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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43-02)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이사야 43장 14-28절


구원은 항상 하나님 편에서 시작됩니다. 출애굽 구원도, 바벨론에서 구원도,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의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사랑하시고, 구원의 손길을 베푸십니다. 이스라엘 역사와 십자가에서 드러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삶을 어떻게 새롭게 창조해 가십니까?

 

  • 이스라엘에게 ‘나의 증인’이 될 것을 권면하신 여호와께서 증언할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려주십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자요 거룩하신 분께서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유배민을 구원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바다 가운데 길을 내 이스라엘을 안전하게 탈출시키고 추격하는 바로의 군대를 몰살시킨 출애굽의 여호와께서 이전 일을 압도하는 새 일을 행하십니다.

 

여호와의 새 일(14-21)

역사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연처럼 보이는 수많은 사건은 하나님의 지혜로 통치하시는 역사의 가지들입니다. 영원할 것 같던 세상은 한순간에 몰락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불러내시고 다시 회복시키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14너희의 구속자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에 사람을 보내어 모든 갈대아 사람에게 자기들의 연락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가게 하리라 15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이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의 왕이니라 16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다 가운데에 길을, 큰 물 가운데에 지름길을 내고 17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 그들이 일시에 엎드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하였느니라 18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19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20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21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14-21)

 

창조자이신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통치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길을 없을 때 길을 만드십니다. 하나님께서 내시는 길은 어떤 길보다 안전하고 빠릅니다. 그러므로 길이 없을 때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길이기 때문입니다.

 

(1) 바벨론의 멸망(14-15)

 

바벨론의 멸망을 선포하는 이 두 절은 두 가지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첫째, 이사야 후반부에서 바벨론과 갈대아가 처음 등장합니다(참조, 47:1,5; 48:14,20). 이사야는 39:6에서 바벨론이 유다의 모든 재물을 빼앗아 가고 히스기야의 일부 후손이 바벨론 왕궁에서 환관이 될 것을 선포했는데, 이제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유배당한 백성을 구하십니다. 둘째, 여호와의 다양한 호칭이 심판 메시지 앞과 뒤를 감싸면서 메시지보다 호칭에 더 집중합니다. 바벨론의 멸망을 선포하시는 여호와가 ‘너희의 구속자,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 너희의 거룩한 이, 이스라엘의 창조주, 너희의 왕’으로 소개됩니다. 구속자(고엘는 집안의 일원이 어려움에 처하거나 부당한 죽임을 당했을 때 도와주거나 ‘피의 복수’를 해주는 친척입니다. 예언자들에게 여호와의 거룩함은 역사를 경영하는 그분의 역동적 능력입니다. ‘이스라엘의 창조주’는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개인적 소유물임을, ‘너희의 왕’은 여호와께서 이들의 통치자와 보호자임을 의미합니다. 여호와께서 당신백성을 구원하시려고 바벨론에 [누군가를] 보내 모든 갈대아 사람들로 도망치게 하십니다. 원문에는 “너희를 위하여”가 문장 첫머리에 나오고 동사 ‘보내다’의 목적어는 생략됩니다. 유배민의 구출이 바벨론을 치는 목적임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45:1에 의하면 여호와께서 고레스를 보내 바벨론을 침략하게 하십니다. “연락하던 배”는 축제 때 바벨론 신상들을 태우고 유브라데 강을 오르내리던 배들일 것입니다. 침략군에 쫓긴 갈대아 사람들이 신상을 배에 싣고 도망합니다.

 

(2) 출애굽의 하나님(16-17)

 

처음 두 절은 이스라엘의 구원보다 추격하던 애굽 군대의 멸망에 초점을 맞춰 여호와를 소개합니다.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왕이신 여호와께서는 ‘바다 가운데 길을, 사나운 물 가운데 통로를 내시는 분, 병거와 말과 군대와 용사를 나오게 하신 분’입니다(참조. 출 14:21-29).

