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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43-01)


절대 주권자 하나님을 증언하라

이사야 43장 1-13절


 

이스라엘은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데 그 백성을 소유 삼으신 하나님께서는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시며 구원을 이루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한없이 무지하고 어리석은 우리를 소유 삼으시고, 끝없이 사랑하시고, 구원의 증인 삼으셨습니다. 세상 속에서 우리의 정체성은 무엇입니까?

 

  • 멸망과 유배를 경험했음에도 이스라엘은 여전히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영적 불구자로 온 땅에 온 땅에 흩어져 살아갑니다. 여호와께서는 깨달음이 없는 이스라엘을 책망하지 않으시고 이들에게 아버지의 사랑에 의한 구원을 약속하시고 증인의 역할까지 맡기십니다. 여호와의 구원 능력을 경험하는 자들은 그분만이 역사를 주관하시고 구원자이심을 증언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 여호와(1-7)

우리의 구원 속에 주님의 능력과 우리를 향한 신실한 사랑, 그리고 그 구원의 궁극적인 목표를 잘 살아가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났지만, 하나님께서는 떠나신 것이 없습니다. 그들을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역사 내내 그들을 창조해 오셨습니다. 이제 때가 되어 그들을 구원하실 것이니 두려워할 것 없습니다. 고토로 돌아오는 길도 주께서 친히 호위하실 것입니다.

 

1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2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3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 4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5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쪽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쪽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6내가 북쪽에게 이르기를 내놓으라 남쪽에게 이르기를 가두어 두지 말라 내 아들들을 먼 곳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며 7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1-7)

 

야곱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지키실 것입니다. 물 가운데로 지날 때도, 깊은 강을 건널 때도, 하나님께서는 야곱과 함께하실 것입니다. 고난의 떼에 사람들은 하나님의 부재에 혼란스러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1) 야곱을 창조하신 여호와(1)

 

여호와께서 예언자를 통해 유배민에게 구원 신탁을 주십니다. ‘지금’(그러나 이제)은 벌써 새로운 일이 시작되고 있음을 시사해 줍니다. 야곱을 창조하고 이스라엘을 지으신 분은 수사적 표현 이상입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개인적 피조물로 그분의 특별한 보호 아래 있습니다. 그분께서 이스라엘을 창조하셨기에 이스라엘의 역사도 주관하십니다. 창조는 태초에 있었던 일회적 사건이 아닙니다. 그분의 창조 능력은 역사 안에서 거듭 계시됐습니다. 이제 창조 능력이 바벨론의 지배에서 유배민을 해방시키는 구속사에서도 드러납니다. 창조주의 능력으로 이들을 구속하실 것이니 동풍 앞에 풀과 같은 바벨론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가장 가까운 친족의 자격으로 바벨론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을 되찾아 데려가십니다. ‘지명하여 부르다’는 ‘이름을 불러 [바벨론에서] 불러내다’를, ‘너는 내 것이라’는 여호와와 이스라엘의 개인적 관계를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께서 창조해 그분의 개인적 소유물로 삼은 백성일 뿐만 아니라 보호 대상이기도 합니다.

 

(2) 귀향길에 함께하시는 여호와(2)

 

유배지에서 당신 소유 이스라엘을 불러내 신 여호와께서는 이들이 무사히 고토로 돌아갈 수 있도록 귀향길도 책임져주십니다. 이들과 함께하시면서 물과 강과 불의 위험에서 지켜주십니다(2). “물 가운데로”는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넌 사건을 암시해줍니다. ‘강(득)’은 유비라데아 그 지류를 가리킵니다. 홍해를 마른 땅으로 만들어 걸어 건너게 하셨던 것처럼(출 14:21-22) 바벨론을 떠난 유배민이 1절과 연결됩니다.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는 유브라데를 안전하게 건널 수 있게 해주십니다(참조.11:15). “불 가운데로 지날 때”는 유배민이 지나게 될 폭염과 뜨거운 바람이 부는 사막을 생각나게도 하지만, 불은 물과 함께 위험의 전체성을 보여주기 위해 사용된 것 같습니다.

