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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14-01)


파멸에 처해질 바벨론의 운명

이사야 14장 1-23절


 

바벨론의 교만은 하늘 높은 줄을 모릅니다. 급기야 신의 자리에 오르려 합니다. 세상의 뭇 영웅들을 스롤로 보낼만큼 거칠 것이 없었던 그들은 자신들의 신이 온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하늘의 별들까지 주관한다 생각했습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는 웃으시며 추락과 파멸을 예고하십니다.

 

  • 메대를 통한 바벨론의 심판(13장)이 이스라엘의 운명에 전환점을 마련해줍니다. 여호와께서 바벨론을 멸망시키시고, 민족들 가운데 흩어진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 가나안에 돌아와 살 수 있도록 긍휼을 베풀어주십니다. 이스라엘의 귀환은 아직 미래 사건이지만, 여호와께서 바벨론의 멸망을 확정하셨기에 소망 가운데 미리 경험할 수 있는 약속입니다.

 

이스라엘의 회복(1-2)

하나님께서 높이시지 않는 자라면 스스로 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도, 형제들도, 사회적 약자들도 보이지 않을 만큼 높아지는 것은 진정한 성공이 아닙니다. 언제 가는 이렇게 높아진 자들을 낮추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 살 동안에 끝까지 하나님만 의지하고 세상을 섬길 때, 언젠가는 세상으로부터 섬김을 받을 것입니다.

 

1여호와께서 야곱을 긍휼히 여기시며 이스라엘을 다시 택하여 그들의 땅에 두시리니 나그네 된 자가 야곱 족속과 연합하여 그들에게 예속될 것이며 2민족들이 그들을 데리고 그들의 본토에 돌아오리니 이스라엘 족속이 여호와의 땅에서 그들을 얻어 노비로 삼겠고 전에 자기를 사로잡던 자들을 사로잡고 자기를 압제하던 자들을 주관하리라(1-2)

 

여호와께서 열국을 심판하시는 날이 이스라엘에게는 구원의 날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긍휼하신의 결과입니다. 그날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인정하는 자들도 합류하여 가나안 땅으로 돌아와 회복의 축복에 참여할 것입니다.

 

(1) 이스라엘의 귀환(1)

 

고집스럽게 반항하며 회개하지 않았던 이스라엘에게 구원과 새로운 출발이 가능하겠습니까? 유배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완전히 끝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에 의해 언약이 파괴되었기에 재결합이 불가능해 보이지만, 하나님의 긍휼은 신학적 한계를 뛰어 넘습니다. 야곱에 대한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이 새로운 시작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세상 악인들의 멸망 또는 바벨론의 멸망은 이스라엘에는 여호와의 긍휼이 드러나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여호와께서 야곱을 긍휼히 여기시며’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표현입니다. 명사 ‘자궁’에서 파생된 동사 ‘긍휼히 여기다’는 자녀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베푸는 어머니의 헌신적 사랑을 표현합니다(54:8,10). 여호와께서 값없이 베푸시는 사랑이 고집 세게 반항하며 회개하지 않는 이스라엘에게 구원과 새로운 출발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이스라엘을 다시 택하여’는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이스라엘의 선택이 파탄에 직면했음을 전제합니다. 그분의 일방적인 사랑이 ‘새로운 선택’을 가능하게 합니다(예레미야 33:23-26). 전에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가나안 땅을 선물로 주셨던 것처럼(신명기 4:37-38), 새로운 선택에서도 땅이 선물로 주어집니다.

