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이사야(41-02)


역사의 참 주인이신 하나님

이사야 41장 21-29절


 

인간은 우상이 아무 도움도 줄 수 없는 것을 알면서도 우상 찾기를 반복합니다. 하나님을 불신하는 깊은 불안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의지하는 우상의 무능함과 허구성을 드러내어 역사의 주인이 하나님뿐이심을 증명하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백성에게 합당한 자세입니까?

 

  • 여호와께서 민족들이 섬기는 우상들을 범정에 불러 세우시고, 그들이 진짜로 신인지를 두고 소송을 벌이십니다. 민족들의 우상들도 신이라면 앉아서 제물만 받지 말고 자기 능력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참 신이라면 땅의 역사를 결정할 수 있으니 민족들의 운명을 예견할 수 있다는 증거를 제시하면 됩니다. 예전 일이든 앞으로 올 일이든 아무거나 알려서 입증하면 됩니다.

 

우상들을 고발하시는 여호와(21-24)

 

우리 사회에서 미래를 보장하는 가장 강력한 힘을 물질에서 나온다고 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좋은 학교를 나오고, 대기업에 취직하려는 이유도 돈과 관련된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돈이 많다고 자동적으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가 돈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21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 우상들은 소송하라 야곱의 왕이 말하노니 너희는 확실한 증거를 보이라 22장차 당할 일을 우리에게 진술하라 또 이전 일이 어떠한 것도 알게 하라 우리가 마음에 두고 그 결말을 알아보리라 혹 앞으로 올 일을 듣게 하며 23뒤에 올 일을 알게 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신들인 줄 우리가 알리라 또 복을 내리든지 재난을 내리든지 하라 우리가 함께 보고 놀라리라 24보라 너희는 아무것도 아니며 너희 일은 허망하며 너희를 택한 자는 가증하니라(21-24)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만이 참 신이기 때문에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 나라들, 특히 바벨론이든 그 뒤에 이어 나오는 페르시아든지 다 하나님께서 뜻하시면 멸망시킬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다른 나라들이 믿는 신들은 모두 거짓 우상입니까? 거짓 우상을 섬기는데도 그렇게 강할 수 있습니까? 이러한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1) 확실한 증거를 보여라(21)

 

본문은 여호와께서 법정 다툼이 문학적 배경으로 사용됩니다. 여호와께서 고발인과 재판관이 되시고, 신분이 모호하게 처리된 청자 ‘너희’가 피고인이 됩니다(21). 여호와의 상대역을 맡는 ‘너희’는 23절에 가서야 우상들로 밝혀집니다. 여호와께서는 당신을 ‘야곱의 왕’으로 소개하십니다(참조. 43:14-15; 44:6). 여기에만 한 번 등장하는 표현으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통치자와 보호자의 자격으로 재판에 참여하심을 보여줍니다. ‘야곱’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긴밀한 사적 관계, 특히 선택 신앙이 담긴 이름입니다.

 

(2) 예언과 성위의 증거(22-23)

 

유다의 멸망과 바벨론 유배는 구속사와 선택의 끝이 아니며 여호와께서는 변함없이 야곱의 왕이십니다. 소송 안건은 피고인의 정체에 관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민족들이 숭배하는 신들에게 그들이 진짜 신임을 입증할 증거를 요구하십니다. 신은 신에게 속한 능력을 보여줄 때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입증 자료로 무엇이 필요한지를 구체적으로 알려주십니다. 확실한 예견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면 됩니다(22-23a). 특이하게도 우상들이 입증해 보일 상대로 ‘우리’가 등장합니다. 야곱의 왕뿐만 아니라 야곱도 재판에 참여해 우상들이 제출한 증거를 검토합니다. 우상 논쟁이 우상숭배의 위험에 처한 바벨론 유배민에게 주는 말씀임을 시사해줍니다. 우상들은 이전에 있었던 일을 말하면 됩니다. 그것이 힘들면 앞으로 일어날 일을 말해도 됩니다. 고대적 사고에 따르면 신들은 북쪽에 있는 산에서 모임을 갖고 민족들의 운명과 땅의 역사를 결정했습니다(참조. 14:13). 자신들이 결정한 것들 가운데 하나만 알려주면 되기에 어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이미 있었던 과거의 것이든 앞으로 있을 미래의 것이든 아무거나 상관없습니다. 우상들은 자신이 결정하고 선포한 대로 역사가 진행되었거나 혹은 진행되리라는 증거만 제출해주면 됩니다. 그러면 재판장이신 여호와께서 살피시고 결말을 알아보실 것입니다. 신의 입에서 나온 예언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따라서 그 예언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신이 될 수 없습니다. 미래의 예언은 성취를 기다리기에 당장 입증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이는 우상의 무능력에 대한 철저한 풍자입니다.

