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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38-01)

 


히스기야의 눈물의 기도

이사야 38장 1-22절


때로 어려움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찾아옵니다. 유다를 향한 앗수르의 위협이 점점 심해지고 있는 와중에, 유다의 왕 히스기야가 죽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전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조금의 가능성도 열어 두지 않으시고 유언을 남기라는 매몰찬 말씀만을 남기셨습니다.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은 때에 믿음의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합니까?

 

  • 병들어 죽게 된 히스기야가 이사야를 통해 ‘죽고 살지 못하리라’는 신탁을 받지만, 포기하지 않고 여호와께 매달립니다. 병으로 부정해져서 성전으로 올라갈 수 없게 된 히스기야는 얼굴을 벽 쪽으로 돌리고 여호와께 간절히 기도하고, 여호와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다시 이사야를 보내 15년의 수명 연장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성의 구원도 약속해 주십니다.

 

히스기야의 발병과 회복의 약속(1-8)

 

믿음의 길은 안전하고 평화로운 상황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때로 성도는 최악의 상황에 놓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사랑하시는 자들을 온실 속 화초로 키우지 않으십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들도 언제나 고난과 역경에 직면합니다. 다만 믿음으로 극복한 뿐입니다.

 

1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니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나아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2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3이르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니 4이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5너는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 년을 더하고 6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 7이는 여호와께로 말미암는 너를 위한 징조이니 곧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을 그가 이루신다는 증거이니라 8보라 아하스의 해시계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를 뒤로 십 도를 물러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더니 이에 해시계에 나아갔던 해의 그림자가 십 도를 물러가니라(1-8)

 

이사야 선지자는 히스기야에게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라는 여호와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지만, 히스기야는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죽음을 선고받았다는 점에서 그 성격이 달랐습니다.

 

(1) 히스기야의 발병과 사망 통지(1)

 

히스기야의 발병과 회복의 약속히스기야가 ‘병이 들어 죽게’ 되었을 때, 이사야가 그에게 와서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는 하나님의 신탁을 전달합니다(1). 생사를 주관하시는 여호와께서 히스기야의 죽음을 결정하셨기에 병을 앓다가 죽는 수밖에 없습니다. 죽을병에 걸린 히스기야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세상을 떠나기 전에 후계자를 세워 통치권을 물려주는 것뿐입니다.

 

(2) 히스기야의 반응(2-3)

 

절망적 상황에서 히스기야는 체념하지 않고 죽음의 운명을 결정하신 하나님께 나아갑니다(2; 삼하12:14-16). 그는 삶과 죽음이 모두 하나님의 의지에 속함을 알기에 그분께 매달립니다.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는 공적 활동의 중단을 의미합니다(왕상 21:4). 그는 자신이 여호와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걸어왔고, 여호와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인정해주시길 간구합니다(3; 왕하 18:5-6). 그는 자신의 불행한 운명에서 선한 삶을 살아온 자신이 여호와에게서 잊혔음을 보고 다시 기억해주시길 호소합니다.

 

(3) 간구에 대한 여호와의 응답(4-8)

 

히스기야의 의로움이 인정을 받습니다. 그의 눈물 어린 기도에 긍정적으로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의 응답(5b-6)은 두 부분으로 이뤄집니다. 먼저 히스기야의 수명을 15년 연장해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열왕기하 18:2에 따르면 히스기야는 29년을 통치하기에, 그는 통치 기간 전반부를 끝으로 죽어야만 했습니다. 이제 히스기야에게 지금까지 통치한 기간만큼 앞으로 더 통치할 것을 허락하십니다. 두 번째는 히스기야의 간구와 직접 관련이 없는 뜻밖의 약속입니다. 히스기야에게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해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앗수르의 위협이 아직 구체화하지 않았을 때, 히스기야가 간구하지 않은 예루살렘과 다윗 왕조의 구원 약속이 주어집니다. 죽을병에 걸린 히스기야의 개인적 구원과 예루살렘의 정치적 구원이 하나로 연결됩니다. 히스기야의 사적 경험 안에 이스라엘의 구속사가 편입되면서 그의 발병과 치유 사건이 예루살렘의 위기와 해방의 예표가 됩니다. 죽을 운명의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매달려 생명을 얻은 것처럼, 예루살렘의 구원도 그분의 약속이 기계적으로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약속을 주신 분께 전적으로 의존할 때 이뤄집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약속해주실 뿐만 아니라, 징조를 통해 약속의 확실성도 보장해주십니다(7-8).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아하스의 계단’(‘아하스의 해시계’)을 내려간 태양의 그림자가 열 칸 뒤로 물러납니다. 여호와께서 초자연적인 기적을 징조로 주시고 이를 그대로 실행하십니다. ‘징조’는 여호와의 사명이나 약속을 받은 자가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삿 6:17,36-40; 삼상 10:2-9; 왕상 13:3; 사 7:11; 37:30). 사명이나 약속을 받은 자는 징조의 현재적 성취를 통해 미래적 약속의 확실성을 신뢰하게 됩니다.

