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사도행전(20-01)


환난 중에도 편만하게 확산된 교회

사도행전 20장 1-16절


 

복음의 능력은 단순히 전달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역사를 통해 나타나는 능력입니다. 성령은 복음의 증거를 위해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동역자들을 주시며,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복음의 열정이 가득할 때 그 만큼 시험도 가득합니다.

 

  • 3차 선교여행 중에 있는 바울과 선교팀은 마게도냐, 헬라, 드로아의 교회들을 격려합니다(20:1-12). 복음 증거에 따른 능력이 나타납니다. 사도 바울이 마게도냐, 헬라, 드로아로 이어지는 선교 여행을 수행합니다. 드로아에서는 바울의 강론을 듣던 청년 유두고가 졸다가 떨어져 죽는 사건이 발생하지만, 바울이 유두고를 다시 살리고, 교회는 이 사건으로 큰 위로를 받습니다.

 

중단할 수 없는 복음(1-3)

길이 순조로울 때든지 막힐 때든지 하나님을 더 깊은 뜻을 그때마다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경우든지 우리는 충성할 뿐이고, 하나님의 더 깊은 지혜를 신뢰하면서 막히면 낙담하기보다는 돌아가고 물러나고 멈추었다 가면 됩니다. 바울은 사역에는 여러 가지 난관이었습니다. 난관이 있을 때, 그곳을 피하여 새로운 길로 나갔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소요가 그치매 바울은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 2그 지방으로 다녀가며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하고 헬라에 이르러 3거기 석 달 동안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 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를 거쳐 돌아가기로 작정하니(1-3)

 

에베소에서 일어난 소요 사태는, 바울을 에베소를 떠날 시간이 되었다는 사인이었습니다. 서기장의 탁월한 개인으로 대소동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바울은 원래 의도대로 마게도냐로 떠나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소요로 두려움을 느꼈을 정들었던 제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마게도냐로 떠났습니다(1).

마게도냐에 도착한 바울은 목적지인 예루살렘(행 19:21)에 가는 도중에 2차 전도여행 때 세운 교회들을 방문하면서 제자들을 권면했습니다. 저자는 ‘그 지방으로 다녀가며’라 애매하게 기록하지만, 빌립보(행 16:11-40), 데살로니가 (행 17:1-9), 베뢰아(행 17:01-15) 등의 교회들을 방문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그곳에서 또한 제자들을 많은 권면을 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에 있을 때 디모데와 에라스도를 마게도냐로 먼저 보내 사전 준비 작업을 하게 했습니다. 이들이 미리 가서 준비한 대로 각 도시 방문을 추진했을 것입니다.

이어서 바울은 그리스, 아가야 지역에서 3개월 동안 머물렀습니다(주후 56-57년). 아덴(행 17:16-17,32-34), 겐그레아(롬 16:1; 참조. 행 18:18). 고린도(행 18:1-22)에 교회가 있었습니다. 권면과 격려는 바울의 사역과 설교에서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사도행전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마게도냐에서 바울은 고린도후서를, 그리스의 고린도에서는 로마서를 작성합니다(참조 롬 16:1,23). 바울은 언제나 자신의 안전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곧 교회의 굳건함에 관심을 두고 이 일을 위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그 후에 바울은 배를 타고 수리아 지역으로 가려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3). 그곳에는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자신을 죽이려는 음모가 있었습니다. 원래 계획대로 되지는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이 바울의 여행 여정을 파악하고 배에서 은밀히 암살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여정을 바꾸어 다른 지역에서 사역을 계획합니다. 그 결과로 마게도냐로 돌아가서 드로아로 돌아온 것입니다. 간략하게 설명된 여정이지만, 부지런히 교회와 영혼을 돌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모든 부분에서 열정의 지도자였습니다. 열정적인 전도자에게도 큰 시험거리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항상 그렇게 순조롭지 않습니다. 순조로울 때든지 막힐 때든지 하나님의 뜻을 완전하게 아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복음 증거는 결코 중단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 일을 위해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어떤 경우에든지 충성할 뿐이고, 하나님의 더 깊은 뜻을 순종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신뢰면서 나간다면 하나님의 뜻을 완전하게 성취할 것입니다. 복음 증거에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은 지치지 않도록 능력을 입혀 주십니다.

