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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16-01)

 


교만과 파멸될 모압

이사야 16장 1-14절


 

수많은 모압의 피난민들이 아르논 강나루에 모여들었습니다. 목숨을 건지기 위해 서로 배를 타려고 아우성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압의 교만을 엄중하게 징벌하실 때 예루살렘의 다윗 왕조는 모압의 난민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고, 무엇이 인자와 충실, 정의와 공의에 따른 나라인지 보여주어야 합니다.

 

  • 이사야는 모압에게 시온에서 도움을 찾도록 제안합니다. 예전에 모압이 다윗 왕국의 봉신이었던 것처럼 예루살렘에서 통치하는 다윗 후손에게서 피난처를 찾는다면 모압은 파국적인 멸망을 피할 수 있습니다. 모압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다윗의 보좌에 앉아 정의와 공의로 통치할 자에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모압에 주는 권면(1-5)

다윗 왕권의 회복에 대해 예언한 것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복음에 근거하여 세워질 신약 교회에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도 다 포함될 것임을 예표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의 형제국인 모압에 대해서는 다른 열방들의 예언과는 달리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 주어집니다.

 

1너희는 이 땅 통치자에게 어린 양들을 드리되 셀라에서부터 광야를 지나 딸 시온 산으로 보낼지니라 2모압의 딸들은 아르논 나루에서 떠다니는 새 같고 보금자리에서 흩어진 새 새끼 같을 것이라 3너는 방도를 베풀며 공의로 판결하며 대낮에 밤 같이 그늘을 지으며 쫓겨난 자들을 숨기며 도망한 자들을 발각되게 하지 말며 4나의 쫓겨난 자들이 너와 함께 있게 하되 너 모압은 멸절하는 자 앞에서 그들에게 피할 곳이 되라 대저 토색하는 자가 망하였고 멸절하는 자가 그쳤고 압제하는 자가 이 땅에서 멸절하였으며 5다윗의 장막에 인자함으로 왕위가 굳게 설 것이요 그 위에 앉을 자는 충실함으로 판결하며 정의를 구하며 공의를 신속히 행하리라(1-5)

 

다른 열방에 대해서는 심판의 메시지만을 선포한 선지자가 모압에 대해서는 심판의 날에 재난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길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배려는 이스라엘과 모압의 특별한 관계를 고려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1) 예언자의 권면(1-2)

 

이사야가 모압의 운명에 적극적으로 개입합니다. 청자 ‘너희는 모압의 통치자들이고, 이 땅 통치자’는 예루살렘과 유다의 왕을 가리킵니다. 이사야는 모압의 통치자들에게 도움이 시온에 있음을 가르쳐줍니다. 시온산으로 양을 보내도록 권고합니다. 살기를 원한다면 모압은 조공을 보내고 유다의 봉신이 되어야 합니다(왕하 3:4).

예전에 다윗 왕국의 봉신이었던 것처럼, 예루살렘에서 통치하는 다윗의 후손에게서 도움을 찾는다면 모압은 완전한 멸망을 피할 수 있습니다. 다윗 왕조의 보호 아래 들어온다면 모압은 여호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곤고한 자들’의 피난처로 세우신 시온(14:32)이 칼에 쫓겨 떠도는 모압 난민들에게도 피난처가 될 수 있습니다.

모압 사절단의 출발지로 언급된 ‘셀라’가 고유명사인지 보통명사(바위)인지 불확실합니다. 에돔의 수도를 제외하고 셀라로 불리는 성읍 이름이 없기에 보통명사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무서운 적이 침략하자 모압의 통치자들이 바위로 뒤덮인 국경 지대의 광야로 피신한 것 같습니다. 15:5-7에 나온 모압 피난민들에 관해묘사가 다시 이어집니다. 보금자리에서 흩어진 새 새끼처럼 ‘모압의 딸들’이 아르논 강의 건널목을 헤맵니다(2).

적에게 점령당한 성들의 주민들이 목적지도 없이 무작정 길을 떠납니다. 굶주림과 공포에 기진한 피난민들은 아르논 강을 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다가 죽어갑니다. 모압의 통치자들이 빨리 시온으로 사절을 보내 도움을 받아내지 못한다면, 모압의 피난민은 모두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2) 도움 요청의 구체적 메시지(3-4a)

 

이사야는 멸망을 모면할 수 있는 방책을 알려주며, 모압 사절이 유다 왕을 찾아가서 호소할 말도 가르쳐줍니다(3-4a). ‘(왕 이시여, 우리에게 당신) 생각을 알려주소서. 결정을 내려주소서. 한낮에 당신의 그늘을 밤처럼 펼쳐주소서. 쫓겨난 자들을 숨겨주시고 도망치는 자들을 들키지 않게 해주소서. 모압의 쫓겨난 자들이 당신 곁에 머물 수 있게 해주소서. 그들에게 피난처가 되어주소서.’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났을 주변 나라들은 일반적으로 난민들의 유입을 막기 위해 국경을 봉쇄했습니다. 모압 사신들은 유다가 국경을 열고 전쟁을 피해 떠도는 자국의 난민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해주도록 호소합니다.

