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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035-02)

 


잠잠하지 마옵소서!

시편 35편 19-28절


 

하나님의 침묵이 우리 신앙의 가장 큰 위기입니다. 시대에 뒤떨어진 하나님, 역사에 무관심한 하나님, 비인격적인 하나님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침묵을 깨고 일어나도록 촉구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시인은 오늘 하나님의 어떤 행동을 요구하고 있습니까?

 

  • 시인의 하나님께서는 공의의 재판장이십니다. 시인은 부당하게 원수들로부터 고소를 당하여 고통당하고 있습니다. 그는 재판장이신 하나님 앞에 나아와 그들의 불의를 고발하며 하나님의 공정하고 의로운 판결을 간청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간구하는 시인(19-25)

하나님께서는 항상 지켜보고 계십니다. 원수들은 보지 않은 것도 보았다고 거짓말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본 대로 행하시고 갚아주십니다. 공의로운 하나님께서는 다 보고, 다 알고 계십니다. 불꽃같은 눈으로 모두 지켜보시니 결코 잠잠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기에 다윗은 하나님께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다 아룁니다.

 

19부당하게 나의 원수된 자가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못하게 하시며 까닭 없이 나를 미워하는 자들이 서로 눈짓하지 못하게 하소서 20무릇 그들은 화평을 말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평안히 땅에 사는 자들을 거짓말로 모략하며 21또 그들이 나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리고 하하 우리가 목격하였다 하나이다 22여호와여 주께서 이를 보셨사오니 잠잠하지 마옵소서 주여 나를 멀리하지 마옵소서 23나의 하나님, 나의 주여 떨치고 깨셔서 나를 공판하시며 나의 송사를 다스리소서 24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공의대로 나를 판단하사 그들이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못하게 하소서 25그들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아하 소원을 성취하였다 하지 못하게 하시며 우리가 그를 삼켰다 말하지 못하게 하소서(19-25)

 

1-18절에 이어, 시인은 하나님께 다시금 자신의 억울한 입장을 호소하며, 자신을 억울하게 고통스러운 상황으로 몰고 온 그의 원수들에 대한 공정한 심판을 간구합니다. 시인의 원수들이 그에게 행한 악행의 목록은 끝이 없습니다. 그들은 전쟁터의 전사들처럼 그를 죽이려고 쫓아다녔습니다(3-6). 사냥꾼처럼 덫을 놓고 구덩이를 파놓아 그가 불시에 빠져 멸망당하기를 원했습니다(7). 또한 시인을 고소하여 그가 죄인이라고 거짓으로 증언하고 그가 알지도 못하는 질문으로 부당하게 그를 심문했습니다(11). 그들은 서로 모여 시인을 해할 계획을 세우고 기회가 있으면 그에게 폭언과 폭행을 일삼았습니다(15-16).

 

(1) 공의의 심판을 간구함(19)

 

그들은 거짓말을 늘어놓고, 시인을 이유 없이 미워하고 서로 눈짓을 해가며 조롱합니다(19).

 

(2) 불의한 증인들의 행악(20-21)

 

평안을 추구하지 않고 오히려 아무일 없이 고요하게 지내는 자를 들쑤시며 일을 저지릅니다(20). 죄 없는 자를 중상모략하며 그에게 떠벌리며 없는 일을 꾸며대고 “아하, 우리가 보았나이다”하고 거짓증언을 합니다(21). 그들은 악을 행치 않거나 사람을 넘어뜨리지 못하면 잠을 못자는 자들이며, 불의와 강포를 밥먹듯이 저지르는 자들입니다(잠 4:16). 시인은 이같이 원수들의 불의와 부정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하나님께 고발합니다. 시인이 거듭거듭 원수들의 행악을 언급하는 것은 그들을 정죄하고 판단하려는 의도가 아닙니다. 이것은 불의에 대한 정의로운 분노의 표출이며, 그의 억울한 마음과 고통에 대한 솔직하고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시인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솔직하게 그의 내면을 털어놓습니다. 여기에는 기쁨과 감사뿐 아니라 그의 고통과 불의에 대한 거룩한 분노와 상한 마음도 들어있습니다. 원수들의 행악이 나타나면 나타날수록 시인의 무고함은 더 확실해집니다. 그들의 악행을 들으면 들을수록 그들이 꾸미는 모든 계획과 행하는 일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의나 정직이나 공평이나 자비의 정신이 없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시인에게 악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압제하는 것이므로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셈이 됩니다. 시인의 원수들에게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그들은 지혜가 없는 자입니다(시 14:1).

