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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05-01)


파멸로 이끄는 들포도의 실체

이사야 5장 1-17절


 

농작물들을 심어 놓고 성장하는 것을 바라보면 참으로 신기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새싹이 나고, 줄기가 자라나고, 꽃이 피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열매를 맺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참으로 신기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삶이 농작물 자라는 것처럼 자라는 모습을 보시면서 기뻐하십니다. 더 나가서 우리의 삶을 통해서 아름다운 열매가 맺기를 기다하십니다.

 

 

  • 3:14-15에서 백성의 장로들과 고관들을 ‘포도원을 삼키는 자’로 고발하신 여호와께서 당신의 포도원을 대적에 넘겨 파괴하기로 하십니다. 심판의 대상이 지배 계층에서 ‘이스라엘 족속과 유다 사람’으로 확장됩니다. 이는 희생자였던 하나님 백성도 지배 계층의 불의와 불법에 함께했음을 시사합니다. 3:13의 ‘백성들을 심판하시려고 서시도다’가 현실이 됩니다.

 

포도원의 노래(1-7)

하나님께서 선하고 좋은 열매를 기대하시면서 포도원을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최선을 다해 주셨습니다. 포도원의 땅을 파서 돌을 제거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망대까지 세웠고, 열매가 맺으면 포도주를 만들려고 술틀까지 만드셨습니다. 얼마나 정성을 기울였는지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이렇게까지 지극 정성을 기울이신 이유는 포도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길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1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2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3예루살렘 주민과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서 사리를 판단하라 4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음은 어찌 됨인고 5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지를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하게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6내가 그것을 황폐하게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에게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리라 하셨으니 7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1-7)

 

하나님께서는 스스로를 농부하고 표현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포도원을 가꾸시는 농부로 등장하셨습니다. 그분은 좋은 농부답게, 가장 좋은 것을 얻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셨습니다. 먼저 좋은 땅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곳은 포도가 가라기에 가장 적합한 기름진 땅이었습니다.

 

(1) 에언자의 노래(1-2)

 

예언자가 ‘내가 사랑하는 자’를 대신하여 그의 포도원에 관해 노래를 부릅니다(1). ‘나’의 친구는 매우 기름진 언덕에 포도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최고 품질의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망대도 세우고 술틀도 팠습니다(2). 포도원의 망대는 특별하다. 대개 초막을 세우는데 망대를 세운 것입니다. 매년 다시 세워야 하는 초막과 달리, 망대는 적이 침략했을 때 방어시설로도 활용할 수 있는 건축물입니다. 포도원에 대한 주인의 깊은 애정과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줍니다. 포도원 주인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한 후에, 그는 포도나무에 좋은 포도가 맺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주인의 애씀과 기대를 저버리고 포도나무는 먹을 수 없는 ‘들포도를 맺었다. 좋은 결실을얻으려는 포도원 주인의 노력과 실망스러운 결과 사이의 괴리는 이 노래의 분위기를 예기치 않은 긴장에 빠뜨린다.

 

(2) 포도원 주인의 고발(3-4)

 

포도원 주인이 등장해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 사람들’에게 자신과 포도원 사이를 판단해주도록 요청합니다(3). 그는 사적인 문제를 전체 이스라엘의 문제로 확대합니다. 포도원 주인은 좋은 포도를 얻기 위해 자신이 어떤 수고를 더해야 했는지 묻습니다(4). 포도원 농사에 관하여 경험적으로 잘 알았던 예루살렘과 유다 사람들은 자신에 관한 이야기인 줄 알지 못한 채 자신을 심판하게 됩니다.

답변을 기다리지 않고 포도원 주인은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 사람들에게 자신의 결정을 공개적으로 선포합니다. 3-4절에서 고발자로 등장했던 주인이 5-6절에서는 재판관의 역할을 맡습니다. 주인은 기대를 저버린 포도원을 철저하게 파괴할 것을 선언합니다. 그는 울타리와 담을 헐고 포도원을 외부 침입에 그대로 맡겨버리기로 합니다. 포도원을 폐허로 만들어 포도나무의 가지를 자르거나 북을 돋우는 일이 다시는 없게 합니다. 기름진 산에 만든 포도원이 찔레와 가시가자라는 황무지가 됩니다. 더 나아가 포도원 주인은 구름에게 명하여 비를 내리지 않게 합니다. 정성과 기대를 배반한 포도나무(포도원)에 주인은 더 이상 관심과 동정을 보이지 않습니다. 비를 금하실 수도 있는 분의 결정이기에 파국적 운명을 피할 길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1-2절의 ‘나’가 등장해서 포도원의 노래를 해석해줍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고, 그분이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입니다. ‘여호와의 포도원’은 포도원이 여호와의 소유임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애정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유다는 하나님께 기쁨의 대상이었습니다. 과거 그분께 기쁨이 되었던 이스라엘이 이제는 실망만 안겨줍니다. 그분은 이스라엘에게 ‘정의’와 ‘공의'를 기대 하셨는데, 이스라엘은 ’포학’과 ‘부르짖음’으로 응답했습니다. 5:8-24의 화 선포가 포학(피 흘림)과 부르짖음(울부짖음)의 구체적 내용입니다.