이사야는 이스라엘의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내다보며 무서운 적에게 침략당한 모압의 난민들을 받아들일 것을 예루살렘 왕궁의 정치가들에게 충고합니다.

 

(3) 구원 선포(4b-5)

 

‘억압이 그치고 파괴가 끝나압제자들이 그 땅에서 사라지면 다윗의 장막에 한 보좌가 인애로써 굳게 세워지고, 정의를 추구하고 공의를 신속히 행하는 한 재판관이 진실함으로 그 위에 앉으리라’(4b-5). 다윗 왕조가 모압의 요청을 들어주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모압을 억압하던 자들이 떠나면 은혜를 입은 모압이 유다를 종주국으로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억압과 파괴로 고통당하는 모압이 다윗의 보좌에 앉아 인애와 진실을 따라 정의와 공의로 다스릴 통치자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다윗 시대처럼 모압이 다시 이스라엘의 봉신이 됩니다.

 

두 번째 탄식(6-12)

하나님의 징계를 초래한 원인이 된 죄를 찾아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인내로써 이 연단을 감당해 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과 은혜를 충만하게 경험하고 감사할 수 있는 자리로 다시금 끌어올리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민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할 경우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징계하셔서 그들의 죄에 대해 보응하시며 그들이 죄에서 돌이키도록 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6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심히 교만하도다 그가 거만하며 교만하며 분노함도 들었거니와 그의 자랑이 헛되도다 7그러므로 모압이 모압을 위하여 통곡하되 다 통곡하며 길하레셋 건포도 떡을 위하여 그들이 슬퍼하며 심히 근심하리니 8이는 헤스본의 밭과 십마의 포도나무가 말랐음이라 전에는 그 가지가 야셀에 미쳐 광야에 이르고 그 싹이 자라서 바다를 건넜더니 이제 열국의 주권자들이 그 좋은 가지를 꺾었도다 9그러므로 내가 야셀의 울음처럼 십마의 포도나무를 위하여 울리라 헤스본이여, 엘르알레여, 내 눈물로 너를 적시리니 너의 여름 실과, 네 농작물에 즐거운 소리가 그쳤음이라 10즐거움과 기쁨이 기름진 밭에서 떠났고 포도원에는 노래와 즐거운 소리가 없어지겠고 틀에는 포도를 밟을 사람이 없으리니 이는 내가 즐거운 소리를 그치게 하였음이라 11이러므로 내 마음이 모압을 위하여 수금 같이 소리를 발하며 내 창자가 길하레셋을 위하여 그러하도다 12모압이 그 산당에서 피곤하도록 봉사하며 자기 성소에 나아가서 기도할지라도 소용없으리로다(6-12)

 

이 본문에서는 15장과 같이 모압에 대한 파멸의 심판이 강력하게 선포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사야 선지자의 적절한 충고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즉 모압은 유다 와에게 공물을 보내어 도움을 간청함으로써 유다 땅에서 피난처를 구하라는 이사야의 충고를 무시했습니다.

 

(1) 모압의 탄식과 그 원인(6-8)

 

모압에 파국적 재앙이 임하는 이유가 처음으로 언급됩니다. 모압의 교만과 오만함이 모압의 멸망을 초래합니다(6). 모압의 허풍을 들은 ‘우리’의 신분은 감춰져 있습니다.

 

(2) 예언자의 탄식(9-12)

 

9절과 11절은 이사야의 1인칭 문장이고, 10b절은 여호와의 1인칭 문장이기에 여호와를 포함한 예언자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비슷한 의미를 갖는 다섯 개의 단어(교만, 심히 교만하도다, 거만, 교만, 분노)를 반복적으로 사용해 모압의 교만이 얼마나 극심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처음 네 개는 ‘높다’를 의미하는 동사 ‘가아’에서 파생한 단어로, 자기 힘과 능력과 업적에 의존해 자신을 높이는 행위가 교만의 본질임을 보여줍니다.

다섯 번째 ‘분노’ ‘에브라’는 한계 또는 정도를 넘은 행위를 가리키는 단어로, 평정심의 한계를 넘으면 노여워함으로,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그것을 넘으면 교만함으로 나타납니다. 모압의 교만과 헛된 자랑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이들은 자신들의 군사력과 적이 접근하기 힘든 지형적 장점을 과신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모압을 심판하는 주체가 여호와이시기에 이들의 자랑거리가 무용지물이 됩니다.

