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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21-02)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울의 사역

사도행전 21장 17-26절


 

사람들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살아가면서 그 다양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옳고 그른 일은 개인의 차원은 넘어 전체적으로, 하나님의 관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믿음이 연약한 자를 배려할 줄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에서는 “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 만물이 다 정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하니라 21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롬 4:20-21)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덕을 위해 배려하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믿음의 행동입니다.

 

  • 드디어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울은 야고보와 장로들에게 그동안 선교 여행을 통한 하나님의 역사를 낱낱이 보고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후에, 바울에게 율법을 파괴한다는 유대인들의 오해를 풀기 위한 일을 위해 정결례에 동참하길 제안합니다. 바울의 그 제안에 순종해서 정결례를 진행합니다.

 

선교 보고와 예루살렘의 반응(17-20a)

영적인 부분이 자신의 신앙과 다른 사람을 만날 때, 그들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 때마다 인위적인 판단으로 정죄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심이 무엇인지를 깊이 살펴야 합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온 것은 유대 지도자들이 이방인들은 한 형제로 받아들이느냐에 대한 중요한 기로에 서 있었습니다. 다행이도 그들은 바울의 사역을 받아 들렸고, 이방인 지역에서 이루어진 역사에 대해 하나님께 찬양했습니다.

 

17예루살렘에 이르니 형제들이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 18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더라 19바울이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말하니 20그들이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17-20a)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에 가면 환란과 결박이 기다리는 여러 사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 예루살렘에 도착합니다. 바울은 사명에 대해서는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고 고백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복음 전파를 위한 사명은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 바울을 환대하는 예루살렘(17)

 

바울은 마음 한편에 우려를 가지고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이방인 지역 사역에 대한 반응에 따라 복음의 역사가 중요한 기로에 처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예루살렘 공의회(행 15장)에서 공식적으로 이방인들에게 복음 전함은 공인(公認)되었지만, 실제적으로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 성도들이 이방인 성도들을 형제로 받아들이느냐는 매우 중요한 기로에 서 있었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예루살렘 형제들이 바울 일행을 환대했습니다. 의례적인 환영이 아니라 기꺼이 환영했습니다. 이것은 바울 신학과 바울이 전한 복음을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전한 역사(役事)에 대해 성령의 역사로 인정한 것입니다. 만약 인정받지 못한다면. 지금까지 이방인 지역에 사역했던 모든 일들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바울의 우려와는 다르게 예루살렘 유대 성도들은 예루살렘에 입성한 바울은 흔쾌하게 환영하며 받아 주었습니다.

 

(2) 바울의 선교보고(18-19)

 

이튿날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의 대표자격인 야보고를 만나로 갑니다. 그리고 야고보와 장로들이 다 모여 있는 자리에서 선교 여행의 놀라운 결과를 보고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기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 하신 일’을 낱낱이 고했습니다. 지금까지 이방지역에서 이루어진 사역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이라고 보고한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그저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 받았음을 강조합니다. 온갖 핍박을 겪으면서 사명을 성공적으로 감당한 사람이 이렇게 고백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작은 공로도 드러내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청지기의 자세가 어떤 것인지 잘 보여 주었습니다.

 

(3) 예루살렘 교회의 반응(20a)

 

바울의 3차에 걸친 이방 지역의 선교 보고에 대해 예루살렘의 유대 장로들의 반응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사역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로 인정한 것이었습니다.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20b)

종종 교회의 분열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 분열의 근원은 대부분 견해 차이로부터 시작합니다. 다른 사람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이 자신의 주장만이 옳다고 주장함으로부터 분열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성도들이 이 세상에 살 동안 ‘화평케 하는 자들’이란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영적 공동체 구성원들이 서로 이해하고 양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동체가 하나 되기 위해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20b… 바울더러 이르되 형제여 그대도 보는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심 있는 자라(20b)

 

바울의 우려하는 마음과는 달리,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 성도들은 바울이 지금까지 이방인 지역에서 선교 사역에 대한 보고를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바울의 우려는 예루살렘에는 개종한 유대인들이 수만 명이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유대인으로서 선민의식으로 가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지만, 아직 유대교의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럼으로 바울의 사역을 오해를 하고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바울의 사역에 대해 부정적인 소문이 항간에 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방 지역에서 모세의 율법을 배반하고 할례를 행하지 말며, 관습을 지키지 말라고 주장했다고 것입니다. 이런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 오해로 퍼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주장한 것은 이방인 성도들이 굳이 할례를 받고 율법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 유대인들에게 할례와 율법을 금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유대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기꺼이 율법을 준수한 사람입니다.