 

히스기야의 글(감사기도)(9-20)

좋은 기도는 하나님께서는 들으시는 기도입니다. 아무리 미사여구를 사용하고 유창하게 기도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시면 그 기도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히스기야는 가장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기도했고, 응답받은 후 하나님께 찬송을 올려 드렸습니다. 히스기야의 기도를 묵상하며 응답받는 기도의 비결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9유다 왕 히스기야가 병들었다가 그의 병이 나은 때에 기록한 글이 이러하니라 10내가 말하기를 나의 중년에 스올의 문에 들어가고 나의 여생을 빼앗기게 되리라 하였도다 11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뵈옵지 못하리니 산자의 땅에서 다시는 여호와를 뵈옵지 못하겠고 내가 세상의 거민 중에서 한 사람도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12나의 거처는 목자의 장막을 걷음 같이 나를 떠나 옮겨졌고 직공이 베를 걷어 말음 같이 내가 내 생명을 말았도다 주께서 나를 틀에서 끊으시리니 조석간에 나를 끝내시리라 13내가 아침까지 견디었사오나 주께서 사자 같이 나의 모든 뼈를 꺾으시오니 조석간에 나를 끝내시리라 14나는 제비 같이, 학 같이 지저귀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 내 눈이 쇠하도록 앙망하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압제를 받사오니 나의 중보가 되옵소서 15주께서 내게 말씀하시고 또 친히 이루셨사오니 내가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내 영혼의 고통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신토록 방황하리이다 16주여 사람의 사는 것이 이에 있고 내 심령의 생명도 온전히 거기에 있사오니 원하건대 나를 치료하시며 나를 살려 주옵소서 17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내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내 모든 죄를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 18스올이 주께 감사하지 못하며 사망이 주를 찬양하지 못하며 구덩이에 들어간 자가 주의 신실을 바라지 못하되 19오직 산 자 곧 산 자는 오늘 내가 하는 것과 같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신실을 아버지가 그의 자녀에게 알게 하리이다 20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니 우리가 종신토록 여호와의 전에서 수금으로 나의 노래를 노래하리로다(9-20)

 

죽을병이 치유되는 기도 응답을 받아 수명이 15명 연장된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해 찬양시를 지었습니다. 우리는 히스기야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한 자가 누리는 큰 기쁨과 감사를 엿볼 수 있습니다.

 

(1) 머리글(9)

 

감사기도를 통해 히스기야는 자신의 발병과 치유 경험을 공유하도록 백성을 초대합니다.

 

(2) 탄식(10-13)

 

그는 먼저 때 이른 죽음을 탄식합니다(10). 그는 ‘중년에’ 삶을 끝내고 세상을 떠나야 했습니다. ‘들어가고’와 3절의 ‘행하며’는 ‘가다’를 의미하는 동사 ‘할라크’의 번역입니다.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살아왔지만, 한창때에 스올의 문으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는 ‘여생’을 스올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스올의 문’은 여기에만 나오는 표현으로, 어느 인생도 피할 수 없는 최후의 목적지를 가리킵니다. 그의 탄식은 죽음의 현실에서 죽음이 가져올 종교적-사회적 단절로 옮겨갑니다. 그는 여호와를 뵙지 못하고 이웃 사람들도 보지 못하게 될 것을 슬퍼했습니다(11). ‘여호와를 보다’는 제의적 경험을 가리킵니다. 일상적인 삶이나 역사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성전 제의에 참석해서 그분의 임재를 경험합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산 자의 땅’에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제의적으로 더러운 스올에서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찾을 길이 없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죽음은 혈연적-사회적 공동체로부터 떠남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는 세상 주민 가운데서 ‘사람’(아담)을 보지 못하게 될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습니다. 그는 종교적-사회적 삶이 없는 죽음의 땅으로 내려가야 했습니다. 육체적으로는 아직 죽지 않았지만, 실질적으로는 이미 산 자들의 세계에서 잘렸다고 느꼈습니다(12). 자신의 ‘거처’를 ‘목자의 천막’에 비유합니다. 목자가 다른 초지로 이동하기 위해 말뚝을 뽑고 천막을 둘둘 마는 것처럼, 그의 거처도 이 세상에서 스올로 옮겨지기 위해 깨끗하게 치워졌습니다.

