닌 그 재료가 토기장이에게 자신을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진흙으로 질그릇을 만드는 토기장이는 진흙과 그 진흙으로 만드는 물건에 절대 권한을 행사합니다. 여호와와 사람의 간격은 후자에 의해 도전받거나 문제시될 수 없는 무한 간격입니다.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땅의 흙으로’(창 2:7) 빚어졌기에 흙으로 돌아갈(창 3:19) 수밖에 없는 사람이 그를 빚어 만드신 분께 이의를 제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두 번째 출산의 비유는 황당함과 부조리함을 더욱 인상적으로 고발합니다. “아버지에게 ‘무엇을 낳고 계십니까?’하고, 또 여자에게 ‘무엇 때문에 산고를 겪고 계십니까?’하고 말하는 자에게 화가 있어라.” 문제 제기가 이번에는 시간상으로 너무 빨랐습니다.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가 자신의 출생에 관해 아버지와 어머니(여자)에게 따집니다. 사람이 창조주 여호와의 역사 경영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가 자신의 출산에 관여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존재론적 한계에 따라 진흙이 토기장이의 창조 의지에, 자식이 부모의 창조 의지에 조금 관여할 수 없는 것처럼, 사람도 여호와의 계획과 결정을 향해 발언권이 없습니다.

 

(2) 거절하시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11)

 

현재 문맥에서 11-13절은 여호와의 역사 경영에 이의를 제기한 자들에게 주는 답변입니다. 여호와께서 복수의 청자 ’너희‘를 책망하십니다(11). ’너희가 내 아들들에 관하여 장래 일나에게 물으려느냐? 내 손의 작품에 관하여 너희나에게 명령하려느냐?‘ 동사 ’묻다‘(샤알)는 원래 그 자체로는 가치중립적이지만, 여기서는 병행하는 ‘명령하다’가 보여주듯이 ‘따지다’, ‘살펴보다’의 부정적 의미로 사용됩니다. ‘내 아들들’과 ‘내 손의 작품’은 이스라엘을, 청자 ‘너희’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의 역사 경영에 이의를 제기하는 자들로 1차적으로는 민족들을 가리킵니다. ‘내 아들들의 장래 일’은 여호와께서 지으신 이스라엘의 구원 계획으로, 13절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됩니다. “통의 한 방울 물과 같고 저울의 작은 티끌 같은”(40:15) 민족들이 홀로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민족들의 운명을 결정하시는(40:23-24) 분의 역사 경영에 끼어들어 창조주의 권한을 침해하는 일은 결코 허용될 수 없습니다.

 

(3) 창조하시고 명령하시는 분(12)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명령하시는 분이지 명령을 받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땅을 만드시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시고 하늘을 펼치시고 그 안의 모든 군대(별들)에게 명령하신 분입니다(12). 이스라엘은 하늘을 펼친 손으로 만든 작품일 뿐입니다. 하늘의 별들을 섬기는 민족들이 하늘의 별들에게 명령을 내리신(참조. 40:26) 분께 명령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4) 여호와께서 택한 고레스(13)

 

고레스의 선택과 승리는 땅과 하늘과 그 안에 있는 사람과 별들을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당신 아들들을 위해 결정하신 것입니다(13). 그분께서 고레스를 일으켜 그의 원정길을 평탄하게 해주시고(참조. 41:2-3, 25; 45:2), 그를 통해 그분 아들들의 장래 일을 성취하십니다. 고레스가 여호와의 성읍(예루살렘)을 건축하고 그분의 사로잡힌 자들을 놓아줄 것입니다. 성전 재건을 내다보는 44:28과 달리 유배민의 귀향이 약속됩니다. “값이나 갚음이 없이”는 유배민의 해방이 역사적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고 반드시 성취될 것을 시사해줍니다. “공의로”는 현재 문맥에서 고레스의 승리를 8절에 연결시켜 주기도 합니다. 땅에 공의를 세우기로 하신 여호와께서 고레스를 통해 땅에 공의가 싹트고 구원이 열매 맺게 하십니다.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14-17)

사람은 어쩌다가 만들어진 존재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귀중한 존재입니다. 만일 우리가 목적 없이 지어진 존재하면, 지금 처해 있는 형편은 한없이 답답하고 불행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분명한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안다면 소망을 품고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수 있을 것입니다.