여호와의 고발은 풍자적 가엾음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곤경에 빠진 우상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기회를 한 번 더 주십니다. 과거에 선포한 예언이 틀려서 증거로 제출할 수 없고 또 미래를 예견할 능력도 없다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아무거나 보여주면 됩니다(23b). 야곱의 왕과 유배민이 함께 겁먹고 두려워할 만한 무엇인가를 하면 됩니다. 이로써 여호와께서는 민족들이 섬기는 신들의 위선과 무능력을 조롱하십니다. 야곱의 왕 여호와께서 민족들(바벨론)의 우상들을 상대로 제기하신 논쟁은 실제로는 논쟁이 아닙니다.

 

(3) 아무것도 아닌 우상(24)

 

우상들은 ‘아무것도’ 아니기에 이들과 소송하는 것은 처음부터 가능하지 않습니다(24). 우상들은 실재하지 않기에 소송의 상대가 될 수 없습니다. 우상들에게 예견 능력을 요구하셨지만, 이 또한 실질적인 요구는 아닙니다. 우상들은 아무것도 아니기에 이들의 행위나 업적이 있을 수 없습니다. 바벨론의 신들이 민족들의 운명을 결정하고 역사를 주관한다는 주장은 실체가 없는 빈말에 불과합니다. 만신전(萬神殿)의 상석을 차지한 바벨론의 신들이 헛것이듯이 바벨론의 권력도 겉보기에만 화려할 뿐 아무것도 아닙니다. ‘여호와의 기운’이 불면(40:7) 바벨론도 그 신들도 곧 사라져버릴 것입니다. ‘너희를 선택한 자는 가증하니라’는 일차적으로는 우상숭배자들의 파국적 종말을 보여주는 말이며, 또한 우상숭배의 유혹에 노출돼 살아가는 바벨론 유배민들에게 주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야곱의 왕을 버리고 아무것도 아닌 우상을 섬긴다면 우상처럼 가증한,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될 뿐입니다.

 

‘누가 처음부터 이 일을 알게 하였는가?’(25-29)

사람들은 하나님 대신 우상을 찾고 그 대상을 숭배하려 합니다. 하지만 우상은 사람들에게 아무런 능력이나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그것들은 허구요, 거짓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거짓된 것들을 좇아가는 사람들은 미련하고 어리석은 자가 되어 버립니다. 하나님만이 역사의 계획자요, 주관자이며 인도자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만 좇는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가 됩니다.

 

25내가 한 사람을 일으켜 북방에서 오게 하며 내 이름을 부르는 자를 해 돋는 곳에서 오게 하였나니 그가 이르러 고관들을 석회 같이, 토기장이가 진흙을 밟음 같이 하리니 26누가 처음부터 이 일을 알게 하여 우리가 알았느냐 누가 이전부터 알게 하여 우리가 옳다고 말하게 하였느냐 알게 하는 자도 없고 들려 주는 자도 없고 너희 말을 듣는 자도 없도다 27내가 비로소 시온에게 너희는 이제 그들을 보라 하였노라 내가 기쁜 소식을 전할 자를 예루살렘에 주리라 28내가 본즉 한 사람도 없으며 내가 물어도 그들 가운데에 한 말도 대답할 조언자가 없도다 29보라 그들은 다 헛되며 그들의 행사는 허무하며 그들이 부어 만든 우상들은 바람이요 공허한 것뿐이니라(25-29)

 

이 단락은 1-4절의 주제를 다시 받아 앞의 우상 논쟁을 여호와 편에서 계속 이어갑니다. 민족들의 우상들이 역사를 예언했다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판명이 났다면, 같은 논리로 여호와께서도 신적 능력을 입증하셔야 합니다. 증거를 보일 수 없었던 우상들과 달리 여호와께서는 당신께서 역사를 결정하신다는 증거와 당신만이 신(하나님)이라는 증거를 제시하십니다.