 

함께 사역하게 하는 복음(4-6)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기에 동역자를 보내 주십니다. 동역자들로 인해 복음 증거는 더욱 효과적으로 중단 없이 이뤄집니다. 여러분의 동역자는 누구입니까? 그와 함께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군들에게 동역자를 허락하셨습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 증거를 하는 동안 이처럼 선교한 지역 출신의 여러 사람들과 동행합니다(4). 바울에게는 그와 함께 전도자의 길을 가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울과 함께 움직였고, 최선을 다해 바울을 섬겼습니다.

 

4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 5그들은 먼저 가서 드로아에서 우리를 기다리더라 6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4-6)

 

바울 주변에는 돕는 동역자들이 많았습니다. 그중 몇몇은 다른 기록에도 나와 있듯이 바울의 제자로서 또는 돕는 사람으로서 여러 가지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복음의 증거는 힘든 일이지만 동역자가 있으면 외롭지 않습니다.

디모데와 에라스도는 먼저 마게도냐로 먼저 가서 바울을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구제헌금을 마련했습니다(사도행전 19:22). 그곳에서 이방인 성도들 중에 대표할 만한 일곱 명을 세워 드로아에서 바울을 기다립니다. 그들은 “우리”라고 표현된 바울의 측근들은 빌립보에서 무교절(유월절)을 지킨 뒤 배를 타고 그곳으로 건너갑니다.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찾아내는 바울의 모습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바울은 자신을 이방인을 제물로 바치는 복음의 제사장으로서(로마서 15:16), 이방인들과 유대인 사이의 장벽을 허무는 평화의 중재자로 알고(에베소서 2:13-15), 살기 가득한 유대인들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향했습니다.

 

다시 살리는 두기고 사건(7-12)

우리들에게도 이러한 큰 시험거리들이 있습니다. 시험 앞에서 당신의 열정을 포기하지 마시고, 다시 일어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도울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 사역은 다른 영혼뿐 아니라 자신의 영혼도 살릴 것입니다. 복음은 사람을 살립니다.

 

7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8우리가 모인 윗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9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아 있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 10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하고 11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랫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12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을 데리고 가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더라(7-12)

 

바울 일행은 드로아에서 일주일 동안 머물렀습니다. 그 기간에도 지역 성도들과의 고별의 만남을 가졌습니다(6). 사역을 멈추지 않고 계속적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떠나기 전날 바울의 일정 때문에 강론은 밤중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바울의 설교를 밤늦게까지 계속되었던 것입니다. 그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말씀을 듣기가 쉽지 않는 상황이 연출되었을 것입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큰 시련이 자신을 기다릴 줄 알았기 때문에 더 열정적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때 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창에 걸터앉아 있던 유두고라는 청년이 변을 당합니다. 바울의 길어진 설교를 견디지 못해 졸다가 그만 삼 층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말씀을 듣다가 창에서 떨어져 죽었습니다.

바울의 강론은 중단되었고 사람들은 두려움 가운데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것은 공동체에 큰 시험거리가 되었습니다. 열정에 사람이 열정적으로 말씀을 전하려하고, 그 말씀을 열심히 들으려고 했던 공동체가 큰 시험거리가 다가 온 것입니다.

 

바울이 강론 중단하고 죽은 청년의 몸을 안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떠들지 말라 생명이 저에게 있다”(10)라고 청중에게 말했습니다. 분명히 다른 사람들이 살펴 볼 때는 유두고는 죽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변에 비아냥거린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유두고는 다시 살아났고 강론은 진행되었습니다. 이 일로 사람들은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 일이 일어난 시간은 “그 주간의 첫날”(7)이라고 소개합니다. ‘주일(主日)’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 모인 날입니다. 생명이 있어야할 날에 죽임이 있자, 공동체는 큰 시험에 빠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주일에 부활의 예수님의 생명을 다시 유두고에게 주심으로서 그 공동체를 위로하신 것입니다.

