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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20-03)


말씀으로 듣든히 서 가는 교회

사도행전 20장 28-38절


요즘 사람들에게 관심 있는 것은 ‘리더십’입니다. ‘리더십’은 ‘영향력’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고, 악한 나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지도자들은 성도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진 공동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시고 말씀 자체이십니다. 따라서 지도자들이 말씀 위에 든든히 세어질 때 교회 안에 모든 사람들에게 말씀의 영향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 사도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에게 마지막 권면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감독자로서 교회를 잘 지킬 것을 당부합니다. 그리고 이단들의 출몰에 대해 경고하고 물질에 대한 교훈을 이야기합니다. 에베소 장로들은 크게 울며 바울을 전송합니다.

 

장로들의 역할(28)

교회는 하나님의 공동체이지만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사람들과 관 속에서 속상한 일이 있거든 바울과 같은 태도를 취하시길 바랍니다. 그들을 향하여 무엇을 얻을 것인가가 아니라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언약한 성도들을 위해 수고하고 있습니까? 그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고 있습니까?

 

28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28)

 

바울은 이별을 고하며 에베소 장로들에게 교회의 감독자로서 어떻게 행해야 할지 권면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이 모습은 건강한 리더십이 무엇인지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교회에 닥칠 위기를 말하기 전에 교회가 어떤 존재이며 교회의 책임자들에게 어떤 역할이 주어졌는지 가르칩니다. 첫째, 교회는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의 피로 사신 것입니다. 헬라어 본문에서 의미하는 ‘자신의 것’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사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제물로 주셨습니다. 주의 만찬에서 예수님께서는 잔을 가리키며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눅 22:20). ‘사다’라는 용어는 칠십인역 이사야 43:21에서도 사용됩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를 칠십인역은 ‘내가 산 나의 백성’으로 번역합니다. 이와 같이 바울은 속죄의 의미를 경제적 개념을 사용해서 설명합니다. 구약에서의 하나님의 백성과 마찬가지로 교회는 하나님께서 사신 하나님의 재산입니다. 교회는 희생제물인 예수의 피로 사신 것이기 때문에 값을 매길 수 없으며, 하나님의 재산이기에 장로들이 좌지우지 할 수 없습니다.

둘째, 장로들의 임무는 양 무리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이토록 값비싼 가치를 지니고 있으므로 성령은 교회를 지키는 감독자들을 세우십니다. 이들은 목자가 양을 지키듯이 교회를 보호해야 합니다(29). 소중한 교회를 위한 사역을 완수하기 위해 바울은 자신의 목숨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교회에서 책임을 부여받은 리더는 교회가 하나님의 소유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아들의 피로 사신 공동체이므로 우리는 교회를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로 생각해야 하고, 교회를 보호하는 일에 쓰임 받는 것을 영광으로 여겨야 합니다.

 

사나운 이리를 조심하라(29-32)

교회를 다니면서 말씀의 가르침을 제대로 받지 못해 영적 갈증을 해소하지 못한 나머지 이단 교리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안타까운 일들이 벌어지지 않도록 교회는 말씀을 가르치고, 성도는 배우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말씀에 대한 갈망과 영적 진리에 대한 목마름으로 우리에게 소망의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언제든지 진리의 말씀을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29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30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31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32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29-32)

 

바울은 자신이 떠난 후에 사나운 늑대들이 양 떼를 해치려고 교회 안에 들어올 것이라고 경고합니다(참조, 마 7:15; 눅 10:3), 교회가 늑대의 공격을 받는 양 떼이기 때문에, 바울은 28절에서 성령이 교회를 보호하고 목양하시도록 감독자를 세우셨다고 말했습니다. 늑대들은 교회의 존귀함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을 따르도록 만들려고 진리를 왜곡해서 가르치는 거짓 교사들입니다. 이들은 바울이 가르친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것을 가르칩니다.

 

장로들이 늑대들의 거짓 가르침에서 벗어나 양 떼를 보호하려면 바울을 본받아야 합니다. 31절의 헬라어 문장에서는 ‘기억하라’라는 단어 앞에 ‘깨어 있어라’ 혹은 ‘주의하라’라는 명령이 나옵니다. 거짓 교사들의 출현을 주의해야 합니다. 바울이 밤낮으로 쉬지 않고 교회의 각 사람을 눈물로 훈계한 장면을 떠올리고 그대로 실천해야 합니다. 이는 목자가 양 떼를 보호하는 모습과도 같습니다. 그런데 교회의 지도자들이라고 해서 자신들의 힘으로 교회를 보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들을 주(=하나님)와 그의 은혜의 말씀에 맡깁니다. 하나님께 맡기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에 맡긴다는 뜻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의 말씀으로 교회를 보호하시고 성숙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인내하는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유업을 받게 됩니다. 유업은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따라서 교회의 지도자들은 바울이 가르쳐준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함으로써 하나님의 보호와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거짓 교사들이 교회 안에 들어와 진리를 왜곡하고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에서 이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교회의 가치를 모르는 거짓 교사들은 시대마다 교회 안에 있는 약점을 파고듭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이 아무리 많은 설교를 전한다고 할지라도 은혜의 말씀을 정확하게 가르치지 않는다면, 거짓 교사들의 유혹에 교회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이 했던 것처럼 교회의 지도자들은 은혜의 말씀을 정확하게 가르쳐야 하고 성도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대화하시고 일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혼탁한 시대에 제대로 살아갈 통찰력과 능력을 가져다줍니다. 말씀의 부흥이 진정한 교회의 부흥입니다.

