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사도행전(18-02)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하는 바울

사도행전 18장 12-23절


유명인들은 모든 일정을 혼자 감당할 수 없으므로 도움을 수 있는 도우미 ‘매니저’나 ‘비서’를 동반합니다. 매니저나 비서는 그들의 스케줄을 관리하면서 삶이 꼬이지 않도록 인도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인 성도들에게도 매니저가 있습니다. 바로 그는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매니저가 되십니다. 바울에게도 성령님께서 삶을 인도하는 매니저였습니다.

 

  • 바울이 고린도에서 1년 6개월을 머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했습니다. 갈리오가 아가야의 총독이 되자 유대인들이 바울을 ‘국가 질서 파괴’ 혐의로 고소합니다. 하지만 갈리오는 유대 민족의 일로 여기고 이 재판을 묵살합니다. 바울은 고린도에 더 머물다가 에베소로 가서 말씀을 전하고 안디옥으로 돌아옵니다. 얼마 후에 다시 3차 선교 여행을 준비하고 떠납니다.

 

갈리오 앞에 선 바울(12-17)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그 일을 실패할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함께하시면 어떤 실패도 인생의 자산이 될 것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자신을 신뢰하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인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새로운 도전하는 모든 것이 오직 자신을 위한 일이라면 그것은 성공해도 망하는 것이고 실패해도 망한 것입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라고 말해도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12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 13말하되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늘 14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이것이 무슨 부정한 일이나 불량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 주는 것이 옳거니와 15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고 16그들을 법정에서 쫓아내니 17모든 사람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법정 앞에서 때리되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하지 아니하니라(12-17)

 

이제 고린도에 새로운 총독 갈리오가 부임해 옵니다(12). 고린도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은 새로운 총독에게 바울을 고소할 기회로 삼습니다. 유대인들은 바울이 유대교가 아닌 로마법에 위배 되게 포교활동을 한다는 구실로 삼아서 고소합니다. 그 고소로 바울은 동역자 없는 가운데 혼자서 갈리오의 법정 앞에 서게 됩니다. 모든 사람들은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일제히 공격합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전혀 다른 어려움이 임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각대로 되는 상황을 인도하지 않습니다. 어떤 어려운 상황 속에 들어가더라도 두려워 하지않고 담대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어려운 때에라도 복음을 전파할 때,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역사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사실에 바울은 억울함을 느끼고 호소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자신을 위해 변명하기 위해 입을 열기도 전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바울이 말하려는 순간에 총독 갈리오의 입을 통해 이 환경들을 선하게 이끌어 가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갈리오의 마음을 들어서 대적하는 자의 송사를 꺾어버리신 것입니다.

 

총독 갈리오는 유대인들의 송사를 듣고, 그 송사가 언어와 명칭과 유대법에 관한 것은 재판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15). 당시에 총독들이 인종 내의 문화적, 종교적 문제들이 로마법에 위배되지 않는 한 간섭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바울에게서 로마법 위반의 사안을 찾지 못한 갈리오는 귀찮은 이 일에서 손을 떼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을 법정에서 쫓아내어 버립니다(16).

바울을 고발하려 했던 사람들은 바울을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게 했다는 이유로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서 재판 자리 앞에서 폭행함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17). 아가야의 질서를 위협하지만 않으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로마법에 의하면 오히려 아무 잘못 없는 바울을 고소한 유대인들을 무고죄로 처벌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총독 갈리오는 더 골치 아픈 일이 생기게 될까 봐 이러한 사실을 묵인하고, 그들을 쫓아내 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세속 권력의 속성입니다. 이러한 총독 갈리오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10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사도행전 18:10)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은 신실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어떻게 지켜주시고, 해할 자가 없게 하신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총독 갈리오는 최소간섭주의 원칙과 기독교가 유대교에서 분파적 논쟁으로 오해함으로 로마 제국의 견제에서 벗어나 오랜 동안 자유롭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다니엘서에서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의 왕을 통해 역사를 이루어가셨습니다. 이방인의 왕인 고레스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시켜 주셨고(역대하 36:22; 스 1:1), 새로운 성전을 짓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과 에스더 같은 사람들 주변에 이방에 권세자들을 들어서 사용하셨고,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의를 들어내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명을 받은 자는 하나님이 보호하십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전하는 전도자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을 믿는 것은 당연합니다.

 

사명자는 끝없는 사역이 있습니다. 수많은 방해들이 있겠지만, 사람들은 어떻게 헤쳐 나가야할지 모르는 상황이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동행하심으로 대적의 계획을 무산시키고 보호하십니다. 우리들의 삶속에 하나님을 믿고 신뢰한다면,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모든 상황을 변호해주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사역 속에서 걱정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바울의 에베소 방문(18-21)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상에 어떤 것에게도 매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 해야 합니다. 하지만 자유인으로서 모든 것이 가하지만, 연약한 자들 앞에서는 행동을 조심해야 합니다(고전 10:23-24). 바울은 이방인에게 율법으로부터 자유할 것을 말하면서도 자신은 유대인으로서의 율법에 충실했습니다. 왜 이러한 이중적인 행동을 했겠습니까?

