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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034-01)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시편 34편 1-22절


 

은혜는 말 그대로 자격 없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 같은 호의(好意)입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받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주시더라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그릇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어떤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수용되는 것입니까?

 

  •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를 신뢰하고 경외하는 자의 필요를 공급하시며 고난에서 구하시는 분입니다. 다윗은 고난 중에 하나님을 찾아 그의 구원을 경험하였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체험으로 청중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간증하고, 여호와 경외하는 법을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 찬양(1-3)

 

아무리 진수성찬이 차려졌다 한들 먹지도 못하고 단지 설명만 듣거나 구경만 한다면 무슨 큰 의미가 있겠습니까? 직접 먹어 그 맛을 음미할 때 비로소 음식은 그 존재 가치가 유감없이 발휘되는 것이고, 먹는 사람도 큰 즐거움과 만족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1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 2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들이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3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의 이름을 높이세(1-3)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을 항상 송축하고 찬양할 것이라는 자신의 의지를 선언합니다. 다윗의 입에서는 하나님 찬양이 끊임없이 흘러나옵니다. 이 찬양 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자랑이 들어 있습니다. 그 자랑의 내용은 하나님의 행하신 일, 특히 그의 구원과 선하심에 대한 내용임을 시 전체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곤고한 자들이 하나님에 대한 자랑을 듣고 기뻐할 것이라고 합니다. 다윗도 곤고한 자였으나(6) 하나님께서 자신을 환난에서 구해주시는 체험을 했고, 이제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대한 간증을 그들에게 나눌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곤고한 자의 체험을 들으면 그들도 하나님의 보호와 구원을 소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청중에게 자기와 함께 찬양하며 구원의 하나님을 광대하게 하고 그의 이름을 높이자고 호소합니다.

 

 

다윗의 간구와 구원자 하나님(4-7)

 

하나님께서는 실로 선하신 분입니다. 어질고 아름다우셔서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적지 않은 이들이 그런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그런 신앙은 진정한 기쁨과 풍요를 가져다주지 못할 뿐 아니라,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겉과 속이 전혀 다른 위선적인 삶으로 귀결되기 쉽습니다.

 

4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5그들이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내었으니 그들의 얼굴은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6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7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4-7)

 

다윗은 하나님을 자랑하고 찬양하는 이유인 자기의 간증을 시작합니다. 그는 환난을 당하여 두려웠을 때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는 그의 기도를 듣고 모든 두려움에서 그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자기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을 바라보면 그분의 선하심과 구원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에게 머물던 근심이나 두려움이나 수치가 사라지고 얼굴에 기쁨과 감사의 광채가 가득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다윗은 자기가 하나님을 찾아 도움을 청했을 때 그에 대한 응답으로 모든 환난에서 구원을 받는 체험을 했기 때문에 이를 확신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는 곤고한 상황에 있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한 자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를 보내 환난에 처한 그를 보호하고 건지셨습니다. 다윗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보호와 구원 틀림없이 임할 것이라고 진술합니다.

 

지혜의 가르침(8-14)

우리는 다윗처럼 주님을 간절히 찾는 것이 어렵습니까? 하나님에 대해 몇 가지 오해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혹시 인간의 자유를 억압한 분은 아닐까, 하는 우려를 하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언뜻 하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맞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분을 간절히 찾지 못합니다. 이는 어느 정도 이유 있는 오해입니다.

 

8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9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10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11너희 자녀들아 와서 내 말을 들으라 내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을 너희에게 가르치리로다 12생명을 사모하고 연수를 사랑하여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 13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거짓말에서 금할지어다 14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8-14)

 

시인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곤란 중에 있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라고 합니다. 그는 여호와께 피하고 그 분을 경외하는 자에게 주시는 부족함이 없는 삶을 맛볼 것입니다. 이는 넉넉하고 편하고 안락한 삶도 아니고 고통의 즉각적인 제거만도 아닙니다.

 

(1)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의 행복(8)

 

다윗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험할 수 있다고 확신하므로 청중에게 하나님의 선하심을 각자 체험해보라고 권유합니다. 하나님께 간구하여 그분의 구원과 보호를 직접 경험하여 하나님께서 얼마나 선하신 분인지를 본인이 스스로 목격하고 누려보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여기에 덧붙여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는 자가 진정 행복한 자(시 2:12)라는 점을 밝히며, 청중들도 하나님을 신뢰하여 그 행복을 경험하라고 권면합니다.

