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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15-01)


재앙 앞에서 우상을 찾는 모압

이사야 15장 1-9절


 

심판이 임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기란 얼마나 어려 웁니까? 더욱이 심판의 고통을 당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기란 더더욱 어렵습니다. 어리석게도 작정된 심판을 다 겪고 나서야 하나님을 찾는 우를 범합니다. 모압에 대한 심판을 보며 꼭 기억해야 할 바는 무엇입니까?

 

  • 모압이 한밤중에 적의 기습을 받아 치명적인 패배를 당합니다. 모압 알과 모압 기르가 멸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모압은 국가적인 애도를 선포하고 통곡합니다. 백성들이 자신을 위해 임한 산의 노여움을 달래려고 모두 머리와 수염을 깎고, 허리에는 배를 동이고 산당으로 올라가서 슬피 울며 부르짖습니다.

모압의 북부 지방(1-4)

하나님의 심판을 통한 멸망은 한순간에 찾아오고 감당할 수 없게 다가올 것입니다. 어떻게 할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아무리 견고한 성일지라도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입니다. 국가의 운명이나 한 조직이나 개인의 운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안전과 보장은 오직 하나님 손에 있음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1모압에 관한 경고라 하룻밤에 모압 알이 망하여 황폐할 것이며 하룻밤에 모압 기르가 망하여 황폐할 것이라 2그들은 바잇과 디본 산당에 올라가서 울며 모압은 느보와 메드바를 위하여 통곡하는도다 그들이 각각 머리카락을 밀고 각각 수염을 깎았으며 3거리에서는 굵은 베로 몸을 동였으며 지붕과 넓은 곳에서는 각기 애통하여 심히 울며 4헤스본과 엘르알레는 부르짖으며 그들의 소리는 야하스까지 들리니 그러므로 모압의 군사들이 크게 부르짖으며 그들의 혼이 속에서 떠는도다(1-4)

 

이사야 15장은 모압에 관한 시로 시작합니다. 유다와 그 동쪽 이웃인 모압의 관계는, 유다와 블레셋만큼이나 우려스럽습니다. 유다는 모압과의 불화에 대한 오래된 기억을 보존하고 있었습니다. 앞서 바벨론, 앗수르, 블레셋에 이어 네 번째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손인 모압 족속의 멸망에 대한 예언을 기록한 두 장(15,16장) 중 그 전반부레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1) 예언자의 탄식 : 모압의 멸망(1)

 

모압에 대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문법적으로 똑같은 구조와 같은 단어로 된 두 개의 문장으로 모압의 멸망을 탄식합니다. 하룻밤에 모압 알이 망하여 폐허가 됐고, 하룻밤에 모압 기르가 망하여 폐허가 됐습니다(1).

모압을 공격하는 적의 정체에 관해서는 달리 언급하지 않고, 모압이 멸망했다는 사실에만 집중합니다. 멸망과 관련된 부가적 언급은 문장 서두에 두 번 등장하는 ‘하룻밤에’가 유일합니다. 침략의 시간으로 나오는 ‘밤’은 파국적 재앙의 ‘갑작스러움과 두려움’을 시사해줍니다.

고대 세계에서는 일반적으로 밤에는 군대가 이동하거나 전투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싸움은 보통 새벽이나 아침에 시작하는데 모압의 경우에는 한밤중에 적들이 침략하여 짓밟았습니다. 적군과 아군이 구별되지 않는 캄캄한 밤에 성을 공격할 수 있는 적이라면 보통 군대가 아닙니다. 모압의 주요 성읍인 알과 기르의 위치는 여전히 불분명하지만, 아르논강 남쪽에 있었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2) 백성의 탄식 묘사(2-4)

 

남쪽 성읍들이 함락됐다는 무서운 소식을 듣고 북쪽 지역 사람들은 집을 떠나 산당에 올라가 국가적 재난에 통곡합니다. 사람들이 디본 산당으로 올라가 성소에서 슬피 울고, 모압이 느보와 메드바를 위하여 통곡합니다(2). 이들은 머리를 밀고 수염을 깎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인 채 슬피 울며 거리를 다니거나 지붕에서 애곡합니다(3). 국가적인 비상사태를 맞아 모압 사람들이 모두 공식적인 애도 행위에 참여합니다.

고대 세계에서 신을 향한 통곡은 어떻게 해서든 신을 움직여 재앙을 극복해보려는 시도에 속했습니다. 전쟁의 패배나 재앙이 신의 노여움에서 기인한다고 보았기에, 그 노여움을 진정시키기 위해 사람들은 회개하고 통곡했습니다. 이들은 크게 부르짖을수록 신에게 더 잘 상달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특이하게도 신전과 산당을 찾아가는 행위를 우상숭배의 부정적 시각에서 고발하지 않고(참조. 16:12), 객관적으로 기술합니다. 절망적 형편에 처한 자들에 대한 인간적 연대감을 은연중에 보여줍니다.