17절의 ‘이끌어 내다’(나오게 하다)의 주어는 ‘여호와’입니다. 바다에서 애굽 군대를 쳐서 멸망시킨 것도 여호와의 의지이며 마음을 바꿔 추격군을 파견한 바로의 결정도 여호와의 심판 의지에 따른 것입니다(참조. 출 14:5-8; 겔 38:4). 역사의 무대에서 여호와만 주체로 활동하시고, 민족들은 그분께서 맡겨주신 역할만 담당할 뿐입니다.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을 추격하던 바로의 군대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바다에 수장하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이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바벨론 유배민을 위해 이스라엘 구원사의 출발점이자 정점인 출애굽을 압도하는 경이로운 사건을 준비하십니다.

 

(3) 출애굽을 대체할 새 일(18-20)

 

앞으로는 이전 일들을 기억하거나 옛날 일들을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18). 앞으로는 이전 일들을 다시 기억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참조. 46:9; 신 5:15; 15:15; 16:3,12).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새 일’(18)의 경이로움과 놀라움이 얼마나 큰지를 강조하는 말입니다. 새 일에 비춰볼 때 이전 일은 빛을 잃게 될 것입니다. ‘이전 일들’과 ‘옛날 일들’은 이스라엘이 과거에 경험했던 모든 해방 사건들, 특히 앞에 나온 홍해의 기적을 가리킵니다. 42:9에서는 알려지기만 하고 아직 행해지지 않은 새 일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19b-20절은 새 일의 구체적 내용입니다. 여호와께서 광야에 길을 내어 안전하게 지켜주시고 사막에 강을 내어 목마르지 않게 해주십니다(참조. 11:16; 35:8; 49:11). 새 일이 앞에 언급된 출애굽 사건의 구조와 유사한 구조로 선포됩니다. 생명에 적대적인 바다와 광야가 배경이 되고, 그 가운데 난 길이 사건의 무대가 됩니다. 출애굽 때 바다 가운데 길을 내셨던 여호와께서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십니다. 바다 가운데 길과 물이 애굽 군대의 심판을 위해 마련됐다면, 광야의 길과 물은 여호와께서 택한 백성의 구원을 위해 마련됩니다. 추격하던 애굽의 병거와 말과 군대와 용사는 바닷물에 잠겨 다 죽고, 사막에 사는 들짐승은 창조주의 경이로운 능력을 보고 그분을 존경하게 됩니다. 구조는 유사하지만, 심판과 재앙의 시점에서 기술된 이전 일과 달리 새 일은 축복과 구원에 초점을 맞춥니다. 전에 예루살렘에게 분노의 잔을 마시게 하셨던 여호와께서(51:17) 이제 생수를 주십니다(참조, 민 20:8; 시 78:15). 진노의 시대가 끝나고 보호와 축복이 약속된 새로운 구원의 시대가 열리고, 구원을 경험한 자들은 여호와를 찬양합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지음을 받은 백성(1) 이상입니다.

 

(4) 여호와를 찬송할 이스라엘(21)

 

이들은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지으신 백성입니다(21). 이스라엘의 존재와 실존이 그분 계획에 편입됩니다. 이스라엘은 처음부터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새일을 전할 목적으로 지음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증인으로 택함을 입었습니다(10).

 

야곱과 논쟁하시고 소송하시는 여호와(22-28)

하나님께서 제사를 드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마음에서 지우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않는 자들의 삶은 죄악으로 하나님을 괴롭게 합니다. 그들은 죄를 짓고도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토설하지 않았고 뻔뻔하게 살아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나오는 자들을 용서하십니다.

