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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18-01)

 


고린도에서 사역하는 바울과 일행

사도행전 18장 1-11절


 

사람들은 모두 사랑이 필요합니다. 사랑을 주고 받음으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심령 가운데 두 개의 자루를 주셨습니다. 하나는 전능자인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자루이고, 또 하나는 피조물 되는 사람들끼리 채워줌으로 안정감을 누리는 자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변에 좋은 사람들을 붙여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함께 이루어가게 하십니다. 위대한 사람 바울에게도 친구가 필요했고, 동역자가 필요했습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친구와 동역자를 붙여주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 바울이 아덴을 떠나서 고린도에 이르러 복음을 전합니다. 아덴에서는 혼자 사역을 했지만 이곳에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만납니다. 베뢰아에서 헤어졌던 실라와 디모데까지 다시 만납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하지만, 박해를 겪습니다. 하나님이 환상 중에 바울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고린도에 도착한 바울(1-3)

신앙생활을 해 나갈 때, 동역자들은 큰 힘이 됩니다. 어려울 때 기도를 부탁할 수 있고, 즐거운 일이 있을 때 같이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당신과 함께 하나님의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어 갈 동역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셔서 당신에게 보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과 갈등 없이 잘 협력하며 사역을 감당해 나가야 합니다.

 

1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2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3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1-3)

 

비록 많은 열매를 맺지 못했지만, 성공적인 사역을 아덴에서 마치고 바울은 고린도에 이릅니다. 고린도는 당시 로마 제국의 3대 항구였습니다. 그만큼 물문과 교류가 활발했고, 외지에서 사람들이 유입되었습니다. 바울에게 그곳은 황금어장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세계복음화를 위한 중요한 전략지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바울은 혼자서 고린도에 도착했습니다. ‘고린도’라는 도시는 고대에 부의 상징으로 간주되면서 호머(Homer) 이후 그리스의 광채, 영광이라고까지 불렸습니다. 그러나 동방 종교와 그리스 종교가 만나는 십자로에 있었기에 종교적 혼합주의의 양상도 뚜렷했습니다. 항구 도시가 갖는 타고난 특성과 아프로디테 신전에서 행해진 성전 노예들의 성적인 제사 행위들은 이 도시가 문란한 곳으로 알려지게 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에서부터 쫓아온 유대인들을 피해 베뢰아에서 도망가듯이, 아덴으로 떠난 이후 바울은 계속 혼자였습니다. 데살로니가와 베뢰아에서의 사역은 충분히 성공적이었지만, 바울은 적대적인 유대인들의 거센 반대와 핍박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아덴에서는 홀로 아레오바고 언덕에 모여든 수많은 이방인 앞에서 복음을 변증했습니다.

 

사도행전 17:15에서는 바울이 실라와 디모데를 속히 만나고 싶어 했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바울도 서로 격려하고 위로가 될 동역자가 필요했다는 뜻입니다.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선교팀을 대신하여 하나님께서는 바울과 함께할 새로운 믿음의 동역자들을 예비하셨습니다(2). 그들도 글라우디오의 추방령에 로마로부터 쫓겨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부부였고 이름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였습니다. 그들은 로마에서 살던 사람들인데, 황제가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추방하라는 명령에 따라 고린도로 이주하여 살고 있었습니다.

3절에 보면, 절묘한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세심한 하나님의 배려가 나타납니다. 이는 바울의 직업과 부부의 직업이 서로 같다는 사실에서 확인됩니다. 바울처럼 그들은 천막 만드는 일을 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이 노동하면서 선교하였다는 것은 그의 서신(고전 4:12)에도 나타납니다. 아마도 바울은 유대 랍비들이 당시의 율법 교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한 가지 전문 직종에 대한 훈련을 받았던 것입니다. 당시에는 로마 군사들이 주둔해 있는 곳곳마다 텐트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텐트 만드는 일이 유망 직종이었을 것입니다. 그 일을 하면서 같이 일을 할 사람을 만났는데, 바로 이때 하나님께서 만나게 하신 사람이 아굴라와 브리스굴라입니다.