 

화의 선포(8-17)

사람의 욕심은 한이 없습니다.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더 큰 욕심을 품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유다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어서 유다의 부유한 사람들은 땅에 대해, 그리고 집에 대해, 요즘의 표현으로 부동산에 대해 한없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다른 사람의 땅을 차지했더라도, 희년이 되면 그 땅을 원래 소유자에게 돌려주어야 했습니다.

 

8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 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에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9만군의 여호와께서 내 귀에 말씀하시되 정녕히 허다한 가옥이 황폐하리니 크고 아름다울지라도 거주할 자가 없을 것이며 10열흘 갈이 포도원에 겨우 포도주 한 바트가 나겠고 한 호멜의 종자를 뿌려도 간신히 한 에바가 나리라 하시도다 11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독주를 마시며 밤이 깊도록 포도주에 취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12그들이 연회에는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피리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아니하며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보지 아니하는도다 13그러므로 내 백성이 무지함으로 말미암아 사로잡힐 것이요 그들의 귀한 자는 굶주릴 것이요 무리는 목마를 것이라 14그러므로 스올이 욕심을 크게 내어 한량 없이 그 입을 벌린즉 그들의 호화로움과 그들의 많은 무리와 그들의 떠드는 것과 그 중에서 즐거워하는 자가 거기에 빠질 것이라 15여느 사람은 구푸리고 존귀한 자는 낮아지고 오만한 자의 눈도 낮아질 것이로되 16오직 만군의 여호와는 정의로우시므로 높임을 받으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므로 거룩하다 일컬음을 받으시리니 17그 때에는 어린 양들이 자기 초장에 있는 것 같이 풀을 먹을 것이요 유리하는 자들이 부자의 버려진 밭에서 먹으리라(8-17)

 

이스라엘의 토지 제도는 모든 땅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기본 전제에서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땅을 빌려서 사용할 뿐 영원히 소유하거나 매매를 통해 시세차익을 남길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토지 제도는 희년이 되면 땅을 원래 주인에게 되돌려 주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1) 첫 번째 화의 선포: 땅을 독점하는 자들(8-10)

 