 

22그러나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고 이스라엘아 너는 나를 괴롭게 여겼으며 23네 번제의 양을 내게로 가져오지 아니하였고 네 제물로 나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나는 제물로 말미암아 너를 수고롭게 하지 아니하였고 유향으로 말미암아 너를 괴롭게 하지 아니하였거늘 24너는 나를 위하여 돈으로 향품을 사지 아니하며 희생의 기름으로 나를 흡족하게 하지 아니하고 네 죄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 25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26너는 나에게 기억이 나게 하라 우리가 함께 변론하자 너는 말하여 네가 의로움을 나타내라 27네 시조가 범죄하였고 너의 교사들이 나를 배반하였나니 28그러므로 내가 성소의 어른들을 욕되게 하며 야곱이 진멸 당하도록 내어 주며 이스라엘이 비방 거리가 되게 하리라(22-28)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심으로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시작하셨습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함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풍성한 삶을 살도록 우리를 격려하셨습니다.

 

(1) 여호와를 부르지 않은 야곱(22)

 

42:18-25에서처럼 회고적 시점에서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심판에 떨어진 이유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알려줍니다. 먼저 22-24절은 제의와 관련해 이스라엘의 죄를 지적합니다. 여기에 사용된 논쟁의 문학적 양식은 이스라엘의 이의 제기가 먼저 있었음을 전제합니다. 이스라엘은 왕정 시대에 열심히 제사를 드렸다고(참조. 1:11-15) 주장하면서 멸망의 잘못을 여호와께로 돌린 것입니다. 이에 맞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의 제의적 경건이 당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고 변호하십니다. 제의적 모임과 축제가 끊이지 않았지만 여호와를 부르지 않았습니다(22a).

 

(2) 여호와를 괴롭게 한 야곱(23-25)

 

번제의 양을 가져왔지만 여호와께로 가져오지 않았고, 제물을 드렸지만 여호와를 공경하지 않았습니다(23a). 돈을 많이 지불하고 먼 나라에서 가져온 값비싼 향품을 샀지만 여호와를 위해서 사지 않았고, 희생의 기름을 드렸지만 여호와를 흡족하게 하지 않았습니다(24a).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괴롭게 여길 뿐이었습니다(22b). 23b절과 24절은 ‘수고롭게 하다’와 ‘괴롭게 하다’의 두 동사를 사용해 여호와와 이스라엘을 인상적으로 대조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소제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을 수고롭게 하지도 않았는데 이스라엘은 “죄짐으로” 여호와를 수고롭게 하였고, “유향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지도 않았는데 이스라엘은 “죄악으로” 여호와를 괴롭게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책임을 전가하지 말고 자신들이 죄지음과 죄악으로 여호와를 괴롭히고 힘들게 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3) 야곱에게 변론을 요구하시는 여호와(26)

 

26-28절에서는 소송의 양식을 사용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다툼을 이어가십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스스로 변호해보도록 기회를 주십니다(26).

 

(4) 고발과 심판 선언(27-28)

 

여호와의 주장에 맞서 이스라엘은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해 보이면 됩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의 답변을 기다리지 않으시고 이들의 죄악이 근원적이었음을 지적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시조가 죄를 범하였고, 그의 교사들도 여호와께 반역하였습니다(27). 이스라엘의 시조는 야곱을, 교사들은 아마도 공동체를 대변하는 지도자들, 특히 28절과 관련해 보면 종교지도자들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여호와의 의지를 바르게 대변해야 할 지도자들이 앞장서서 여호와를 배반했습니다. 그분은 우두머리 제사장들이 더럽힘을 당하고 야곱이 진멸당하고 이스라엘이 능욕거리가 되게 내어주셨습니다(28). 이스라엘의 타락이 이스라엘의 멸망과 바벨론 유배를 초래했습니다. 여호와의 소송은 단순히 심판의 정당성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소송에 앞서 여호와께서는 ‘나는 나를 위하여 네 죄를 도말하는 자’로 소개하십니다(25). 소송의 목적이 죄사함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고발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그분께서는 이스라엘의 죄를 기억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 가운데 살던 우리를 일방적으로 사랑하고 용서하셨습니다. 과거의 죄를 기억하지 않고 눈감으셨으며, 우리를 위한 구원의 큰일을 이루셨습니다. 아직도 그 사랑을 확신하지 못하고 고난이 원망스럽습니까? 닥친 어려움보다 무너진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고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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