 

(2) 이스라엘의 해방(2)

 

이스라엘이 고토로 돌아와서 풍요롭게 살 때, 그들 가운데 사는 이방인들이 이들에게 합류하여 연합하게 됩니다. 나그네 된 자는 여러 이유에서 고향을 떠나 타향에 정착한 자들로, 대부분 타국인을 의미합니다. 회복된 이스라엘의 문호가 가나안 땅에 함께 사는 이방인들에게 개방됩니다. 세상에 흩어져 사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민족들의 인도를 받으며 고향으로 귀환합니다. 안내자 역할을 담당했던 이방인들이 귀환민을 섬기는 종이 된다. 민족들 가운데 객으로 살며, 이들을 섬겼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과거 자신을 압제하던 자들을 이제는 종으로 부리게 됩니다. 이스라엘과 민족들의 운명이 완전히 역전됩니다. 부당하게 억압당하던 자들이 위로를 받아 지배자가 되고, 불법과 폭력으로 억압하던 자들이 피지배자의 신분에 떨어집니다.

 

바벨론 왕에 대한 애가(3-23)

하나님께서는 심판으로 평안과 안식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남은 자들에게는 안식을 주실 것입니다. 다시 긍휼이 여기시고 다시 택하시여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입니다. 나그네 된 자들이 한 나라가 되고 슬픔과 곤고한 노역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놀랍게도 자신들을 사로 잡았던 자들을 노예로 삼을 것입니다.

 

3여호와께서 너를 슬픔과 곤고와 및 네가 수고하는 고역에서 놓으시고 안식을 주시는 날에  4여호와께서 너를 슬픔과 곤고와 및 네가 수고하는 고역에서 놓으시고 안식을 주시는 날에 5너는 바벨론 왕에 대하여 이 노래를 지어 이르기를 압제하던 자가 어찌 그리 그쳤으며 강포한 성이 어찌 그리 폐하였는고 6여호와께서 악인의 몽둥이와 통치자의 규를 꺾으셨도다 7그들이 분내어 여러 민족을 치되 치기를 마지아니하였고 노하여 열방을 억압하여도 그 억압을 막을 자 없었더니 8이제는 온 땅이 조용하고 평온하니 무리가 소리 높여 노래하는도다 9향나무와 레바논의 백향목도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여 이르기를 네가 넘어져 있은즉 올라와서 우리를 베어 버릴 자 없다 하는도다 10아래의 스올이 너로 말미암아 소동하여 네가 오는 것을 영접하되 그것이 세상의 모든 영웅을 너로 말미암아 움직이게 하며 열방의 모든 왕을 그들의 왕좌에서 일어서게 하므로 11그들은 다 네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도 우리 같이 연약하게 되었느냐 너도 우리 같이 되었느냐 하리로다 12네 영화가 스올에 떨어졌음이여 네 비파 소리까지로다 구더기가 네 아래에 깔림이여 지렁이가 너를 덮었도다 13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14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15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16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 17너를 보는 이가 주목하여 너를 자세히 살펴 보며 말하기를 이 사람이 땅을 진동시키며 열국을 놀라게 하며 18세계를 황무하게 하며 성읍을 파괴하며 그에게 사로잡힌 자들을 집으로 놓아 보내지 아니하던 자가 아니냐 하리로다 19열방의 모든 왕들은 모두 각각 자기 집에서 영광 중에 자건마는 20오직 너는 자기 무덤에서 내쫓겼으니 가증한 나무 가지 같고 칼에 찔려 돌구덩이에 떨어진 주검들에 둘러싸였으니 밟힌 시체와 같도다 21네가 네 땅을 망하게 하였고 네 백성을 죽였으므로 그들과 함께 안장되지 못하나니 악을 행하는 자들의 후손은 영원히 이름이 불려지지 아니하리로다 할지니라 22너희는 그들의 조상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그의 자손 도륙하기를 준비하여 그들이 일어나 땅을 차지하여 성읍들로 세상을 가득하게 하지 못하게 하라 23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일어나 그들을 쳐서 이름과 남은 자와 아들과 후손을 바벨론에서 끊으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3-23)

 

바벨론은 기세등등했습니다. 아무도 그이 멸망을 예측 못할 만큼 그의 말이 허언이 아닌 줄 알았습니다. 그가 신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추락하여 그를 두려워하던 자들을 놀라게 할 것입니다.