 

(2) 하나님 경외와 그 결과(9-10)

 

이와 같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자신의 생각이나 지식을 앞세우지 말고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해야 합니다(잠 3:5-6).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가 하나님의 진정한 백성이며 그분의 영원한 기업의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시 33:12). 다윗은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가르칩니다. 다윗의 가르침은 지혜의 가르침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잠 1:7; 시 111:10),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말은 위에 언급한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말과 아주 다르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신뢰하며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힘이 센 젊은 사자는 맘만 먹으면 먹잇감을 포획할 수 있지만, 이런 사자도 굶주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찾는 자는 모든 것, 그것도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 없이 다 만족할 것입니다. 사지는 먹잇감을 찾아다녀야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경외하는 자를 친히 먹이시고 보살피십니다. 시인의 이 모든 말은 허중이나 과장이 아니라 그가 실제로 경험한 신앙의 고백입니다. 시인은 곧고 했을 때 하나님을 찾아(4, ‘간구하매’로 번역됨) 하나님께서 자신을 모든 두려움과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음을 경험하였습니다. 시인의 체험과 확신에 찬 증거는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3) 지혜의 가르침(11-12)

 

시인은 ‘자녀들아’(원문에서는 ‘아들들아’)라고 청중을 부르며 교사로서 지혜의 교훈을 줍니다(11). 이스라엘 부모가 자녀들에게 하나님 경외와 그분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신 4:9; 6:7). 이 명령은 단순히 자식을 지혜롭게 교육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법도를 다음 세대에게 전달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의의 백성을 만들라는 명령이었습니다(창 18:19: 시 78:4,6). 이에 따라 시인은 청중에게 지혜의 교훈인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시인은 청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누가 생명을 사랑하며 장수하기를 원하며 선을 보기(경협하기)를 원하는가?”라고 묻습니다. 시인은 사람들이 인생에서 추구하는 장수와 복을 제시하는 이유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임할 선물이 바로 장수와 선을 경험하는 복이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청중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을 배워 이 복을 받기를 유도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시인은 악 중에서도 특히 악한 말과 거짓말을 피하라고 예를 듭니다. 이 구절(13-14)과 유사하게 잠언 8:13에서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잠언에서는 악에 대한 예로 악한 태도(교만, 거만), 악한 행실, 악한 말(패역한 입)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였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하나님의 성품인 정직과 선을 따라야 합니다. 마음과 말과 행동에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것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선한 것을 택하여 행해야 합니다. 다툼이 아니라 화평을 찾아야 합니다. 시인의 가르침은 잠언이나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 가르치는 지혜와 동일합니다. 여호와 경외는 지혜로운 삶의 시작이며, 여호와를 경외한다면 하나님을 신뢰하고 악을 버리고 선을 찾아야 합니다.

 

의인과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15-22)

의로운 사람이 이 세상에서 언제나 외적으로까지 승리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모든 의로운 사람들에게 확실히 보장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 모두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스데반은 순교 직전 하늘을 우러러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15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16여호와의 얼굴은 악을 행하는 자를 향하사 그들의 자취를 땅에서 끊으려 하시는도다 17의인이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들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 18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19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20그의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서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 21악이 악인을 죽일 것이라 의인을 미워하는 자는 벌을 받으리로다 22여호와께서 그의 종들의 영혼을 속량하시나니 그에게 피하는 자는 다 벌을 받지 아니하리로다(15-22)

 

여호와 경외와 신뢰에 대해 교훈을 준 시인은 이제 청중에게 이 가르침을 받고 순종하는 자와 불순종하는 자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약속을 설명합니다. 시인의 여호와 경외와 신뢰에 대한 권면을 따르는 자는 의인이며 지혜자입니다. 그러나 지혜의 권면을 거부하여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따르는 자는 악인이며 우매자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라 성도의 의무입니다. 그러므로 의무를 다하여 순종하는 의인이나 의무를 무시하고 지키지 않는 교만하고 우매한 악인 모두 각각 마땅한 대가를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경외하는 의인들은 하나님의 집중적인 간섭과 보호와 구원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눈과 귀는 항상 의인들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부르짖을 때 듣고 그들이 처한 모든 환난과 고난에서 건지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들 또한 주의 깊게 감찰하십니다. 이들을 주목하시는 이유는 그들의 행악을 확인하고 그들의 흔적을 땅에서 완전히 끊기 위함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경외하는 의인에게는 생명과 장수가 있지만, 악인에게는 멸망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경외하는 자도 죄를 지을 때가 있으나 죄로 인해 상한 마음을 갖고 진심으로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의인이라 칭하시고 그를 벌하는 대신에 용서와 구원으로 감싸주십니다. 그에게 고난이 많을 수 있으나 그 모든 고난에서 건져주시고 속량하십니다. 그의 신체의 일부인 뼈 하나라도 상하지 않도록 보살피십니다. 시인이 거듭해서 하나님께서 그를 경외하고 신뢰하는 자들을 모든 환난과 고난에서 건지신다(17.19)고 강조하는 것은 그가 이미 모든 두려움과 환난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4.6). 이와 같이 시인의 여호와 경외에대한 교훈과 확신은 그의 체험적인 신앙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가장 아픈 상황에서도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로서 우리의 삶에 여호와의 선하심과 풍성함이 넘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삶의 어려운 순간에 슬픈 노래를 부르며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높이는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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