 

14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애굽의 소득과 구스가 무역한 것과 스바의 장대한 남자들이 네게로 건너와서 네게 속할 것이요 그들이 너를 따를 것이라 사슬에 매여 건너와서 네게 굴복하고 간구하기를 하나님이 과연 네게 계시고 그 외에는 다른 하나님이 없다 하리라 하시니라 15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 16우상을 만드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며 욕을 받아 다 함께 수욕 중에 들어갈 것이로되 17이스라엘은 여호와께 구원을 받아 영원한 구원을 얻으리니 너희가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하거나 욕을 받지 아니하리로다(14-17)

 

역사와 인간은 인과율의 법칙을 뛰어넘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절대타자로서 역사를 초월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세계 최고의 부와 명성을 이스라엘에게 허락하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심지어 강대한 나라들이 굴복하고 간구할 것입니다.

 

(1) 시온의 회복(14)

 

시온이 여호와께서 함께하시는 그분의 성읍으로 회복됩니다. “애굽의 소득과 구스가 무역한 것과 스바의 장대한 남자들”이 시온(이스라엘)의 소유가 됩니다(14; 참조 43:3). 애굽은 노동하여 얻은 결실을, 구스(에디오피아)는 무역하여 얻은 소득을, 스바는 인력을 제공합니다. 애굽과 구스가 재정을 담당하고 스바가 노동력을 제공해 폐허가 된 예루살렘이 재건됩니다. 재산과 소득을 민족들에게 약탈당했던 시온의 운명이 보상을 받습니다. “사슬에 매여 건너와서 네게 굴복하고”라는 표현은 소유주와 종의 운명이 뒤바뀔 것을 시사해줍니다. 자유를 빼앗기고 종이 되었던 시온이 주인이 되어 종들을 부리게 됩니다. “하나님이 과연 네게 계시고 그 외에는 다른 하나님이 없다”는 것은 그들의 고백보다는 인정입니다. 이들은 파괴되었던 시온에 여호와께서 현존하심을 시인하고 그곳이 다시 예배 처소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을 통해 땅에 공의를 세우시는 여호와의 권능을 경험한 민족들은 시온의 여호와께서 유일한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2) 이스라엘의 구원자(15)

 

예언자가 등장해 “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스스로 숨어 계시는(자신을 숨기신) 하나님”으로 고백합니다(15). ‘자신을 숨기신 하나님’의 의미는 다양하게 해석됩니다. 하나님의 부재가 심판을 의미하기에 유배와 관련지어 유배 기간 동안 진노 가운데 얼굴을 감추신 분으로 이해하거나, 때로는 여기서 숭배자들도 구해주지 못하는 눈에 보이는 우상과 보이지는 않지만, 능력으로 당신 존재를 과시하시는 하나님을 대조한다고 보기도 합니다. 때로는 땅의 역사를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경이로운 길과 방법에 대한 놀라움의 표현으로 간주하기도 합니다. 현재 문맥에서는 아마도 여호와께서는 숨기심(심판) 중에도 구원자이심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심판 중에도 구원을 결정하시고 이를 실행하시는 “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참조. 8:17). 그분의 구원계획에 따라 우상을 만드는 자들은 부끄러움과 욕에 떨어지고(참조. 44:9-20),

 

(3) 수치에서 벗어나는 이스라엘(16-17)

 

민족들에 의해 부끄러움과 욕을 당하고 있는 이스라엘은 구원을 받습니다(16-17). 민족들의 눈에는 패배하고 “스스로 숨어 계시는” 것처럼 보였던 여호와께서 민족들을 심판하시고 이스라엘에는 영원한 구원을 베푸십니다. 또 이스라엘은 영원하신 하나님에게서 힘을 공급받아(40:28-29) 영원한 생명을 누립니다.


우상 사회의 거짓 안전과 행복에 기대어 사는 자는 수치를 당할 것입니다. 창조와 역사의 주인을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 주인이 되려는 자는 실패와 좌절을 맛볼 것입니다. 그렇지만 숨어 계시는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신뢰하며 공의로 행하는 자는 반정의 기쁨을 경험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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