 

(1) 서술적 도입부(3-4a)

 

이스라엘과 바벨론의 운명이 대조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안식을 주시는 날은 이스라엘을 폭력으로 억압하였던 바벨론 왕이 종말을 맞는 날입니다. 예언자는 바벨론의 종말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내다보면서 억압당하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바벨론 제국의 죽음을 조롱하는 노래를 부르게 합니다.

 

 

(2) 조롱의 노래(4b-20)

 

4b절부터 조롱의 노래가 시작됩니다. 민족들을 두려움에 빠뜨리며 발아래 굴복시켰던 폭군이 갑작스럽게 종말을 맞습니다. 여호와께서 ‘악인의 몽둥이와 통치자의 규’를 부수어버리셨습니다. ‘몽둥이와 규’는 왕의 손에 들린 홀(笏)로 압제자의 통치권을 상징합니다. 폭군이 사정없이 몽둥이와 막대기를 휘두르며 민족들을 위협하고 무자비하게 짓밟았지만, 누구도 감히 그에게 맞서지 못했습니다.

7-8절은 폭군의 압제에 시달리던 세상 사람들이 그의 죽음에 내보인 감격적 반응을 기술합니다. 폭군의 죽음으로 ‘온 땅’이 쉼을 얻고 조용해집니다. 더 이상 전쟁의 아우성과 소란이, 강제노동의 고통과 울부짖음이 들리지 않게 됩니다. 마침내 쉼과 평화를 얻게 된 사람들이 기뻐 환호합니다. 폭력에 시달리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레바논의 향나무와 백향목도 폭군의 죽음을 반깁니다. 레바논의 백향목은 고대 근동에서 최상품의 목재로 유명했습니다. 나무를 남벌하던 폭군이 죽자 레바논의 향나무와 백향목이 환성을 지릅니다. 세상과 자연이 모두 한마음으로 폭군의 죽음을 기뻐합니다.

 

이사야는 풍부한 시적 상상력을 동원해 폭군의 죽음이 불러온 스올의 소란을 묘사합니다(9-11). 죽음의 침묵이 지배하던 스올이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갑작스럽게 소란에 빠집니다. 폭력과 억압으로 세상을 지배하던 폭군의 갑작스러운 도착을 환영하기 위해 스올이 먼저 내려와 자고 있던 민족들의 왕들과 영웅호걸들을 깨워 그 보좌에서 일으켜 세웁니다. 폭군에 의해 죽임을 당한 왕들이 자신들과 같은 처지로 떨어진 폭군을 보고 조롱합니다. ‘우리와 같이 연약하게 되었느냐’는 ‘우리처럼 죽었구나’를 의미합니다. 압도적인 세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자들은 절대 권력자의 몰락을 보고 기뻐합니다. 절대 권력을 휘두르며 온갖 영화를 누리던 폭군이지만, 그의 운명 또한 다른 자들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막대기와 폭력으로 세상을 지배하던 폭군에게는 스올도 세상 왕에 상응하는 예우를 거절합니다. 다른 왕들과 달리 세상을 호령하던 폭군에게는 영원한 거처로 왕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요로 구더기가, 이불로 지렁이(벌레)가 주어집니다. 폭군은 스올에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영원히 저주받은 죽음에 떨어집니다.