 

복음의 보편성이 충분하게 이해되지 못한 과도기의 초대 교회에는 구약 율법과의 연속성을 놓고 신학적 대립이 심각했습니다(10~11, 14~15장). 복음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게 된 이방인들도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상당수의 유대인 신자들은 야고보를 자신들의 지도자로 여겼고, 반대 입장에서 있던 바울은 율법 파괴자로 인식되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신학적 대립 가운데서도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통해 진리를 발견해 나가게 됩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일행과 함께 유대의 전통 결례를 행하기를 했습니다. 야고보의 제안에 따라 이 모든 오해를 풀고 불필요한 갈등을 예방하기 위해 나실인 서원을 했던 네 명의 유대인과 함께 정결을 위한 율법의 예(禮)를 행합니다. 또한 그들을 위한 엄청난 제물 비용(민 6:13~21)을 감당해 주었습니다. 이는 구원과는 상관없이 연약한 성도들을 위한 배려였습니다. 예루살렘 지도자들은 다양성에 대한 이해를 갖고 지혜로운 접근을 했습니다.

 

오늘날도 이러한 지혜가 필요합니다. 교회 안에 서로 다양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모든 성도들이 획일적으로 같은 모양을 가질 순 없습니다. 각자의 개성과 달란트를 인정하고 그것의 특색에 따라 교회를 섬길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 안에 분파가 생기고, 더 나가서 분열되는 아픔을 겪게 됩니다.

 

연약한 자들을 위한 배려(21-26)

교회 안에서 생활하면서, 당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이라면 상대방의 의견을 들어주고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자신의 의견과 다르다고 판단하거나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겸손히 좋은 점을 수용하십시다. 당신은 교회의 제안이나 권고에 겸손하게 순종합니까? 믿음이 연약한 지체들을 위해 당신이 포기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21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고 또 관습을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그들이 들었도다 22그러면 어찌할꼬 그들이 필연 그대가 온 것을 들으리니 23우리가 말하는 이대로 하라 서원한 네 사람이 우리에게 있으니 24그들을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그들을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 대하여 들은 것이 사실이 아니고 그대도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 25주를 믿는 이방인에게는 우리가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할 것을 결의하고 편지하였느니라 하니 26바울이 이 사람들을 데리고 이튿날 그들과 함께 결례를 행하고 성전에 들어가서 각 사람을 위하여 제사 드릴 때까지의 결례 기간이 만기된 것을 신고하니라(21-26)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한 이방인 지역에서 행하신 일에는 관심도 없습니다. 다만, 바울에 관한 나쁜 소문에만 촉각을 곤두세웠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던 성도들까지도 아직까지 율법에 대한 닫힌 사고를 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로, 바울이 이방 지역에 사는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했다는 거짓 소문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성도들까지 오해를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문제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1) 세평에 대한 우려(21)

 