 

(3) 여호와의 남다른 사랑(3-4)

 

3-4절에서 여호와께서 사적으로 한 번 더 약속의 성취를 확실하게 해주십니다.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는 출애굽 사건과 관련해 자주 사용되는 표현으로(출 20:2; 호 12:9;13:4) 바벨론 유배민에게 구원 약속을 주신 분이 이들의 조상을 애굽에서 해방시키신 여호와이심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편에서 홀로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시사해줍니다. 이스라엘의 해방을 위해 (고레스에게 주어질) 속량물로 한 번은 ‘애굽과 구스와 스바’가, 한 번은 ‘사람들과 백성들이’ 언급됩니다. 이 말은 물론 법률적 진술이 아닙니다. 창조주 여호와의 통치 능력과 이스라엘에 대한 그분의 넘치는 사랑을 보여주는 언급입니다. 아프리카의 세 나라뿐만 아니라 땅 위의 모든 백성을 주고서라도 구하실 만큼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배롭고 귀한 존재입니다.

 

(4) 돌아오는 모든 흩어진 자들(5-7)

 

5-6절에서 여호와께서 다시금 이방 땅에 흩어져 힘겹게 살아가는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해주실 것을 약속하시며 두려워하지 말도록 권면하십니다. 그분께서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들을 모두 불러 모으실 것입니다. 동방과 서방과 북방과 남방은 온 세상을 가리키는 방위로(참조. 24:14-16), 사방으로 흩어져 유배민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귀향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먼 곳과 땅 끝’이라는 표현으로 다시 강조합니다. ‘내 아들들과 내 딸들’은 4절의 이스라엘에 대한 여호와의 사랑이 자녀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에서 나왔음을 보여줍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창조하고 지으셨기에 그분은 이스라엘의 아버지가 되시고, 이스라엘 자손은 모두 그분의 아들딸이 됩니다. 7절은 표현과 내용에서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소유임을, 그분의 자녀들임을 보여줍니다. 민족들의 지배 아래 살지만, 여호와를 제외하고 아무도 이스라엘에게 권리를 행사할 수 없습니다. “내 영광을 위하여”는 이스라엘의 창조와 존재 목적을 보여주는 언급입니다. 여호와께서 당신 자녀로 창조한 이스라엘은 역사 안에서 경험한 그분의 능력과 신실하심을 증거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을 모든 민족 가운데 영광스럽게 해주시며, 이스라엘은 그분께 영광을 돌립니다.

 

여호와의 증인(8-13)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신 분이지만 우상은 인간에게서 창조된 존재입니다. 하나님 전에 지음 받은 신이 없고 후에도 없습니다. 여호와는 ‘스스로 있는 단독자’이시며, 모든 존재의 근원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앞날을 예건하고 실행한 분은 하나님밖에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외에는 아무도 절대 주권자 여호와의 증인이 될 자격이 없습니다. 그가 이스라엘만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8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을 이끌어 내라 9열방은 모였으며 민족들이 회집하였는데 그들 중에 누가 이 일을 알려 주며 이전 일들을 우리에게 들려 주겠느냐 그들이 그들의 증인을 세워서 자기들의 옳음을 나타내고 듣는 자들이 옳다고 말하게 하여 보라 10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11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12내가 알려 주었으며 구원하였으며 보였고 너희 중에 다른 신이 없었나니 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나는 하나님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3과연 태초로부터 나는 그이니 내 손에서 건질 자가 없도다 내가 행하리니 누가 막으리요(8-13)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만물이 순종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이름을 불려지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한 자들입니다. 그들이 비록 보지도, 듣지도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들을 부르고 회복시키기를 원하십니다.

