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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21-01)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는 두로 성도들

사도행전 21장 1-16절


 

여행을 할 때, 고난의 길을 즐겨 가려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서는 고난의 길일지라도 감수해야 합니다. 고난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믿음의 각오가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을 보면, 고난의 길을 없애 달라고 기도하는 것보다 독수리 날개 치며 올라가는 힘을 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본문은 하나님 앞에 가치 있는 인생을 위해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말해 주고 있습니다.

 

  • 본문에서 성령의 감동을 받은 두로의 성도들이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권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예루살렘을 향해 떠납니다. 가이사랴에서는 선지자 아가보의 예언 때문에 성도들이 바울을 만류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굳은 각오를 밝히고 떠납니다.

 

밀레도에서 두로까지의 여정(1-6)

믿음이 무엇입니까? 어떤 어려운 환경이 닥쳐왔을 때, 그것에 대한 반응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시련과 고난이 닥쳐왔을 때, 당신이 어떻게 반응하는가가 믿음의 실체입니다. 믿음의 본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평상시에는 잘 믿고 있는 것 같지만, 어려운 고난의 폭풍이 다가왔을 때는 하나님께 원망하는 반응이 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뜻을 물으며 순종하기로 작정하는 믿음이 있습니다.

 

1우리가 그들을 작별하고 배를 타고 바로 고스로 가서 이튿날 로도에 이르러 거기서부터 바다라로 가서 2베니게로 건너가는 배를 만나서 타고 가다가 3구브로를 바라보고 이를 왼편에 두고 수리아로 항해하여 두로에서 상륙하니 거기서 배의 짐을 풀려 함이러라 4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5이 여러 날을 지낸 후 우리가 떠나갈새 그들이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거늘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6서로 작별한 후 우리는 배에 오르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니라(1-6)

 

본문은 바울 일행이 밀레도에 2차 선교 여행을 결산하는 과정을 소개합니다. 에베소 교회 장로들과 작별한 바울 일행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정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1) 밀레도에서 바다라까지(1-3)

 

밀레도를 떠난 바울 일행은 곧바로 고스Cos를 경유해서 다음 날 로드Rhodes를 거쳐 고로 성 바다라Patara에 이릅니다. 그들은 해변을 따라 이동하는 작은 배를 탄 것으로 보입니다. 작은 배는 수심이 얕고 암초가 많은 지역에서 참으로 편리한 수단이었습니다.

배는 로도 섬을 거쳐 루기아 지방의 항구 바다라에 도착했습니다. 이 항구는 지중해 여러 지역을 운행하는 대형 무역선들이 정규적으로 정박하는 곳이었습니다. 바다라는 애굽의 알렉산드리아 항구와 정반대 편에 있어서 애굽에서 곡식을 수입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 큰 항구에서는 지중해 여러 지역으로 가는 배를 타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2) 두로에서 7일간 머묾(4-6)

 

바울 일행은 여기서 베니게, 곧 돌레마이로 가는 배에 탔습니다(2,7). 이 배는 당시 거의 모든 배와 같이 화물선이었기 때문에 중간 기착지 두로에 도착해 왼편에 두고 수리아 방향으로 향해해 두로에 상륙했습니다(3). 배는 두로 항에 정박해 화물을 하역하고 새로운 화물을 선적하면서 7일간 머물게 되어 있었습니다(4a). 배의 항해 계획에 따라 바울 일행 역시 이 기간 동안 이곳에 머물렀습니다. 그들은 수소문하여 두로 지역에 있는 제자들을 찾아 그들과 함께 머물렀습니다(4a). 두로는 바울이 한 번도 사역 기간 동안 방문한 적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곳 제자들은 아마도 여러 경로를 통해 바울에 대해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두로에 있는 형제들은 바울 일행을 환대하고 그들에게 숙식을 제공했습니다.

 

두로의 제자들은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4)고 바울에게 말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예루살렘에서 닥칠 환난을 알게 되었습니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바울의 예루살렘 행을 막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인간의 정에 끌리지 않고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갑니다. 그는 정한 뜻을 돌이키지 않습니다. 예루살렘을 통해 로마까지 복음을 전파하고 싶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두로 성도들에게 바울의 고난당할 것을 보여주신 때는 바울의 사역을 못하도록 방해라고 주신 것은 아닙니다. 그들에게 사도 바울의 사역을 위해 기도하고 준비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마음으로 바울과 동행하라는 것입니다.