바울은 이방 지역에 대한 모든 3차 선교 사역을 보고를 들은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것은 야고보와 예루살렘 장로들이 하나님께서 바울을 이방인들 가운데 사도직을 행하게 하시고, 복음의 열매를 거두게 하셨다고 인정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때가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예루살렘 공회가 열렸을 때도 이방인 사역에 대한 보고가 있었습니다(15:12; 갈 2:8-9). 그들은 영광을 돌리면서도 한편으로 바울에 대한 잘못된 세평을 우려합니다. 당시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성도들까지도 바울의 사역에 대해 오해가 있었습니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기도 전에 잘못된 소문만으로 판단한 것을 참으로 큰 실수를 범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오해한 바울에 대한 악평은, 이방 각 지역에서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모세의 율법을 배척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며 유대인 관습도 지키지 말라고 가르친다는 잘못된 소식이었습니다. 이 소식은 악평이 점점 더해지면서 예루살렘까지 전해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지도자들은 반신반의하면서 바울의 사역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을 모함하는 자들은 악평을 더해 갔던 것입니다. 만일 바울이 그렇게 유대교와 율법을 파괴하면서 가르쳤다면, 이는 엄청난 문제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어디에도 유대인에게 그렇게 가르친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율법을 폐한 것이 아니라 잘못된 ‘율법주의’를 따르지 않아도 된다고 한 것입니다. 바울을 모함하는 죄는 유대인에게는 다가오는 세계, 즉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심각한 죄였습니다.

 

(2) 장로들의 정결례 제안(22-25)

 

바울에 악평 때문에 유대인들은 계속적으로 기회만 있으면 바울을 제거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마침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감진한 유대인들은 그를 제거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여행한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는 움직임이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바울에 대한 소문이 헛소문임을 증명하기 위해 바울에게 나실인의 정결례를 제안합니다. 정결례를 통해 율법을 파괴하는 사람이 아님을 보여 주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나실인의 정결례는 단순하게 머리만 깎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과 유대 문헌에는 나실인에 대한 규정과 서원을 마칠 규정은 민수기 (6:13-21)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 정결례를 행하려면, 숫양 두 마리와 암양 한 마리, 소제물과 전제물들이 필요했습니다(민 6:14-15). 그만큼 상당히 많은 비용이 지불되어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루살렘 교회 안에 있던 네 사람들도 비용 때문에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루살렘 교회 야고보와 장로들은 바울에게 권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인간적인 방법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유대인들 앞에서 사도 바울이 정결례를 행한다는 것은 율법을 준행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권고는 인간의 두려움에서 유대인들의 마음을 달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교회의 제안을 겸손하게 따릅니다. 바울이 서원을 기다리는 네 사람의 비용까지고 지불할 것을 제안에 대한 받아들입니다. 반드시 해야 할 이유는 없었지만,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위해 유대 율법주의자처럼 율법을 성실히 행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던 것입니다.

 

사실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도 새 시대가 열린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방인들에게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은 것과 음행을 파하라고 결의하고 편지를 보냈습니다(15:20). 유대인의 율법의 기준이 아니라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방식의 삶을 이해하고 시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연약한 자들을 위해 율법의 결례를 행하도록 한 것은 모두를 배려한 행동이었습니다. 이러한 지혜로운 권면에 바울은 적극적으로 순종했습니다.

 

(3) 정결례를 마침(26)

 

바울은 정결례의 제안을 받아들여 7일을 보냈습니다. 그 다음날 예루살렘 교회 장로들이 제안한 네 사람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 정결례를 온전히 행하고 정결례의 절차에 따라 마쳤다는 것을 알렸습니다. 이것은 이미 정결례를 마친 후 보고라기보다는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완결하기 직전의 보고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민 6:13-14).

바울은 정결례를 행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장로들의 제안을 받아 들렸던 것입니다. 이방인들을 위해 자기가 가진 것을 모두 바쳤던 바울은 이제 유대인들을 얻고자 유대인의 모습을 보이며,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고전 9:19-20). 바울은 교회의 하나 됨을 위해 자기 시간과 재물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오늘날도 연약한 자들을 위한 배려가 있어야 합니다. 자신만의 신앙의 잣대로 다른 사람을 정죄할 수 있습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단점을 보안해주며 세워주는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바울은 연약한 성도들에게 배려함으로 분란을 잠재우도록 노력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정결례를 행함으로 주위와의 마찰을 없애고 복음만 증거되도록 철저히 헌신했습니다. 믿음은 사랑 안에서 표현입니다. 연약한 자들도 섞여 있으므로 그들을 기억하고 지혜롭게 행동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적극적으로 배려하는 성도들이 되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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