 

직업을 나타내는 ‘스케노포이오스’는 ‘천막 제조 및 피혁 노동자’를 의미합니다. ‘누구든지 아들에게 기술을 가르치지 않는 자는 도적이 되게 하는 것’이라는 어느 랍비의 경구(비록 주후 2세기의 글이지만)를 생각해볼 때, 아마도 바울이 가말리엘의 문하생으로 있을 때 그러한 기술을 습득했을 것입니다. 바울은 작업 환경을 선교의 장소로 인식하고, 노동의 현장에서 사람을 만나 대화하고 설득하고 토론을 하였습니다. 또 생계를 직접 해결함으로써 아무에게도 속박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사역하였습니다. 게다가 ‘일을 한다’라는 뜻의 ‘에르가제토’가 미완료 형태인 것을 볼 때, 바울이 부지런히 일을 계속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위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또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위해 바울을 준비하셨습니다.

 

고린도에서 얻은 회심자(4-8)

하나님의 택함을 입었으나 아직까지 하나님 말씀을 듣지 못하고, 그분의 은혜를 알지 못하는 일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자신은 자신이 생각하는 일만 사역이라고 한정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더 큰 사역을 준비해 놓은 것은 무엇일까요? 그러한 모든 사역들을 기다리며 사역하는 사명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4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5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6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7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8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4-8)

 

바울은 혼자서도 계속적으로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4). 얼마 후 한동안 헤어졌던 실라와 디모데가 드디어 고린도로 합류했습니다(5). 그들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좋은 소식을 전해 주었고(살전 3:7-10), 빌립보 교회가 보낸 후원금도 가져왔습니다(고후 11:9, 빌 4:14-15).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일을 통해 바울을 격려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적극적으로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힘차게 사역하였습니다.

 

고린도에서의 바울의 사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바울은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함으로써 복음 전파에 나섰습니다(4). 평일에는 작업장에서 노동하며 사람을 만났고, 안식일에는 회당을 찾아 유대인과 하나님의 경외자를 대상으로 토론과 설득을 통해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런 선교 활동은 동료들이 도착한 이후로도 계속되었습니다(5). ‘말씀에 사로잡혀’에서는 ‘말씀’이 의인화되어 바울을 사로잡아 증언하게 한다는 강한 표현이 쓰였습니다. 이는 바울의 선교가 갖는 신적 기원과 복음에의 집착을 강하게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두 동역자가 도착하자 노동을 중단하고 말씀 전파에만 전념했다고 본 것입니다.

 

바울에게 적개심을 품은 유대인들은 예수가 유대인들이 기다리는 바로 그 그리스도(메시아)라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바울을 비방하며 대적했습니다. ‘비방하다’(블레스폐메인)는 비난하며 모욕적 언사를 내뱉는 것을 뜻합니다. 바울은 심한 좌절과 모욕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바울의 태도는 매우 단호했습니다. 옷을 털어버리며 그들에게 심판이 이를 것이라 경고합니다. 이런 행동은 이미 비시디아 안디옥에서도 보여준 적이 있었습니다. 바울 일행은 일전에 유대인의 선동에 의한 폭력적 행위 때문에 추방되면서, 발의 먼지를 털어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갔습니다(행 13:51). 발의 먼지를 터는 것과 옷의 먼지를 터는 일은 유사합니다. 거부와 단절, 거리감과 항의를 뜻하는 상징적 행동입니다. 바울은 이제 자신이 이방인들에게로 가겠다고 선언합니다. 이런 강력한 의지는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라는 바울의 말에서 확인됩니다. 즉, 그들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강력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거기서 장소를 옮겨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 디도 유스도의 집에 들어갑니다(7). 그의 집은 회당 옆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디도 유스도는 아마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로 알려진 회당 주변의 우호적인 이방인 출신 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갑자기 회당장 그리스보에 대한 언급이 이어집니다(18). 그와 그의 온 집안 식구가 믿었고, 그 밖의 많은 고린도 사람들이 바울의 말을 듣고 믿어 세례를 받기에 이릅니다. 이는 그의 고린도 사역이 적잖이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라는 주님의 말씀과도 일치합니다(행 18:10). 누가는 바울의 고린도 사역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회당장 그리스보의 회심은 사도행전 안에서 특별합니다. 가말리엘(행 5:34-39)을 제외하고, 사도행전에서 유대지도자들 중에 바울의 복음에 우호적인 경우는 그가 유일하기 때문입니다. 또 이는 고린도전서 1:14과 16절에서 바울이 그리스보, 가이오, 스데바나의 집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다는 진술과도 일치합니다.