 

언급된 장소는 대략 사해 동쪽 연안 가운데쯤으로 흘러 들어가는 아르논 강 북쪽에 위치했습니다. 갓 또는 르우벤 지파에 속했던 디본(민수기 21:30; 32:3,34; 여호수아 13:9,17)은 아르논 강에서 북쪽으로 4km, 사해에서 동쪽으로 20km 떨어졌습니다. 주전 9세기 중엽 이스라엘로부터 주권을 되찾은 모압 왕 메사는 디본을 도성으로 삼았습니다. 느보는 사해 북단의 산지에 자리한 성읍으로, 디본에서 북쪽으로 30km, 메드바에서 북서쪽으로 대략 5km 떨어졌습니다. 민수기 32:37-38에 의하면 4절에 나오는 헤스본, 엘르알레와 함께 르우벤 지파의 분깃에 속했습니다. 모세는 근처에 있는 느보 산에서 약속의 땅을 보고 생을 마쳤습니다(신명기 34:16). 메드바는 느보에서 남동쪽으로 대략 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성읍이었습니다(민수기 21:30; 여호수아 13:9,16; 역대상 19:7).

디본과 느보와 메드바에서 시작된 통곡의 대열에 북쪽의 두 성읍 헤스본과 엘르알레가 동참합니다(4). 울부짖는 소리가 점점 더 커지며 모압을 뒤덮습니다. 헤스본과 엘르알레에서 애곡하는 소리가 30km 이상 떨어진 야하스에서도 들립니다. 야하스는 아마도 군사 요새였던 것 같습니다. 먼 곳에서 들려오는 절망적인 부르짖음에 야하스에 주둔한 병사들도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여 싸울 용기를 잃고 크게 부르짖습니다. 전투에 나서야 할 자들이 적을 대면하기도 전에 낙담하여 넋이 나간 듯 떱니다.

헤스본은 느보에서 북동쪽 6km, 메드바에서 북북동쪽으로 9km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정복하기 전에 아모리 족의 왕 시혼의 도읍지였습니다(민수기 21:27). 민수기 32:37에 따르면 르우벤 지파에, 여호수아 13:26; 21:39에 따르면 갓 지파에 속했습니다. 엘르알레(민수기 32:3,37; 예레미야 48:34)는 헤스본에서 북쪽으로 2.5km 떨어진, 기름진 평지에 위치한 성읍이었습니다. 야하스(민수기 21:23; 신명기 2:32; 여호수아 13:18; 21:36//역대상 6:63; 사사기 11:20; 예레미야 48:21,34)의 위치는 아직 불분명합니다. 자주 헤스본에서 남쪽으로 25km, 디본에서 북동쪽으로 7km 떨어진 곳에서 찾습니다.

모압의 남부 지방(5-7)

세상을 만끽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지탱해주는 중요한 것 하나만 사라져도 모든 삶이 주저앉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누리는 것이 아무것도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불림 받을 때는 우리가 누렸던 것들은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모압에게는 군사적인 시련만이 아니라 극심한 가뭄의 고통도 힘할 것입니다.

 

5내 마음이 모압을 위하여 부르짖는도다 그 피난민들은 소알과 에글랏 슬리시야까지 이르고 울며 루힛 비탈길로 올라가며 호로나임 길에서 패망을 울부짖으니 6니므림 물이 마르고 풀이 시들었으며 연한 풀이 말라 청청한 것이 없음이로다 7그러므로 그들이 얻은 재물과 쌓았던 것을 가지고 버드나무 시내를 건너리니(5-7)

 

북부 지역이 접령 당한 모압 사람들은 남서쪽(소알, 에글랏 슬리시야, 루힛, 호로나임, 니므림)으로 피신합니다. 피난민들에게는 먹을 양식도 없습니다. 결국 그들은 남부 경계 지역인 버드나무 시내를 건너 에돕으로 피신합니다.

 

(1) 예언자의 1인칭 탄식(5a)

 

이사야가 1인칭을 사용하면서 모압의 비극 안으로 들어옵니다. 첫째 단락에서는 사건 밖에서 모압의 파국적 재앙을 전해주던 예언자가 저들의 애통과 부르짖음에 참여합니다.