 

(1) 북방에서 정복자를 부르신 여호와(25)

 

민족들과 이스라엘 유배민까지 두려움에 빠뜨린 바벨론 북쪽과 동쪽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격변은 여호와의 역사 의지에 따라 일어난 일입니다. 여호와께서 한 정복자를 일으켜 북방에서, 해 돋는 곳에서 오게 하셨습니다(25; 41:2). 바벨론을 기준으로 방위를 보면 바사 왕 고레스는 대략 북쪽과 동쪽에서 왔습니다. 주전 559년 바벨론 동쪽에 위치한 바사의 왕이 된 고레스는 서쪽으로 원정을 떠나 주전 550년 바벨론 북쪽에 자리한 메대를, 주전 547년 리디아를 정복했습니다. 그는 남쪽을 제외하고 3면에서 바벨론을 에워싸고 압박했습니다. “내 이름을 부르는 자”는 무슨 뜻인지 이해가 쉽지 않습니다. 45:4-5에 따르면 여호와의 부름과 도움을 받지만 고레스는 여호와를 몰랐습니다. 때로는 고레스가 나중에 여호와를 알게 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본문은 처음부터 그가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음을 전제합니다. 이 표현은 신학적 차원에서 사용한 것 같습니다. 이방 민족 바사의 왕이지만, 여호와께서 그를 통해 당신 계획을 이뤄간다는 점에서 고레스는 신학적으로 여호와께 복종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로 간주된 것입니다. 고레스는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여호와의 이름을 온 세상에 드러내는 역할을 합니다. 그가 토기장이가 점토를 밟아 짓이기듯이 고관들을 짓밟을 것입니다. 땅의 역사를 결정하신 여호와께서 보낸 고레스 앞에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저항하지 못하고 굴복할 것입니다.

 

(2) 일을 침묵했던 우상들(26)

 

우상들의 무능력을 고발하는 26절은 앞 단락의 주제를 반복합니다. 우상들이 신이라면 땅의 사건을 예견하고 이를 집행하는 능력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우상들 가운데 누가 바사 왕 고레스의 등장을 미리 선포하고 그에게 승리를 약속해주었습니까? 바벨론의 신들 가운데 아무도 고레스의 승리를 예견하지 못했습니다. 수많은 신탁제사장과 예언자들이 있었지만, 자신들이 섬기는 신들로부터 이 일에 관해 신탁을 받은 자는 없었습니다. 우상들은 미래에 대하여 침묵하였습니다. 사건을 해석해주는 우상들은 많이 있지만(참조. 단 2:3-4; 4:47), 사건을 미리 예견하고 실제로 그대로 성취한 신은 여호와 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3) 일을 시온에 알려주신 여호와(27)

 

여호와께서 처음으로 고레스의 등장과 승리를 예언하여 당신 백성에게 알려주셨습니다(27). 그분만이 시온에게 ‘보라, 그들이 여기에 있다’라고 말씀하셨고 기쁜 소식 전할 자를 예루살렘에 보내셨습니다. 여기서 ‘그들’이 누구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시온으로 귀환하는 유배민을 생각하기도 하지만, 문맥은 고레스의 군대를 더 지지합니다.

“기쁜 소식을 전할 자”는 예언자들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참조. 40:9). 여호와께서는 예언자들을 통해 고레스가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고레스의 승리와 바벨론의 멸망을 거듭 선포하셨습니다. 지금 메소포타미아 북동쪽에서 전개되고 있는 일은 여호와께서 선포하셨던 예언의 성취입니다. 마지막 두 절은 주제에 있어 각각 26절과 24절의 반복입니다.

 

(4) 무능력한 우상들(28)

 

야곱의 왕께서 땅의 역사를 계획하실 때 참여한 자도 조언한 자도 없었습니다(28). 그분께서는 홀로 고레스의 승리와 바벨론의 멸망을 결정하셨습니다.

 

(5) 바람에 불과한 우상들(29)

 

우상들은 모두 아무것도 아니기에 그들이 한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29). 그들의 형상은 바람이요 공허한 것(헛것)일 뿐입니다. 바람은 쓸모없음과 덧없음을, 공허한 것은 무질서와 혼돈을 함축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정의와 공의로 세상에 질서를 세우시고, 헛것인 우상은 세상을 무질서와 혼돈에 빠뜨립니다.


우상숭배의 근저에는 안정과 생존을 보장받고자 하는 불안이 있습니다. 욕망하는 것을 얻으려는 강렬한 욕구가 있습니다. 신앙은 이 불안과 싸워가는 것입니다. 인생과 역사의 참 주인을 인정하며 고백한 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을 믿으며 두려움 없이 나아가야 합니다.


구독과 아래 [광고베너] 클릭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