 

드로아에서 밀레도에 도착하는 ‘우리’(13-16)

성도는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시간을 아끼고 충성해야 합니다. 성도에게는 하나님께 받은 사명과 계획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여유로운 여행이기보다 주님께 받은 사명을 이루기 위한 경주입니다(히 12:1). 바울에게는 속히 가야 할 곳이 있고, 마쳐야 할 사명이 있었습니다.

 

13우리는 앞서 배를 타고 앗소에서 바울을 태우려고 그리로 가니 이는 바울이 걸어서 가고자 하여 그렇게 정하여 준 것이라 14바울이 앗소에서 우리를 만나니 우리가 배에 태우고 미둘레네로 가서 15거기서 떠나 이튿날 기오 앞에 오고 그 이튿날 사모에 들르고 또 그 다음 날 밀레도에 이르니라 16바울이 아시아에서 지체하지 않기 위하여 에베소를 지나 배 타고 가기로 작정하였으니 이는 될 수 있는 대로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감이러라(13-16)

 

바울은 3차 선교 여행의 귀환 경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13-15절에서 5개 도시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는 바울의 신속한 이동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서두른 이유는 오순절 이전에 예루살렘에 도착하기 위해서였습니다.

 

13-16절은 드로아에서 밀레도까지 이어지는 선교팀의 여정을 기록합니다. 이 과정에서 선교 방식이 드러납니다. 첫째, ‘우리’, 즉 선교팀이 강조됩니다. 독자들은 14절에 다시 한 번 등장하는 ‘우리’라는 용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여정의 계획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13-16절에 나타난 선교팀의 여정을 보면, 바울은 앗소에서 ‘우리’ 일행을 만났고, 모두가 배를 타고 미둘레네에 갔습니다. 미둘레네를 떠나 다음 날 기오(호머의 출생지)에 이르렀고, 다음 날에는 사모(피타고라스의 출생지)에, 다음 날에는 밀레도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모습은 세 달을 머문 헬라(행 20:2-3)와 일주일을 머문 드로아(행 20:6)의 경우와 다릅니다. 선교팀은 성도들이 있는 곳에서는 시간을 보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급히 이동했습니다. 물론 선교팀은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도착하려고 급히 움직였는데, 이후에도 두로(행 21:4-6)와 가이사랴(행 21:10-12)에서 여러 날을 머물렀습니다. 이처럼 바울과 선교팀은 사람들을 가르치고 세우는 목적을 위해 시간을 집중했습니다. 선교와 목회의 최우선 과제는 사람을 살리며 회복하고 세우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시간을 아끼고 집중해야 합니다.

셋째, 설교뿐 아니라 형제애가 신자들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됩니다. 바울은 오순절(주후 57년 5월 29일)안에 예루살렘에 도착하기 위해 서둘렀습니다. 누가는 여기서 ‘에베소를 지나’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있는 에베소를 방문하고 싶었음을 암시합니다. 큰 도시인 에베소에 가면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줄 알고 있는 바울은 에베소로 가지 않기로 결정합니다. 이방 교회들을 대표하는 일곱 명이 헌금을 직접 전달할 때 예루살렘 교회가 말할 수 없는 용기와 위로를 얻게 될 것이라 바울은 확신합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예수를 믿는 것 때문에 가족과 공동체에서 멀어져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예루살렘의 기근은 성도들의 삶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습니다(행 11:27-30). 바울은 이방 교회의 선물을 통해서 예루살렘 교회가 오순절이라는 명절에 기쁨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도록 서둘렀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의 임재로 감격을 경험했던 교회(행 2:42-47)는 새로운 오순절에도 위로와 기쁨의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유대 교회의 헌신으로 이방 교회가 개척됐고, 이제는 이방 교회의 헌신으로 유대 교회가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형제들이 마음으로 쏟는 헌신이 어려움 가운데 있는 형제에게는 엄청난 힘이 된다. 형제애를 통해서 헌신과 위로가 끊임없이 순환될 수 있습니다.


복음은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복음 증거는 사람이 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사람을 통해 전달됩니다. 복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쉼 없이 전하기 위해 동역해야 합니다. 이로써 잃어버린 영혼들이 구원받고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은혜가 나타날 것입니다.


구독과 아래 [광고베너] 클릭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