‘내 마음이 모압을 위하여 부르짖는도다’(5). 전란에 휩싸인 고향을 떠나 안전한 곳을 찾아 이곳저곳으로 헤매는 난민들을 (환상 가운데)보며 연민과 아픔의 마음으로 통곡합니다. 모압을 엄습한 재앙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이지만, 그럼에도 모압 사람들의 절망적인 처지가 예언자의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2) 피난민들의 곤경 묘사(5b-7)

 

모압의 피난민들이 살길을 찾아 소알까지, 에글랏 슬리시야까지 도망하면서 루힛 비탈길을 통곡하며 올라가고, 호로나임으로 가는 길에서 패망을 울부짖습니다. 적이 호로나임을 친다는 소리를 듣고 루힛 사람들이 피난을 떠나는데, 루힛 고개에서 벌써 호로나임이 멸망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아마도 피난민들은 소알을 지나 사해 남단을 우회하여 유다 남부 지역으로, 또는 계속 남쪽으로 내려가 에돔 땅으로 가려는 것 같습니다.

‘세 번째 암송아지’를 의미하는 에글랏 슬리 시야의 위치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 48:34에서도 호로나임과 함께 등장합니다. ‘루힛 비탈길’의 위치도 아직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호로나임은 아르논 강과 제레드 시내 중간쯤, 모압의 남부 지방에 있었으리라 추측합니다.

 

6-7절에서는 재앙의 종류가 전쟁에서 극심한 가뭄으로 바뀝니다. 가뭄의 재앙이 앞에 기술된 전쟁의 재앙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고대 세계에서 가뭄은 사람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전쟁만큼 치명적인 재앙이었습니다.

현재 문맥에 따르면, 전쟁과 더불어 극심한 자연재해가 모압을 덮쳐 황폐하게 만듭니다. 물은 마르고 풀은 시들고 목초는 타버립니다. 푸른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게 됩니다. 물이 없기에 농사를 지을 수 없고, 풀이 없기에 가축을 기를 수 없습니다. 그대로 앉아서 굶주려 죽거나, 살 곳을 찾아 아무 데로나 떠나는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애써 얻은 재물과 귀중품을 짊어지고 버드나무 시내를 건너갑니다. 위치가 불분명한 ‘니므림 물’은 사해 남단에서 북쪽으로 대략 13-16km 떨어진 고르엔누메이라(Goren-Numeirah)로 흘러 들어가는 와디 엔누메이라(Wadi en-Numeirah)에서, ‘버드나무 시내’는 남동쪽에서 사해 남단으로 흘러 들어가는 와디 엘헤사(Wadi el-Hesa)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모압 전역을 휘도는 부르짖음(8-9)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면서 진노를 쏟아내기 시작하면, 심판의 대상은 그 진노를 무서워 감당할 수 없습니다. 심판이 임하기 전에 회개하고 돌아서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은 어느 정도면 충분할 것 같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모압에게 심판하실 때, 도피한 자 위에, 남은 자 위에 심판의 사자를 보내서 더 철저하게 심판하게 하십니다.

 

8이는 곡성이 모압 사방에 둘렸고 슬피 부르짖음이 에글라임에 이르며 부르짖음이 브엘엘림에 미치며 9디몬 물에는 피가 가득함이로다 그럴지라도 내가 디몬에 재앙을 더 내리되 모압에 도피한 자와 그 땅에 남은 자에게 사자를 보내리라(8-9)

 

이사야의 시선이 피난민들에서 다시 모압의 애곡 행위(1-4)로 옮겨집니다. 내용상 4절에 연결됩니다.

북쪽에서 시작된 애곡 소리가 모압 전역을 뒤덮습니다. 울부짖음이 에글라임과 브엘엘림까지 이릅니다. 두 성읍의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문맥상 모압 국경 남서쪽 지역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나일강이 피로 붉게 물들었던 것처럼 디몬의 물이 피로 넘칩니다. 적의 칼에디몬의 수많은 주민이 살육을 당합니다.

그러나 예언자가 환상 가운데 보고 있는 재앙이 마지막 재앙이 아닙니다. 갑자기 화자가 하나님의 1인칭으로 바뀝니다. 모압에 임할 재앙은 하나님의 심판 의지에서 나온 것입니다. 모압을 전쟁과 가뭄으로 징계하시는 하나님께서 디몬 위로 또 다른 재앙이 임하게 하십니다. 그분께서 ‘모압에 도피한 자와 그 땅에 남은 자’에게 ‘사자’를 보내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실 사자는 사람도 공격하는 들짐승의 사실적 표현일 수도 있고, 또 사자처럼 무서운 적을 가리키는 비유적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모압이 왜 이처럼 혹독한 심판에 떨어지는지는 16장에서 부분적으로 언급됩니다.


모압의 백성들은 멸망 중에도 디본 산당을 찾습니다. 하지만 어디에도 구언해줄 이는 없습니다. 우상은 더 큰 위험에 빠트릴 뿐 건져주지 못합니다. 돌이킬 수 없을 때가 이르기 전에 잘못된 행동을 버려야 합니다. 후회의 눈물을 흘리기 전에 회개의 눈물을 쏟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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