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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02-01)

 


종말, 여호와께 돌아오는 날

이사야 2장 1-22절


 

하나님 나라는 꿈이고 미래입니다. 질퍽거리는 진창 같은 현실을 딛고 일어서 걷게 하는 힘입니다. 우리는 샬롬이 이루어질 날을 소망하며 오늘도 불의한 현실을 살아갑니다. 선지자를 통해 보여주신 미래와 처한 현실은 무엇입니까? 심판과 구원으로 임할 그날을 어찌 기다려야 합니까?

 

  • 마지막 때 예루살렘에서 그 모습을 온전히 드러낼 여호와의 왕권은 사람들의 힘에 의해 성취되는 사건이 아닙니다. 전쟁이 끊이지 않는 인간의 탐욕적이고 이기적인 역사에 종지부를 찍는 신적 개입으로 시작하는 초자연적 전환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듣기 위해 찾아오는 예루살렘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입니다(요한계시록 21:2).

 

시온 산으로 순례 오는 민족들(1-5)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미워하시며, 반드시 그 교만을 꺾고 낮추시는 분입니다. 교만은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교만해진 부분은 무엇입니까? 오늘 버려야 할 교만은 무엇이며, 겸손히 낮추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1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받은 바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말씀이라 2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3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4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5야곱 족속아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1-5)

 

이사야는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질 예루살렘과 시온의 회복이 단지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제한되지 않음을 소개합니다. 열방을 포함하고 있음을 선언합니다. 따라서 이미 시온에 있는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빛에 행하고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왕권이 서는 날 열방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당신의 임재 앞으로 나아올 것입니다. 그날에 그들은 여호와께로부터 배우고 그들로 살고자 할 것이고 그분의 뜻대로 모든 무기를 농기구로 바꾸어 평화롭게 살 것입니다.

 

(1) 표제어(1)

 

1:1에 비해서 보다 간략한 형태의 표제로 다음에 오는 말씀의 성격을 제시합니다. 이하의 예언은 이방인들을 다루고 있지만, 여전히 유다와 예루살렘에 예언의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2) 민족들의 순례(2-4)

 

이사야는 하나님의 모든 계획이 궁극적으로 이루어질 때를 ‘말일’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말일’에 시온이 모든 산 위에 굳게 서게 된다고 선언합니다. 하지만 시온의 회복은 칼을 처서 보습을 만들며,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라고 소개합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역사에 개입하시는 말일에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시온은 모든 산보다 높아지고(시편 48:3; 78:69), 세상 모든 민족이 그곳으로 순례를 옵니다(2). 시온 성전이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에게 여호와의 계시 장소로 개방됩니다. 시온의 ‘높임 받음’은 여호와의 계시 장소로서 시온 성전이 갖게 될 압도적 지위를 보여줍니다. 민족들이 서로 격려하며 시온으로 올라오는 목적은 하나님의 율법(가르침)과 말씀을 듣기 위해서입니다(3). 마지막 때에 우상을 숭배하던 민족들이 여호와 신앙으로 개종하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며 살게 됩니다. 공정하게 판단하고 재판하시는 여호와의 통치 아래 살아가기에, 민족들이 다시는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무력에 의존하지 않습니다(4).

 

(3) 권면(5)

 

이들은 칼과 창 같은 쓸모없게 된 전쟁 무기를 녹여 보습과 낫 같은 농기구로 만듭니다. 힘과 폭력과 전쟁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말씀, 곧 그분의 정의와 공의가 온 땅을 지배합니다. 여호와 신앙이 땅에서 파괴적인 전쟁의 두려움을 완전히 몰아내고 평화로운 삶을 보장해줍니다. 환상 중에 민족들이 야곱의 하나님을 찾아 예루살렘으로 순례 오는 모습을 보는 예언자는 야곱 족속을 향해 그들에게 약속된 구원을 확실하게 깨닫고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고 권면합니다(5). ‘여호와의 빛’은 그분의 은총과 구원사적 현존의 상징이자 명령이기도 합니다. 그분의 빛은 역동적 힘으로, 이를 인식한 자들에게 그 빛에 의존하여 살 것을 명령합니다. 그분에게서 나오는 은총의 빛을 경험한 자들은 그 빛 가운데 걸어가야 합니다.