 

바울의 고린도 사역에 언제나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반대자들이 훼방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적극적으로 복음에 전념하게 되었을 때, 여전히 복음을 훼방하는 세력도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빛이 어두움이 함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주의 뜻대로 살기로 결심하면, 힘들고 손해 보는 일들을 반드시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회당 중심 유대인 선교에서 이방인의 선교로 전환합니다. 이 결심은 바울이 이방인 선교에 중심하는 결정하는 계기가 됩니다. 이 후에 고린도 교회는 이방인들이 많이 합류해서 건강한 공동체를 이루게 됩니다. 놀라운 것은 회당을 떠나서 복음을 증거 했는데, 회당장이가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린도의 많은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고린도 교회를 세운 바울(9-11)

하나님의 사역을 하려고 한다면 하나님과 친밀해야 합니다. 시간마다 사역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사역하게 되면 놀라운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역에 즐거움을 느끼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습니까? 사역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심에 받기고 있습니까?

 

9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10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11일년 육개월을 유하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9-11)

 

바울이 복음을 증거할 때, 하나님께서 그의 길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방해가 있기는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사역의 열매로 바울을 격려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일을 감당하려는 자들에게 인생길을 여시고 인도하십니다.

 

바울은 밤에 환상 가운데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9)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말씀은 바울에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므로 해할 자가 없다는 확신을 갖게 했습니다. 누가는 고린도에서 바울의 고난을 미리 준비시키기 위해 주님이 환상 중에 나타나 말씀하시는 내용을 싣고 있습니다. 바울과 관련해서 누가는 ‘환상’이라는 표현을 세 번 사용합니다. 사도행전 16:9-10에 두 번 나오는 것을 제외하면, 마지막으로 본문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6:9-10에서 환상은 답보 상태에 있던 바울 일행을 위로하고 다음 진로로 인도하는 방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도 바울을 위로하기 위한 방법으로 환상을 사용하십니다.

 

주님은 이 성에 하나님의 백성이 많다고 말씀하십니다(10). 그러니 이것은 그가 당할 고난이 많을 것이란 의미일 수도 있고, 그들을 돕기 위해 길게 체류해야 한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11절에서 그가 1년 6개월이나 고린도에 머물렀다는 언급을 구체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또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라고 명령하십니다. 이는 극한 반대가 닥칠 것임을 냅니다. 사역자가 침묵을 강요받는 상황을 예측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담대하게 복음을 계속 선포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이 지키셔서 그를 해할 자가 없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이 담대한 선교를 가능케 합니다. 믿는 고린도인들이 많기 때문에 그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양육하려면, 바울은 역경 속에서도 이 도시에 머물러야만 했습니다. 바울은 주님의 말씀대로 1년 6개월을 머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11). 복음 증거자에게는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따릅니다. 이는 복음 증거자가 받는 축복 중 하나입니다. 세상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과의 동행은 우리가 영광중에 보호 받으며 인도함을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인생이 누릴 최고의 복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파할 때, 고난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는 사명자들에게 감당할 수 있는 능력과 지혜를 주십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위로의 음성을 듣고 다시 일어섭니다. 그는 고린도에서 유대인으로부터 떠나 이방인들에게 전도할 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열매들을 얻었습니다. 성도들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담대하게 일어서야 합니다. 고난을 축복으로, 좌절을 희망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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