두번째 비유는 직조공이 틀로 피륙을 짜는 과정과 관련됩니다. 짠 천을 나무로 된 굴대에 감아 베틀에서 잘라내듯이 그의 생명이 감겨 잘렸습니다. 그의 수명은 마지막에 다다랐습니다. 그는 병상에서 매일 ‘낮부터 밤까지’죽음을 경험했습니다. 아침이 밝아오기까지 거듭 하나님께 구해달라고 부르짖었지만, 더욱 절망적 상황에 떨어질 뿐이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사자 같이’ 그의 뼈를 부수어 꺾으셨습니다(13).

 

(3) 간구(14-17a)

 

약자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시는 하나님께서 그에게는 파괴적 존재가 되셨습니다. 자신의 절망적 형편을 제비와 비둘기에 비유합니다(14). 자신의 고통과 괴로움을 말로 표현하지도 못하고 신음할 뿐이었습니다. 오직 위로부터 오는 도움을 고대하지만 헛수고였습니다. 그의 눈은 위를 쳐다보느라 지쳤습니다. 눈으로 간절히 살려달라고 부르짖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구원은 그분만 하실 수 있기에 그분의 침묵에도 불구하고 거듭 고통과 어려움을 호소하며, 그분께서 자신의 보증인이 되시길 간구했습니다. 하나님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온몸으로 매달린 왕이 종국에는 체념합니다(15). 하나님께서 정하신 운명이기에 절망적 형편을 받아들입니다. 질병을 짊어지고 슬픔 가운데 살다가 죽어야 할 운명임을 인정합니다. 놀랍게도 인간 실존에 관한 참담한 경험과 인식이 그를 체념에서 벗어나 여호와께로 나아가게 만듭니다(16). 그는 모든 인생의 삶이 오직 여호와에 의해서만 가능함을 깨닫고 인생의 실존적 한계를 정하신 그분께로 나아가서 그 극복을 시도합니다.

 

(4) 구원(17b-20)

 

탄식과 간구를 들어주셨다고 확신한 왕은 구원의 주체가 여호와이심을 증거하기 시작합니다(17). 그는 질병의 치유를 죄의 용서로 표현하면서 감사를 드립니다. 그는 ‘영혼의 고통’(15)을 통해 ‘주의 신실함’을 재발견합니다(18). 자신의 구원 경험에서 신실하신 여호와를 만납니다. 고침을 받은 왕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관한 자신의 경험을 공동체와 공유하면서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19-20). 스올이 아니라 ‘여호와의 전’이 그의 거주지가 됩니다.

 

히스기야의 치유(21-22)

어리석은 자들은 자기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기도하기보다는 자기 힘으로 해결하려 동분서주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이런 태도는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이며, 하나님보다 자신을 높이는 교만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기도의 응답을 받는 것은 참으로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그것도 죽음의 목적에서 구원받은 것이라면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21이사야가 이르기를 한 뭉치 무화과를 가져다가 종처에 붙이면 왕이 나으리라 하였고 22히스기야도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의 전에 올라갈 징조가 무엇이냐 하였더라(21-22)

 

이사야를 통해 수명이 연장되었다는 말씀을 들은 히스기야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고통이 실은 평안을 위한 것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이에 히스기야는 그가 죽을병에 걸렸던 것은 죄 때문이었음을 인정하며,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전지시고 자기 죄를 용서해 주셨다며 감사를 표현합니다.

 

(1) 처방전을 주는 이사야(21)

 

사건의 전개에 있어 1-8절의 연속입니다. 이사야는 히스기야의 시종들에게 처방을 가르쳐줍니다. 고대 세계에서 무화과는 드물지 않게 치료 수단으로 사용됐습니다. 히스기야의 치유 이야기는 무화과 처방의 효과에 관한 징조를 구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이야기는 끝이 났지만, 그 결말은 열린 상태로 남겨집니다. 이 열린 결말은 의도적인 것으로, 이를 통해 히스기야의 구원 경험이 독자(이스라엘)에게 주는 가르침이 됩니다.

 

(2) 징조를 구하는 히스기야(22)

 

이사야의 문맥에서 히스기야의 징조 요청(하나님 중심적 믿음의 상징)은 아하스의 징조 거절(자기중심적 거짓 믿음의 상징)과 대조적 짝을 이룹니다(7:11-12). 치유 약속에 의존하여 징조를 구한 히스기야처럼 하나님의 구원 약속(6)에 매달려 그분께 징조를 구한다면, 이스라엘은 질병(심판)에서 치유함을 받고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게’ 됩니다.


우리의 기도가 사람에게 보이려는 기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바리새인의 기도처럼 사람들에게서 이미 상을 받아 버린 기도는 하나님께 응답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린아이처럼 기도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가 하나님께 엎드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멀리 던져 버리시고, 우리가 처해 있는 궁덩이에서 우리를 건지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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