 

(3)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간구하는 시인(22-25)

 

시인은 공의의 하나님이 자신의 처지와 원수의 행악을 다감찰하고 계심을 잘 압니다. 원수들은 실제 일어나지 않은 일도 보았다(21)고 진술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계획과 실제로 일어난 모든 일을 다 보셨고(22) 다 통찰하고 계십니다. 다만, 원수들이 상당한 기간 동안 계속해서 시인에게 악을 행했고 그에 따라 시인의 고통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은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아무런 일도 행하지 않으시고 잠잠하시자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멀리하여 떠나신 것처럼 느껴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여기서 실망하거나 주저앉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개입을 앞당기려 합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주여”라고 하나님을 거듭해서 부르며 그를 도우실 이가 하나님밖에 없음을 강력히 나타넵니다. “떨치고 깨십시오”라고 절박하게 외치며 하나님께서 신속하게 행동을 개시하시기를 촉구합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법정에서 재판을 열어주시기를 간청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편을 들어주시기를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바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법적 사건을 맡아 자신을 공정히 심판하시는 것이며, 원수들의 거짓말과 거짓 목격이 아닌 하나님께서 직접 보고 들으신 것을 기반으로 공정하게 원수들을 판단하시고 판결 내리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원수들은 시인이 유죄로 판결나서 맘속으로 '아하, 소원 성취했다. 우리가 이겼다'면서 쾌재를 부르고 시인을 조롱하기를 바라겠지만,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면 공정하고 의로운 심판이 이루어질 것이므로 원수들이 바라는 일들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시인의 간구에는 원수들이 누리는 현재의 의기양양함과 안락함이 하나님의 속성에 어긋나며 하나님의 통치 질서에도 어긋난다는 점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께 원수를 지금 심판해달라고 간구함으로써 하나님이 세우신 정의가 그의 생전에 다시금 구현되는 것을 보기를 소망합니다.

 

악인과 의인의 운명(26-28)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갚아주실 것입니다. 행한 대로 당할 것이고, 심은 대로 거둘 것입니다. 의인과 악인의 운명은 역전될 것입니다. 남의 고통을 기뻐하던 자들은 수치를 입을 것입니다. 의를 추구하던 이들은 노래하고 춤을 출 것입니다. 그 크기를 가늠치 못하는 하나님께서 악인에게는 악으로 갚으시고, 의인에게는 의로 갚으실 것입니다.

 

26나의 재난을 기뻐하는 자들이 함께 부끄러워 낭패를 당하게 하시며 나를 향하여 스스로 뽐내는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하게 하소서 27나의 의를 즐거워하는 자들이 기꺼이 노래 부르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그의 종의 평안함을 기뻐하시는 여호와는 위대하시다 하는 말을 그들이 항상 말하게 하소서 28나의 혀가 주의 의를 말하며 종일토록 주를 찬송하리이다(26-28)

 

시인은 샬롬 대신 거짓말하고 스스로 크다 한 자보다 시인의 결백을 ae는 자에게 기쁨을 주시고 크신 하나님과 샬롬을 주시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복을 주시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자신의 진심을 믿어주는 공동체와 자신의 진심을 아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고난 중에도 인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1) 악인과 의인의 운명(26-27)