이사야는 집과 경작지를 독점하려는 자들에게 화를 선포합니다. 이들이 부와 권력을 이용해 애써 차지한 가옥과 땅이 폐허가 될 것입니다. 여호와의 공동체가 허물어져 가는데도 이들은 ‘땅 가운데에서’ 자신들만 평안하게 살려 했습니다. 이들은 안전하고 번화한 예루살렘에 살면서 지방의 땅을 헐값에 사들여 자기소유지를 넓혀갔습니다. 하나님께서 공동체의 연대성을 파괴하는 자들의 탐욕을 헛수고로 만드실 것을 당신의 의무로 서약하십니다. 권력자들과 부자들이 탐욕스럽게 소유하려 했던 것들 위에 그분의 심판이 떨어집니다. 이들의 집은 폐허가 되어 사람이 살 수 없게 됩니다. 이웃의 어려움을 이용해 탐욕스럽게 넓힌 경작지가 황폐해져 결실을 얻지 못합니다. 열흘 갈이 포도원이 겨우 한 바트의 포도주를 내고, 한 호멜의 씨앗을 뿌린 밭은 겨우 한 에바를 냅니다. 열흘 갈이는 한 쌍의 소가 열흘에 갈 수 있는 넓이를 가리킵니다. 한 쌍의 소가 하루에 갈 수 있는 평균 넓이는 대략 2천 평방미터가 됩니다. 바트는 액체를 재는 단위로, 시대에 따라 그 용량이 일정하지 않았는데 대략 40리터로 추산합니다. 곡식을 재는 단위인 호멜도 일정하지 않았는데 대략 400리터로 추산합니다. 에바는 호멜의 1/10에 해당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원래 ‘자기 땅’에서 ‘자기 손으로 경작해 수확한 자기 소산물’을 먹고 살았는데, 왕정이 도입된 이후 점차 자유민의 권리를 상실해갔습니다. 특히 주전 8세기 이스라엘과 유다는 계급적 분화와 갈등을 심각하게 경험했습니다. 경제적 부가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의 지배 계층과 그 주변에 속한 특권층에 독점되면서 사회는 급속히 양극화의 수렁에 빠졌습니다. 다수의 소농은 국가권력과 이를 사유화한 부패한 특권층에 의해 끊임없이 수탈당했고, 전쟁이나 가뭄과 같은 자연재해로 이들의 삶의 토대는 피폐해져갔습니다. 사고나 질병으로 인한 노동력의 상실도 이들에게는 치명적이었습니다. 식량이 부족해지면 이들은 가진 자들에게 높은 이자를 약속하고 곡식을 빌렸습니다. 작황이 나빠 이자와 빚을 갚을 수 없게 되면, 집과 경작지를 채권자에게 헐값에 넘기거나 강제로 빼앗기고 소작농신분이 되었습니다. 사정이 더 나쁜 경우에는 가족이나 자신마저 농노로 팔아야 했습니다. 사회가 계급화되고 권력과 부가 소수의 지배 계층에 독점되면서 ‘여호와의 기업’이라는 땅에 관한 이스라엘의 신학적 전통도 더 이상 존중되지 않았습니다. 예언자들은 부자들이 집과 토지를 독점적으로 확장함에 따라 도시빈민이 확대되고 농민이 경제적-사회적으로 예속되어 하나님 백성의 존립 기반이 붕괴되는 것을 보고 이를 신랄하게 고발했습니다.

 

(2) 두 번째 화의 선포: 술에 취해 연회를 즐기는 자들(11-17)

 

두 번째 화의 선포 대상은 사치와 향락을 즐기며 사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술에 취해 살면서 연회를 즐기는 데 열심이지만,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 ‘그의 손으로 하신 일’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세속적인 즐거움에 빠진 자들에게 여호와를 위한 자리는 없었습니다. 윗물의 부패가 아랫물도 부패하게 만들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 백성이 무지함으로 말미암아’ 포로로 끌려갈 것을 선포하십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 이스라엘은 적에 넘겨지고, 백성은 사로잡혀갑니다. 존귀한 자들과 일반 사람들 모두 굶주림과 목마름의 고난에 넘겨집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다는 점에서 지배 계층이나 피지배 계층이나 다를 바가 없기에 같은 운명에 떨어집니다. 만족을 모르는 스올이 목구멍(‘욕심’)과 입을 한껏 열어젖히고 죽음의 문턱을 넘어 내려오는 손님들을 맞습니다. 예루살렘의 귀족들(‘호화로움’)과 평민들(‘무리’)이, 예루살렘에서 소란을 떨며 기뻐 뛰던 자들이 모두 스올로 내려옵니다. 여호와를 무시한 유다와 예루살렘이 심판을 받는 날은 여호와께서 높임을 받으시는 날이기도 합니다(2:11-17).

오만한 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낮아집니다. ‘정의와 공의’를 버리고 ‘포학(피 흘림)과 부르짖음’으로 사회를 가득 채운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때 그분의 정의와 공의가 드러나고 그분이 홀로 높임을 받으십니다. 그분의 거룩함 앞에 모든 인간은 자신이 사멸적 존재임을 인정하게 됩니다. 한때 ‘호화로움과 무리와 소란과 즐거움’으로 가득 찼던 성읍이 폐허가 돼 양 떼의 차지가 됩니다. 모든 사람이 떠나고 버려졌기에 초장으로 이용됩니다. 권력과 부를 이용하여 빼앗거나 부당하게 사들였던 부자들의 땅이 하나님의 징계로 황폐해지고, 양들이 꼴을 먹는 초지로 바뀝니다. 부자들이 독점하던 집과 땅이 폐허가 되자, 목자들이 아무 제한 없이 그곳으로 양을 끌고 가 꼴을 먹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당한 독점과 이를 바탕으로 누리는 사치와 쾌락을 심판하십니다. 들포도 맺은 백성을 포로로 만드시고 스올에 던지십니다. 시끌벅적하던 연회장은 초장이 되고, 낯선 이들이 망한 부자들의 밭을 소유합니다. 한국교회의 미래가 이 길을 가지 않도록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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