 

어려움이 닥칠 것이라는 상황에서 바울의 신앙은 확실했습니다. 그는 어떤 고난이 닥쳐올지라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계획대로 복음 증거하는 일을 실천할 것을 작정합니다. 그는 예루살렘으로 갈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예수께서 순종하며 예루살렘의 십자가를 향해 가셨듯이(눅 18:31) 바울도 핍박과 고난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을 피하지 않습니다(20:22~23).

 

믿음은 아름다운 반응입니다. 두로의 제자들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바울을 배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배에 오르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갑니다(6). 결연한 심정을 공유하는 이들은 배에 오르기 전에 같이 무릎을 꿇고 서로를 위해 기도합니다. 배를 타는 사람이나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나 한결같이 주님과 교회를 위해서 자신들의 사역 현장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아마 그것이 두로 바닷가에서 같이 올린 기도의 내용이었을 것입니다.

 

가이사랴에서의 예언(7-11)

현실 때문에 사명을 갈등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길입니다. 아무리 무거운 짐과 같은 사명이라 할지라도 각오한 사람에게는 오히려 가볍게 다가옵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세미하게 당신에게 들립니다. 갈등은 사단이 주지만 평안은 성령의 도우심입니다. 지금 당신에게 하나님을 위해 충성스러움이란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7두로를 떠나 항해를 다 마치고 돌레마이에 이르러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있다가 8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머무르니라 9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 10여러 날 머물러 있더니 아가보라 하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11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 하거늘(7-11)

 

가이사랴에 도착한 바울은 빌립 집사의 집에 머뭅니다. 빌립 집사의 넷 딸도 성령 충만한 딸들이었습니다. 처녀들이지만 하나님의 성령에 사로잡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도 바울이 당할 고난을 구체적으로 환상으로 보게 되어 집니다.

사도행전 11장에서 ‘천하에 크게 흉년이 들리라’(28)고 예언했던 아가보까지 이제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11)고 말합니다. 가이사랴에서 빌립의 집에 머무는 동안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고난 받을 것을 예언합니다. 구체적으로 선지자 아가보가 바울이 체포되어 로마 당국의 손에 넘어갈 것이라는 좀 더 구체적인 예언을 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시련을 주시는 까닭은

오직 나의 믿음을 자라게 하기 위함이다

- 허드슨 테일러 -

 

이런 모습을 보고 바울의 동행자들과 빌립의 가족들도 합세해서 그의 예루살렘 가는 것을 막으려합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두 번씩이나 이런 예언이 나온 것이기 때문에 가지 말라는 것으로 인식했을 것입니다. 바울의 마음을 충분하게 약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의지는 요지부동입니다. 마음은 아프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중심에 심어 두신 섭리의 의지가 확고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들은 최종 결론에 도달합니다.

 

사도 바울의 결심(12-14)

살아가면서 삶의 기준을 어느 곳에 맞추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당신의 뜻과 맞지 않는 주변 사람들의 뜻으로 갈등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당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12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곳 사람들로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13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14저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12-14)

 

바울은 주 예수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에 순교할 각오까지 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울의 깊은 믿음의 확신이며 철저한 사명감입니다. 이것이 바울을 사도로 기름부고 이방인에게로 보내게 된 귀중한 이유입니다.

 

이러한 바울의 태도에 사람들은 “주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반응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인간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을 통해서 그의 사명에 충실한 모습을 닮기를 원합니다. 복음을 위해서는 고난을 각오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들이 들어야할 음성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 잡고 싶은 것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겠다는 의지적 결단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것에 매달려 있을 때에 ‘너의 헛된 생각을 포기하라’고 말씀합니다. 주님 뜻대로 나의 삶이 이루어지길 원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바울의 믿음을 통해 바울과 같은 믿을 가져야 합니다. 바울이 중요한 선택을 할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결정했던 것처럼, 우리들도 그러한 결정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안일함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고난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사랑을 생각하면서 성도들은 살아있는 믿음의 반응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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