 

폭군이 스올의 밑바닥으로 떨어질 때는 이유가 없지 않았습니다. 이사야는 폭군을 ‘아침의 아들 계명성’(빛나는 별, 여명의 아들)으로 부르면서 가나안에 잘 알려진 신화적 표상을 사용해 그의 교만을 고발합니다(12-14). 폭군의 교만과 오만은 한계가 없었습니다. 온 땅을 자신의 발아래 둔 폭군은 신들마저 자신의 통치 아래 두려 했습니다. 그는 지상의 왕에 만족하지 못하고 신의 자리에, 그것도 최고신의 자리에 오르려 했습니다.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가나안 신화에 의하면 만신전의 최고통치자이자 하늘과 땅을 창조한 엘(El)은 별들 위에 거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폭군은 최고신 엘의 자리를 탐냈습니다.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는 신들이 모임을 갖는 ‘신들의 산’에 관한 표상을 배경으로 하는 주장입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이 북쪽에 있는 올림포스(Olympus) 산에서 모임을 갖는 것처럼, 가나안 신화에 의하면 신들은 북쪽 끝에 있는 산(Zaphon)에서 최고신 엘의 주재 아래 모임을 갖고 역사와 민족들의 운명을 결정했습니다.

세상을 정복하여 민족들의 왕이 된 폭군은 북녘 끝에 있는 산에서 열리는 신들의 회의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려는 야망을 드러냈다. 폭군은 또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자리를 함께하려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보자면, 폭군은 만왕의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자리에 도전했습니다. 교만이 폭군을 파멸에 떨어뜨립니다(15).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오만에 사로잡혀 절대 권력을 휘두르던 자의 비참한 말로가 극적으로 기술됩니다. 하늘에 오르려던 폭군이 스올로, 북쪽에서 가장 먼 곳에 있는 신들의 산에 오르려던 폭군이 구덩이의 가장 먼 곳으로 떨어집니다.

 

무대가 다시 지상으로 바뀝니다. 사람들이 매장되지 않은 채 버려진 시신을 자세히 살펴보다가 놀랍니다(16-17). 세상을 두려움에 빠뜨리며 호령하던 자가 너무도 처참한 죽음을 맞았기에 경악합니다. 민족들을 발아래 놓고 지배하던 폭군의 저주받은 죽음은 권력의 교만이 어떤 파국적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그리고 누가 세상을 지배하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다른 왕들은 영광 중에 자기 무덤에서 자지만, 세상을 두려움과 폭력으로 정복했던 폭군에게는 무덤조차 허락되지 않습니다(18-19). 칼에 찔려 죽은 병사들의 시체가 전쟁의 와중에 발에 짓밟히는 것처럼 폭군의 시체도 이들 가운데서 함께 능욕을 당합니다. 절대 권력을 휘두르며 온 세상을 공포에 떨게 하던 폭군이 일반 백성보다도 더 비참한 최후를 맞습니다. 폭군은 자기 나라를 멸망시키고 제 백성을 죽였기에 왕의 신분에 어울리는 장례가 허락되지 않습니다(20). 왕은 백성의 운명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교만하게 굴며 악행을 일삼는 자에게는 후손마저 남겨지지 않습니다.

 

(3) 바벨론의 멸망(21-23)

 

하나님께서 멸망이 선고된 폭군의 처형을 신분이 밝혀지지 않은 ‘너희’에게 명령하십니다(21-23). 고대 세계는 반역의 싹을 잘라버리기 위해 왕뿐 아니라 그의 자녀도 죽여 보좌를 잇지 못하게 했습니다. 바벨론의 이름이 땅에서 끊어지고 그 후손들이 멸절합니다. 그 화려함과 위용을 자랑하던 바벨론이 폐허가 되어 고슴도치가 차지하게 됩니다.

‘성읍들로 세상을 가득하게’는 정복자들의 교만을 보여주는, 오래된 관행과 관련된 표현입니다. 정복자들은 자신의 위대함을 널리 과시하기 위해 점령지에 성읍들을 건설하고 자기 이름으로 부르게 했습니다.

폭군의 죽음으로 인해 고토로 돌아온 백성은 나그네 된 이들에게 쉼을 제공하고 정의의 통치를 베풀 것입니다. 온 세상이 안식과 평화를 얻어 기쁨의 노래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이 가는 곳에 공평과 정의가 흐르고 해방과 자유와 평화가 짓들 수 있도록 힘써 일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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