 

(1) 여호와의 재판장(8-9)

 

안타깝게도 여호와께서 창조하신 자녀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이었습니다(8; 참조. 42:18-20). 이스라엘은 보고 들은 것의 의미를 이해하고 깨닫는 데 실패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보잘것없는 존재가 된 이스라엘과 세상의 모든 민족을 재판정으로 불러 소송을 진행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영적 무지를 책망하거나 민족들의 우상숭배를 고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깨달음을 주기 위해 소환하시고 소송을 하십니다. 우상들은 현재 사건들에 관해 예견한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과거에 예견한 것 중에 하나라도 이뤄진 것이 있는지 알려서 자기 능력을 입증해 보여야 합니다(9; 참조. 41:22-23). 민족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우상들이 참된 신임을 증인들에게 증명해 보여야 합니다. 그들(9)은 민족들이 섬기는 우상들을, ‘이 일’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고레스의 원정과 승리를, ‘이전 일들’은 ‘이 일’보다 앞서 일어난 사건들을 가리킵니다. 물론 민족들은 우상에게서 들은 것이 없기에 증인이 될 수 없지만, 이스라엘은 예언자들을 통해 거듭 들은 것이 있기에 역사 안에 계시된 여호와의 의지에 관한 증인이 될 수 있고 또 되어야 합니다. 구원 약속을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만들지는 못했지만, 두 눈과 두 귀로 보고 들은 것은 있습니다. 아직 깨닫지는 못했지만 여호와의 의지가 담긴 말씀을 직접 보고 들었다는 점에서 이스라엘은 믿을 만한 증인이 될 자격을 갖췄습니다.

 

(2) 증인 이스라엘(1)(10-11)

 

이스라엘은 여호와께서 택하신 종으로 그분께서 하신 일을 증언해야 합니다(10). 종이 주인의 명령에 따라 일하듯이 이스라엘은 종의 사명을 바르게 깨닫고 실행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당신 백성으로 택하신 목적은 역사를 주관하시는 여호와만이 참된 하나님이심을 증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여호와의 유일성을 주장하는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10)는 말은 족보로 연결된 바벨론 신들에 대한 비판이기도 합니다. 민족들의 신들과 달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출생한 신도 아니고 중간에 등장한 신도 아닙니다. 그분은 처음 이전부터 단독자로 존재하시면서 홀로 창조와 역사를 주관해 오셨습니다. “나 곧 나는 여호와라”는 그분의 절대 권력과 주권을 선언하는 말입니다. 바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역사를 결정하고 이끌어 오신 분입니다. “나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는 구원의 능력과 의지가 여호와께 독점적임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은 유일하신 하나님 여호와께서 구원자이심을 증언해야 합니다. 이방 신들은 예나 지금이나 역사적 사건을 미리 알려주거나 들려줄 수 없었습니다. 여호와의 재판정에 증인으로 소환된 민족들은 무능력한 우상에게서 들은 것이 없기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미리 알려주시고 보여주셨을 뿐 아니라 예견하신 대로 이뤄지게 하셨습니다.

 

(3) 증인 이스라엘(2)(12-13)

 

이스라엘은 사건들을 예견하고 실행했다고 주장하는 다른 어떤 신도 알지 못했습니다. 이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12). 지금까지 능력으로 역사를 이끌어 오신 여호와께서 앞으로도 변함없이 역사를 결정하고 이를 집행하실 것입니다. 우상들의 무능력은 이미 입증되었기에 그분의 계획은 방해받지 않습니다(13). “내 손에서 건질 자가 없도다”라는 표현 역시 그분의 절대적-독점적 권력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여호와께서 구원 또는 재앙을 임하게 하실 때 누구도 그분 앞에 막아설 수 없습니다. 당신 백성을 구원하시고 바벨론을 멸망시키시려는 그분의 계획은 유일하신 권력자의 결정이기에 반드시 이뤄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인 우리를 사랑하셨고, 당신의 소유로 택하여 신실한 은혜를 베풀어오셨습니다.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는 궁극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어떤 권세도 우리를 그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그 신실한 사랑에 대한 깊은 확신 가운데 담대한 하나님 나라의 증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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