 

돈을 탐내지 말라(33-35)

바울은 인간의 죄성을 알고 있었습니다. 인간은 가만히 나누면 자연스럽게 죄로 흘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육신이 편한 곳으로 택하기 되어 있고, 귀에 좋은 말을 택하게 되어 있습니다. 깨어 있지 않으면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는 죄성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말씀을 가지고 깨어서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33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34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35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33-35)

 

거짓 교사들의 출현 외에도 교회 지도자들의 그릇된 모습들이 교회에 위기를 가져다줄 수 있습니다. 지도자들이 탐욕을 추구할 때 교회는 위기에 빠집니다. 위기의 원인은 교회 내부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위기를 막아야 할 사람은 위기를 만들기 가장 쉬운 자리에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어떻게 교회를 섬겼는지 설명하면서 교회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합니다. 바울은 누구의 은이나 금이나 옷도 탐내지 않았습니다. 돈과 옷을 거론하는 것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파송하면서 가르치신 내용과 비슷합니다(눅 12:13-34; 16:1-15). 바울의 삶은 그리스-로마 세계의 순회 철학자들과 종교사기꾼들이 가르침의 대가로 부를 축적한 모습과 대조됩니다. 바울은 탐내기보다 직접 일해서 자신과 동료들의 필요를 채웠습니다(34).

 

교회의 지도자들은 바울의 삶을 따라서 약한 사람들을 지원해야 합니다. 약한 사람들은 재정적으로 궁핍한 형편에 있는 사람들을 지칭합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행위는 탐심에 끌려가는 것을 막아줍니다. 따라서 타인을 위한 자선은 자신을 구하는 길입니다. 교회가 궁핍한 사람들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다면, 엉뚱한 목적을 위해 돈을 축적하는 길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바울의 삶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삶에 근거합니다(35). 이 말씀은 복음서에 기록된 내용이 아니지만, 바울과 에베소 장로들과 여러 초기 교회들에 알려진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베푸는 인생이 복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물론 생활의 궁핍함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 삶을 낮게 평가하는 것은 아닙니다. ‘약한 사람들’이란 재정적으로 궁핍한 형편에 처한 사람들로서, 타인의 도움에 의존해야만 생활할 수있는 자들입니다. 바울은 궁핍한 사람들을 위해 직접 노동에 참여했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할용해서 탐심을 채울 위험성을 차단해야 합니다. 이때 바울의 삶은 그러한 위험성에 경종을 울리는 하나의 좋은 예입니다.

 

눈물의 작별 인사(36-38)

교회 안에서 나누는 교제를 돌아봅시다. 성공적인 인간관계를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당신이 떠날 때 바울과 같이 서로 안고 눈물을 흘리는 성공적인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지체가 아파할 때 당신의 가슴도 아픕니까? 지체들을 위해 얼마나 간절히 기도합니까? 지금 당신의 손이 필요한 사람은 없습니까?

 

36○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그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니 37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38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로 말미암아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36-38)

 

바울은 설교를 마치고 나서 무릎을 꿇고 장로들과 함께 기도합니다. 장로들은 크게 울면서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며 작별 인사를 나눕니다. 특히 장로들은 다시 바울을 볼 수 없을 것이라는 말 때문에 더욱 근심하고 배를 타는 곳까지 바울을 전송합니다.

 

바울과 장로들 간의 작별 인사는 진정한 감동과 우정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어떻게 이토록 아름다운 장면이 그려질 수 있습니까?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서 교회를 사랑한 바울의 삶 때문입니다. 바울은 눈물 없이 딱딱하고 건조한 방식으로 지도하는 선생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의 가르침은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깨달은 자의 반응이었고, 그의 헌신은 박해자를 구원하신 예수의 은혜에 대한 반응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향한 그의 가르침은 하나님을 향한 예배와 분리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바울의 삶과 가르침을 목격하고 경험한 지도자들은 에베소 교회를 대표해서 눈물로 작별 인사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탐심을 채우기 위해 교묘히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노동을 해서라도 궁핍한 사람을 도왔던 바울, 존귀한 교회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은 바울의 삶이 재현될 때, 교회는 감동의 친교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에 근거한 사랑은 건강한 교회를 만듭니다. 하나님의 공동체 안에 연약한 자들을 돌아보아 줌으로 성도들이 세워지고 교회가 하나 되어 부흥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수고를 통해 얻은 것으로 연약한 사람들을 돌보고 섬기는 심령들에게 은밀히 갚아 주십니다. 그러한 사람은 많은 사람들을 주께로 돌아오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성도들에게 존경을 받은 지도자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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