 

시인은 하나님의 정의가 실현되기를 기도합니다. 그의 간구는 사건의 당사자인 자신과 원수들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자신이 당한 상황을 지켜보고 반응하는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이릅니다. 이 대중들조차도 악인과 의인으로 구별되며, 시인은 이들을 위해 간구합니다. 그동안 시인은 고난을 당했으나 하나님께서 정하신 의를 지키려 하였습니다. 이때 시인의 재난을 보고 기뻐하며 으스대는 자들은 악인이며, 시인의 의롭게 행하는 점을 즐거워하며 그의 평안을 바라는 자들은 의인입니다. 시인의 불의한 위증자들은 시인을 이유 없이 미워하고 거짓말하고 그를 해하려고 애쓰는 등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으므로 그들이 악인임에는 의심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시인이 말하는 자들은 그에게 직접적인 해를 가한 이들을 제외하고 시인이나 그의 재난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지만 이 일을 목격했거나 들어서 아는 제3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이 시인이나 그가 당한 일에 대하여 품는 생각이나 입으로 내는 말이나 행하는 행동 모두도 시인의 간구의 대상이며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됩니다.

 

무고하게 고난을 당하는 자를 무시하며 그의 고난을 기뻐하는 자들은 그에게 행악을 저지른 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죄와 허물로 부끄러움을 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무고한 자의 의로운 행동을 지지하고 함께 기뻐해주는 자들은 그의 의로움이 그들의 기쁨이 될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그분을 섬기는 자(종)가 평안을 누리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악인들은 스스로를 자랑하며 우쭐대지만, 의인들은 항상 하나님을 자랑하는 자들입니다. 평안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크고 의로운 속성을 매사에 인정하는 자들입니다. 시인과 기쁨을 함께 하느냐 혹은 원수들과 기쁨을 함께 하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심판이 이와 같이 자명하다면, 시인과 원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얼마나 확실하고 정의롭겠습니까!!

 

(2) 하나님을 향한 시인의 서원(28)

 

이 시 전체에서 시인이 하나님께 애타게 간구하는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으로 시인이 당한 억울한 사건을 살펴보시고 무고히 고소를 당한 시인에게는 무죄 판결을, 불의한 그들에게는 응당한 벌을 내려주시기를 구하였습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공의로운 심판을 내려주실 것을 고대하고, 그가 하나님의 많은 성품 중에서도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증거하며 하루 종일이라도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라고 다짐하며 기도를 마칩니다.

 

시인은 이 시를 통해 자기의 억울함과 악인의 불의의 문제를 어떻게 다루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원수들의 부정과 불의에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그들ㅁ에 대해 보복하고 싶은 생각을 마음에 억눌러 쌓아두지도 않았습니다. 자신의 억울한 사정에 대해서도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마음의 상처와 고통 또한 마음에 억눌러 쌓아두지 않았습니다. 대신 하나님 앞에 나아와 자신의 상황과 심정을 솔직하게 쏟아놓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손에 맡겼습니다. 만일 우리가 불의를 행한 사람에 대한 우리 자신 ㅁ안에 있는 분노나 고통을 누르거나, 지속하거나, 혹은 그것을 키워 그 사람들의 불의에 대해 파괴적인 방법으로 반응합니다면, 결국 남의 불의 때문에 나 자신을 스스로 죄 짓는 길로 인도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추구하시는 의를 보호하고 삶에 실천하는 것이 바로 공의의 하나님이 성도에게 원하시는 길입니다.


하나님을 재촉하는 시인의 태도가 불경합니까? 아닙니다. 도리어 하나님을 하나님 되시게 합니다. 그분의 능력을 입증하고 그분의 성품을 입증하여 우리로 어떤 상황에서든 찬미를 드릴 수 있게 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믿는 자에게 허락하시는 역전의 역사, 뒤집힘의 역사를 요청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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