 

고발의 말씀 다음에 ‘그러므로’로 시작하는 심판의말씀이 뒤따르는데, 여기서는 탄식이 나옵니다. 심판이 이미 이뤄진 것을 전제합니다. 심판이 돌이킬 수 없게 확정됐음을 보여줍니다. 모압이 어느 날 갑자기 풍요를 빼앗긴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며 통곡합니다(7). 이들은 길하레셋의 건포도 떡을 생각하며 슬피 웁니다. 전에 맛있게 먹던 건포도 떡을 구경하기도 어렵게 됐습니다. 건포도 떡은 제의적 용도로 사용되기도 하지만(삼하 6:19; 호 3:1), 여기서는 모압의 풍요롭고도 자랑스러운 농산물의 대표로 언급됐습니다. 길하레셋(오늘의 케락)은 사해에서 동쪽으로 대략 20km 정도 떨어진, 아르논과 제레드의 중간쯤에 위치한 모압의 성습인데, 현재 문맥에서는 모압을 대신합니다. 수출품으로 유명했던 모압의 포도 농사를 배경으로 멸망을 기술합니다. 포도 산지로 유명한 헤스본과 십마와 야외 극상품 포도나무가 말라 황폐하게 됩니다(8). 전쟁 또는 자연재해로 포도 농사를 완전히 망쳐 거둬들일 것이 없게 된다. 초라해진 현재가 영화로웠던 과거에 대비됩니다. ‘그 가지가 야셀에 미쳐 광야에 이르고 그싹이 자라서 바다를 건넜더니’는 모압이 크게 확장됐던 과거를 돌아보는 언급입니다. 모압은 한때 북쪽으로는 암몬 경계의 야셀까지, 동쪽으로는 광야까지, 서쪽으로는 사해까지 미쳤습니다. 전에 사방으로 뻗어나갔던 포도나무의 가지가 민족들의 통치자들에 의해 잘렸습니다. 모압의 임박한 심판을 바라보며 이사야는 다시금 이들의 파국적 운명에 동참합니다. 수확하는 즐거움이 사라진 포도밭과 과수원을 내다보며 격정적으로 반응합니다(9). 마지막에 나오는 엘르알레를 제외하고 8절에 나왔던 지명을 역순으로 언급됩니다. 폐허가 된 포도밭과 과수원에서는 수확하는 즐거움이 사라지고 적막감만 감돕니다. 모압의 황폐함은 물론 여호와의 결정에 따른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압의 교만(1)을 징계하시려고 추수의 즐거운 소리를 그치게 하십니다(10; 15:9). 폐허가 된 헤스본과 엘르알레가 이사야의 눈에서 눈물을 한없이 쏟아지게 하고(9b), 멸망에 떨어진 모압과 길하레셋이 그의 마음과 창자를 수금 소리처럼 떨게 하지만(11), 그는 여호와께서 모압에 행하시는 심판의 공의로움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재앙에서 벗어나기 위해 산당에 올라가 신에게 열심히 제사를 지내고 성소에서 기도를 드릴지라도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12). 모압의 신 그모스가 진노해서 내린 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모압의 교만을 징벌하기로 하셨기에, 모압은 심판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모압의 재앙은 이들이 숭배하는 신의 무능력을 더욱 드러낼 뿐입니다. 중립적으로 언급된 15:2의 경우와 달리 여기서는 모압의 종교가 부정적으로 평가됩니다.

 

맺는말(13-14)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걸맞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할 때 하나님의 사랑을 전달하는 사자라는 고귀한 사명을 감당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당하는 자들을 통하여서도 죄인을 구원하시고 그로 인하여 영광받기 원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압 인들에게 자국으로 피난한 남유다 백성들을 선대하라고 명하신 것은 사랑하시는 당신의 백성을 돌보시는 배려일 뿐만 아니라 구원하시고자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13이는 여호와께서 오래 전부터 모압을 들어 하신 말씀이거니와 14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품꾼의 정한 해와 같이 삼 년 내에 모압의 영화와 그 큰 무리가 능욕을 당할지라 그 남은 수가 심히 적어 보잘것없이 되리라 하시도다(13-14)

 

선지자는 모압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마무리합니다. 모든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3년 내에 이 모든 일을 이루시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선지가 강조하고자 하는 점은 두 가지입니다.

 

(1) 결정된 모압의 멸망(13)

 

모압의 멸망은 여호와께서 오래전에 결정하신 그분 계획에 속합니다. 모압의 파멸을 선고한 15:1-16:12의 내용은 이미 오래 전에 선포된 것으로서, 이제는 그것이 성취될 일만 남은 상태였습니다. 얼마나 오래 전에 이 메시지가 선포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메시지가 선포된 지 오래이며 이미 충분한 시간이 흘렀다는 점입니다.

 

(2) 3년 안에 성취될 모압의 멸망 예언(14)

 

앞으로 3년이 지나면 모압의 안녕과 번영은 끝장납니다. 수많은 사람이 사라지고 극히 적은수의 사람만 살아남아 보잘 것 없는 존재가 됩니다. ‘품꾼의 정한 해와 같이 삼 년’의 의미는 불분명합니다. 계약 기간이 법적으로 정해지는 것처럼 모압의 남은 기간이 정확하게 3년임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삼 년은 자주 새로운 사건을 기다리는 기간으로 사용됩니다(삼하 13:38; 왕상 22:1; 왕하 17:5;18:10; 사 20:3).


피할 걸도, 피할 곳도, 그리고 지금이 피할 때라는 것도 알려주십니다. 아직 돌이킬 기회가 있다는 건 얼마나 소중합니까? 남은 기회를 다 소진해버려 돌아갈 시간도, 돌아갈 품도 없다면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믿어서는 안 될 것에 마음 다 주지 말고 어서 돌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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