 

여호와의 날(6-22)

심판의 날이 오면, 부와 군력의 상징이었던 성벽과 망대, 배와 조각품들이 다 사라질 것입니다. 오만한 자들의 눈은 낮아지고, 두려운 중 바위틈을 찾으나 숨을 수 없습니다. 주님만 홀로 높임을 받으십니다. 사라질 세속 가치에 소망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그날을 두려워하며 의와 경건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6주께서 주의 백성 야곱 족속을 버리셨음은 그들에게 동방 풍속이 가득하며 그들이 블레셋 사람들 같이 점을 치며 이방인과 더불어 손을 잡아 언약하였음이라 7그 땅에는 은금이 가득하고 보화가 무한하며 그 땅에는 마필이 가득하고 병거가 무수하며 8그 땅에는 우상도 가득하므로 그들이 자기 손으로 짓고 자기 손가락으로 만든 것을 경배하여 9천한 자도 절하며 귀한 자도 굴복하오니 그들을 용서하지 마옵소서 10너희는 바위 틈에 들어가며 진토에 숨어 여호와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하라 11그 날에 눈이 높은 자가 낮아지며 교만한 자가 굴복되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시리라 12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날이 모든 교만한 자와 거만한 자와 자고한 자에게 임하리니 그들이 낮아지리라 13또 레바논의 높고 높은 모든 백향목과 바산의 모든 상수리나무와 14모든 높은 산과 모든 솟아 오른 작은 언덕과 15모든 높은 망대와 모든 견고한 성벽과 16다시스의 모든 배와 모든 아름다운 조각물에 임하리니 17그 날에 자고한 자는 굴복되며 교만한 자는 낮아지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실 것이요 18우상들은 온전히 없어질 것이며 19사람들이 암혈과 토굴로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땅을 진동시키려고 일어나실 때에 그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할 것이라 20사람이 자기를 위하여 경배하려고 만들었던 은 우상과 금 우상을 그 날에 두더지와 박쥐에게 던지고 21암혈과 험악한 바위 틈에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땅을 진동시키려고 일어나실 때에 그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하리라 22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6-22)

 

본 다락은 이사야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버리신 이유를 제시합니다. 먼저 이스라엘 땅에는 이방의 동방 풍속이 가득합니다. 이방 풍속은 우상 숭배와 종교적 미신들을 말합니다.

 

(1) 고발(6-9)

 

우상과 제 힘을 의존하는 이스라엘 현재의 문맥에 따르면 야곱 족속은 이사야의 권면(5)을 거절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 족속을 더 이상 돌보시지 않고 그들을 불순종에 방치하십니다. 그분이 이스라엘을 버리실 때는 물론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사야는 이를 세 가지로 제시합니다(6-8). 첫째, 이스라엘이 이방 민족들의 제의적 풍습에 깊이 물들었습니다. 여호와의 백성인 야곱 족속이 신탁을 묻기 위해 그분을 찾지 않고 이방 풍습을 따라 점쟁이나 요술쟁이를 찾았습니다. 고대인들은 점을 통해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때와 조건을 알아내거나, 주술을 통해 악한 세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 했습니다. 율법은 이러한 이교적 관습을 엄격하게 금했지만, 이스라엘의 민간 신앙에서는 이 관습이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둘째, 은과 금과 보화와 군마와 병거가 땅에 가득했습니다. 야곱 족속은 자신의 경제력을 자랑하고 자신의 안전을 군사력에 의존했습니다. 경제적 부와 군사력에 의존하는 행태는 예언자가 볼 때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야곱 족속의 안전은 그들을 ‘주의 백성’으로 택하신 분께 의존할 때만 가능했습니다.

셋째, 우상들이 야곱 족속의 땅에 가득했습니다. 우상이란 섬기는 자들을 도와줄 능력이 없는 거짓 존재인데, 이스라엘은 능력의 하나님을 배반하고 사람의 손으로 만든 허망한 우상에게 도움을 구했습니다. 동사 ‘가득하다’는 금은보화와 군사력에 의존하는 행위와 우상숭배가 동전의 양면임을 시사합니다. 하나님을 버렸다는 점에서 양자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예언자의 시선이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에서 민족들의 우상숭배로 옮겨집니다.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땅 위의 모든 사람이 우상에게 무릎을 꿇고 자신을 천하고 낮게 만들었습니다(9). 우상에게 엎드려 자신을 비천하게 만드는 행위가 이미 여호와의 심판에 속했습니다. 행위와 그 결과의 내적 관계가 여호와의 개입에 의해 단절될 수도 있음을 아는 예언자는 하나님의 정의가 분명하게 드러나길 간구합니다(‘그들을 용서하지 마옵소서’, 9b). 자신을 위해 자기 손으로 만든 우상을 경배하는 자들은 반드시 상응하는 징계를 받아야 합니다.