 

18바울은 더 여러 날 유하다가 형제들을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 서원이 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19에베소에 와서 저희를 거기 머물러 두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20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21작별하여 이르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18-21)

 

고린도에서 소동 후에 바울은 곧바로 그곳을 떠난 것 같지 않습니다. 적어도 몇 개월을 더 있으면서 그곳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1약 1년 6개월 동안 고린도에서 사역한 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 위해 출발했습니다. 그는 겐그레아를 통해 에베소, 가이사랴, 예루살렘을 거처 2차 선교 여행을 시작했던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선교여행을 마무리 합니다. 그 여행에는 신실한 동역자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도 동참하였습니다.

 

(1) 겐그레아에서 삭발(18)

 

바울 일행이 겐그레아에 도착했을 때, 바울은 자발적으로 머리를 깎았습니다. 이는 그의 서원(誓願)이 종료되었음을 알리는 머리를 깎은 것입니다. 그의 서원이 무엇입니까? 사적인 서원이었습니다. 이는 바울의 서원이 감사와 관련된 것임을 암시합니다. 주후 1세기 당시에는 전통적인 방식의 감사 표현으로 서원이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실인 서원을 정리하면서 머리를 깎습니다. 특별한 계기로 일시적인 나실인의 서원이었을 것입니다(참고/민수기 6:2-5). 바울의 각오는 ‘내가 죽으면 죽으리라’는 나실인의 각오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생명을 다하여 복음을 전하고 주님 앞에 가리라는 서원이고 바울의 결단입니다.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였기에 이방 그리스도인들에게 할례와 율법준수의 의무가 없다는 점을 강하게 주장하여 치열한 논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은 본래 유대인으로서의 율법 준수 의무를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고전 9:19-23). 바울은 말씀을 가르치는 자가 범하기 쉬운 자기 합리화를 잘 극복한 것입니다.

 

(2) 에베소에세의 사역(19-21)

 

바울은 겐그레아에서 에베소로 이동합니다. 소아시아의 에베소에 들러 유대인들과 변론합니다. 그는 쉬지 않고 열심히 전도 여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전에도 그랬듯이 회당을 찾아가 복음을 전합니다. 개역재정에는 바울이 유대인들과 ‘변론했다’라고 번역했지만, 정확하게 ‘강론했다’는 뜻으로 해석한 것이 좋습니다.

 

바울의 강론은 여러 사람들에게 관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에베소 사람들은 바울에게서 더 듣고 싶었습니다. 바울에게 더 머물러 달라는 요청했지만, 그는 거절합니다. 그가 거절하고 빨리 에베소를 떠나고 싶어싶던 이유는 서방 본문은 바울이 유대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가기 원했다고 전합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빨리 움직여야 했을 것입니다. 배 운항이 제한되는 시기가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슨 이유로 바울은 에베소를 빨리 떠났는지는 정확히 알기 어렵습니다. 다만 누가는 바울이 지금 이 여행을 빨리 마무리 지으려 하고 있다고 전할 뿐입니다.

 

계속되는 바울의 선교여행(22-23)

사명을 맡은 사람들은 그 사명에 충실해야 합니다. 성경에서도 ‘맡은바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전 4:2)고 하셨습니다. 충성을 다하기 위해서는 환경이나 사람들에 움직이면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나가는데 무엇이 방해를 놓습니까? 사명보다 사람들의 말이 주관합니까?

 

22가이사랴에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23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게 하니라(22-23)

 

한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도 고린도를 떠나 바울 일행과 함께 에베소를 방문합니다. 이 부부는 복음을 위해 바울의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을 통해 에베소 선교에 크게 기여합니다. 바울은 에베소를 다시 방문할 것을 소망하며 배를 타고 가이사랴, 예루살렘을 방문한 후 자신을 파송했던 안디옥 교회로 귀환합니다.

 

이 구절은 바울의 2차 선교 여행의 마지막과 3차 선교 여행의 시작을 구분 짓습니다. 이제 바울은 선교 여행의 보루였던 안디옥 교회를 떠나 다시 에베소로 향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3차 선교 여행을 떠난 것입니다. 그는 복음에 대한 열정 때문에 한곳에 눌러 앉아 있을 수 없었습니다. 가는 동안에 2차 선교 여행지인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지역을 방문합니다. 그곳은 2차 선교 여행에서 설립된 교회들을 돌아보면서 연약한 교회들을 세워가면서 3차 선교 여행을 시작합니다.

 

바울 사도의 마음은 항상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교회를 바르게 세우고 그리고 성도들은 말씀으로 굳건히 서는 것이 있습니다. 주변에 사람들의 말과 상황에 따라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우선순위를 가지고 결단하고 행동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명자의 삶에도 무수한 위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명자를 돌보시는 하나님이 동행하시고 함께 하는 동료가 있고, 하나님의 뜻을 우선하여 결단하는 마음이 있다면 마침내 사명을 완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사명을 완수하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구독과 아래 [광고베너] 클릭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