 

(2) 심판선언: 여호와의 날(10-21)

 

여호와의 날에 여호와께서 직접 이스라엘을 심판하십니다. 이날은 ‘여호와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이 드러나고, 사람의 교만이 땅에 떨어지고 우상의 무능력이 폭로되는 날입니다.

여호와의 주권이 유감없이 과시되는 날로, 그분만 높임을 받습니다. 경제적 부와 군사적 힘에 근거한 이스라엘의 교만과 거만과 자만이 징벌을 받아 산산조각 납니다. 진노의 대상으로 먼저 거대 건축물에 사용되는 나무들이 언급됩니다(13).

레바논의 백향목은 높이가 30미터 이상 자라는 나무로, 예루살렘 성전과 왕궁 건축에 사용됐습니다. 스가랴 11:1-2에서도 레바논 백향목과 함께 언급된 바산의 상수리나무가 목재로 유명했습니다. 백향목을 수식하는 ‘높고 높은’은 12절의 ‘거만한 자와 자고한 자’와 히브리어가 동일합니다. 사람들이 자랑스럽게 만든 것들 위에도 여호와의 진노가 임합니다(14-16).

‘높은 산’과 ‘솟아 오른 작은 언덕’은 가나안의 지형적 형편과 관련된 언급입니다. 가나안의 성읍들은 대부분 언덕과 산 위에 건설됐습니다. 적의 침략을 방어하기 용이한 높은 곳에 세워졌지만, 여호와께서 심판하시는 날에는 안전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망대’(믹돌מגדל)는 교외의 독자적인 탑 또는 성문과 성 둘레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만든 성벽 일부를 가리킵니다. 견고한의 바추르(בציר)는 원래 ‘접근할 수 없는’을 의미합니다. 높은 망대와 견고한 성벽이 보호해주리라 기대하지만, 진노하신 여호와 앞에서는 무용지물입니다.

‘다시스의 모든 배’는 지중해를 왕래하는 원양 선단을 가리킵니다. 성공하면 막대한 부를 가져다주는 원양 선단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인간 능력의 한계를 뛰어 넘는 경이의 대상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원양 선단의 위용과 사치스럽게 치장한 배의 호화스러움을 자랑하지만, 하나님의 진노의 바람이 불면 파선을 피할 수 없습니다. 11절을 거의 문자적으로 반복하는 17절은 12절을 받아 하나님의 위협을 마무리 짓습니다. 여호와께서 진노하시는 날에 인간의 거만과 교만이 꺾이고 그분만 높임을 받으십니다. 이날은 누가 진정으로 높은 자인지를 보여주는 날입니다.

 

18절은 다시 8절을 받아 우상의 멸망을 선언합니다. 여호와께서 높임을 받으실 때 이스라엘이 무릎을 꿇고 경배 드린 우상이 모두 사라질 것입니다. 우상과 우상숭배자가 모두 멸절합니다. 19절은 표현과 내용이 10절과 유사합니다.

‘위엄’과 ‘영광’은 주로 왕에게 적용되는 표현입니다. 여호와께서 왕적 위엄 가운데 심판하려고 일어나실 때 세상은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그분의 영광스러운 현현은 그분의 말씀과 의지를 무시하고 악을 행한 자들에게 상응하는 대가를 요구하는 심판 사건이 됩니다. 여호와께서 역사에 개입하시는 날, 사람들은 자신이 만든 우상의 헛됨을 참담하게 깨닫습니다. 이들이 의존하던 우상은 환난을 피해 도망하는 데 오히려 거추장스러울 뿐입니다. 도움은커녕 짐이 되는 우상을 두더지와 박쥐에게 던져버리고 서둘러 숨을 곳을 찾아 바위틈에서 살길을 찾습니다(20-21).

 

(3) 권면: 덧없는 인생(22)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을 의지하는 자들에게 그들의 교만을 심판하는 여호와의 날을 선포한 예언자는 선포의 마지막을 권면으로 마무리합니다. 여호와의 진노를 피할 길이 전혀 없지는 않습니다. 사멸적 존재에 불과한 인간은 신뢰할 대상이 아닙니다. 인간은 코로 호흡하는 동안만 생명이 유지되는 제한적 피조물일 뿐입니다. 사멸적인 인간이 이룩한 업적은 결국 사멸할 수밖에 없고, 그 업적에 의존하는 자도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 늦기 전에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어 사람을 생명체가 되게 하신(창세기 2:7) 분께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숨이 막히면 흙으로 돌아가는 연약한 존재일 뿐입니다. 권력자도, 재벌도 한순간 사라질 것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심판과 구원을 베푸실 참 통치자만이 의지할 유일한 분입니다. 하나님 외에 내가 의지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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